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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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지난달 남태령에서 있었던 ‘전국농민연합’의 트랙터 시위 풍경을 담은 기사에 “K팝 실컷 부르고 좋겠다. 빠순이만 신나는 탄핵 파티”라는 댓글이 달렸다. 총 46개의 따봉을 받아 ‘베스트 의견’이 되었길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너만 빼고 파티하니까 빡쳤쥬? 너는 혼자라 아무것도 못하쥬? 끼워주는 사람도 없쥬? 평생 없을 꺼쥬?”라는 답글을 남기고 말았다. 나는 내심 키보드 배틀을 기다렸지만 상대가 내 문장 수준에 놀랐는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아 기대했던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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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슬픔의 K팝 집회 ‘여자는 감정적’이라는 말은 쉽게 사용되지만, 정작 화가 난다고 사람을 위협하고 물건을 던지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그것이 새삼 얼마나 상투적 표현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마음을 누르고 감추어야 하는 사람의 손은 늘 비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 자리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손에 무언가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사람은 짱돌 하나만 쥐고 있어도 용기가 생기는 법이니 손 안을 채운 그들의 얼굴이 자유롭고 비장해 보인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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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헛똑똑이 ‘똑똑한 장남’에겐 클리셰가 있지 않은가. 부모와 손아래 형제들의 뒷바라지로 상경해 혼자 잘난 줄 알고 떵떵거리며 일을 벌이다 결국 집안 기둥을 뿌리째 뽑는다는 괘씸한 이야기. 아니, 이야기보다는 풍속이라 하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나는 그런 유의 이야기를 들으면 장남도 아니면서 괜히 마음이 따끔따끔해졌다. 왠지 그 이야기가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나는 자라며 부모와 다른 형제를 위해 희생한 적도, 양보한 적도 없었다. 늘 내가 먼저였기에 가족의 배려는 당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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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피라미드에 갇히다 목요일 밤이 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본다. 방송은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뒤 퀭한 눈으로 주말만을 기다리는 밤에 더없이 어울린다. 눈으로 읽으면 1분도 걸리지 않을 이야기를 1시간이 넘도록 정성껏 구연하는 세 명의 진행자와 그런 노고에 보답하듯 자신의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해 대꾸해주는 연예인 게스트들. 그들의 대화는 다분히 연극적이고 그래서 조금 민망하다. 그러나 누군가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을 정도의 기운만 남은 목요일 밤엔 그 민망함도 잠시 스치는 기분일 뿐, 나는 기꺼이 그들의 말없는 관객이 되어 이야기를 귀로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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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아지트 아이들은 좁고 어두운 곳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든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가장 오래된 아지트도 할아버지의 낡은 옷장 한 칸이었다. 나는 매일 그 안에 들어가 숨을 죽인 채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듣다가 잠에 들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문고리에 매달린 나프탈렌 냄새를 맡으면 누구도 나를 찾지 못할 거라는 안도와 누군가 나를 찾아 줄 것이라는 기대가 함께 밀려왔다. 결코 고립이 아닌, 누군가 나를 수색할 수 있을 정도의 은신. 그 욕구가 바로 아지트의 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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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죄와 빚 시나리오를 쓰던 친구는 1년 중 절반이 넘는 시간을 24시간 카페의 흡연실에서 보냈다. 테라스를 개조해 만든 흡연실은 밖에서 카페를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드는 공간이었는데, 덕분에 나는 매일 그 앞을 지나며 친구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것이 즐거울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유리창 밖에서 바라본 그의 얼굴은 종종 괴롭고 자주 외롭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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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빚더미에서 경기 양주시에 있는 ‘두리랜드’는 배우 임채무가 34년째 운영하고 있는 테마파크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폐업위기까지 맞았으나, 현재는 시설을 증축하고 직원을 늘려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양지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두리랜드에 한 번도 방문한 적 없지만, 이상하리만큼 자주 그곳을 떠올리는데, 이것은 공간 자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은 아니다. 