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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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정상이 아니야 처음 방문한 베이커리에서 중년의 사장님이 마감 시간이라며 이것저것 챙겨 주셨다. 값을 치르고 종이가방에 빵을 담으며 즐거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분이 다정한 목소리로 “아가씨 짝은 왜 없냐”고 하셨다. 변화구였다. “그러게요. 왜일까요? 좋은 분 아시면 소개 좀 시켜주세요!” 나는 뚝 떨어지는 커브볼에 정신없이 헛스윙을 했다. ‘그런 질문은 무례하세요!’라고 받아쳐야 했는데…. 괜히 넉살 좋은 척을 하고 말았다. 이런 공격을 대비해 얼마나 많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던가? 그러나 나는 만루에서 뱀 같은 슬라이더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바닥에 배트를 쾅쾅 내리치면서 생각했다. ‘너무 직구만 연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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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설농식씨 이야기 나는 꽤 오랫동안 ‘설농식’이란 남자의 실체를 찾고 있다. 얼굴도, 사는 곳도, 나이도 모른다. 아니 무엇보다 실존하는 사람인지조차 모르겠다. 사람을 찾거나 알고 싶으면 일단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을 넣고 봐야 한다. 없다. 구글에도, 페이스북에도, 유튜브에도. ‘설 농식품’ 총매출을 알려주는 기사들만 잔뜩 나온다. 단서를 더해보고 싶어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설농식’, 어쩌면 ‘선농식’ ‘설용식’일 수도 있는 남자의 이름 세 글자뿐이다. 1990년대가 저무는 때엔 세상의 종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주 길에서 전단지를 나눠줬다. 성스러운 화풍의 표지를 펼치면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사진이 있었고 ‘대기근’ ‘멸망’ 같은 단어들이 붉은 글씨로 공포를 조장했다. 단 한 번도 믿은 적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자려고 누우면 그들의 모습이 생각나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사람들이 허공에 둥실 떠올라 갈라진 빛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그림, 지하철 역 앞에서 한 노인이 들고 있던 ‘천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피켓…. 종말이란 개념을 알게 된 어린 나는 매일 밤이 무서웠다. 새벽 한 시, 두 시, 세 시… 불안으로 뒤척이는 시간이 길어지면 옆에 누운 할머니도 함께 잠을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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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내가 살던 고향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살던 동네는 고양이가 정착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집과 집 사이에 놓인 높낮이가 다양한 담, 뒹굴고 타넘기에 제격인 까끌까끌한 아스팔트 기와지붕들, 건물마다 구조가 달라 사이사이에 생겨난 수많은 미로까지. 나는 담벼락이 보이는 내 방 창문에서 담 위를 걷는 수많은 고양이들을 봤다. ‘만났다’고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수많은 고양이 중 단 한 마리의 얼굴도 기억해내지 못할 만큼 그들에게 무심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골목 가장 끝 집에 사는 통장 아저씨가 비닐봉지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 시간 뒤 우리집에도 초인종이 울렸다. 아저씨는 할머니에게 봉지 속 물건을 건넸다. 쥐약이었다. 아저씨는 참치에 살살 섞어서 담이나 마당에 두라 일렀다. 몇 달간 고양이를 혼자 ‘박멸한’ 업적을 웃으며 늘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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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 엄마 말은 지독하게 안 듣고 컸지만 그 말 중에서 나 좋을 대로 가슴에 새긴 건 하나 있다. “젊을 땐 모르는 게 당연하다.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하고 고개 숙여라. 그게 기특해서 어른들은 다 가르쳐 줄 거다.” 그래서 나는 모르면 알 때까지 물었고, 알아도 일단 묻는 것부터 시작했다. 엄마 말이 맞았다. ‘잘 모르니 가르쳐 주십쇼’ 하는 요청을 거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궁지에 몰리고 위기를 맞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힘을 빌렸다. 그렇게 20대 내내 ‘무엇이든 물어보는 젊은이’로 어영부영 즐겁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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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시트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차정원(배해선)은 보수 정당의 검사 출신 4선 의원으로 지금 당장 당선 가능성이 없는 4, 5위 대권주자가 되기보단, 세를 불려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을 노리고자 하는 야심 많은 인물이다. 그의 명분은 오직 자신의 정치적 포지션을 강화하는 것에 있다. 자신의 행보에 방해가 되는 인물은 뒷조사를 통해 회유와 협박을 서슴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의 인물과도 타협해서 쇼를 기획한다. ‘정권교체 2030의 힘으로!’라는 슬로건과 함께 보수 정당의 청년최고위원 캠프가 열리고 있는 한적한 공원.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비판하며 ‘영끌한 대출로 아파트 두어채 마련한 걸 죄악시하면 사회주의’ ‘종부세 때문에 코너에 몰린 청년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코인 투자에 실패한 청년들을 위해 정부에 장치를 마련하도록 요청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쩌렁쩌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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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애타는 몸짓들 심수봉 노래를 듣는 사람의 표정은 낭만적이다. 화선지에 먹물이 떨어져 스미는 것처럼 잠시 굵게 맺혔다가 서서히 번지는 목소리는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감정을 만든다. 나는 괜히 사연을 가진 사람처럼 아련한 시선을 허공에 두었다가, 미세한 떨림으로 증폭되는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비련에 휩싸인다. 내가 노래를 찾아 듣기 시작했을 때, 심수봉이란 이름은 이미 한 장르를 뜻하는 것이었다. 재즈, 포크, 트로트, 발라드…. 내가 구분할 수 있는 음악들을 조금씩 머금은 심수봉의 노래에는 테두리가 없었다. 