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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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애타는 몸짓들 심수봉 노래를 듣는 사람의 표정은 낭만적이다. 화선지에 먹물이 떨어져 스미는 것처럼 잠시 굵게 맺혔다가 서서히 번지는 목소리는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감정을 만든다. 나는 괜히 사연을 가진 사람처럼 아련한 시선을 허공에 두었다가, 미세한 떨림으로 증폭되는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비련에 휩싸인다. 내가 노래를 찾아 듣기 시작했을 때, 심수봉이란 이름은 이미 한 장르를 뜻하는 것이었다. 재즈, 포크, 트로트, 발라드…. 내가 구분할 수 있는 음악들을 조금씩 머금은 심수봉의 노래에는 테두리가 없었다. 어떤 가수들은 ‘가수’라는 단어 앞에 장르를 붙이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라벨로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것 또한 심수봉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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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제목이 중요해? ‘육지담의 이름이 육지담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엔 ‘육지담 이론’이라 불리는 가설이 존재한다. 2014년 <쇼미 더 머니3>에 출연했던 고등학생 래퍼 육지담은 심사위원에게 만장일치로 ‘패스’를 받은 초반 라운드와 달리 점점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데, 이때 누리꾼들이 제기한 것이 바로 ‘육지담 이론’이다. 봉준호 감독의 이름이 김준호였다면? 배우 마동석의 이름이 이동석이었다면? ‘육지담 이론’에 따르면 그들은 결코 지금과 같은 존재감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이론은 ‘브랜드 네이밍’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가장 완벽한 예시인 셈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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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싸우고 싶은 날 “역시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한 시간이 넘도록 의견 조율에 애를 먹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저런 말이 나올 만큼 끔찍한 자리는 아니었다. ‘뭐지? 새로운 공격 패턴인가? 갑자기 왜 저 말을 하는 거지?’ 나는 당황했지만 빨리 판단을 하려 했다. 이 말을 무시하고 쟁점으로 다시 돌아가 끝을 낼 것인지, 아니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문장을 바로잡는 새로운 다툼을 시작할 것인지. 짧은 고민 후에 전자를 택한 데에는 상대와 내가 페미니즘 이슈에 비슷한 입장을 공유하며 쌓은 신뢰가 작용했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이유로 그 말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회의가 끝난 뒤 자리를 따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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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올림픽정신 올림픽 배구 한·일전이 열린 밤에 나는 밖에 있었다. 휴대폰으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경기 결과를 확인했다. 이겼구나. 택시를 타자마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봤어?” 한껏 상기된 기운으로 건네는 친구의 첫 마디를 듣자마자 나는 마스크 속으로 입꼬리를 실룩이며 웃었다. “못 봤어. 이겼다며? 이겼으면 됐지.” 기운 없는 내 대답이 미안했다. 접전 끝에 5세트. 박정아의 영리한 블로킹과 오지영의 처절한 디깅 같은 것을 생생하게 중계하느라 친구의 숨이 가빴다. 12 대 14 매치포인트, 14 대 14 듀스, 15 대 14 역전, 다시 매치포인트. 연속 4득점 극적인 승리. “이 경기를 놓친 거 두고두고 후회할 걸? 꼭 다시 봐!” 통화가 일방적으로 끝났다. 이제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 한·일전만큼 다이내믹했던 오늘 하루를 늘어놓을 차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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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손이 있는 곳 드라마 <미치지 않고 서야>를 보다가 한 장면에 묘한 공감을 느꼈다. 이제 막 지방 사업부 하나를 정리하고 온 ‘한영전자’ 인사팀 에이스 자영(문소리)은 늦은 밤 집에서 룸메이트와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집을 나선다. 자영이 가는 곳은 주차장에 주차된 본인의 차 안. 