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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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이젠, 쪼개지는 노동을 묶자 몇 개월 전 조합원과 논쟁을 벌였다. 배달대행 라이더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두 개 이상의 배달기업에서 일하다 다쳤을 때 전속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산재보상을 받지 못한다. 주로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할 때만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얼마나 일해야 주로 하나의 사업장으로 일한 걸로 볼지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로 정한다. 올해는 93시간 이상 일하거나 115만원의 소득을 올려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들은 1시간 일해도 산재보상을 받는데, 어떤 노동자들은 특수하다는 이유로 산재보상을 받지 못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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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알고리즘의 구조조정 저녁시간, 배민앱과 오토바이 시동을 켰다. 5분이 지나도 콜을 주지 않자 상점이 많은 곳으로 움직였다. 3㎞를 달려도 콜을 주지 않았다. ‘콜사’다. 배달이 없을 때 콜이 사망했다며 부르는 은어다. 단체대화방에는 영정에 ‘콜’을 합성한 사진이 올라왔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만 장송곡처럼 울린다. 곡소리도 비용이 들어 기름을 더 먹기 전에 재빨리 시동을 껐다. 해고다. 취업을 위해 쿠팡이츠 앱을 켰다. 콜을 주긴 주는데 2㎞ 넘는 거리의 단건 배송을 3000원에 갔다 오라 한다. 기름값도 안 나오는 아스팔트 농사 따위 엎어버리고 싶지만 이 시기를 견뎌야 여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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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문제는 ‘산재전속성’이다 3월30일, 아마도 손님의 휴대폰 화면 속에서는 열심히 달려가던 귀여운 배달 라이더 캐릭터가 갑자기 멈췄을 거다. 손님이 배달을 시키고 실시간으로 배달 라이더를 확인했다면, 배달노동자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쿠팡이츠에 항의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은 라이더는 트럭에 치여 도로 위에서 사망했다. 화면 속 배달노동자는 영정으로 장례식장 단상에 놓여 있었다. 그제야 배달노동자의 이야기가 하나둘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이 둘을 홀로 키우기 위해 하루 8만보씩 배달을 하다 그게 너무 힘들어 전기 자전거로 배달을 시작했다. 이름도 이야기도 없이 죽은 배달노동자들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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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최악 밸런스 게임, 규칙 바꾸자 배달노동자 카톡방에서 정치얘기 금지가 공지로 떴다. 정치얘기만 하면 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술자리라면 더 신경 써야 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다음날 인연이 끊어지기 일쑤다. 투표 날이 다가오자 말이 더 거칠어지고 있다. 논쟁의 끝은 비슷하다. 아무리 그래도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와 아무리 그래도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가 충돌한다. 이 와중에 제3의 후보 이름을 거론했다가는 무시당하기 쉽다. 소신대로 제3의 후보를 찍는 건 더 어렵다. 1, 2번 말고 다른 후보를 찍었다가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당정치와 다른 정치적 욕구를 가진 국민들은 3월9일까지 협박 속에서 절망적인 밸런스 게임을 강요받는다. 정치가 불쾌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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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언어가 장벽이 안 되는 정치 설에 고향을 방문했다. 피곤한 몸을 따뜻한 물에 푼 후 어머니께 얼굴에 바를 로션을 달라 했다. 동그랗고 넙적한 황금색통의 뚜껑을 열어 내게 주셨다. 눈길 위 발자국처럼 하얀 로션 위에 어머니의 손가락 흔적들이 덕지덕지 남아있었다. 어린 시절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고 나면 듬뿍 발라주던 로션 냄새와 닮았다. 손가락으로 로션을 찍어 얼굴에 바르면서 어디서 만든 건지 궁금했다. 로션 통에는 영어만이 새겨져 있었다. 어머니는 연신 좋은 로션이라며 스킨도 필요 없이 이거 하나만 바르면 된다고 말했다. 귀로는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는 로션과 뚜껑을 빠르게 훑고 있는데 익숙한 단어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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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우리의 권력’ 함께 만드시죠 “위원장님, 결국 정치하려는 거 아닙니까?” 배달대행사 사장이 배달 고용보험을 문의하면서 덧붙인 말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민망한데, 세상 사람 중에 날 정치를 할 정도로 유명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이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조합 위원장도 정치인이다. 노동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측과 정부를 상대로 한 협상과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삶과 제도를 바꾸는 일을 한다. 국회의원처럼 항의전화와 문자폭탄을 받기도, 응원과 격려를 받기도 한다. 국회가 아닌 길거리에서 연설하고 방송국이 아닌 작은 회의실에서 토론하고, 보좌관 대신 동지들이 있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시민단체 임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와대나 여의도가 아니라도 정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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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주 4일제의 전제조건 풋살팀 동료가 갑자기 주 4일제를 꺼냈다. 