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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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언어가 장벽이 안 되는 정치 설에 고향을 방문했다. 피곤한 몸을 따뜻한 물에 푼 후 어머니께 얼굴에 바를 로션을 달라 했다. 동그랗고 넙적한 황금색통의 뚜껑을 열어 내게 주셨다. 눈길 위 발자국처럼 하얀 로션 위에 어머니의 손가락 흔적들이 덕지덕지 남아있었다. 어린 시절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고 나면 듬뿍 발라주던 로션 냄새와 닮았다. 손가락으로 로션을 찍어 얼굴에 바르면서 어디서 만든 건지 궁금했다. 로션 통에는 영어만이 새겨져 있었다. 어머니는 연신 좋은 로션이라며 스킨도 필요 없이 이거 하나만 바르면 된다고 말했다. 귀로는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는 로션과 뚜껑을 빠르게 훑고 있는데 익숙한 단어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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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우리의 권력’ 함께 만드시죠 “위원장님, 결국 정치하려는 거 아닙니까?” 배달대행사 사장이 배달 고용보험을 문의하면서 덧붙인 말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민망한데, 세상 사람 중에 날 정치를 할 정도로 유명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이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조합 위원장도 정치인이다. 노동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측과 정부를 상대로 한 협상과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삶과 제도를 바꾸는 일을 한다. 국회의원처럼 항의전화와 문자폭탄을 받기도, 응원과 격려를 받기도 한다. 국회가 아닌 길거리에서 연설하고 방송국이 아닌 작은 회의실에서 토론하고, 보좌관 대신 동지들이 있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시민단체 임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와대나 여의도가 아니라도 정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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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주 4일제의 전제조건 풋살팀 동료가 갑자기 주 4일제를 꺼냈다. 보수적이라 반대할 줄 알았는데, 당장 주 4일제는 무리지만 주 4.5일제라도 먼저 시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노조인 라이더유니온에 가입해 플랫폼노동자로 일하는 한 배달노동자는 노동시간 단축을 부정적으로 봤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이야 주 4일제가 좋겠지만, 오래 일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자기 같은 사람들에겐 딴 세상 이야기라는 거다. 두 노동자의 대립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주 4일제는 현장을 모르는 정치인의 선심성 공약으로 들릴 것이다. 노동자 간 대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 4일제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이 적용돼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연차, 연장근로수당, 근로시간 제한 등 휴식, 휴가와 관련된 법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이 상태에서 주 4일제가 도입되면 사업주가 사업장을 5인 미만으로 쪼개 법을 무력화하거나, 노동자 간 격차가 확대된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와 플랫폼노동자 역시 대기업노동자와 공무원을 쉴 거 다 쉬면서 일하는 귀족노동자라고 비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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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청각장애 배달노동자의 갈망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계속 울리는데 회의를 하느라 받지 못했다. 일정이 끝나고 휴대폰 화면을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찍혀있었다. 번호가 아닌 글자였다. ‘청각장애통역전화’. ‘청각장애’와 ‘통화’, 두 단어가 연결이 되지 않아 혼란에 빠졌다.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통화를 거부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빨리 전달하고 싶은 마음과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상상이 되지 않아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기대하지 않았던 말, 아니 소리가 튀어나왔다.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을 도와주는 통역사의 목소리였다. 단단히 마음먹고 외국인과 대화하려고 말을 걸었는데, 외국인의 입에서 한국어가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나는 부재중 전화에 찍힌 ‘통역’이라는 단어를 빼먹었다. 청각장애인 통역사를 본 적도 상상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통역’이라는 단어를 보고도 읽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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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씁쓸한 ‘스타벅스형 정규직’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트럭시위를 기획하자 회사는 동종업계 최고 대우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거짓은 아니다. 