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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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미래 뿌리 있는 오늘날의 복수극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복수 이야기를 좋아한다. 복수의 플롯에는 고대 서사시부터 최근의 웹소설과 드라마까지 일관된 이야기 틀이 있다. 오늘날의 사이다 복수극도 복수 이야기의 오랜 전통에서 당당히 자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디세이아>는 호메로스가 지었다고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죽을 고생을 겪은 후, 고향 섬 이타카에 돌아간다. “많은 일을 겪은” 오디세우스의 용모는 변했다. 아내 페넬로페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거지꼴을 한 채,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자기 집을 파먹고 있는” 수십 명의 오만한 구혼자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다. -
창작의 미래 이야기는 죄가 없다 이야기는 세계관의 반영이다. 세계에 대한 해석이 들어간다. 소설가 포스터의 유명한 정리를 응용해보자. “왕이 죽었고, 왕비가 죽었다.” 이것은 스토리다. “왕이 죽었고, 왕비가 슬퍼했고, 그래서 죽었다.” 이것은 플롯이다. 해석이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왕이 죽었고, 왕비가 기뻐서 웃다가, 숨이 넘어가서 죽었다.” 같은 스토리의 다른 플롯이다. 해석이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다. 왕의 죽음에 왕비가 웃음을 터뜨리는 세계는 어둡고 비뚤어진 곳이다. -
창작의 미래 쉬운 것이 어려워졌다 단테의 <신곡>을 둘러싼 의문. 움베르토 에코는 어느 강연에서 “옛날 중세 사람들도 <신곡>의 ‘천국편’이 재미없었을까” 물었다. 현대인이 보기에 ‘지옥편’은 흥미진진한데 ‘천국편’은 지루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세 사람들은 ‘천국편’도 재미있었으리라”는 것이 에코 선생의 결론이다. 명색이 중세 학자니 다른 결론을 내기도 어려웠으리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
창작의 미래 우리는 왜 창작을 하는가 첫번째 이야기. 피렌체의 두오모 대성당은 거대한 돔으로 유명하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도시국가 피렌체가 돔을 짓자고 결정할 당시만 해도 돔을 지을 건축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단 아이디어부터 던진 셈이다. 마침 브루넬레스키라는 사람이 옛날 로마 시대의 유적을 연구해 돔 짓는 법을 연구한 터라, 돔 건설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천재라는 명예를 누렸다. -
창작의 미래 창작의 미래 대 창작자의 미래 인공지능이 사람 대신 그림을 그려주는 시대다. 미드저니라는 서비스가 요즘 화제다. 말 몇마디만 넣어주면 알아서 그림을 만들어 내놓기 때문이다. 그림 솜씨도 괜찮다. 오랜 시간 정성껏 그린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손님이 물었다. “그림을 못 그리는 나도 미드저니를 쓰면 내가 바라는 그림을 만들 수 있어요. 일러스트레이션을 싣던 신문과 잡지도 앞으로 이런 서비스를 쓸 것 같네요.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일감을 위협받지 않겠습니까?” -
창작의 미래 존중하되 두려운, 변화 언제나 그렇듯 잠잠할 날 없는 인터넷이다. ‘사흘’이라는 단어를 보고 “ ‘4흘’이라고 안 써 헛갈린다”며 성난 사람, “명징하게 직조한”이라는 표현을 보고 “잘난 체한다”며 성난 사람, ‘심심한 사과’라는 말에 “사과한다더니 뭐가 심심하냐”고 성난 사람의 이야기가 입길에 오른다. 세상이 변한다. ‘사람들이 갈수록 무식하다’고 투덜대는 분도 있는 것 같지만, 내 생각은 그렇진 않다. 문맹률은 낮고 교육수준은 높다. 각종 지표는 사람들이 갈수록 유식하다는 증거다. 요즘 사람이 옛날보다 어휘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다. -
