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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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최저임금은 억울하다 장모님은 학교급식조리노동자였다. 20년 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 학생들의 밥을 지었다. 자주 편도가 붓고 팔다리가 아팠는데, 신비하게도 일을 쉬니까 고통이 사라졌다. 노동의 고통과 일을 그만뒀을 때의 소득감소를 저울질해야 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한계’와 ‘효용’이라 부르고, 노동자들은 ‘골병’과 ‘풀칠’이라 부른다. 한약으로 기운을 채우고, 침으로 아픈 몸을 깨우며 일을 하던 장모님은 딸이 결혼을 하자 사표를 냈다. 학교는 뒤늦게 장모님을 붙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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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전태일의 ‘얼굴’ “사장들한테 얻어먹지 말라 하셔서 제가 샀습니다.” 하헌수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옆에 있던 동료가 거들며, 하 조합원이 사장들을 만나러 다니며 쓴 밥값이 2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1년 전 지역 배달대행사 사장들이 건당 임금을 1300원 삭감하자 하헌수 라이더는 동료들을 모아 노조를 만들고 지역의 모든 배달대행사에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단체교섭이라는 말을 생전 처음 들어본 사장들은 하헌수를 무시했다. 설득이 안 되니 집회와 투쟁을 시작했고, 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 판정까지 받고 나서야 교섭테이블이 열렸다. 꼬박 1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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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벤츠녀’가 말하지 않는 것 2월3일 새벽, 50대 배달노동자가 강남의 논현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뒤따르던 차량이 굉음을 내더니 배달노동자를 덮쳤다. 음주운전 사망사고였다. 다음날 현장을 찾았다. 노동자가 죽은 중대재해 현장이었지만 어떠한 표지도 없었다. 오늘도 생계를 위해 고개를 오르는 오토바이 바퀴들이 무심히 사고현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배달노동자의 선명한 핏자국만이 그날의 참변을 증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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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우리, 고용보험료 내잖아요 “우리 고용보험료 꼬박꼬박 내잖아요. 그러면 육아휴직도 되지 않나요?” 광주에서 일하는 배달노동자의 상담전화에 식은땀이 났다. 부끄럽게도 배달하는 아빠가 육아휴직을 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배달, 화물, 학습지 교사 등 노무제공자를 위한 고용보험은 출산전후휴가만 보장한다. 혹시 제도가 개선됐을지 몰라 법률을 뒤지고 전문가 자문을 구했지만 육아휴직뿐만 아니라 배우자 출산휴가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사실만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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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라이더 함부로 차지 마라 라이더는 음식과 소주를 건네기 전, 본인확인을 위한 전자서명 화면을 손님에게 보여줬다. 손님은 라이더의 휴대폰 위로 손가락을 갖다 대더니 가로로 찌익 그었다. 신분증은 보여주지 않았다. 배민 약관에는 주류배달 시 손님이 신분증과 본인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업주에게 반환하라고 되어 있고, 이를 위반해 발생한 책임은 라이더에게 있다고 적혀 있다. 약관이 없더라도 대부분의 라이더들은 자영업자에게 손님 신분증이 없어 주문을 취소하고 돌아가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다음 배달 때문에 최대한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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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여전히 택시엔 ‘방영환들’이 있다 택시 미터기에서 힘차게 달리는 말과 치솟는 숫자를 보면 가슴이 쫄깃해진다. 혹시나 기사님이 길을 돌아가실까 내비게이션 앱을 켜고 예상택시요금과 최적경로도 확인한다. 그러나 택시 미터기에는 손님이 앱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마이너스 금액이 있다. 하루 19만3000원, 택시회사 해성운수가 노동자에게 ‘기준운송수입금’이라는 이름으로 걷는 돈이다. 택시노동자가 총알처럼 달리는 이유, 좁은 골목길 안까지 태워달라는 손님을 싫어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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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이제 절실한 건 ‘동료 시민’ “장애인 교육차별 철폐, 장애인 교육예산 증액’이 새겨진 조끼를 입은 발달장애 청소년과 대학생 자원활동가들이 부산~경주 간 국토대장정을 떠났다. 발달장애인 청소년들은 길을 걷다 지쳐 주저앉았고, 대학생 활동가들의 발가락에는 커다란 물집이 잡혔지만 포기하지 않고 3박4일간 90㎞의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청소년과의 대화를 어려워하던 활동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적·비언어적 소통을 익히며 함께 걷는 법을 배웠다. 마지막 날 종착지인 해운대역에서 장애 청소년-대학생-학부모들은 한자리에 모였고,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장애인을 집에 격리시킬 게 아니라 동네와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부딪칠 수 있게 한다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순간이었다. 