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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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우리, 고용보험료 내잖아요 “우리 고용보험료 꼬박꼬박 내잖아요. 그러면 육아휴직도 되지 않나요?” 광주에서 일하는 배달노동자의 상담전화에 식은땀이 났다. 부끄럽게도 배달하는 아빠가 육아휴직을 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배달, 화물, 학습지 교사 등 노무제공자를 위한 고용보험은 출산전후휴가만 보장한다. 혹시 제도가 개선됐을지 몰라 법률을 뒤지고 전문가 자문을 구했지만 육아휴직뿐만 아니라 배우자 출산휴가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사실만 확인했다. 2020년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했다. 같은 해 12월23일 고용노동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3년 7월21일 인도에서 열린 G20 고용노동부 장관회의에서 대한민국이 플랫폼 종사자들을 위해 산재 고용보험 제도를 개선했다고 자랑했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전 국민’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구멍이 뻥뻥 뚫린 사회안전망의 그물 사이로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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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라이더 함부로 차지 마라 라이더는 음식과 소주를 건네기 전, 본인확인을 위한 전자서명 화면을 손님에게 보여줬다. 손님은 라이더의 휴대폰 위로 손가락을 갖다 대더니 가로로 찌익 그었다. 신분증은 보여주지 않았다. 배민 약관에는 주류배달 시 손님이 신분증과 본인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업주에게 반환하라고 되어 있고, 이를 위반해 발생한 책임은 라이더에게 있다고 적혀 있다. 약관이 없더라도 대부분의 라이더들은 자영업자에게 손님 신분증이 없어 주문을 취소하고 돌아가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다음 배달 때문에 최대한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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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여전히 택시엔 ‘방영환들’이 있다 택시 미터기에서 힘차게 달리는 말과 치솟는 숫자를 보면 가슴이 쫄깃해진다. 혹시나 기사님이 길을 돌아가실까 내비게이션 앱을 켜고 예상택시요금과 최적경로도 확인한다. 그러나 택시 미터기에는 손님이 앱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마이너스 금액이 있다. 하루 19만3000원, 택시회사 해성운수가 노동자에게 ‘기준운송수입금’이라는 이름으로 걷는 돈이다. 택시노동자가 총알처럼 달리는 이유, 좁은 골목길 안까지 태워달라는 손님을 싫어하는 이유다. 정부와 국회도 사납금제의 문제에 공감해 2021년 서울에서부터 사납금제를 폐지하고 택시노동자에게 주 40시간 기준으로 월급을 지급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택시회사들은 사납금제를 계속 유지했고, 노동자에게 하루 3시간30분 주 20시간 일한 것으로 근로계약서를 쓰게 했다. 불법이었지만 노동자가 정부에 회사를 신고하면, 노동자도 사납금을 회사에 지급한 잘못이 있다며 합의를 종용했다. 참다못한 일부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회사는 손님이 구토한 차나, 에어컨이 고장난 차를 노동자에게 배정했다. 회사는 노조를 결성한 노동자를 해고하기까지 했는데 대법원 판결로 재고용했지만, 반성은커녕 불법적인 관행을 계속 강요했다. 복직한 노동자는 200일이 넘게 회사 앞에서 법을 준수하라며 1인 시위를 벌였는데, 해성운수 대표는 쇠꼬챙이를 휘두르며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협박은 필요 없었다. 9월26일 친절한 택시노동자가 되고 싶었던 방영환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고, 10월6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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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이제 절실한 건 ‘동료 시민’ “장애인 교육차별 철폐, 장애인 교육예산 증액’이 새겨진 조끼를 입은 발달장애 청소년과 대학생 자원활동가들이 부산~경주 간 국토대장정을 떠났다. 발달장애인 청소년들은 길을 걷다 지쳐 주저앉았고, 대학생 활동가들의 발가락에는 커다란 물집이 잡혔지만 포기하지 않고 3박4일간 90㎞의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청소년과의 대화를 어려워하던 활동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적·비언어적 소통을 익히며 함께 걷는 법을 배웠다. 마지막 날 종착지인 해운대역에서 장애 청소년-대학생-학부모들은 한자리에 모였고,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장애인을 집에 격리시킬 게 아니라 동네와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부딪칠 수 있게 한다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순간이었다. 지난 여름방학에 떠났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이 국토대장정은 2007년 겨울방학에 진행된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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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뜬금없는 대통령발 이념전쟁 밀턴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사회주의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 자유가 갖는 특징’이라며 자유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그의 제자를 자임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스승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잡아내는 데 혈안이다. 8월15일 윤 대통령이 ‘인권·진보 활동가들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며 주홍글씨를 새기자, 국방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김좌진 장군의 흉상을 뽑으려고 한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대통령발(發) 이념전쟁이 의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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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국가의 보험사기 “더 많은 플랫폼 종사자들이 고용 불안정과 산업재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지난해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를 개선했습니다.” 지난 7월21일 인도에서 열린 ‘G20 고용노동장관회의’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세계에 자랑한 내용이다. 이 장관의 연설이 있은 지 3일 뒤 웹툰작가, 대리운전, 배달라이더 등으로 구성된 ‘플랫폼노동자 희망찾기’는 규탄성명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고용, 산재보험이 ‘국가 주도의 보험사기’로 전락할 판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장관 말대로 고용보험 납부자가 늘어나긴 했다. 