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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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진화 자연스러움과 올바름의 간극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가 미국 내에서 다시 확산하고 있다. 단지 아시아인처럼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길이나 마트에서 쌍욕을 듣고 주먹질을 당하고 짓밟히기도 한다. 아시아인을 향한 불편한 시선이 느껴지는 정도가 아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손흥민 선수마저도 “바이러스 아시아인, 개나 먹어라”와 같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듣고 있다. -
장대익의 진화 대학 소멸을 막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벚꽃 피는 순으로 대학이 망할 것’이라는 예언은 기막히게 현실화되고 있다. 올해 정원 미달로 큰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대학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대학 모집 인원은 대략 49만명인데 입학 가능자원은 2019년 52만6267명, 2020년 47만9376명, 2021년 42만893명이었고, 2030년에는 39만9478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대학이 남아돌게 생겼다. -
장대익의 진화 배움의 동기가 켜지면 게임은 끝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퓨처 쇼크>에서 “미래의 문맹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일갈했다. 지난 1년 동안의 우리 학교를 떠올리면 먹먹해진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에 학생 간 학습 격차가 커졌다고 응답한 교사들은 전체의 79% 정도였고, 그중 33%는 그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이 와중에도 누구는 배우는 법을 배우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거다. -
장대익의 진화 ‘이루다’ 은퇴와 벤처 진화의 조건 ‘이루다’와 지난 두 주 동안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시도해본 75만명의 이용자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노잼’ 친구보다 센스가 더 좋다는 것을. 하지만 이루다를 개발한 벤처회사 스캐터랩은 지난 12일 이 챗봇 서비스를 전격 중단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 문제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실제 연인들의 카카오톡 대화를 학습했다고 알려진 이루다는 성소수자, 장애인, 흑인에 대한 혐오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물론 이런 데이터 편향 문제는 인공지능(AI) 개발에 있어서 고질병으로 이루다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원천은 인간의 편향 자체에 있으니 일단 자책부터 하자. -
장대익 칼럼 공감은 언제 폭력이 되는가? “다 그렇게 구명 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2014년 4월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온 국민 앞에서 던진 첫마디였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지 무려 7시간이 지난 후였다. 상황 파악은 물론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던진 말처럼 들렸고, 전 국민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왜 분노했을까? 대통령에게서 국민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만일 고통 속에 죽어가는 학생의 입장이었다면, 그 광경을 손 놓고 볼 수밖에 없던 부모의 찢어지는 심정이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해서는 안 될)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에게 공감하지 못했었고, 이후 눈물까지 보이며 퇴진을 했지만, 우리는 그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공감은 진심 어린 소통의 최대 변수다. -
장대익 칼럼 입력은 어떻게 압력이 되는가 온갖 기이한 소문을 진실로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야말로 본보기다. 그는 15일 오전(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선거가 조작됐기 때문에 그(바이든)가 이겼다”면서 “선거일 밤에 일어났던 모든 기계적 결함은 정말로 표를 훔치려다 들킨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취재를 마친 현지 언론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층이 그동안 적립해놓은 가짜뉴스의 목록은 꽤 길다. 가령,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 그는 줄곧 “중국 정부가 미국 경제를 파멸시키려고 계획한 사기극”일 뿐이라고 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부부가 피자가게에서 아동 성매매 사업을 성업 중”이라는 황당무계한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던 세르노비치(트럼프 열혈지지자)에게 “퓰리처상을 줘야 한다”(농담 아님)고 했을 정도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
