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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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차별금지·기후 대처는 ‘G10’의 토대 조 바이든이 11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세상은 다시 과거의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이미 시대는 너무 변해버렸다. 얼마 전 트럼프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을 초대한 걸 두고 일각에서는 트럼프 특유의 즉흥 제안이라고 한다. 천만에. 지금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주류들은 국제질서를 서구 자유주의 대 중국 권위주의 동맹의 대결로 재편하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과거 빌 클린턴의 멘토인 에치오니의 꿈이 드디어 민주당과 공화당의 민공 합작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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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해찬 대표의 마지막 임무 나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한명숙 전 총리를 존경한다.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들이 아닌가. 그분들 및 일각의 시민정치 운동 요청으로 잠시 정당 노선 정립에 관여한 적이 있다. 내가 당시 제안했던 ‘시민 네트워크 정당’ 이론은 오늘날 민주당의 노선에 약간은 스며들어 있다. 그 덕분에 강준만 교수님으로부터 나의 이론이 한국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고 격렬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요즘 들어 자꾸만 그가 옳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회한이 든다. 굳이 변명하자면 지금 민주당의 현주소는 아직은 내가 제안했던 정치 모델로부터 거리가 있다. 이해찬 당 대표의 마지막 임무는 일단 ‘시민 네트워크 정당’이라고 하는 민주당 원래의 화두를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어 8월 선출될 다음 당 대표는 그 토대 위에서 ‘K방역’처럼 세계가 부러워하는 자유주의 미래 정당의 모델을 실험했으면 한다. 열린우리당 시절 혼란의 시대로 퇴행하지 않으면서도 다원성과 절차적 정당성(due process), 공적 책임성이 살아있는 정당 말이다. 지금 민주당은 다음의 4가지 질문을 던지며 미래 가치와 정당 노선 논쟁을 펼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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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막오른 한국형 뉴딜과 정계개편 세상이 뒤집어졌다. 이제 한국에서도 누구나 루스벨트의 뉴딜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두가 민주주의자 행세를 할 때가 민주주의가 가장 위기에 빠졌을 때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형 뉴딜을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다음의 3가지를 인식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급진적’ 생태 뉴딜주의자 루스벨트에게는 생태보전이 최대 목표이고 경제 회복은 2차 목표에 불과했다. 그럼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토건과 성장주의 시대 기준으로만 보면 루스벨트는 미국 역대 어느 대통령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열렬한 생태보전주의자였고 이를 위한 규제 강화론자였다. 오죽하면 경제 대공황의 한복판에서도 그의 국내 1순위 어젠다가 생태보전이었다. 그리고 그간 미국 학계에서 다소 저평가된 ‘시민 환경 보전단’ 등을 통해 7년간 300만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했다. 루스벨트보다 더 비타협적 ‘생태 전사’인 해롤드 이키스 핵심 참모는 수시로 본인의 사직을 내세워 루스벨트를 압박했다. 앞서간 생태철학자의 면모를 지닌 엘리노어 루스벨트와 이키스 등 백악관의 멋진 팀워크가 생태 친화적이면서도 경제적 풍요를 이룬 뉴딜을 성취해냈다. -
정동칼럼 21대 국회에 바라는 ‘대담한 반란’ 미안한 말이지만 향후 4년을 책임질 새 국회는 이미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하고 있다. 왜 투표 잉크도 마르기 전에 나는 벌써 비관주의에 빠질까? 대한민국 국회는 상원과 하원이 역할을 나눈 미국과 다르다. 세가지의 험난한 역할을 모두 단원제 내에서 수행해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의 기관이다. 세가지란 예리한 분노, 합리적 지성주의, 미래 예방 행동이다. 유감스럽게도 새로이 구성될 국회에는 세가지의 역할 모델을 수행할 인물들이 너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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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탄핵 음모와 ‘재난 뉴딜’ 정치연합 다들 저마다 과거로의 퇴행을 막기 위해 선거 전망과 다양한 비례위성정당 제안을 내놓았다. 난 이 곤혹스러운 고민이 가지는 절실함과 진정성을 믿는다. 다만 그중 일부 논객들은 과거 조국, 지소미아, 코로나19 사태에서 일관되게 일주일 앞도 못 내다본 걸 기억한다. 이분들이 스스로 가장 자랑하는 게 정치 윤리가 아니라 정치 현실주의라는 게 나에겐 기이한 퍼즐이다. 왜냐하면 자주 현실 예측에 실패하는 현실주의는 금시초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떡하든 정치연합을 확대하려 하기보다는 비생산적으로 감정을 건드리고 진보정당의 핵심 지역구 기반을 위협하는 등 정치연합을 축소하는 데 매진하는 건 현실주의가 아니다. 이번엔 이들의 수학적 시뮬레이션 능력이 맞을 것이라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균열이 선거 이후 복합위기의 비상조치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확장된 연합의 걸림돌이 될까 난 두렵기만 하다. 어느덧 현실지형이 되어버린 비례위성정당 추가 논쟁은 비생산적이다. 어떤 선거 참여 형태이든 이제는 시민들의 판단에 과감히 맡기자. 오히려 남은 기간 및 선거 이후엔 다음 공동 행동에 힘을 모으면 어떨까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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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샌더스와 코르테스, 심상정과 장혜영 버니 샌더스 46대 미국 대통령 당선. 비록 뉴햄프셔에서 간신히 득표수 1위를 했지만 나는 아직은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21세기는 누가 강렬한 에너지와 팬덤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확장세는 약했지만 열정적 지지세가 강했던 트럼프도 예상을 깨고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 비록 앞으로 기업주의 국가를 꿈꾸는 블룸버그 전 시장과의 혈투 등 변수가 너무 많지만 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은 샌더스의 든든한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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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BTS와 ‘퀀텀 에너지’ 나는 슬프지만 10년 이상 가족과 함께 울고 웃던 어느 보이밴드 팬을 그만두고 얼마 전 BTS에 ‘입덕’했다. 작년 말 서울의 BTS 팝업 스토어와 올해 초 런던 BTS 포럼 줄에 서 있는 동안 과거에 대한 슬픔과 미래에 대한 행복감이 교차했다. 백발이 섞인 중년 남성이 어린 팬들의 긴 줄에 서 있는 건 좀 곤혹스럽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아내가 몇 시간의 긴 줄에 동반해주는 덕분에 뼛속까지 파고드는 날씨와 당혹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촛불 때도 그랬다. 역시 가족이 최고이다. 난 지나치게 가족의 가치를 절하하고 공적 영역만을 강조한 철학자 해나 아렌트에 좀 불만이다. 가족은 <동백꽃 필 무렵>의 대사처럼 때로는 서로에게 전환적 기적일 수 있다. 그리고 런던에서 BTS를 사랑하는 학자 ‘아미’들끼리 확대된 가족 공동체의 사랑과 우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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