과거 특수고용노동자로불리던 보험설계사, 택배, 퀵서비스 기사 등 ‘노무제공자’의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2022년 4월 기준으로 100만명을 넘겼다. 배달노동자들도 2022년 1월1일부터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기 시작했는데 배달업체 사장들은 이를 핑계로 각종 수수료를 높이는 바람에 노동자들은 내야 할 보험료보다 많은 금액을 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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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 “빠앙.” 냉소와 야유를 토해내듯 경적이 울린다. 차량 한 대가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1만2000보 도보행진에 참여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을 밀치듯 지나쳤다. 집회와 행진에 참석하다 보면 자주 겪는 일이다.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지하철을 타면 원색적 비난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서로의 남루한 얼굴을 마주하면 대거리를 하는 대신 문구가 보이지 않게 팻말을 돌리고 얼굴도 돌려 버린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분들은 뒤통수에 대고 ‘지랄하네’라는 말을 내뱉는데 문득 뜻이 궁금해 사전을 찾아보니 간질 환자를 비하하거나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온몸을 던져서라도 전하고 싶은 절박한 이야기는 종종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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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만만한 게 노동자 임금인가 “원재료 가격 등 물가 상승으로 부득이 가격을 인상합니다.” 자주 가는 음식점마다 비슷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내 지갑만 생각하면 서운하다가도 임대료에 대출 이자까지 떠안을 사장님 생각을 하니 납득이 된다. 정반대의 안내문을 붙이는 상품도 있다. ‘물가 상승으로 부득이 가격을 인하합니다.’ 인간 노동력의 가격, 임금이다. 재계와 보수언론은 임금이 상승하면 자영업자가 힘들어져 고용이 줄고 물가가 상승해 조삼모사가 되니 임금을 동결 또는 인하하자고 주장한다. 이들이 최저임금을 너무 많이 올렸다고 비난한 2018년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1.5% 올랐고, 2019년에도 0.4% 오르는 데 그쳤다. 1000원 수준의 임금 인상으로는 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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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사회화되지 않는 손실 설거지를 하다 ‘쉬지도 않고 일하던 애가, 전셋집을 구해서 진짜 좋아했는데’라는 소리를 들었다. 전셋집 마련이 꿈이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라 TV로 얼굴을 돌렸다. 전세사기 피해자 사망을 다룬 뉴스였다. 미디어에 출연해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말하는 전문가를 본 적은 많았지만 전셋집을 구해 기뻐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문제가 된 전세금은 8000만~9000만원. 공시가격 9억원 이상 아파트의 종부세 문제가 ‘생존권’이란 이름으로 몇년 동안 정치쟁점이 되는 동안, 전세금 8000만~9000만원이 누군가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걸 알기 어려웠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배제돼 있다가 사망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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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일하는 실업자의 비애 경제는 어렵고 일자리는 없다고 하는데 실업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실업률은 3.1%로 전년 동월 대비 0.3% 하락했다. 실업자가 100명 중 3명에 불과하다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주목해야 할 통계가 또 하나 있다. 2022년 단순노무종사자가 404만5000명으로 2013년 통계작성 이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무려 51만1000명이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취업자 수는 96만6000명 증가했는데, 늘어난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음식배달, 택배, 가사, 경비 노동자 등으로 구성된 단순노무종사자다. 대부분 플랫폼 노동자이거나 구인·구직 플랫폼에서 일자리를 찾는 비정규직, 초단시간 노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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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연차가 뭐죠, 마시는 건가요? ‘연차가 뭐죠, 마시는 건가요?’ 농담 같지만, 모 인터넷카페에 올라온 실제 질문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거나,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연차라는 단어 자체를 듣지 못한다. 연차의 뜻을 알더라도 ‘마시는 건가’라는 자조 섞인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데 연차가 있어도 쓸 수 없는 노동자가 많기 때문이다. 회사에 일이 많으니 쓰지 말라 했다가 회사에 일이 없으니 사용하라고 하는가 하면 퇴사 때 연차수당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나서 해결해야 할 불법이지만 되레 엉뚱한 일만 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주 69시간 근로가 가능한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와 재계는 요즘 젊은이들이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걸 좋아한다며, 69시간 일하고 제주도 ‘한 달 살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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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노동은 도박이 아니다 쿠팡이츠 앱에서 알림이 떴다. 1시간 안에 배달 3개 하면 7500원을 더 준다고 한다. ‘못 먹어도 고!’다. 흥분되는 마음으로 앱 접속 후 두 번째 콜을 수행하러 음식점에 도착했는데, 사장님이 놀라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 했다. 주문 들어왔는지 몰랐단다. 사장님이 부랴부랴 음식을 만들었지만, 20분이 훌쩍 넘었고 손님이 콜을 취소해버렸다. 고스톱에서 ‘고박’을 쓴 것처럼 보너스는커녕, 1시간 동안 고작 6000원을 손에 쥐었다. 터덜터덜 가게를 나오는데 앱이 5000원짜리 콜을 수락하겠냐고 물었다. 배달료가 실시간으로 바뀌기 때문에 거절할지 수락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이 콜을 거절하면 7000원으로 오른 콜이 올 수도, 3500원으로 하락한 콜이 올 수도 있다. 60초의 제한 시간 동안 삶을 건 도박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