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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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미래 K문화 위상 못 따라가는 창작 환경 창작만 고통이랴? 즐기는 일도 쉽지 않다. 게임을 하다가 밤을 새우고, 드라마 때문에 잠을 설치며, 웹툰과 웹소설을 읽느라 누워서도 폰을 놓지 못한다. 즐길거리가 너무 많아도 번뇌다. 그래서일까. 요즘 대세는 편하게 즐기는 창작물이다. 웹툰은 스크롤을 흘려 보내며 읽는다. 게임은 ‘방치형’이 한동안 유행이다. 가끔 큼직한 결정만 내릴 뿐, 게임 속 인물이 알아서 뛰어다니고 나는 지켜만 본다. 올해는 ‘하이퍼캐주얼 게임’이 유행하리라고 한다. -
창작의 미래 창작자에게 또 다른 경쟁자가 나타났다 지난 주말 미국에서 일하는 친구가 텔레그램으로 문자를 보냈다. “클럽하우스 해봤어?”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어린이 프로그램 <미키마우스의 클럽하우스>를 생각했다. 나는 클럽하우스 앱을 받아 깔았다. 아이들을 보면서 클럽하우스를 이용하기 어려우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들어가보고는 싶었다. 클럽하우스는 재미있어 ‘보인다’. 아니, ‘들린다’고 해야 하려나. 음성으로 떠드는 채팅방이 이곳저곳에 열려있고, 아무 방이나 접속해 오고가는 대화를 들을 수 있다. 끼어들어 함께 수다 떨 수도 있다. 아직은 아이폰만 서비스를 하는데 “이러다가 애플사가 안드로이드용 출시를 늦춰달라고 클럽하우스에 뒷거래 요청하겠다”는 농담이 SNS에 올라올 정도다. -
창작의 미래 작가는 가도 캐릭터는 남는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고도 하고 <지와 사랑>이라고도 하는 헤세의 소설을 읽으며 궁금했다. 골드문트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제 이름 석 자(?) 남기는 일에 집착할 줄 알았는데, 사람은 잊혀도 자기가 만든 조각만 남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나는 신기했다. 골드문트는 노느라 바빠 그 작품이나마 거의 남기지 않았지만. -
창작의 미래 ‘한배에 탄’ 창작자와 플랫폼의 상생전략 “한배에 탔다”는 말이 있다. “인 에아뎀 에스 나비(in eadem es navi)”라는 라틴어 격언을 옮긴 말이다. 로마의 정치인 키케로가 즐겨 썼다나. 서로 좋건 싫건, 배가 가라앉으면 같이 망하고 배가 목적지에 닿아야 산다는 뜻이다. 플랫폼과 창작자도 마찬가지일 터다. 그런데 같은 배에 타도 이해관계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추억의 영화가 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이 이런 주제였다.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노아의 방주에 몰래 탄 좀벌레 이야기를 썼다. 1781년에 일어난 노예선 ‘종’의 사건은 극단적인 경우다. 선장은 자기 이익을 위해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노예들을 바다에 던졌다. 훗날 화가 윌리엄 터너가 ‘노예선’이라는 작품으로 그렸다. 예술가들이 이런 이야기를, 경영자가 ‘한배에 탔다’는 격언을 좋아하는 현상도 흥미롭다. -
창작의 미래 플랫폼 이름과 작가 브랜드 나라는 사람은 말로는 창작의 미래를 논하지만 마음은 종이만화, 종이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런 나를 걱정해준 친구가 얼마전 흥미로운 글을 보냈다. 책이 안 팔린다 안 팔린다 해도 이른바 ‘숏폼교양’처럼 주제를 넓고 얕게 다루는 책은 잘 팔린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마음씀이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이런 창작물은 플랫폼과 작가의 셈법이 엇갈린다”고 답했다. -
창작의 미래 플랫폼의 다양성과 창작자의 미래 “성공은 운이다. 열정도 실력도 아니다.” <킵고잉>이란 책에서 읽고 공감한 대목이다. 이 책은 사업에 관한 것인데 만화가인 내가 왜 읽었을까? 엉뚱한 사연이 있다. 이 칼럼에서 나는 종이책에만 매달리면 앞으로 힘들 것 같다고 했고 유튜브를 시작하겠다고도 썼다. 그래놓고선 여전히 종이 세상에 살았다. 종이신문과 종이책에 들어갈 그림을 그렸고 유튜브에 관한 종이책을 읽었다(김겨울이 쓴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이 제일 좋았다). 얼마 전 유튜브 채널 신사임당으로 유명한 주언규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튜브가 주제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하며 <킵고잉>을 읽었는데, 잘못 짚었다. 그래도 유익한 책이었다. “성공은 운”이라는 말은 도박하듯 사업하라는 뜻이 아니다. 단 한 번 시도로 성공할 생각을 버리라는 충고다. 사업이 “주사위를 던져 눈이 3이 나오면 돈을 벌고 아니면 잃는 게임”이라고 하면, 여러 번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고 시작해야 한다. “실패도 계획에 포함해야 한다.” -
