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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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수능이라는 교육 포퓰리즘 대선 주자들이 또 수능을 부추기고 있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의 첫 공약이 1년에 수능을 두 번 치는 것이었고, 경선 1차에서 낙방한 나경원 후보도 수능 100% 전형을 연 2회 실시할 것을 강조했다. 내가 볼 때, 대선 공약으로 수능을 들고나오는 것은 전형적 포퓰리즘이다. 수능 때문에 교육이 왜곡되는 것은 눈여겨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공정성’의 화신으로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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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또다시 87년 6월 항쟁의 재현인가 얼마 전 스웨덴 예테보리대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가 발표한 ‘세계 민주주의 보고서’는 한국 민주주의 수준을 자유민주주의에서 선거민주주의로 낮췄다. 지난 2년간 가파른 하락세이며, 물론 불법 계엄의 여파가 크다. 민주주의 추락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보고서는 지난 25년 동안 세계가 독재화되어가는 생생한 증거들을 제시한다. 세계민주주의 수준은 벨 곡선을 그리며 후퇴하고 있고, 민주주의로 분류된 국가들 숫자는 1996년 이전으로 퇴화했다. 선거의 질이 나빠지고 있는 국가는 지난 20년간 2배 이상 늘었고, 언론의 자유가 뒷걸음치고 있는 국가도 무려 6배 이상 늘어났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나치와 무솔리니의 파시즘, 소련과 중국의 대두 등 일련의 독재화 영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세계는 다시 유럽의 극우화, 트럼프주의의 등장, 그리고 한국과 인도 등에서의 우려할 만한 독재화 시도 등을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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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정치 좀비, 바이러스, 그리고 백신 “당신들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었는가? 좀비, 좀비, 좀비…” 며칠 전 헌법재판소 최후변론을 했던 윤석열을 떠올렸겠지만, 사실은 30여년 전 아일랜드 록그룹 크랜베리스가 불렀던 ‘좀비’의 후렴구이다. 종교 갈등의 틈새를 비집고 폭탄과 총을 동원한 테러가 자행되던 아일랜드의 안타까운 역사를 노래했다. 마침내 1998년 4월10일 벨파스트 평화협정으로 북아일랜드 사태는 막을 내렸지만 1969년부터 30년 동안 이어져온 피의 분쟁으로 36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곡 ‘좀비’는 1998년 노벨 평화상 수상식에 초청되어 연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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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확증편향적 신념에 대하여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사회체계이론>에서 근대사회가 여러 하위 체계들을 병렬적으로 진화시켜 온 과정을 설명한다. 그는 근대사회의 각 하위체계들인 법체계, 정치체계, 경제체계, 학문체계 등이 각각 자신만의 고유한 매체, 코드, 기능 등을 발전시켜 왔다고 본다. 예컨대 법체계와 정치체계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세계이며, 각자 서로 다른 코드를 통해 스스로를 타 체계와 구분해왔다. 법체계가 ‘합법인가 불법인가’라는 코드로 자신을 특화해왔다면 정치체계는 ‘통치하는가 통치받는가’라는 코드로 스스로를 인지한다. 요컨대 합법성과 통치성의 개념은 서로 기원이 다를뿐더러 섞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근대사회 원칙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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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중고령 세대의 정치문해력 지난주 영국의 BBC는 국회의 탄핵소추 장면을 보도하면서, 화면을 양분해 여의도와 광화문을 동시에 비추었다. 왼쪽에는 춤추며 기뻐하는 여의도의 젊은이들을 잡았고, 오른쪽에는 침묵하며 주저앉은 광화문의 중고령자들을 비추었다. 한국의 정치지형을 가르고 있는 세대 간 대치국면을 극명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하 전 연령에서 80%가 탄핵에 찬성한 반면, 60대 이상은 60%, 70대 이상은 49%만이 찬성했다. 과연 60~70대의 생각은 왜 이토록 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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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그늘에 가려진 정책, 평생교육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불렀던 ‘사계’ 가사다. 낭만적으로 들려도 실은 1970년대 당시 자신의 몸을 갈아넣고 노동하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과 땀을 노래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한 시대 전체가 그랬다. 경공업으로 시작한 한국경제는 대량의 나이 어린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를 집단적으로 요구했고,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청소년들의 희생에 의해 지지되었다. 국가와 기업은 이들을 ‘산업 역군’이라고 추켜세웠지만, 사실 이들은 기본적인 삶의 권리도 포기한 채 기계 앞에 붙들려 있어야 했던 어린 노동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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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읽는 사회, 읽지 않는 사회 한 권의 소설이 주는 교육적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은 한국 사회를 단번에 ‘문학 학습’의 열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좋은 교사는 한 반 아이들을 공부하게 만들지만, 좋은 작가는 그 책을 읽는 한 사회를 공부하게 만든다. 