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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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쿠팡의 위험요소 쿠팡이 뉴욕증시 상장에 도전한다. 경제지는 쿠팡을 미국에 뺏겼다며 한탄했다. 노동법과 공정거래법, 금융규제 등이 용의자로 떠올랐다. 사실 쿠팡의 국적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아이러니다. 쿠팡의 모회사는 쿠팡 LLC로 미국법인이다. 처음부터 미국 상장이 목표였다. 쿠팡의 주요 투자자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조성한 비전펀드다. 비전펀드의 최대주주는 중동의 오일머니다. 우리가 뺏긴 건 대한민국 회사 쿠팡이 아니라 쿠팡에서 일한 노동자다. 쿠팡은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상장 신청서에 한국 고용노동부가 쿠팡플렉스와 쿠팡이츠 배달노동자들을 독립계약자로 판정했다고 썼다. 확신은 없었던지 불안한 마음을 덧붙인다. 노동자 지위 논란이 쿠팡의 재무상태, 운영 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를 방어하고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도 쿠팡의 사업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쿠팡은 이를 ‘위험요소’로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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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5인 미만 사업장과 조국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감독하여 근로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이다. 특히 취업에서 열세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에게 있어서 근로조건의 보호는 근로기준법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만이 적용되고, 근로시간의 제한 및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부당한 해고로부터의 보호 등 주요 조항의 적용이 배제되어 있다.” 2008년 4월1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법령 및 정책 개선 권고 결정’에서 서두에 밝힌 내용이다. 결정문 마지막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조국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당시 인권위는 1999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언급하면서, 이제는 ‘근기법 적용 확대를 위한 전반적인 여건과 환경이 성숙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13년이 지난 2021년 1월8일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다. ‘전 법무부 장관’이 된 조국은 페이스북에 법 시행 후 실태조사를 하여 문제가 확인되면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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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그걸 저희가 못 믿어요’ 난방이 끊긴 기숙사에서 농촌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기숙사는 비닐하우스였다. 지난여름엔 폭우에 이주노동자가 숙소로 사용하는 비닐하우스가 잠겼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겹게 봤던 활자들이 반복해서 찍힌다. “한파경보에 난방 고장 ‘비닐하우스 숙소서 이주노동자 숨져’ ”. 새삼스러울 것도, 놀랄 것도 없는 뉴스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다’. 당연한 문구들이 산발적으로 울린다. 감정은 메마르고 그 자리에 차가운 냉소만 남는다. 그러다 인터넷에 떠도는 희생자의 사진을 봤다. 똑같지도, 흔하지도 않은 고유한 인간의 얼굴이었다. 깜짝 놀라 화면을 내려버렸다. 그의 얼굴을 너무 또렷이 봤다가 너무 쉽게 잊을까 두려웠다. 값싼 연민과 동정의 눈길로 너무 쉽게 그의 얼굴을 보는 건 아닌지 부끄러웠다. 그러곤 얼굴도 모르는 농장주를 욕하면서 죄책감을 덜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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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디지털 굳은살 라이더들이 상담을 위해 자신의 휴대폰을 내게 보여주는 일이 종종 있다. 배달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배달앱에는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배달 주문, 배달료, 배달 음식점 등의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라이더들이 보통 배달 주문을 ‘콜’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콜이 뜨는 창이라는 의미로 ‘콜창’이라 부른다. 대화가 끝나고 콜창을 닫았는데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 휴대폰에 여전히 콜창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너무 오래, 자주 콜창을 띄우다 보니, 휴대폰에 흐릿한 앱의 잔상이 남은 것이다. 서울은 물론 광주에서, 부산에서 만난 라이더의 휴대폰에도 잔상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날랐던 음식과, 달렸던 도로와 벌어들인 돈의 흔적들은 앱을 꺼도 사라지지 않았고, 굳은살처럼 휴대폰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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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합법적 신체포기 각서’를 안내하는 직장 “안전보건 교육을 진행하면서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안내했습니다.” 