창작의 미래 비대면 시대의 창작자 올 초에 이 칼럼을 시작할 때, 쓰려고 마음먹은 주제가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달라진다고 하니, 이렇게 대응하면 어떨까?” 변화를 맞아 창작자가 살아남는 방법에 관해서였다. 그런데 몇 편 쓰지도 않았는데 변화가 또 찾아왔다. 코로나19 이야기다. 그동안 쓴 내용은 이랬다. 첫째, 창작물을 제값 받고 팔기는 힘든 세상이 됐다. 둘째, 그러니 창작물 값 대신 창작자의 몸값을 올리는 편이 낫다. 셋째, 몸값이 오르면 강연이나 공연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 “가수라면 공연 다닐 준비를 해두는 편이 좋을 거다. 남은 건 그것밖에 없으니까.” 데이비드 보위가 한 말이라고 한다(역시 멋지다). 아무튼 세 번째가 지금 문제다. -
창작의 미래 종이가 사라져도 콘텐츠는 죽지 않는다 웹소설 때문에 문학이 죽는다? 웹툰 때문에 만화가 죽는다? 가끔 듣는 말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옛날에 누가 봐도 사업이 안 될 아이템으로 창업을 했다가 망한 후 이런 말씀을 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IMF 사태만 아니었어도 난 망하지 않았다.” 정말로 외환위기 사태 때문에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생각나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요즘은 “인터넷과 유튜브 때문에 책이 망했다” 같은 말도 듣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저번 칼럼에 썼다. -
창작의 미래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창작물엔 정답이 없다. 창작자의 성공엔 모범답안이 있다. <예술가는 어떻게 성공하는가>라는 책을 나는 좋아한다. 25년 동안 네 단계의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면 성공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25년이라니 길긴 하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노오력’만 강조하는 사기꾼은 아니다. 재능, 운 등 여러 가지가 받쳐줘야 작가는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다. 지은이 앨런 보니스는 테이트모던 미술관을 이끌던 현대미술의 산증인이다. “반 고흐는 아니지 않냐고 여러분은 물을 터이다.” 지은이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한다. “십여년 동안 그림을 그리다가 그는 죽었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때는 미술을 시작한 지 25년 되던 무렵이었다. 반 고흐가 오래 살았다면 피카소 못지않게 부와 명예를 누렸을 것이다.” -
창작의 미래 미래의 창작 생태계에 내 자리가 있을까 “이십년 전에 인터넷 처음 보급될 때랑 지금이랑 비슷하지 않아요? 변화의 방향도 예측이 안 되고,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지인을 만나 한 이야기다. 그런데 거짓말이었다. 집에 와 다시 생각하니 사실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안다. 어떻게 변할지 무얼 해야 할지 말이다. 우리보다 더 빨리 변하는 곳을 보면 된다. 지금까지는 미국이었다.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사며 책이며 쏟아진다. 바로바로 우리말로 번역도 된다. “트렌드를 짚어준다”며 신조어를 지어내는 요란한 책 말고, 읽으면 도움 되는 용한 책들도 꾸준히 나온다. -
창작의 미래 ‘요즘’ 책 읽는 사람이 없다고? 내 직업은 책을 쓰고 종이에 만화를 그리는 일이다. 먹고살기 만만치 않다. 자주 듣는 불평이 있다. “요즘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다.”(비슷한 말로 “요즘은 신문의 행간을 읽지 못한다”는 개탄도 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안다. 이 말은 절반만 사실이다. 옛날 사람도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술 출판 독서의 사회사>라는 책이 있다. 원래 제목은 달랐다. 우리말로 옮기면 <카사노바는 책을 사랑했다>는 이름이다. 책을 쓰고 읽고 사랑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렸다. 그런데 대부분 글이 이런 식으로 끝난다. “사람들이 책을 좋아한 것도 옛날 일이고 요즘은 책 읽는 사람이 없다.” 정말 그럴까. -
창작의 미래 ‘망쳐도 된다’는 디지털 자신감 친구의 푸념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부모 노릇 하기가 어렵구나.” 나의 대답이다. “여섯 살 된 우리 큰애한테 색칠하기 책을 사줬어. 좋아서 칠하다 막 서럽게 울어. 왜 우나 보니까, 종이에 색칠한 걸 어떻게 지울지 당황했더라고. 아이패드 색칠하기 앱은 ‘언두(undo)’가 되는데 책은 안 되니까.” “ㅋㅋㅋ.” 친구는 웃었다. 마음 편한 웃음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