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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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심야택시와 야간노동 출장 때문에 막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택시 없는 택시 정류장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만 바라봤다. ‘예약’ 글자를 연두색 빛깔로 내뿜는 택시들이 하나둘 도착했고, 줄을 선 사람이 아니라 호출에 성공한 사람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앱을 켜고 온라인 택시정류장에 접속해 손을 흔들어 봤지만, 어떤 택시도 잡히지 않았다. 비싼 택시를 호출할까 했더니, KTX와 비슷한 요금에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한적한 도로를 걷고 또 걷다가, 30분 만에 지나가는‘빈차’를 온몸을 흔들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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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알고리즘엔 죄가 없다 ‘차별은 없다.’ 카카오모빌리티가 만든 ‘모빌리티 투명성 위원회’가 카카오택시 알고리즘검증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택시노동자들은 카카오가 가맹택시에 콜을 몰아주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공정거래위원회와 서울시에서 조사 중이다. 이에 대응해 카카오가 자체 위원회를 구성 검증에 나선 것이다. 위원회가 설명하는 알고리즘은 손님에게 가까운 택시노동자를 먼저 찾아낸 다음, 콜 수락률이 높은 택시노동자에게 배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위원회는 “목적지 정보 표시 없이 자동 배차되는 가맹 기사와 목적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일반 기사 사이에 배차 수락률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는 일반 기사의 선택적인 콜 수락으로 생긴 차이로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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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코로나와 돌봄, 그리고 쉴 권리 체온계에서 삑삑 경고음이 나왔다. 38도를 넘었다. 고열로 밤새 끙끙 앓던 배우자를 데리고 다음날 아침 병원으로 향했다. 확진이었다. 다행히 나는 음성이 떴는데, 일정이 어그러지는 것부터 걱정했다. 7일의 격리기간 중 일정취소는 가장 쉬운 일이었다. 공간분리부터 문제였다. 1.5룸이라 격리할 공간이 없었다. 거실은 내가, 침실은 아내가 사용하고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준비했다. 격리기간 여유롭게 드라마 정주행이나 할까 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약을 먹기 위해 세끼를 꼭 챙겨야 했는데, 상을 두 번 차려야 했다. 배우자가 먹을 음식을 방으로 넣고 내가 먹을 음식을 따로 차렸다. 다 먹고 나면 상을 들고 나와 치웠다. 밥만 먹고 살 수 없으므로, 중간중간 과일과 커피, 음료 등을 공급했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환기시키는 일도 잊지 않았다. 잠시 숨을 돌리면 다시 밥때가 됐다. 이 와중에 업무상 연락을 받고, 줌 미팅 등을 해야 했기 때문에 휴대폰과 컴퓨터를 끌 수도 없었다. 내가 쓰러지면 누가 우리를 돌볼까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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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곱씹는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 최근 페북, 인스타의 개인정보이용 동의 강요가 논란이다. 개인정보를 넘기는 걸 넘어서 수천만명의 데이터를 가진 플랫폼기업을 통째로 넘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카카오모빌리티 이야기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내비게이션, 택시, 대리운전, 퀵 등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카카오T 가입자는 3000만명, 관련 종사자는 2만명에 달한다. 기업가치는 매각과정에서 8조5000억원으로 평가받는다. 엄청난 성장의 원동력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과 노동자가 제공한 데이터였다. 카카오모빌리티를 인수하려는 회사는 MBK이다. 기업을 사서 구조조정 후 되팔아 이윤을 얻는 사모펀드다. 우리의 데이터도 사모펀드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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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복지를 읽기 어려운 사람들 “고용보험은 강제로 플랫폼 라이더에게 징수해 놓고, 그걸 이유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졸속행정입니다.” 라이더유니온 커뮤니티에 올라온 조합원의 절규다. 배달 노동자들은 1월1일부터 고용보험이 적용됐는데, 고용보험가입자들에겐 특고 프리랜서 6차 재난지원금을 지원해주지 않아 일부 노동자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고용보험과 특고 프리랜서가 고용보험이 다르다는 걸 몰라서 발생한 해프닝이다. 배달할 때마다 배달앱에 ‘고용보험료’라는 이름으로 보험료가 차감되는 걸 본 배달노동자가 특고 고용보험이 따로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겠는가. 신규 신청자는 6월23일부터 신청이 가능한데, 너무 빨리 신청해 ‘신청대상자가 아닙니다’라는 안내를 받고 고용보험 때문에 탈락했다고 믿는 사람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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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이젠, 쪼개지는 노동을 묶자 몇 개월 전 조합원과 논쟁을 벌였다. 배달대행 라이더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두 개 이상의 배달기업에서 일하다 다쳤을 때 전속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산재보상을 받지 못한다. 주로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할 때만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얼마나 일해야 주로 하나의 사업장으로 일한 걸로 볼지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로 정한다. 올해는 93시간 이상 일하거나 115만원의 소득을 올려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들은 1시간 일해도 산재보상을 받는데, 어떤 노동자들은 특수하다는 이유로 산재보상을 받지 못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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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알고리즘의 구조조정 저녁시간, 배민앱과 오토바이 시동을 켰다. 5분이 지나도 콜을 주지 않자 상점이 많은 곳으로 움직였다. 3㎞를 달려도 콜을 주지 않았다. ‘콜사’다. 