임채무는 종종 TV에 출연해 두리랜드를 운영하며 생긴 채무가 150억원이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본인의 이름을 ‘임채무’가 아닌 ‘채무왕’이라고 고쳐야 한다면서…. 개인이 놀이동산을 운영하기 위해 그만한 빚을 냈다는 것도 나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데, 그것을 고백하는 중년배우의 얼굴은 뭐랄까, 마치 ‘채무’의 모든 섭리를 깨우친 불상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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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오천 원만 주면 키스해주는 놈 인터넷 소설 <오천 원만 주면 키스해주는 놈>의 주인공은 학교 옥상에서 단돈 5000원에 ‘키스장사’를 하는 남고생 은서현이다. 소설이 연재된 2006년 기준 최저시급은 3100원이었으니 은서현은 시급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에 자신의 키스를 판 것이다. 현재 물가를 적용하면 은서현의 키스 서비스 가격은 회당 1만5000원이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1만5000원만 주면 키스를 해주는 놈이 있는데 그 가격이 과연 적절한 것 같으냐고. 엄마는 나를 몇 차례나 무시하다가 겨우 대답을 해주었다. “그게 무슨 장사야. 시급은 왜 따지고 앉아 있어.” 나는 똑같은 질문을 챗GPT에게도 해봤다. 챗GPT는 시원스럽게 답을 했다. ‘남자 고등학생이 회당 1만5000원에 키스를 판매하는 행위는 윤리적, 법적, 사회적, 정서적 측면에서 모두 부정적인 결과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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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홍대 앞과 강남의 기분 지금 사는 집에선 창문으로 산이 보인다. 집의 벽과 천장은 자로 그은 것처럼 반듯하고 두꺼운 이중창은 듣기 싫은 바깥의 소음을 모두 막아준다. 잘 쓰지 않는 살림을 축적해놓을 방도 있고, 버리기 애매한 쓰레기를 방치할 수 있는 작은 베란다도 있다. 이사를 온 뒤 처음 몇달간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서울에선 지금 집과 같은 가격으로 원룸에 살았다. 그 집의 천장은 윗집 화장실에서 샌 물 때문에 늘 축축했다. 도배지 조각 몇겹 덧발라 주고는 천장 방수 공사를 마쳤다고 했던 집주인 할아버지는 “아가씨는 운이 좋아. 이 위치에 이 가격대 집이 어디 있어? 없어, 없어” 하고 떠났다. 맞는 말이었다. 그때의 빠른 수긍은 불평을 하면 집세를 올릴지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지금 집으로 이사를 한 뒤 잠을 청할 때마다 내내 그 할아버지의 말에 시달렸다. ‘없어, 없어.’ 그러면 나는 뜻밖에 얻은 보물의 안위를 살피듯이 반듯한 새집 천장을 꼼꼼히 바라봤다. 서울을 포기하고 얻은 마르고 반듯한 천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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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연애의 조건 계절을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봄이 오기 전에 얇은 옷들을 꺼내고 여름이 오기 전에 옥수수와 복숭아를 주문하고, 겨울이 오기 전에 보일러를 점검하는 사람들이. 나는 계절을 준비하는 하나의 의식을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해내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어른스럽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어른으로 삼고 싶은 마음은 스스로의 미숙함을 알면서 생겨난다. 나는 두꺼운 패딩을 입고 다니다 땀이 뻘뻘 흐를 때가 되어서야 여름옷을 꺼내고, 허겁지겁 선풍기를 켰다가 겨우내 쌓인 먼지 바람을 얼굴에 덮어쓴다. 툴툴대며 얼굴을 씻거나 선풍기의 시커먼 먼지를 닦으면서 헛구역질을 할 때 나는 비로소 계절이 바뀌었단 사실을 알아차린다. -
문화와 삶 4월의 흔한 풍경 시장 초입의 버스정류장에서 한 할머니와 버스기사가 실랑이를 벌였다. 할머니에게는 아직 정류장까지 오지 못한 세 명의 일행을 위해 시간을 끌어야 하는 미션이 있었고, 버스기사에게는 대부분이 노인인 승객들을 데리고 이 복잡한 시장통을 무사히 벗어나야 하는 미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목표가 충돌하니 언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할머니는 자기 말을 무시하고 자꾸만 문을 닫으려 하는 기사가 야속했고, 버스기사는 다리를 계단에 올린 채 막무가내로 기다려달라 조르는 할머니의 행동에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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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국민의 방송 지각을 하면 오리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는 벌을 받았다. 언덕 밑에서부터 학교 본관 건물이 있는 곳까지 쪼그려 앉아 귀를 잡고 걸으면 30분이 걸렸는데, 가장 큰 고비는 언제나 마지막 10분 코스였다. 마지막 고지를 오를 땐 교문 너머 건물이 보였다 말았다 했다. 눈앞에 끝이 보이면 초인적인 의욕이 생기기 마련인데 나는 늘 그 지점에서 맥이 풀리곤 했다. 엉덩이를 옮기려 몸을 일으킬 때마다 건물 정면에 붙은 문장이 보이던 탓이었다. ‘참되고 어진 어머니가 되자.’ 여기서부터 스무 걸음. 눈 딱 감고 조금 더 기어가면 되는데 나는 번번이 교문 앞에서 주저앉았다. “선생님 못하겠어요. 이게 제 한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