서비스노동자들은 보통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인데, 스타벅스 노동자는 정규직이다. 물론, 통상의 정규직은 아니다. 가장 낮은 직급인 바리스타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고작 480원 많은 9200원이다. 주5일 근무이긴 한데 하루 5시간 주 25시간 근무할 수 있어 월급이라 부르기 민망한 금액이 통장에 찍힌다. 25시간은 다시 잘게 쪼개진다. 오픈과 미드, 마감 세 가지로 구분되어,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이 매주 다르다. 조각난 노동자의 시간을 조합하다 보면 종종 최악의 근무 스케줄이 탄생한다. 새벽시간 가게 문을 닫았다가 다음날 아침 문을 여는데, 해외에서는 클로징과 오프닝을 합쳐 클로프닝이라 부르고 한국노동자들은 마감과 오픈을 따서 ‘마오’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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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플랫폼 공장 된 마을의 분노 “오토바이 세워두면 발로 차버릴 거야!” 주택가 2층 창문 너머로 한 시민이 고함쳤다. 배민 B마트 앞에 살던 시민이었다. 배민이 생필품 주문을 받아서 오토바이로 손님에게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B마트다. 배민은 오토바이라이더들이 빠르게 픽업해서 배송할 수 있으면서도 비교적 임대료가 싼 주택가 골목에 물품창고를 만들어놓았다. 이 때문에 오토바이 주차와 소음으로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배민한테 이야기 하세요”라고 해봤자 소용없다. 주택가뿐만이 아니다. 택배차, 오토바이, 전동킥보드, 자전거로 도시 전체가 혼잡하다. 시민들이 살아가는 마을 위에 배달플랫폼이 거대한 공장을 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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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위헌적 보수, 위기의 진보 2016년 국회가 발의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는 헌법위배 행위를 주요 탄핵사유로 적었다. 헌법 제65조 제1항은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수호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고 파면을 결정했다. 국민의힘이 탄핵의 아픔을 딛고 정권을 되찾고 싶다면 헌법수호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실망스럽게도 대통령에 도전하는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이 위헌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주 120시간 이상 일할 수 있어야 한다며 주 52시간까지 연장근무를 시킬 수 있는 법안을 비판했다. 최재형 후보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범죄행위라고 비난하며 지역별 차등지급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적 발언이 아니라 노동법을 무시하는 범죄적 발언이다. 단순 범죄도 아니다. 두 후보의 발언은 국민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헌법 제32조와 충돌한다. 헌법 제32조 ①항에는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라고 적혀 있고 같은 조 ③항에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헌정질서를 무너트리는 중대한 발언임에도 국민의힘에 대한 기댓값이 낮아서인지 내부비판도 적극적인 해명도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 이외에도 국민의 주요한 의제인 부동산과 집에 대해서도 위험한 생각을 내비쳤다. 윤석열 후보는 집은 생필품인데 생필품을 보유한다고 해서 세금을 매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기업형 농업을 위해 경자유전 법칙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 제121조는 경자유전의 법칙을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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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사장님, 주 52시간 지켜주세요 풋살팀 덕분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다. 마침 7월부터 시작된 주 52시간제 이야기가 나와서 풋살보다 재미있는 토론판이 벌어질 것 같았다. 논쟁의 휘슬이 울렸지만 경기는 시시하게 끝났다. 개발자로 일하는 팀원은 52시간제가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52시간 일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주말 빼고 아침 9시 출근해서 밤 9시까지 야근을 매일 해야 52시간이 채워진다는 거다. 출퇴근 시간까지 합치면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회사를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제품설계 일을 하는 다른 팀원도 거들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 상사가 야근을 좋아해서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웹툰이나 유튜브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고 한다. 