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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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수프와 이데올로기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경북 구미에서 김천으로 가다 보면 굽은 길을 정면으로 품고 있는 작은 산 하나를 만난다. 아빠는 정확한 위치도 이름도 모르는 그 평범한 야산을 지날 때마다 ‘저 산의 능선이 꼭 박정희 대통령이 누워 계신 모습 같다’고 하며 산등성이를 손가락으로 이어 눈, 코, 입을 그린다. 아빠의 애절한 충성심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한 대통령의 결단과 카리스마에 대한 예찬으로 이어지고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충북 옥천 부근에선 서글픈 애도가 된다. 그렇게 눈물을 훔친 아빠는 목적지인 서울까지 가는 동안 망해가는 조국의 미래를 염려한다. 나는 아빠의 입에서 ‘네가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아서 모른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그 찬양과 비관을 밀어낸다. 결말이 없는 이야기는 언제나 ‘정치 이야기만 안 하면 우리 가족은 화목하다’는 아빠의 휴전 선언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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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이방인은 열차에서 문득 나는 경부선 상행 기차를 타면 웃는다. 20년 전 처음 그 기차를 탔을 때 지은 웃음은 드디어 고향을 탈출한다는 승리의 의미였지만, 이제는 그냥 열차에 앉아 있는 승객들의 모습이 웃겨서 웃는다. 부산에서 출발해 대구를 지날 때까진 분위기가 느슨하다. ‘우리가 남이 아니’기 때문일까? 아무튼 동대구역까진 ‘서울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같은 출세지향적 설렘이 있다. 그러다 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할 즈음 사람들은 시계를 본다. 출발한 지 1시간40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 대전이라니? 내가 생각보다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음을 깨달으며 피로가 급격히 몰려온다. 충청도의 문이 열리고 말투가 전혀 다른 사람들이 빈자리를 모두 채운다. 객실이 만원이 되면 계절에 상관없이 열기가 차서 숨 쉬기가 어려워진다. 그때부턴 기차를 탄 사람들이 서로를 격렬히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티를 내진 않지만 머리 위로 말풍선이 떠 있다. ‘인간들 전부 서울 가네? 자기 고향 안 지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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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소녀의 어깨 친구의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잔뜩 긴장을 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제일 친했던 우리였지만, 이제 친구에겐 ‘용돈을 올려주어야 하는 이유’를 종이에 써서 제출하는 아들과, 공원 세 바퀴를 혼자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닌다는 작은딸 하나가 있으니 대화의 주제도 예전과는 달라져야 할 것 같았다. 괜히 육아 브이로그와 양육의 고통을 호소하는 글들을 찾아보고,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검색하며 어색해질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이제 막 세 살이 된 친구의 딸이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와 나를 반겼다. 과연 공원을 정복한 어린이다웠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오는 길에 검색했던 만화 캐릭터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고 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대뜸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나 어릴 때랑 하는 짓이 똑같대”했다. “그래? 외적으로는 별로 닮은 것 같지 않은데?” 하고 돌아보니 야구 글러브를 머리에 쓰고 고무 야구 배트를 휘두르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맞다. 저 모습은 온 동네 골목을 세발자전거 하나로 누비며 모기차를 따라다니던 영락없는 너의 모습이다. 네가 자전거로 내리막길을 시원하게 달릴 때 그 뒷자리엔 항상 내가 앉아 있었는데 나는 왜 너를 만나기 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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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가끔은 정말 헷갈리지만 분명한 건 퇴사 후 ‘리그오브레전드’에 빠져 소식이 뜸했던 친구가 어느 날 밥을 사겠다며 자기집 근처 PC방으로 나를 불렀다. 20년 만에 PC방이란 곳을 가게 된 나는 호텔 카지노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와 최신 장비들을 보면서 새삼 세계적인 프로게이머를 배출한 조국 토양의 위대함을 느끼고는 두리번거리다 구석에서 혼자 전쟁을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울상을 지으니 친구가 내 화면에 15페이지짜리 전자 메뉴판 창 하나를 띄워줬다. 