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최신기사
-
직설 우리는 데이터가 아니다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12명이 3일간 배민, 쿠팡이츠, 요기요 AI시스템을 직접 검증했다. 첫날은 AI가 주는 배달을 100% 수락해 배달했고, 둘째 날은 가기 싫은 배차는 거절하면서, 셋째 날은 교통법규를 지키며 배달했다. 11시부터 20시까지 진행된 인간과 AI의 대결은 라이더 12명을 줌으로 연결해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배달회사들은 자신이 만든 AI가 안전하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반박은 한 시간 반의 중계만으로 충분했다.
-
직설 ‘최저임금 많이 올랐나’ 따져보자 바이든 대통령이 미 연방정부 계약직 노동자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했다. 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최저임금을 올렸다. 10년 전 글로벌 경제위기 때도 국제적인 최저임금 인상 붐이 있었다. 경제위기로 노동자의 삶이 붕괴하고, 경제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이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국민의 주머니를 채울 필요도 있다. 백신 접종으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증가하고 일터로 다시 출근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의 노동력 수요가 늘어난 것도 원인이다. 반면 한국에선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최저임금 동결과 인하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저임금 1만원을 포기했다. 한 번 따져보자.
-
직설 30분 배달제의 부활 10년 전 사라진 30분 배달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쿠팡의 치타배달과 배민의 번쩍 배달이다. 쿠팡이츠는 라이더가 여러 집을 묶어서 배달하는 관행을 깨고, 한 집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기를 느낀 배민도 한 집 배달로 맞서고 있다. 빠른 배달 경쟁으로 흔히 라이더의 사고 위험이 높아질 거라 우려하지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과거의 30분 배달은 직접고용한 노동자에게 고용주가 빠른 배달을 강요하는 방식이었다. 사장이 노동자에게 주휴수당, 4대보험, 연차, 퇴직금을 제공하는 대신 노동자는 사장의 지시를 준수했다. 기업은 임금은 최저로 주면서 한 사람이 수행해야 할 배달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윤을 챙겼다. 종속과 보호, 임금과 이윤을 교환하는 형태다.
-
직설 1만3810원 캠페인이 필요하다 며칠 전 배달노동자에게 전화가 왔다. 새로 일을 시작한 배달대행사에서 매일 808원을 산재보험료 명목으로 떼 가는데, 맞는 금액이냐고 물었다. 라이더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는 월 1만4030원으로, 업주가 부당하게 많은 돈을 징수한다고 안내했다. 통화를 끊고 아차 싶었다. 월 1만4030원은 작년 기준 보험료다. 근로복지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해 찾아보니, 2021년 배달노동자가 부담해야 할 산재보험료는 월 1만3810원이었다. 이 금액을 아는 노동자와 사업주가 몇 명이나 될까.
-
직설 쿠팡의 위험요소 쿠팡이 뉴욕증시 상장에 도전한다. 경제지는 쿠팡을 미국에 뺏겼다며 한탄했다. 노동법과 공정거래법, 금융규제 등이 용의자로 떠올랐다. 사실 쿠팡의 국적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아이러니다. 쿠팡의 모회사는 쿠팡 LLC로 미국법인이다. 처음부터 미국 상장이 목표였다. 쿠팡의 주요 투자자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조성한 비전펀드다. 비전펀드의 최대주주는 중동의 오일머니다. 우리가 뺏긴 건 대한민국 회사 쿠팡이 아니라 쿠팡에서 일한 노동자다.
-
직설 5인 미만 사업장과 조국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감독하여 근로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이다. 특히 취업에서 열세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에게 있어서 근로조건의 보호는 근로기준법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만이 적용되고, 근로시간의 제한 및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부당한 해고로부터의 보호 등 주요 조항의 적용이 배제되어 있다.”
-
직설 ‘그걸 저희가 못 믿어요’ 난방이 끊긴 기숙사에서 농촌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기숙사는 비닐하우스였다. 지난여름엔 폭우에 이주노동자가 숙소로 사용하는 비닐하우스가 잠겼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겹게 봤던 활자들이 반복해서 찍힌다. “한파경보에 난방 고장 ‘비닐하우스 숙소서 이주노동자 숨져’ ”. 새삼스러울 것도, 놀랄 것도 없는 뉴스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다’. 당연한 문구들이 산발적으로 울린다. 감정은 메마르고 그 자리에 차가운 냉소만 남는다.