보수적이라 반대할 줄 알았는데, 당장 주 4일제는 무리지만 주 4.5일제라도 먼저 시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노조인 라이더유니온에 가입해 플랫폼노동자로 일하는 한 배달노동자는 노동시간 단축을 부정적으로 봤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이야 주 4일제가 좋겠지만, 오래 일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자기 같은 사람들에겐 딴 세상 이야기라는 거다. 두 노동자의 대립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주 4일제는 현장을 모르는 정치인의 선심성 공약으로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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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청각장애 배달노동자의 갈망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계속 울리는데 회의를 하느라 받지 못했다. 일정이 끝나고 휴대폰 화면을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찍혀있었다. 번호가 아닌 글자였다. ‘청각장애통역전화’. ‘청각장애’와 ‘통화’, 두 단어가 연결이 되지 않아 혼란에 빠졌다.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통화를 거부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빨리 전달하고 싶은 마음과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상상이 되지 않아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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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씁쓸한 ‘스타벅스형 정규직’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트럭시위를 기획하자 회사는 동종업계 최고 대우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거짓은 아니다. 서비스노동자들은 보통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인데, 스타벅스 노동자는 정규직이다. 물론, 통상의 정규직은 아니다. 가장 낮은 직급인 바리스타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고작 480원 많은 9200원이다. 주5일 근무이긴 한데 하루 5시간 주 25시간 근무할 수 있어 월급이라 부르기 민망한 금액이 통장에 찍힌다. 25시간은 다시 잘게 쪼개진다. 오픈과 미드, 마감 세 가지로 구분되어,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이 매주 다르다. 조각난 노동자의 시간을 조합하다 보면 종종 최악의 근무 스케줄이 탄생한다. 새벽시간 가게 문을 닫았다가 다음날 아침 문을 여는데, 해외에서는 클로징과 오프닝을 합쳐 클로프닝이라 부르고 한국노동자들은 마감과 오픈을 따서 ‘마오’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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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플랫폼 공장 된 마을의 분노 “오토바이 세워두면 발로 차버릴 거야!” 주택가 2층 창문 너머로 한 시민이 고함쳤다. 배민 B마트 앞에 살던 시민이었다. 배민이 생필품 주문을 받아서 오토바이로 손님에게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B마트다. 배민은 오토바이라이더들이 빠르게 픽업해서 배송할 수 있으면서도 비교적 임대료가 싼 주택가 골목에 물품창고를 만들어놓았다. 이 때문에 오토바이 주차와 소음으로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배민한테 이야기 하세요”라고 해봤자 소용없다. 주택가뿐만이 아니다. 택배차, 오토바이, 전동킥보드, 자전거로 도시 전체가 혼잡하다. 시민들이 살아가는 마을 위에 배달플랫폼이 거대한 공장을 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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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위헌적 보수, 위기의 진보 2016년 국회가 발의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는 헌법위배 행위를 주요 탄핵사유로 적었다. 헌법 제65조 제1항은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수호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고 파면을 결정했다. 국민의힘이 탄핵의 아픔을 딛고 정권을 되찾고 싶다면 헌법수호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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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사장님, 주 52시간 지켜주세요 풋살팀 덕분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다. 마침 7월부터 시작된 주 52시간제 이야기가 나와서 풋살보다 재미있는 토론판이 벌어질 것 같았다. 논쟁의 휘슬이 울렸지만 경기는 시시하게 끝났다. 개발자로 일하는 팀원은 52시간제가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52시간 일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주말 빼고 아침 9시 출근해서 밤 9시까지 야근을 매일 해야 52시간이 채워진다는 거다. 출퇴근 시간까지 합치면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회사를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제품설계 일을 하는 다른 팀원도 거들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 상사가 야근을 좋아해서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웹툰이나 유튜브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고 한다. 이 모습이 한심했던 그는 야근을 금지하는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새 직장에서는 근무시간에 집중적으로 일하고 칼퇴를 할 수 있어, 능률도 오르고 가족도 행복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