배달이 없을 때 콜이 사망했다며 부르는 은어다. 단체대화방에는 영정에 ‘콜’을 합성한 사진이 올라왔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만 장송곡처럼 울린다. 곡소리도 비용이 들어 기름을 더 먹기 전에 재빨리 시동을 껐다. 해고다. 취업을 위해 쿠팡이츠 앱을 켰다. 콜을 주긴 주는데 2㎞ 넘는 거리의 단건 배송을 3000원에 갔다 오라 한다. 기름값도 안 나오는 아스팔트 농사 따위 엎어버리고 싶지만 이 시기를 견뎌야 여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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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문제는 ‘산재전속성’이다 3월30일, 아마도 손님의 휴대폰 화면 속에서는 열심히 달려가던 귀여운 배달 라이더 캐릭터가 갑자기 멈췄을 거다. 손님이 배달을 시키고 실시간으로 배달 라이더를 확인했다면, 배달노동자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쿠팡이츠에 항의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은 라이더는 트럭에 치여 도로 위에서 사망했다. 화면 속 배달노동자는 영정으로 장례식장 단상에 놓여 있었다. 그제야 배달노동자의 이야기가 하나둘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이 둘을 홀로 키우기 위해 하루 8만보씩 배달을 하다 그게 너무 힘들어 전기 자전거로 배달을 시작했다. 이름도 이야기도 없이 죽은 배달노동자들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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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최악 밸런스 게임, 규칙 바꾸자 배달노동자 카톡방에서 정치얘기 금지가 공지로 떴다. 정치얘기만 하면 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술자리라면 더 신경 써야 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다음날 인연이 끊어지기 일쑤다. 투표 날이 다가오자 말이 더 거칠어지고 있다. 논쟁의 끝은 비슷하다. 아무리 그래도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와 아무리 그래도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가 충돌한다. 이 와중에 제3의 후보 이름을 거론했다가는 무시당하기 쉽다. 소신대로 제3의 후보를 찍는 건 더 어렵다. 1, 2번 말고 다른 후보를 찍었다가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당정치와 다른 정치적 욕구를 가진 국민들은 3월9일까지 협박 속에서 절망적인 밸런스 게임을 강요받는다. 정치가 불쾌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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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언어가 장벽이 안 되는 정치 설에 고향을 방문했다. 피곤한 몸을 따뜻한 물에 푼 후 어머니께 얼굴에 바를 로션을 달라 했다. 동그랗고 넙적한 황금색통의 뚜껑을 열어 내게 주셨다. 눈길 위 발자국처럼 하얀 로션 위에 어머니의 손가락 흔적들이 덕지덕지 남아있었다. 어린 시절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고 나면 듬뿍 발라주던 로션 냄새와 닮았다. 손가락으로 로션을 찍어 얼굴에 바르면서 어디서 만든 건지 궁금했다. 로션 통에는 영어만이 새겨져 있었다. 어머니는 연신 좋은 로션이라며 스킨도 필요 없이 이거 하나만 바르면 된다고 말했다. 귀로는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는 로션과 뚜껑을 빠르게 훑고 있는데 익숙한 단어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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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우리의 권력’ 함께 만드시죠 “위원장님, 결국 정치하려는 거 아닙니까?” 배달대행사 사장이 배달 고용보험을 문의하면서 덧붙인 말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민망한데, 세상 사람 중에 날 정치를 할 정도로 유명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이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조합 위원장도 정치인이다. 노동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측과 정부를 상대로 한 협상과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삶과 제도를 바꾸는 일을 한다. 국회의원처럼 항의전화와 문자폭탄을 받기도, 응원과 격려를 받기도 한다. 국회가 아닌 길거리에서 연설하고 방송국이 아닌 작은 회의실에서 토론하고, 보좌관 대신 동지들이 있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시민단체 임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와대나 여의도가 아니라도 정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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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주 4일제의 전제조건 풋살팀 동료가 갑자기 주 4일제를 꺼냈다. 보수적이라 반대할 줄 알았는데, 당장 주 4일제는 무리지만 주 4.5일제라도 먼저 시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노조인 라이더유니온에 가입해 플랫폼노동자로 일하는 한 배달노동자는 노동시간 단축을 부정적으로 봤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이야 주 4일제가 좋겠지만, 오래 일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자기 같은 사람들에겐 딴 세상 이야기라는 거다. 두 노동자의 대립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주 4일제는 현장을 모르는 정치인의 선심성 공약으로 들릴 것이다. 노동자 간 대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 4일제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이 적용돼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연차, 연장근로수당, 근로시간 제한 등 휴식, 휴가와 관련된 법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이 상태에서 주 4일제가 도입되면 사업주가 사업장을 5인 미만으로 쪼개 법을 무력화하거나, 노동자 간 격차가 확대된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와 플랫폼노동자 역시 대기업노동자와 공무원을 쉴 거 다 쉬면서 일하는 귀족노동자라고 비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