지난 10월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CJ대한통운 대리점 사장의 목소리가 당당히 울렸다.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란 택배노동자를 포함한 특고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쳐도 산재 보상을 받지 않겠다는 일종의 합법적 신체 포기 각서다. CJ대한통운이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과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받는 게 아니라 CJ와 위탁계약을 맺은 대리점이 이 업무를 담당한다. 얼마 전 과로로 사망한 CJ 택배노동자가 이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냈는데 대필로 밝혀졌다. 고인이 일하던 대리점의 사장이 이날 국정감사에 출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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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집과 배달 대학시절 고시원에 잠깐 기거할 때, 배달 음식은 상상도 못했다. 값싼 학식을 두고 비싼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게 돈이 아깝기도 했지만, 반지하 곰팡내와 사람 발이 지나가는 창문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싱크대는커녕 냉장고도 없는 집에서 음식을 먹고 잔반을 치우는 것도 막막했다. 잠자는 곳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기고, 배달 일을 시작하면서 배달 음식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싱크대와 냉장고가 생겼지만, 도마를 가로로 놓을 수 없었고, 2ℓ짜리 생수라도 넣으면 냉장고가 꽉 찼다. 장을 보고 음식을 하면, 먹은 것보다 쓰레기가 더 많이 나오는 상황에서 배달 음식은 효율적인 식단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11평짜리 임대아파트에 당첨되니 이제 요리를 해먹어도 될 것 같았지만, 사는 게 바빠서 장보고 요리하고 설거지할 에너지가 없다. 바쁘고 힘들다는 건 사실 핑계고, 이 노동과정을 돈으로 사는 게 편했다. 값싼 백반집도 대형 프랜차이즈와 편의점에 밀려나 대안을 찾기도 힘들다. 배달의 호황은 좁은 방과 여유 없는 시간, 변화된 도시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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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배달의 외주화, 승자는 ‘플랫폼’뿐 승자는 쿠팡이다. 헤럴드경제의 ‘라이더 연봉 1억원’ 보도 이후 라이더들의 반응이다. 기사를 보고 접속한 라이더가 늘자 쿠팡이츠는 단가를 바로 내렸다. 배달 1건당 3500원까지 내렸다. 언론은 3만3000명의 쿠팡라이더 중 1위의 주말 일당을 기준으로 연봉을 계산해 홍보했고 쿠팡이츠는 풍부한 인력과 저렴한 배달단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여름과 겨울은 라이더의 성수기다. 날이 험해 배달수요는 느는데, 일하는 라이더는 준다. 반대로 봄, 가을은 비수기다. 매년 큰 회사들이 여름과 겨울 프로모션을 진행하다 봄과 가을에 종료시켰다. 계절에 따라 한 번씩 바꾸던 배달료를, 매일 공지하는 방식으로 바꿨던 플랫폼사는 이제 2~3시간 단위, 급기야는 실시간으로 바꾸고 있다. 라이더들은 연봉은커녕 하루 일당도 예상하기 힘든 불안정한 상황이다. 이것은 노동자를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낮은 가격의 배달료라도 꾸준히 타야 하는 전업 라이더와 프로모션에 따라 로그인과 로그아웃을 반복하는 플랫폼 라이더들을 요금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높은 수익의 유혹에 넘어간 새로운 대기자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라이더의 협상력은 떨어지고 낮은 가격을 거부할 힘도 사라진다. 신문에서 본 수익을 달성하지 못한 기사들은 난폭해지거나 장시간 일하다 사고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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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요구의 자격 마포의 한 브랜드 아파트에 배달을 하다 나오는데, 빨간 글씨와 느낌표로 구성된 강렬한 현수막을 봤다. ‘청년임대주택 건설 중단하라!’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주민들의 당당하고 솔직한 욕망이 대로변에 걸렸다.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주택이 건설되면 주거환경이 나빠지고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공개 주장에 부끄러움과 망설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외려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행사처럼 보인다. 반면, 나 같은 배달노동자가 이들 주민에 반발해 함께 살자고 외치면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의 피해의식이나 불평불만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 대응이라도 해주면 다행이지만, 아무런 영향을 못 주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런 문제는 도처에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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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진보’ 어용지식인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유시민은 어용지식인을 자처했다. 