-
직설 디지털 굳은살 라이더들이 상담을 위해 자신의 휴대폰을 내게 보여주는 일이 종종 있다. 배달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배달앱에는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배달 주문, 배달료, 배달 음식점 등의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라이더들이 보통 배달 주문을 ‘콜’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콜이 뜨는 창이라는 의미로 ‘콜창’이라 부른다. 대화가 끝나고 콜창을 닫았는데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 휴대폰에 여전히 콜창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너무 오래, 자주 콜창을 띄우다 보니, 휴대폰에 흐릿한 앱의 잔상이 남은 것이다. 서울은 물론 광주에서, 부산에서 만난 라이더의 휴대폰에도 잔상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날랐던 음식과, 달렸던 도로와 벌어들인 돈의 흔적들은 앱을 꺼도 사라지지 않았고, 굳은살처럼 휴대폰에 남았다.
-
직설 ‘합법적 신체포기 각서’를 안내하는 직장 “안전보건 교육을 진행하면서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안내했습니다.” 지난 10월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CJ대한통운 대리점 사장의 목소리가 당당히 울렸다.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란 택배노동자를 포함한 특고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쳐도 산재 보상을 받지 않겠다는 일종의 합법적 신체 포기 각서다. CJ대한통운이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과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받는 게 아니라 CJ와 위탁계약을 맺은 대리점이 이 업무를 담당한다. 얼마 전 과로로 사망한 CJ 택배노동자가 이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냈는데 대필로 밝혀졌다. 고인이 일하던 대리점의 사장이 이날 국정감사에 출석한 것이다.
-
직설 집과 배달 대학시절 고시원에 잠깐 기거할 때, 배달 음식은 상상도 못했다. 값싼 학식을 두고 비싼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게 돈이 아깝기도 했지만, 반지하 곰팡내와 사람 발이 지나가는 창문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싱크대는커녕 냉장고도 없는 집에서 음식을 먹고 잔반을 치우는 것도 막막했다. 잠자는 곳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기고, 배달 일을 시작하면서 배달 음식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싱크대와 냉장고가 생겼지만, 도마를 가로로 놓을 수 없었고, 2ℓ짜리 생수라도 넣으면 냉장고가 꽉 찼다. 장을 보고 음식을 하면, 먹은 것보다 쓰레기가 더 많이 나오는 상황에서 배달 음식은 효율적인 식단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11평짜리 임대아파트에 당첨되니 이제 요리를 해먹어도 될 것 같았지만, 사는 게 바빠서 장보고 요리하고 설거지할 에너지가 없다. 바쁘고 힘들다는 건 사실 핑계고, 이 노동과정을 돈으로 사는 게 편했다. 값싼 백반집도 대형 프랜차이즈와 편의점에 밀려나 대안을 찾기도 힘들다. 배달의 호황은 좁은 방과 여유 없는 시간, 변화된 도시의 결과다.
-
직설 배달의 외주화, 승자는 ‘플랫폼’뿐 승자는 쿠팡이다. 헤럴드경제의 ‘라이더 연봉 1억원’ 보도 이후 라이더들의 반응이다. 기사를 보고 접속한 라이더가 늘자 쿠팡이츠는 단가를 바로 내렸다. 배달 1건당 3500원까지 내렸다. 언론은 3만3000명의 쿠팡라이더 중 1위의 주말 일당을 기준으로 연봉을 계산해 홍보했고 쿠팡이츠는 풍부한 인력과 저렴한 배달단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
직설 요구의 자격 마포의 한 브랜드 아파트에 배달을 하다 나오는데, 빨간 글씨와 느낌표로 구성된 강렬한 현수막을 봤다. ‘청년임대주택 건설 중단하라!’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주민들의 당당하고 솔직한 욕망이 대로변에 걸렸다.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주택이 건설되면 주거환경이 나빠지고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공개 주장에 부끄러움과 망설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외려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행사처럼 보인다. 반면, 나 같은 배달노동자가 이들 주민에 반발해 함께 살자고 외치면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의 피해의식이나 불평불만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 대응이라도 해주면 다행이지만, 아무런 영향을 못 주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런 문제는 도처에 널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