나는 마우스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미쳤다. 말도 안 된다’ 하고 중얼거렸고 11페이지 맨 위에 있는 ‘정통 이태리 까르보나라’의 주문 버튼을 눌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르바이트 직원이 베이컨 조각과 노른자가 올라간 까르보나라 한 접시와 피클을 내 코앞에 서빙해주었다. 나는 입을 틀어막으며 “PC방이 아니라 레스토랑 아니야?” 하고 연신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친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너는 몇십년간 교도소에 갇혀 있다 왔냐? 게임방에서 음식 먹는 게 뭐 그렇게 놀랄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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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쉬어 갈 결심 환자가 되었다. 검진 기간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는데 본격적인 치료는 지루함과 기다림의 연속이다. 주사를 맞지 않아도 진통에 익숙해질 만큼 시간이 흘렀고 병실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와 루틴을 찾았다. 매일 하는 각종 기본 검사를 마치면 마스크를 끼고 비닐장갑과 가운을 입고 병원 안을 걷는다. 마지막 바퀴를 돌 때 편의점에서 이온음료 하나를 사서 병실로 돌아와 그것을 마신다. 걷는 것은 지금 나에겐 가장 중요한 의식과 같아서 갑작스러운 외부 검사 일정이나 컨디션 문제로 걷지 못하게 되면 하루 종일 좌절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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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좋은 삶 구하기 얼마 전 친구가 이사를 했다. 친구가 다니는 직장에서 이사한 집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50분. 출퇴근의 고통까지 감수해가며 이사를 한 이유는 그곳에 서울식물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직장을 구하고 혼자 산 지 10년 차인 내 친구는 ‘원예인’이다. 3년 전 다 죽어가는 몬스테라 화분 하나를 되살리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후, 하나씩 들인 식물은 점점 불어나서 이제 친구의 집은 사실상 식물에게 점령당한 것처럼 보인다. 집을 식물원처럼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집을 식물원 근처로 옮긴 친구의 요즘 얼굴은 10여년간 내가 봐온 친구의 어떤 표정보다도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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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만물케이크설 영상을 재생하자마자 정말 맛있어 보이는 햄버거가 보인다. 끝내주는 먹방이나 레시피 소개를 기다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조리복을 입은 남자가 나와 씩 웃고는 긴 칼로 햄버거를 자른다. ‘폭신.’ 그것은 햄버거가 아니라 케이크였다. 내가 잠시 당황하고 있는 사이 남자는 햄버거가 놓인 접시를 자른다. ‘폭신.’ 접시도 케이크였다. 내가 혼란에 빠진 사이 남자는 무사처럼 햄버거 접시를 올려둔 책상을 반으로 잘랐다. ‘폭신.’ 책상도 케이크였다. 무섭다. 이제 남은 건 남자가 자신을 칼로 갈라 케이크였음을 증명하는 것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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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정상이 아니야 처음 방문한 베이커리에서 중년의 사장님이 마감 시간이라며 이것저것 챙겨 주셨다. 값을 치르고 종이가방에 빵을 담으며 즐거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분이 다정한 목소리로 “아가씨 짝은 왜 없냐”고 하셨다. 변화구였다. “그러게요. 왜일까요? 좋은 분 아시면 소개 좀 시켜주세요!” 나는 뚝 떨어지는 커브볼에 정신없이 헛스윙을 했다. ‘그런 질문은 무례하세요!’라고 받아쳐야 했는데…. 괜히 넉살 좋은 척을 하고 말았다. 이런 공격을 대비해 얼마나 많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던가? 그러나 나는 만루에서 뱀 같은 슬라이더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바닥에 배트를 쾅쾅 내리치면서 생각했다. ‘너무 직구만 연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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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설농식씨 이야기 나는 꽤 오랫동안 ‘설농식’이란 남자의 실체를 찾고 있다. 