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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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제 그만 격노하세요 “대통령의 말 그 자체가 권력 행위이다.” 어제 경향신문이 지난 2년간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들을 집중 해부하면서 던진 말이다. 말은 곧 메시지이고 그 안에는 권력의 구조와 방법이 담겨 있다. 또한, 말은 이성적인 언표만 포함하지 않는다. 함께 표현되는 감정과 몸짓도 권력자의 중요한 메시지 표현수단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국민들의 뇌리에 박힌 가장 인상적인 대통령의 메시지는 “격노”였을 것이다. 내용 없이 화만 버럭 내는 그의 통치스타일 속에는 그만의 독특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절대왕조에서나 볼 수 있는 시그널이다. 그 한마디로 주변 사람들을 떨게 하고, 수습하느라 무리수를 두게 만든다. 대통령은 격노만 할 뿐, 사과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스로 군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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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과잉경쟁’ 끊기, 정치개혁만이 답 일주일 전 대만에서 규모 7.4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타이베이 모노레일이 끊어지고 TSMC 반도체 공장이 멈추었다. 대만의 지층은 필리핀 판이 유라시아 판 아래로 매년 10㎝씩 파고 들어가며, 이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쌓이면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다. 물리계에서의 스트레스 응축이 지진이라는 형태로 해소되는 것과 다르게 생명계에서의 스트레스 응축은 집단적 이상행동과 자해 및 출산 감소 등 자신의 미래적 지속 가능성을 부정하는 병리현상으로 나타난다. 스트레스로 인해서 뇌는 늘 긴장하며, 불안과 분노가 일상화된다. 유아 아동기의 스트레스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변화시키며 뇌 구조와 행동까지 바꾼다. 급기야 스트레스는 불임을 증가시키며 인구절벽의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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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전공의 집단사직은 교육문제다 최근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가려져온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난맥상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의료체계 문제는 단지 의사 수 부족, 낮은 의료수가, 필수의료 붕괴 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공성을 상실해가는 치료행위 위주의 분절된 영리체계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번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는 온 국민이 한국의료체계의 근본적 문제를 종합적으로 학습하고 그 치유 방안을 공론화할 수 있게 하는 장을 만들었다는 나름의 효과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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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데칼코마니, 한국과 대만의 교육문제 현대사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비슷한 경로를 걸어온 두 국가의 교육 현상은 서로 비슷할까? 이 질문에 힌트를 줄 수 있는 국가가 한국과 대만이다. 두 국가를 비교해보면 교육 문제가 결코 한 사회의 구조적 특징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대만은 인구와 국토 면적으로 볼 때 한국의 절반도 채 되지 않지만 많은 유사점을 공유한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고,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엄령 통치 아래 있었다. 한국이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바로 그해에 대만은 38년간 이어지던 계엄령을 해제하였고, 문민정부 출범과 비슷한 시기에 직선제를 통해 첫 번째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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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대학 무전공 입학을 바라보는 시각 최근 교육부는 2025학년도 대입 모집부터 일정 비율 이상을 전공자율선택(혹은 무전공)으로 선발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당해의 경우 모집정원 중 무전공 입학자 수가 20%(수도권) 혹은 25%(지방국립대)를 넘는 대학들에 대해서 대학혁신지원사업 예산 중 4426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 정책은 두 가지 요구가 서로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하나는 학생들이 입학 후 좁은 학과 단위 안에 갇혀서 폭넓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며, 다른 하나는 교수와 학과들이 학생을 인질로 삼아서 자기 변신을 소홀히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발빠른 대학개혁을 지체시키고 있다는 의심이다. 한편에서 학생들은 점수에 맞추어 적성에도 없는 학과에 꾸역꾸역 입학한 후 전과 등의 기회를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대학 차원에서 볼 때에도 새로운 수요에 따른 적절한 학과 정원 조정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전체 학생 중 최소한 3분의 1이 졸업 이전에 전공을 변경한 경험이 있으며, 대학도 수요가 넘쳐나는 전공에 대한 증원 요구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에서는 2000여명 입학자 가운데 컴퓨터 공학 전공자가 700명이 넘는다. 반면, 서울대학교의 동 전공자 수는 10년 전에 비해 크게 증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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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2023년 교육개혁 성과 진단 지금까지 많은 교육 변화에 대하여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여왔다. 