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융희
문화연구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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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수도권의 안과 밖 주거 기술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가 살아가는 공간을 ‘안’, 그리고 그 바깥을 ‘밖’으로 양분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거 공간인 ‘안’만을 아름답게 가꾸고 보존하려 하며, 추한 것, 불편한 것을 ‘밖’으로 끊임없이 밀어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에어컨과 실외기이다. 에어컨은 일정 범위 실내 공간의 온도를 적정하게 유지한다. 특히 요즘처럼 폭염이 지속될 때 에어컨의 존재는 더없이 소중하다. 그러나 격벽 바깥으로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자. 에어컨의 가동과 함께 실외기가 뜨거운 공기를 끊임없이 바깥으로 밀어내며 거리의 온도를 한층 더 뜨겁게 달궈놓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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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단어의 죽음 최근 네이버에서 ‘도리도리’ 단어의 이미지 검색이 차단되었다. 누리꾼들은 이것이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좌우로 자주 흔들어 ‘도리도리 윤’이라는 별명을 얻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관련해 네이버의 정치적 행보가 아니냐며 지적했고, 네이버는 이에 대해 ‘도리도리’가 엑스터시를 지칭하는 은어이기 때문에 2014년부터 이미지를 차단하고 있으며, 도리도리에 대해 권리 침해나 명예훼손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없다며 연관설을 일축했다. 논란과 상관없이 앞으로 ‘도리도리’의 이미지를 네이버 검색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듯하니 하나의 단어가 디지털-사어(死語)화되는 모습을 목도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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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신뢰자본 붕괴, 누가 책임지나 연구자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세상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해석하며 논증하는 과정일 테지만, 실제로 다양한 연구자들이 공식 석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것인 듯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짜 뉴스,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사람들도 이런 ‘연구자’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상은 대한민국에서 교수나 연구자들이 가진 전문성이 일종의 자원임을 상기시킨다.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며 논쟁할 때 적극적 자원을 활용해 신뢰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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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20대’라는 매혹적 소재 사람들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낯설고 독특한 일을 모조리 20대, 조금 확장해선 30대의 독특한 일탈 또는 그들만의 열등감이나 열패감이 만들어낸 기묘한 문화현상으로 바라보려는 듯하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전후해 정치 진영에서는 20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20대들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다양한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20대 남성을 뜻하는 ‘이대남’이라는 용어까지 나와 20대는 독특하고, 20대는 다른 존재인 것처럼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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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판타지를 위한 변명 지난 3월,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방영 전부터 역사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 논란이 일었고 결국 2회만 방영한 채 폐지되었다. 제작사는 방송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 지적에 대해 역사 속 인물과 배경을 차용했지만 ‘판타지 퓨전 사극’이기 때문에 다양한 상상력에서 이야기를 출발했으며, 오로지 ‘판타지적 상상력’에 초점을 맞춘 탓에 문제가 일어난 듯하다며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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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아날로그의 감각 2021년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내 직장은 문화산업에 특성화된 대학이고, 실습을 위주로 하는 학교 특성상 온라인 수업의 한계가 뚜렷했다. 결국 학생과 교직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올해부터는 대면 수업을 진행한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가 되는 순간 다시 전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겠으나, 짧게나마 학생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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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질문하고 듣는 연습의 플랫폼 최근 아이폰 기반 애플리케이션 ‘클럽하우스’가 단연 화제다. 클럽하우스는 오로지 음성만을 기반으로 한 오픈 마이크 플랫폼으로 모더레이터가 방을 만들고 해당 방의 주제를 제시하면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스피커로 올라와 발언하거나 리스너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라디오나 팟캐스트처럼 기존 미디어 중에도 음성을 기반으로 한 매체나 플랫폼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어째서 유독 클럽하우스만 이 정도로 화제가 될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며칠 동안 클럽하우스를 돌아다녔다. 며칠 둘러본 것만으로 클럽하우스가 왜 잘나가는지 그 이유를 거창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 발견한 것은 있었다. 사람들에게 질문이 너무 많다는 것, 그리고 질문에 답하고 싶은 사람 또한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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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기계-텍스트의 권리 한 번 형성된 프레임은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 스캐터랩에서 개발한 AI 챗봇 ‘이루다’는 서비스 직후 폭력적이거나 선정적 대화 방법을 공유하는 게시글들이 커뮤니티에 업로드되며 인권 논란이 불붙었으나 현재는 개발사가 운영했던 ‘연애의 과학’이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수집한 1700건의 카톡을 무단 유출한 정황이 폭로되며 개발 및 연구 윤리의 영역으로 논란의 중심이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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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마스크로 보는 2020년 대한민국 연말이서인지 한 해를 점검하는 책이나 리포트 또는 칼럼이 쏟아져나온다. 이러한 보고는 대부분 코로나19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를테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효과, 코로나19로 인한 정치권의 움직임, 코로나19를 통한 교육의 변화 등등.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마스크로 옮겨간다면 어떠할까? 향후 10년, 20년 후 미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코로나19가 아니라 오히려 마스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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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가짜뉴스라는 리더십 정부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재설정하고 1.5단계가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 2단계가 선포되었다. 이런 수사는 봄이나 가을같이 스쳐 지나가는 계절에나 어울릴 것 같았는데.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한 옷장 속 봄옷이나 가을코트 등을 붙잡고 세월이 지났음을 떠올리는 게 이때까지의 클리셰라면 이제는 채 30일 조금 남은 2020년과 거리 두기 1.5단계 수준을 아쉬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스크라도 부여잡아야 할까 같은 시덥잖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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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우상 양산의 시대 20세기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철학자 레오 뢰벤탈은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 그는 1901년부터 1941년까지 미국 잡지에 나오는 일대기를 조사하여 해당 시대가 바라는 영웅상이 무엇인지를 분석하였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잡지에 일대기가 수록된 영웅들은 진지하고 중요한 전문직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경제계의 거물이거나 정치가, 진지한 순수 예술가들과 같은 ‘생산의 우상(idols of production)’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일대기의 주인공들은 ‘소비의 우상(idols of consumption)’으로 변화되었는데 이들은 운동선수나 영화배우 같은 오락 분야의 사람들이거나 특별하지 않은 성격의 보편적 인물이 특별한 계기를 통해 기회를 잡고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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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독서의 침입 최근 TV에서 윌라 오디오북 광고를 보았다. 해당 광고의 골자는 책 읽기를 어려워했던 실제 회원들의 수기를 재구성하여 왜 책 읽기가 어려웠는가를 고백한 뒤, 오디오북 서비스가 해당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마침내 독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간증이다. 해당 오디오북의 카피라이트가 ‘책.듣다.쉽다.’인 것은 이러한 서비스의 특징을 명확하게 설명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