어떤 가수들은 ‘가수’라는 단어 앞에 장르를 붙이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라벨로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것 또한 심수봉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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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제목이 중요해? ‘육지담의 이름이 육지담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엔 ‘육지담 이론’이라 불리는 가설이 존재한다. 2014년 <쇼미 더 머니3>에 출연했던 고등학생 래퍼 육지담은 심사위원에게 만장일치로 ‘패스’를 받은 초반 라운드와 달리 점점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데, 이때 누리꾼들이 제기한 것이 바로 ‘육지담 이론’이다. 봉준호 감독의 이름이 김준호였다면? 배우 마동석의 이름이 이동석이었다면? ‘육지담 이론’에 따르면 그들은 결코 지금과 같은 존재감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이론은 ‘브랜드 네이밍’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가장 완벽한 예시인 셈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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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싸우고 싶은 날 “역시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한 시간이 넘도록 의견 조율에 애를 먹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저런 말이 나올 만큼 끔찍한 자리는 아니었다. ‘뭐지? 새로운 공격 패턴인가? 갑자기 왜 저 말을 하는 거지?’ 나는 당황했지만 빨리 판단을 하려 했다. 이 말을 무시하고 쟁점으로 다시 돌아가 끝을 낼 것인지, 아니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문장을 바로잡는 새로운 다툼을 시작할 것인지. 짧은 고민 후에 전자를 택한 데에는 상대와 내가 페미니즘 이슈에 비슷한 입장을 공유하며 쌓은 신뢰가 작용했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이유로 그 말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회의가 끝난 뒤 자리를 따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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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올림픽정신 올림픽 배구 한·일전이 열린 밤에 나는 밖에 있었다. 휴대폰으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경기 결과를 확인했다. 이겼구나. 택시를 타자마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봤어?” 한껏 상기된 기운으로 건네는 친구의 첫 마디를 듣자마자 나는 마스크 속으로 입꼬리를 실룩이며 웃었다. “못 봤어. 이겼다며? 이겼으면 됐지.” 기운 없는 내 대답이 미안했다. 접전 끝에 5세트. 박정아의 영리한 블로킹과 오지영의 처절한 디깅 같은 것을 생생하게 중계하느라 친구의 숨이 가빴다. 12 대 14 매치포인트, 14 대 14 듀스, 15 대 14 역전, 다시 매치포인트. 연속 4득점 극적인 승리. “이 경기를 놓친 거 두고두고 후회할 걸? 꼭 다시 봐!” 통화가 일방적으로 끝났다. 이제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 한·일전만큼 다이내믹했던 오늘 하루를 늘어놓을 차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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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손이 있는 곳 드라마 <미치지 않고 서야>를 보다가 한 장면에 묘한 공감을 느꼈다. 이제 막 지방 사업부 하나를 정리하고 온 ‘한영전자’ 인사팀 에이스 자영(문소리)은 늦은 밤 집에서 룸메이트와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집을 나선다. 자영이 가는 곳은 주차장에 주차된 본인의 차 안. 운전석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던 그는 전화가 걸려오자 눈을 질끈 감고 스스로에게 기합을 넣는다. 전화기 건너편엔 자영의 상사가 있고 그가 자영에게 또 한 번의 대규모 해고 업무를 맡겼다는 사실과 그 대가로 자영에게 주어진 것이 승진의 기회라는 것을 알고 나면 늦은 밤 그가 뱉은 고된 숨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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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다시 달리기 나는 달리기를 못한다. 누가 ‘얼마나 못하냐’고 물으면 꼭 말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마지막 가을 운동회였다. 학생 모두가 빠짐없이 참여해야 하는 200m 단거리 경주가 있었는데 가을 운동회가 예고된 순간부터 나는 그 경주에서 빠지기 위해 모든 수를 궁리했다. 아프다는 가장 평범한 핑계를 대고 싶었지만 연기력이 부족하고 겁이 많아서 시합 직전에 화장실로 자연스럽게 도망치는 계획을 선택했다. 그러나 일곱 명씩 열을 맞춰 대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호루라기를 불던 체육부장 선생님의 통솔은 나를 꼼짝없이 출발선에 서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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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꼬리’ 잡기 많은 ‘비메갈’들이 “ ‘메갈’은 대화가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사실이다. ‘메갈’들은 대화를 싫어한다. 마주 보고 앉아 상대에게 내 입장과 처지를 논리 정연하면서도 온화한 말투로 이해시키고, 학술적인 근거로 빈틈을 방어해야 하는 일방적인 행위를 ‘대화’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통제의 수단이지 투쟁의 수단은 아니기에 투사를 자처하는 ‘메갈’은 대화를 격렬히 거부한다. 그러니 ‘메갈’과 ‘비메갈’ 사이에는 대화가 불가능한 것이 맞다. 내가 텔레비전 예능 속 ‘이야기’ 콘텐츠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도 ‘메갈들’이 대화를 거부하게 된 원인과 비슷했다. 많은 사람들이 매력과 흥미를 느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늘 정해져 있었고 그건 여성 출연자의 몫이 아니었다. 살림, 화장팁을 전수하는 ‘리빙쇼’나 ‘뷰티쇼’가 아니라면 여성 출연자 대부분은 청자의 입장으로 남의 관점을 정리하는 보조 진행자의 역할,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배우는 학습자의 역할에만 그치곤 했다. 이미 만들어진 문법 안에서 제한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이입을 하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감동적이고 재미있다 해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덜 흥미로워도, 덜 유익해도 좋으니 발화의 주체와 기본 언어를 전부 뜯어고친 새로운 형식을 갈망하게 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