창작의 미래 돈과 권력이 된 ‘유명함’ 사회의 변화와 창작의 미래에 대해 나는 오늘 네 가지 입장을 살펴보려 한다. 첫째는 “누구나 15분씩은 유명해질 사회가 온다”는 유명한 말이다. 20세기 후반의 미국 예술가 앤디 워홀이 한 말이라고 우리는 기억한다. 이 변화는 바람직할까, 바람직하지 않을까. 발터 베냐민이라면 반겼을 것 같다. 우리가 살펴볼 두번째 입장이다. 베냐민은 20세기 초반의 독일 지식인인데 예술의 민주주의를 꿈꿨다. 누구나 15분씩 유명해진다면 작가도 더는 뻐기지 못하고 독자도 주눅들지 않을 터이다. -
창작의 미래 창작과 감상, 그리고 이익공유 창작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나는 지금 그리스 신화, 발터 베냐민의 이론, 웹3.0 등을 한 줄로 꿰듯 생각해 본다. <스토리, 꼭 그래야 할까?>라는 따끈따끈한 신간을 읽었기 때문이다. 지은이 문아름과 양혜석은 웹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교수다. 두 가지 사실이 눈에 띄는 책이다. 하나는 기존의 작법서를 아주 많이 읽고 충분히 소화한 다음 정리해놓았다는 점. 기성 작가에게도 도움이 된다. 또 하나는 이 책이 무척 친절하다는 점이다. 처음 작품을 쓰는 작가 지망생에게 용기를 준다. 그런데 눈 밝은 독자님은 알아차리셨을 터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이 서로 창과 방패같이 부딪치는 상황을. -
창작의 미래 NFT 예술, 키치? 아방가르드? 키치라는 개념이 오랜만에 다시 눈길을 끈다. NFT 예술 때문이다. 지난해 봄 비플의 NFT 예술작품이 비싸게 팔렸다. 사실은 비플이 10여년 동안 하루 한 장씩 그린 5000장 작품의 값이었지만, “그림 한 장에 75억원”이라고 입길을 탔다. 블록체인 업계가 들떴다. 예술시장도 떠들썩했다. 어떤 이는 반겼고 어떤 이는 불편해했다. 지난해 여름 나는 물었다. “기존 미술시장에서 NFT 예술을 반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반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죠. 없어지기를 바라는 쪽이죠.” 미술계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의 대답이다. -
창작의 미래 교훈은 정보, 즐거움은 보상 ‘핑크퐁 한글’ ‘토도 수학’ ‘세이고미니’….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린이 교육용 애플리케이션(앱)에 관심이 갔다. 궁금했다. 교육용 인터랙티브 앱은 게임과 어떻게 다른가? 둘 다 예쁘고 재미있는데 말이다. 이런저런 앱을 겪어본 끝에 나는 생각했다. ‘아이의 참여에 보상을 많이 해주면 게임, 보상을 덜 해주면 교육용 앱’이라는 것이다. 중독성 문제를 염려한 걸까 추측은 한다. 몇 해 전 어느 칼럼에 쓴 내용이다. 그 후로 나는 보상이라는 문제를 죽 고민한다. -
창작의 미래 고전, 공통 텍스트 상실에 대하여 고전이 없는 시대라고들 한다. 공통의 텍스트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세상이 무너질 일도 아니다. 고전이 안 읽힌다 해서 영향 받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다만 나 같은 창작자는 영향을 받는다. 20년 전에 내가 그린 만화를 손보고 있다. 오랜만에 만화책을 펴니 머리가 아프다. 이제는 옆으로 넘기는 출판만화가 아니라 위아래 스크롤하는 웹툰의 시대다. 내 만화책은 편집도 그림도 옛날 스타일이고 글씨도 너무 많다. 무엇보다 그때 내가 심어둔 우스개들이 지금 내 눈에 거슬린다. 그때는 시의적절한 풍자였고 내딴에는 재미도 있었는데, 지금 독자는 어느 지점에서 웃어야 할지 망설일 것 같다. -
창작의 미래 실화 대 허구의 ‘숫자 수수께끼’ 오늘의 주제는 실화 대 허구다. 실화에 기반한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요즘 화제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과 <보드랍게>가 연일 SNS에 오르내린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전에도 있었지만, 요즘은 특히 주목받는 것 같다. 요 몇 해 꾸준히 넷플릭스를 통해 실화 기반 드라마와 다큐멘터리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