얼굴도, 사는 곳도, 나이도 모른다. 아니 무엇보다 실존하는 사람인지조차 모르겠다. 사람을 찾거나 알고 싶으면 일단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을 넣고 봐야 한다. 없다. 구글에도, 페이스북에도, 유튜브에도. ‘설 농식품’ 총매출을 알려주는 기사들만 잔뜩 나온다. 단서를 더해보고 싶어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설농식’, 어쩌면 ‘선농식’ ‘설용식’일 수도 있는 남자의 이름 세 글자뿐이다. 1990년대가 저무는 때엔 세상의 종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주 길에서 전단지를 나눠줬다. 성스러운 화풍의 표지를 펼치면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사진이 있었고 ‘대기근’ ‘멸망’ 같은 단어들이 붉은 글씨로 공포를 조장했다. 단 한 번도 믿은 적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자려고 누우면 그들의 모습이 생각나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사람들이 허공에 둥실 떠올라 갈라진 빛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그림, 지하철 역 앞에서 한 노인이 들고 있던 ‘천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피켓…. 종말이란 개념을 알게 된 어린 나는 매일 밤이 무서웠다. 새벽 한 시, 두 시, 세 시… 불안으로 뒤척이는 시간이 길어지면 옆에 누운 할머니도 함께 잠을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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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내가 살던 고향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살던 동네는 고양이가 정착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집과 집 사이에 놓인 높낮이가 다양한 담, 뒹굴고 타넘기에 제격인 까끌까끌한 아스팔트 기와지붕들, 건물마다 구조가 달라 사이사이에 생겨난 수많은 미로까지. 나는 담벼락이 보이는 내 방 창문에서 담 위를 걷는 수많은 고양이들을 봤다. ‘만났다’고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수많은 고양이 중 단 한 마리의 얼굴도 기억해내지 못할 만큼 그들에게 무심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골목 가장 끝 집에 사는 통장 아저씨가 비닐봉지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 시간 뒤 우리집에도 초인종이 울렸다. 아저씨는 할머니에게 봉지 속 물건을 건넸다. 쥐약이었다. 아저씨는 참치에 살살 섞어서 담이나 마당에 두라 일렀다. 몇 달간 고양이를 혼자 ‘박멸한’ 업적을 웃으며 늘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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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 엄마 말은 지독하게 안 듣고 컸지만 그 말 중에서 나 좋을 대로 가슴에 새긴 건 하나 있다. “젊을 땐 모르는 게 당연하다.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하고 고개 숙여라. 그게 기특해서 어른들은 다 가르쳐 줄 거다.” 그래서 나는 모르면 알 때까지 물었고, 알아도 일단 묻는 것부터 시작했다. 엄마 말이 맞았다. ‘잘 모르니 가르쳐 주십쇼’ 하는 요청을 거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궁지에 몰리고 위기를 맞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힘을 빌렸다. 그렇게 20대 내내 ‘무엇이든 물어보는 젊은이’로 어영부영 즐겁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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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시트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차정원(배해선)은 보수 정당의 검사 출신 4선 의원으로 지금 당장 당선 가능성이 없는 4, 5위 대권주자가 되기보단, 세를 불려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을 노리고자 하는 야심 많은 인물이다. 그의 명분은 오직 자신의 정치적 포지션을 강화하는 것에 있다. 자신의 행보에 방해가 되는 인물은 뒷조사를 통해 회유와 협박을 서슴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의 인물과도 타협해서 쇼를 기획한다. ‘정권교체 2030의 힘으로!’라는 슬로건과 함께 보수 정당의 청년최고위원 캠프가 열리고 있는 한적한 공원.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비판하며 ‘영끌한 대출로 아파트 두어채 마련한 걸 죄악시하면 사회주의’ ‘종부세 때문에 코너에 몰린 청년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코인 투자에 실패한 청년들을 위해 정부에 장치를 마련하도록 요청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쩌렁쩌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