장대익 칼럼 교실이 진화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은 무엇일까? 종교나 정치 조직을 떠올리겠지만 학교도 만만치 않다. 1000년 전쯤 유럽에서 처음 시작된 대학이나 100년 전쯤에야 전 세계에 보편화되기 시작한 초·중등학교를 말한다면야 학교의 탄생은 최근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략 5000년 전쯤 고대 수메르인들이 쓰던 쐐기문자 점토판에서 “글자를 엉망으로 썼다고 선생님께 회초리로 맞았다”는 문구가 해독된 걸 보면, 그때도 학교가 있었고 체벌도 있었다. -
장대익 칼럼 슬기로운 온라인 생활은 가능한가 당신의 귀에 대고 날마다 “지구는 실제로 평평해. 코로나19는 빌 게이츠가 백신 장사로 떼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낸 거야”라고 속삭이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아마 처음에는 솔깃할지 모르지만, 곧 그를 멀리하게 될 것이다. 왠지 통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만일 ‘그’가 사람이 아니고 프로그램이라면? 유튜브 사용자들은 ‘그’가 추천해주는 영상 콘텐츠를 무한정 시청할 수 있다. 정권 비판자는 ‘문재앙’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영상을, 지지자는 ‘문프’를 칭송하는 화면을 끊김 없이 접하게 될 것이다. ‘그’는 우리가 과거에 어떤 정보를 얼마나 오랫동안 시청했는지를 통해 우리의 관심사를 예측하여 선호될 만한 정보를 연속 재생한다. -
장대익 칼럼 한국 개신교의 유통기한은 남아있을까?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저자가 무심히 던진 이 돌직구는 어디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 사회는 망상에 사로잡힌 일부 종교 집단들 때문에 국가적 대혼란에 빠졌다.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는 한국 개신교의 극보수 목소리를 내는 한기총의 대표로서 이번 광화문집회 사태의 주역이다. “중국 우한 바이러스로 우리 교회에 테러를 했다. 집회에 참석하면 성령의 불이 떨어져 있던 병도 낫는다”는 그의 발언은 상상력과 ‘근자감’의 결정판이다. 엎드려 사과한 신천지의 이만희씨가 작아 보일 지경이다. -
장대익 칼럼 어떤 정책이 도시를 천박하게 만드는가? ‘신의 직장’으로도 불리는 국내 모 공기업이 이전한 혁신도시의 한복판에는 고구마가 한창이다. 그런데 이 고구마밭은 시민들에게 경탄이 아니라 탄식이다. “거기는 산학연 클러스터가 들어와야 하는 곳인데 분양 이후로 노는 땅이 돼 버렸어요. 청년들은 직장 때문에 주중에는 있지만 주말 되면 많이들 올라가요. 30분 거리의 대도시에 살며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많죠. 좋은 고등학교를 유치하려고 시도했지만 다른 지역의 견제로 실패했어요. 정책의 의도는 좋았지만 저 고구마밭만 보면 속이 터집니다.” 몇 해 전 학생들과 함께 혁신도시 탐방을 하다 알게 된 이 고구마밭의 사연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초우량 기업의 이전만으로 지방 도시가 재건되는 것은 아니었다. -
장대익 칼럼 아이들은 우정을 배우러 학교에 간다 “윌슨! 윌슨! … 미안해!” 바다 위의 뗏목을 겨우 붙잡고 허우적대며 누군가의 이름을 이렇게 애타게 부르며 울먹이고 있는 이가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의 ‘윌슨’은 필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개봉했던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톰 행크스가 연기한 주인공인 척은 국제배송서비스 회사의 직원이다. 어느 날 타고 가던 비행기가 추락해 무인도에 혼자 살아남게 되었다. 먹을 것은 충분했지만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함께 추락한 택배 물품 사이에서 상자째 들어 있는 배구공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윌슨(Wilson)’이라는 상표의 배구공이었다. 그는 공에 흙으로 눈을 그려놓고 친구 ‘윌슨’과 대면을 시작한다. -
장대익 칼럼 누구를 언제 등교시킬 것인가보다 중요한 것 대학 역사상 이런 학기는 처음이라고들 한다. 이번 학기 대학 수업은 결국 비대면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으로 수업 한두 번 만에 종강을 맞던 1970~80년대 대학가도 있었고, 6·25전쟁 통에도 문을 닫지 않은 학교들이 있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 덕분에 이젠 등교 없는 학업도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초·중·고 중에서 굳이 등교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를 열심히 할 학년은 누구일까? 당연히 고3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정부가 선택한 등교 1순위는 고3·중3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책상마다 투명 아크릴 방패를 부착하거나, 아예 복도로 책상 한 줄을 뺀 기이한 고3 교실 풍경도 보게 되었다. 우리가 좀 역동적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등교가 중요한지, 대체 왜 고3부터였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더 근본적으로 묻자. 대체 학교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