이 모습이 한심했던 그는 야근을 금지하는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새 직장에서는 근무시간에 집중적으로 일하고 칼퇴를 할 수 있어, 능률도 오르고 가족도 행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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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우리는 데이터가 아니다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12명이 3일간 배민, 쿠팡이츠, 요기요 AI시스템을 직접 검증했다. 첫날은 AI가 주는 배달을 100% 수락해 배달했고, 둘째 날은 가기 싫은 배차는 거절하면서, 셋째 날은 교통법규를 지키며 배달했다. 11시부터 20시까지 진행된 인간과 AI의 대결은 라이더 12명을 줌으로 연결해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배달회사들은 자신이 만든 AI가 안전하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반박은 한 시간 반의 중계만으로 충분했다. AI는 직선거리 기준으로 배차한다. 오토바이가 오를 수 없는 산과 계단은 고려하지 않는다. 극적인 장면은 강과 바다가 있는 부산에서 나왔다. AI가 배차해주는 배달을 거절하지 못한 라이더는 다리를 몇 번이고 건너야 했다. 보통은 거절하는 배달을 라이더가 받아주니 AI는 비슷한 코스를 계속 꽂았다. 참다못한 라이더는 비명을 질렀다. 강남 라이더는 직선거리 4.7㎞로 안내된 배달을 받았는데, 우면산 때문에 8㎞를 돌아서 달려야 했다. 배달회사를 위해 일하는 AI는 실제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자신이 지도 위에 그린 직선거리로 배달료를 계산한다. AI가 잘못된 주소로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 주소지는 101동인데 404동으로 찍는가 하면, 대학교처럼 주소는 하나지만 건물이 여러 개인데 입구로만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 AI를 믿고 갔다 길을 헤맨 노동자의 노동이나, AI의 오류를 정정하기 위해 로봇 같은 상담원과 채팅을 해야 하는 노동은 계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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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최저임금 많이 올랐나’ 따져보자 바이든 대통령이 미 연방정부 계약직 노동자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했다. 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최저임금을 올렸다. 10년 전 글로벌 경제위기 때도 국제적인 최저임금 인상 붐이 있었다. 경제위기로 노동자의 삶이 붕괴하고, 경제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이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국민의 주머니를 채울 필요도 있다. 백신 접종으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증가하고 일터로 다시 출근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의 노동력 수요가 늘어난 것도 원인이다. 반면 한국에선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최저임금 동결과 인하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저임금 1만원을 포기했다. 한 번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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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30분 배달제의 부활 10년 전 사라진 30분 배달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쿠팡의 치타배달과 배민의 번쩍 배달이다. 쿠팡이츠는 라이더가 여러 집을 묶어서 배달하는 관행을 깨고, 한 집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기를 느낀 배민도 한 집 배달로 맞서고 있다. 빠른 배달 경쟁으로 흔히 라이더의 사고 위험이 높아질 거라 우려하지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과거의 30분 배달은 직접고용한 노동자에게 고용주가 빠른 배달을 강요하는 방식이었다. 사장이 노동자에게 주휴수당, 4대보험, 연차, 퇴직금을 제공하는 대신 노동자는 사장의 지시를 준수했다. 기업은 임금은 최저로 주면서 한 사람이 수행해야 할 배달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윤을 챙겼다. 종속과 보호, 임금과 이윤을 교환하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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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1만3810원 캠페인이 필요하다 며칠 전 배달노동자에게 전화가 왔다. 새로 일을 시작한 배달대행사에서 매일 808원을 산재보험료 명목으로 떼 가는데, 맞는 금액이냐고 물었다. 라이더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는 월 1만4030원으로, 업주가 부당하게 많은 돈을 징수한다고 안내했다. 통화를 끊고 아차 싶었다. 월 1만4030원은 작년 기준 보험료다. 근로복지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해 찾아보니, 2021년 배달노동자가 부담해야 할 산재보험료는 월 1만3810원이었다. 이 금액을 아는 노동자와 사업주가 몇 명이나 될까. 2021년 최저임금은 8720원이다. 최저임금법 11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매년 달라지는 최저임금을 노동자들에게 널리 알려야 하고 이를 어길 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 최저임금이 정해지면 대대적인 홍보도 한다. 특고노동자 산재보험료도 모든 노동자에게 고지하도록 법을 만들고,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 회사가 아니라 앱으로 출근하는 배달노동자들을 위해 휴대폰앱으로 공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