어용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자나 권력 기관에 영합해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유시민은 모욕적 뜻 앞에 ‘진보’를 붙여 진보어용지식인이라는 괴이한 낱말을 탄생시켰다. 이유는 있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만 가졌더니, 재벌, 언론, 검찰, 관료, 야당 등 기존 보수 세력의 반발과 견제에 진보가 무너졌다는 거다. 5년짜리 손님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겠나. 그는 개혁에 반발하는 적폐로부터 약한 대통령을 지킬 칼이 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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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플랫폼노동과 알고리즘 “강남구 1시까지 2000원 할증! 주문량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오전 11시39분에 ‘쿠팡이츠배달파트너’라는 아이디가 나에게 보내온 카톡 내용이다. 작업물량이 많을 때 가산수당을 줘가며 잔업, 특근을 시키고 물량이 없을 때는 최저임금으로 돌리던 저임금 노동시장이, 시간별로 건당수수료를 달리 주는 시스템으로 변하고 있다. 플랫폼은 실시간 주문량과 접속한 라이더의 수를 파악하고 그동안 쌓인 데이터에 따라 배달료를 조정, 노동력 공급을 조절한다. 2000원을 추가로 주면 접속자가 얼마나 늘어날지, 어느 정도의 라이더가 있어야 배달을 소화할 수 있을지를 디지털세계에서 무궁무진하게 실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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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어설픈 채식 손님이 주문한 탕수육 배달을 위해 가게에 들렀다. 사장님은 홀 손님과 밀린 주문으로 정신이 없었다. 바쁜 배달기사를 붙잡아두는 게 미안했던지 사장님은 튀기고 있던 탕수육 한 조각을 빼서 달콤한 소스를 쓱쓱 묻히고는 내 입에 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따뜻한 참사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라이더를 챙기는 아름다운 마음,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 뱉었을 때의 어색한 상황 등 복잡한 감정과 생각이 뒤섞였다. 지난해 가을, 살처분 영상을 본 게 화근이었다. 산 채로 포클레인에 들려 구덩이로 던져지는 돼지들과 살기 위해 흙을 파고 올라온 돼지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즈음 동물해방운동단체 DxE(Direct Action Everywhere) 코리아를 알았다. DxE에 따르면, 돼지들은 서로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꼬리가 잘리고 이빨이 뽑힌다. 인간들이 싫어하는 잡내를 없애기 위해 마취도 없이 거세당한다. 돼지와 닭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사육장에 갇힌 채 자라서 수개월 만에 도살당한다. 수컷 병아리는 그 짧은 삶도 살지 못하고,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온몸이 찢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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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가난·불평등으로 ‘기본소득’에 접근 할 수 없는 이들 요즘 배달을 하다 가장 많이 목격하는 건,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 홍보물이다. 골목마다 포스터가 붙어 있고 편지함은 물론 길바닥까지 전단이 뿌려져 있다. 인터넷 신청이 간단해 보여 접속했다가, 신청서를 출력하라 해서 포기했다. 작성한 서류를 사진으로 찍어서 업로드해도 된다 하니 스캐너는 없어도 돼 다행이다. 프린터가 연결된 컴퓨터가 없거나 무슨 말인지 모르면 다산콜센터로 전화하거나 주민센터를 방문하라는데, 콜센터와 공무원들의 영혼 없는 표정과 민원인들의 성난 얼굴이 아른거린다. 신청 자격 확인부터 막막하다. 코로나19 공부를 마친 국민들은, 중위소득 100%라는 새로운 챕터를 공부 중이다. 1인 가구는 175만7194원으로 최저임금과 비슷하다. 176만원의 소득을 얻은 자는 중위소득 100%를 약 3000원 넘기므로 긴급생활비를 받을 수 없다. 네이버 지식인에는 소득산정 기준일이 언제냐는 질문과 행복e음시스템을 통해 조회되는 가장 최근 소득이라는 다산콜센터와 똑같은 답변이 반복되고 있다. 자영업자는 국세청 자료로 소득을 산정하는데, 2018년 소득이 가장 최신 자료다. 2018년 소득 기준으로, 2020년 코로나19 피해를 지원한다. 가구 기준이므로, 주민등록상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실업급여나 다른 복지혜택을 받고 있으면 탈락이다. 이 심사 때문에 최소 일주일 걸린다는 지급일은 점점 늦어지고 있다. 월급명세서를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알바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들을 가족으로 두고 있다면 정확한 가구소득을 알 수 없다. 대구는 특고노동자들을 위한 재난긴급생활비를 경총이 주관해서 지급하고 있는데, 5일 이상 노무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노무 미제공 사실확인서를 받아오라 했다. 퀵 기사로 일하는 우리 조합원은 사무실에 확인서를 떼어 달라 했지만 거절당했다. 화가 나서 경총에 전화했더니 본인이 쉬고 싶을 때 쉬는 대리기사, 퀵 기사 등은 해당이 안 된다고 했다. 홍보물에는 특고노동자, 프리랜서 지원이라고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