개혁은 ‘혁명’과는 다르게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완만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또한 주로 테크놀로지적이고 미시적인 형태의 ‘개선’보다는 확연히 구조적이고 프레임적인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50년 후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교육체제가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럴 경우 앞으로의 교육개혁은 현재의 학업성취도, 입시제도, 교육과정, 교사와 수업 등 지금까지의 관성적 개념에 의존할 수 없다. 미시적 조정만으로는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혀 다른 프레임의 밑그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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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매력적 오답’이라는 난센스 올해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수능이 끝났다. 대통령까지 나서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고 공언했지만, ‘매력적 오답’이라는 기상천외의 표현까지 등장시키면서 기어이 불수능을 만들었다. 재수생이 대거 등장한 이번 수능에서 적절한 변별력이 필요했다지만, 그 유탄을 고스란히 고3 ‘현역’ 수험생들이 맛봐야 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수능은 종을 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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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고교 내신 평가서 선택형 문항 없애라 2028 대학입시방안 등 일련의 교육정책 속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방향 선회가 느껴진다. 고교학점제에 따라 내신에서 선택과 진로가 강조되며, 그 평가에서도 절대 성취평가가 전면화되고, 상대 등급의 민감도 역시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낮추어지는 등 교육과정 정상화를 향한 의미있는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서 기왕이면 몇 가지 변화가 함께 수반되었으면 한다. 예컨대 수능의 기능과 내신의 기능을 완전히 분리하는 방법도 차제에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교육과정은 고1 과정을 기초공통 중심으로, 그리고 고2·3 과정을 선택과 진로 중심으로 나누어 놓고 있는데, 기왕이면 수능을 고1까지의 공통과정 성취도를 측정하는 수학능력 자격고사로 규정하고 그 시험 시기도 고1 과정이 끝난 직후부터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고2·3 과정은 수능에 얽매인 암기와 문제풀이 중심에서 탈피해서 자기표현력과 논리력, 그리고 창의력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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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끓는 솥 압력은 솥 안에서 낮출 수 없다 역대 모든 정부가 겉으로는 교육 개혁을 외쳤지만 실제로 뇌관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자신들이 뒤집어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윤석열 정부 역시 이 문제에 미온적이다. 출범 이후 1년 반을 넘기고 있지만 아직까지 어떠한 속내도 알 수 없다. 얼마 전 출범 1주년을 맞은 국가교육위원회의 토론회가 느슨하고 한가한 토론들로 채워졌던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에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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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도시라는 회집체 우리 아파트엔 주민들끼리 소통하는 단톡방이 있다. 아파트 개·보수 등 정보 공유는 물론이고 그 안에서 무료 나눔도 이루어진다. 어느날 아파트 화재경보가 울렸을 때 경보 발원지를 찾는 데에도 단톡방이 한몫 톡톡히 했다. 단순한 단톡방 하나만으로도 도시를 살아가는 재미가 느껴진다. 최근 ‘스마트 도시’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스마트 도시란 정보시스템 연결망을 통해 네트워크화된 도시를 일컫는다. 주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교통 흐름, 공기 오염, 에너지 사용 등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그로부터 산출되는 데이터를 통해 시민 생활의 편의성을 높인다는 개념으로 출발한 정책 사업이다. 이 사업의 핵심에는 ‘도시의 문제’를 ‘테크놀로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제를 기술이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일종의 테크노피아적 믿음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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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교육 영토의 자주성은 어디로 갔는가 김영삼 정부가 주도한 ‘5·31 교육개혁’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학교 안에서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이 존중되는 흐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부 아래 폭언과 체벌이 난무하던 학교 안에서 학생의 인권과 학부모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한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신자유주의에 터를 잡은 교육 시장주의와 학습 소비자주의가 학교 안으로 스며들었고, 이제 학교는 나와 내 아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상품이자 수단이 되었다. 학교는 교육의 공적 이익을 실현하는 대신 오히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욕망 기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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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대입 과잉경쟁, 대학이 해결해야 한다 ‘킬러 문항’이라는 대통령 한마디가 교육계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킬러 문항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라는 문제의 ‘졸(卒)’일 뿐이지만 졸지에 모든 문제의 원흉이 되어버렸다. 수능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시험이다. 선다형 위주로 출제되고 짧은 시간 안에 풀어야 하기 때문에 암기와 연습 강도, 문제풀이 기술 등이 성적을 크게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