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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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미래에 기대를 걸게 하는 개혁 현재를 유지하는 것보다 그것을 바꾸는 일이 훨씬 어렵다. 그래서 보수 노릇 하기보다 진보 노릇 하기가 훨씬 힘들다. 진보세력은 늘 중단 없는 개혁을 주문받는다. 그런 개혁은 주로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성공예측도 어렵고 그 실패에 대한 책임도 홀로 감당해야 한다. 이 점은 교육개혁에도 해당된다. 한국의 교육은 관리의 대상을 넘어 개혁의 대상이다. 현재 체제를 무탈하게 유지하는 교육정책만으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현 정부가 검찰개혁만큼 교육개혁에 올인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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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5인치 화면 속의 ‘개싸움’ 모든 주요 매체들은 휴대전화 포털 첫 페이지를 차지하기 위해 각개전투를 벌인다. 뉴스는 ‘콘텐츠’가 되었고, 포털이라는 ‘플랫폼’에 얹혀 배달된다. 우리나라에서 포털은 곧 언론 그 자체이다. 성인 70%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며, 언론사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뉴스를 보는 사람은 5%에 불과하다. 포털은 유입 기사들을 여러 방식으로 경쟁시킨다. 열독률 높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연령별 인기뉴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순위를 매긴다. 자극적 단어를 품은 기사들이 포털 1면을 장식하고, ‘국민의 짐’ ‘대검 나이트’ ‘망신당한 모지리’ 등 개인 블로그에나 나올 성싶은 단어들이 버젓이 뉴스 헤드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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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재수 대신 편입?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유난히 수능이 늦다. 올해 수능 지원자는 역대 최소규모로, 40만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졸업생은 13만3000명으로, 전체의 27%를 차지한다. 이런 졸업생 응시자 수는 한동안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숫자는 바로 우리나라 입시시장을 받쳐주는 로열 고객층이다. 대학에 입학했다고 해서 입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올해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가운데 46.5%가 반수나 편입 의향이 있다. 거의 절반의 재학생들이 학교를 옮기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이를 반드시 학벌세탁으로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전공을 바꾸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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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하이브리드 학기가 주는 교훈 온라인과 출석이 섞인 하이브리드 학기 동안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생겼다. 중위권 학생들의 실종이다. 몇몇 신문들은 “중위권 학생 확 줄고 하위권 급증” 혹은 “실종된 학력 중간층”이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실제로 중·고교 교장들을 만나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적분포는 종 모양의 정상분포곡선을 그린다. 중위권이 두껍고 상위권과 하위권은 얇다. 그런데 온라인교육이 이루어지는 동안 이 분포가 M자 곡선으로 변했다. 중위권이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이동하면서 양극화된 것이다. 특히 수학의 경우 두드러졌는데, 한 조사에 따르면 강북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40점 미만 학생이 41.9%로 가장 많았고 70점 이상 상위권이 35.9%, 그 사이 중위권은 22.2%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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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인구의 분산, 권력 분산에서 시작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제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쟁점화되고 있다. 지방소멸시대가 가시화되는 마당에 서울의 집값이 무섭게 치솟는 현상은 대선을 앞둔 여당의 입장에서 결코 관망할 수만은 없는 문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지방소멸의 문제는 행정수도를 옮기거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등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인구의 지역적 분산이 아닌 ‘권력의 분산’이라는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 즉 분산되어야 할 것은 공공기관이나 인구가 아니라 권력이며, ‘지방이전’이 아니라 ‘지방분권’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나누는 방식보다 새로운 권력과 핵심들이 각 지역에서 창출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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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새로운 대학사용설명서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3권을 보면 12세기 이후 생겨난 대학교(university)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학생들은 14세 전후로 4년간 예비과정인 인문학부에 등록했고, 과정 후 2년간 의무강의를 해야 했다. 이후 대학원에 해당하는 신학과정 7년을 마치면 다시 4년의 전문과정을 이수한 후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4세에 시작한 공부는 어느덧 30세가 훌쩍 넘어 끝나게 된다. 뭐든지 제대로 공부하려면 학부 4년만으로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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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미국의 구조화된 폭력을 보는 한 시각 시민불복종 시위는 의도하지 않게 일부 파괴와 폭력성을 동반하기도 한다. 폭력성을 옹호해서는 결코 안 되지만, 그것을 빌미로 평화적 시위의 본질을 매도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6월2일 트럼프가 보여준 행태는 이런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말았다. 백악관 로즈가든에 선 트럼프는 시위대를 싸잡아 테러집단으로 몰아붙였다. 자신은 법과 질서를 지키는 대통령으로서 나약한 주지사들을 대신해서 연방군대를 동원해 진압하겠다고 선언했다. 군과 경찰이 섞인 진압대는 트럼프의 연설을 기다리던 평화시위대를 향해 무차별로 최루탄을 발사하며 강제해산 작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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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학교, 시간과 공간의 통제를 깨자 40년 전 프로그레시브 록을 대표하던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The Wall)’은 지금도 유효하다. 푸코가 교실 모습을 감옥에 비유했던 것처럼, 많은 비판론자는 여전히 학교가 학생들을 물리적으로 묶어두고 지식을 주입하기에 딱 맞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규범과 감시가 최적화된 공간통제와 시간통제를 통해 학생을 장악하며 반 편성, 시간표 편성, 출석점호 등은 그런 구조를 유지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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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터널 빠져나오기와 새로운 희망 찾기 세상 종말을 다룬 영화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원인도 가지가지다. 이들 중에서 소행성 충돌이나 외계침공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재앙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인간 자신이다. 인구급증, 환경오염, 자원고갈, 식량부족, 생태계 변화, 전염병 창궐, 좀비, 문명붕괴 등. 그리고 이런 재앙들은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코로나19 사태도 이런 재앙의 연쇄고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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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코로나 시대 ‘뉴노멀’을 학습하다 공공위생과 청결은 근대교육의 산물이었다. 갑오개혁 이후 한성사범학교에서 가르친 ‘체육’의 핵심은 스포츠가 아니라 위생과 청결이었다. 이후 100여년이 흐른 지금, 온 국민은 다시 최선을 다해 손 씻기를 배우고 있다. 국경차단을 최소화하고, 시민권을 제한하지 않는 우리의 방역시스템은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빨리 학습하며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왔다. ‘드라이브 스루’와 같은 혁신모형도 선보였다. 그래도 한국의 대처방식에 대한 세계의 반응은 이중적이다. 한편에서 칭찬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문을 걸어 잠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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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고등교육 보편화시대의 대학 인류의 문명은 지식공유를 통해 성장해왔다. 지식은 나눌수록 퍼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사회는 발전한다. 그런 점에서 지식은 최근 기승을 부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닮았다. 둘 다 격리되는 순간 소멸이 시작된다. 다만 바이러스는 퍼져나갈수록 인류를 위협하지만 지식은 퍼져나갈수록 인류를 풍요롭게 한다. 학교체계는 지식공유를 위해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그리고 대학은 그런 지식공유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 놓여 있다. OECD 교육통계를 보면 주요 국가들의 25~64세 인구 평균 고등교육 이수율은 이미 50%에 근접하거나 넘어서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고등교육 보편화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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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정치교육을 제대로 한번 해보라 선거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18세 선거권은 고등학생도 세상을 바꾸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새로운 상징성을 선물한다. 교과서 안에서 지식으로만 존재하던 민주주의가 이제 삶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교과서 밖으로 걸어 나온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면, 선관위는 최근 “고등학교의 정치화 등 교육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며 입법 보완을 주문했다. 이참에 학교와 정치, 그리고 선거와 관련된 몇 가지 점들을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