인간의 학습은 삶과 역사 전체에서 일어난다. 인간은 마치 호흡하듯 숨쉬는 순간마다 뭔가를 감각하고, 생각하며, 학습한다. 새로운 학습은 오래된 관습의 틀을 쪼개며, 역사적 기억의 상처에서 새살이 돋게 만든다. 특히 문학 학습은 교육의 역사에서 그 중심핵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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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 공부 중 며칠 전 박은식의 <한국통사>를 읽었다. 여기에서 통사란 아플 통(痛), 곧 ‘한국의 아픈 역사’라는 뜻이다. 출간된 지 꽤 된 책이지만 오랫동안 손대지 않고 있다가 최근 뉴라이트 논쟁을 계기로 다시 집어들었다. 따지고 보면 선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현 정부가 나에게 역사 공부를 시켜주고 있다. 박은식은 임시정부의 2대 대통령이기도 했으며, 일찍이 한성사범학교 교관을 지낸 분이다. 그가 쓴 <한국통사>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책이며, 그 안에 살아있는 표현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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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국가교육위원회 일파만파 지난주 SBS를 시작으로 몇몇 언론매체들은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가 수능 이원화, 고교 내신평가의 외부기관 출제, 평준화 기조 약화 등을 골자로 하는 중장기 개혁안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국교위는 즉시 공식 입장문을 내고 그 내용은 단지 ‘아이디어’ 수준일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것이 13 대 8로 다수를 점하고 있는 보수 측 위원들로부터 나온 생각이라는 점, 그리고 지금까지 국교위의 의사결정이 투명성이나 사회적 합의 등 보다는 폐쇄된 논의를 통해 전개되었고, 게다가 이번에는 단체 채팅방의 짬짜미로 ‘사전 조율’까지 시도했다는 점 등은 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한 개인 전문위원을 해촉하는 데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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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디지털 교과서 정책이 말하지 않는 사실 교육부가 내년 전면 도입을 목표로 내건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교육 전문가들은 최소한 속도라도 늦추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좀처럼 수용하려고 들지 않는다.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이 몰고온 파장만큼이나 이번 디지털 교과서 정책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 이 사업의 핵심은 2025학년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영어·수학·정보 과목에 디지털 교과서를 적용하고, 이를 통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학생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화려한 수사들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에는 몇 가지 깊은 검토가 필요한 문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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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창의적일까?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에 연동하여 ‘창의적 사고력’ 측정 결과를 발표했다. OECD 회원국을 포함한 총 64개국이 참여했는데, 전체 1위는 60점 만점 중 41점을 받은 싱가포르가 차지했고, 한국은 38점을 얻어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과 함께 2~4위 그룹으로 분류됐다. 이 결과는 다소 의외였는데, 한국의 학교들이 주로 입시준비와 문제풀이에 치중해왔다는 점에서 볼 때 기대하기 힘든 성과였다. 게다가 한국 학생들뿐 아니라 싱가포르 학생들도 자신들의 창의성이 높다는 사실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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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인구 급감, 당신의 선택은?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새 생명을 출산하고 키우는 ‘생물학적 재생산’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 이들이 소통하고 지식을 공유하도록 ‘문화적 재생산’을 시도해야 한다. 셋째, 이들에게 필요한 물적 재화를 공급하기 위해 ‘경제적 재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제들을 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각각 출산, 교육, 직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출산은 다른 두 가지에 선행하는 필수요소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후순위로 밀린다. 특히, 경제가 고도화되어 갈수록 일의 세계가 삶의 세계를 밀어내게 되는데, 특히, 믿을 게 인적자원밖에 없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는 교육과 직업이 출산을 밀어낸 대표적 사례이다. 한국이 0.72명인 것처럼 대만도 0.83명에 불과하며, 싱가포르도 0.84명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