지난 여름방학에 떠났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이 국토대장정은 2007년 겨울방학에 진행된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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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뜬금없는 대통령발 이념전쟁 밀턴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사회주의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 자유가 갖는 특징’이라며 자유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그의 제자를 자임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스승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잡아내는 데 혈안이다. 8월15일 윤 대통령이 ‘인권·진보 활동가들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며 주홍글씨를 새기자, 국방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김좌진 장군의 흉상을 뽑으려고 한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대통령발(發) 이념전쟁이 의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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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국가의 보험사기 “더 많은 플랫폼 종사자들이 고용 불안정과 산업재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지난해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를 개선했습니다.” 지난 7월21일 인도에서 열린 ‘G20 고용노동장관회의’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세계에 자랑한 내용이다. 이 장관의 연설이 있은 지 3일 뒤 웹툰작가, 대리운전, 배달라이더 등으로 구성된 ‘플랫폼노동자 희망찾기’는 규탄성명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고용, 산재보험이 ‘국가 주도의 보험사기’로 전락할 판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장관 말대로 고용보험 납부자가 늘어나긴 했다. 과거 특수고용노동자로불리던 보험설계사, 택배, 퀵서비스 기사 등 ‘노무제공자’의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2022년 4월 기준으로 100만명을 넘겼다. 배달노동자들도 2022년 1월1일부터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기 시작했는데 배달업체 사장들은 이를 핑계로 각종 수수료를 높이는 바람에 노동자들은 내야 할 보험료보다 많은 금액을 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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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 “빠앙.” 냉소와 야유를 토해내듯 경적이 울린다. 차량 한 대가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1만2000보 도보행진에 참여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을 밀치듯 지나쳤다. 집회와 행진에 참석하다 보면 자주 겪는 일이다.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지하철을 타면 원색적 비난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서로의 남루한 얼굴을 마주하면 대거리를 하는 대신 문구가 보이지 않게 팻말을 돌리고 얼굴도 돌려 버린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분들은 뒤통수에 대고 ‘지랄하네’라는 말을 내뱉는데 문득 뜻이 궁금해 사전을 찾아보니 간질 환자를 비하하거나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온몸을 던져서라도 전하고 싶은 절박한 이야기는 종종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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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만만한 게 노동자 임금인가 “원재료 가격 등 물가 상승으로 부득이 가격을 인상합니다.” 자주 가는 음식점마다 비슷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내 지갑만 생각하면 서운하다가도 임대료에 대출 이자까지 떠안을 사장님 생각을 하니 납득이 된다. 정반대의 안내문을 붙이는 상품도 있다. ‘물가 상승으로 부득이 가격을 인하합니다.’ 인간 노동력의 가격, 임금이다. 재계와 보수언론은 임금이 상승하면 자영업자가 힘들어져 고용이 줄고 물가가 상승해 조삼모사가 되니 임금을 동결 또는 인하하자고 주장한다. 이들이 최저임금을 너무 많이 올렸다고 비난한 2018년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1.5% 올랐고, 2019년에도 0.4% 오르는 데 그쳤다. 1000원 수준의 임금 인상으로는 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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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사회화되지 않는 손실 설거지를 하다 ‘쉬지도 않고 일하던 애가, 전셋집을 구해서 진짜 좋아했는데’라는 소리를 들었다. 전셋집 마련이 꿈이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라 TV로 얼굴을 돌렸다. 전세사기 피해자 사망을 다룬 뉴스였다. 미디어에 출연해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말하는 전문가를 본 적은 많았지만 전셋집을 구해 기뻐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문제가 된 전세금은 8000만~9000만원. 공시가격 9억원 이상 아파트의 종부세 문제가 ‘생존권’이란 이름으로 몇년 동안 정치쟁점이 되는 동안, 전세금 8000만~9000만원이 누군가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걸 알기 어려웠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배제돼 있다가 사망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