운전석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던 그는 전화가 걸려오자 눈을 질끈 감고 스스로에게 기합을 넣는다. 전화기 건너편엔 자영의 상사가 있고 그가 자영에게 또 한 번의 대규모 해고 업무를 맡겼다는 사실과 그 대가로 자영에게 주어진 것이 승진의 기회라는 것을 알고 나면 늦은 밤 그가 뱉은 고된 숨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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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다시 달리기 나는 달리기를 못한다. 누가 ‘얼마나 못하냐’고 물으면 꼭 말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마지막 가을 운동회였다. 학생 모두가 빠짐없이 참여해야 하는 200m 단거리 경주가 있었는데 가을 운동회가 예고된 순간부터 나는 그 경주에서 빠지기 위해 모든 수를 궁리했다. 아프다는 가장 평범한 핑계를 대고 싶었지만 연기력이 부족하고 겁이 많아서 시합 직전에 화장실로 자연스럽게 도망치는 계획을 선택했다. 그러나 일곱 명씩 열을 맞춰 대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호루라기를 불던 체육부장 선생님의 통솔은 나를 꼼짝없이 출발선에 서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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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꼬리’ 잡기 많은 ‘비메갈’들이 “ ‘메갈’은 대화가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사실이다. ‘메갈’들은 대화를 싫어한다. 마주 보고 앉아 상대에게 내 입장과 처지를 논리 정연하면서도 온화한 말투로 이해시키고, 학술적인 근거로 빈틈을 방어해야 하는 일방적인 행위를 ‘대화’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통제의 수단이지 투쟁의 수단은 아니기에 투사를 자처하는 ‘메갈’은 대화를 격렬히 거부한다. 그러니 ‘메갈’과 ‘비메갈’ 사이에는 대화가 불가능한 것이 맞다. 내가 텔레비전 예능 속 ‘이야기’ 콘텐츠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도 ‘메갈들’이 대화를 거부하게 된 원인과 비슷했다. 많은 사람들이 매력과 흥미를 느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늘 정해져 있었고 그건 여성 출연자의 몫이 아니었다. 살림, 화장팁을 전수하는 ‘리빙쇼’나 ‘뷰티쇼’가 아니라면 여성 출연자 대부분은 청자의 입장으로 남의 관점을 정리하는 보조 진행자의 역할,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배우는 학습자의 역할에만 그치곤 했다. 이미 만들어진 문법 안에서 제한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이입을 하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감동적이고 재미있다 해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덜 흥미로워도, 덜 유익해도 좋으니 발화의 주체와 기본 언어를 전부 뜯어고친 새로운 형식을 갈망하게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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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내 이름을 불러줘 할머니의 산소 앞에 놓을 다과를 사기 위해 남동생과 나는 구불구불한 농촌 국도를 달리며 매점을 찾아 헤맸다. 대부분이 마을 이름으로 지어진 상점들 사이에 ‘정우슈퍼’가 보였다. 카스텔라와 우유를 사면서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우는 혹시 사장님 자제분 성함인가요?” 하고 물었다. 사장님은 고개를 젓다가 살짝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아니. 옛날에 옆집이 ‘정우약국’이었는데 따라 지었지.” 그건 어릴 적 내 장래희망이 정해진 것과 같은 원리였다. 엄마는 내가 ‘하여간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랐고 나는 그 기대를 충족하고 싶었다. 진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을 해야 하는 때가 찾아왔지만 극장에 가거나 텔레비전 시청 외엔 아무 취미가 없었던 나는 눈앞에 보이는 사물로 끝말잇기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영화감독이나 방송국 PD가 되어보겠다고 선언했다.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진정성을 의심받는 건 왠지 싫었던 나는 나의 근사한 모델이 되어줄 이름들을 찾아 엄마를 설득할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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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괴물’은 밖에 있지 않다 “괴물은 누구인가?” 맥락을 멀찍이 떼어놓아도 그 자체로 비장한 무게가 느껴지는 물음이지만 나는 그 질문의 진부함에 위협당하는 인질처럼 프랑켄슈타인을 급하게 요약하며 정답을 외친다. “괴물은 바로 접니다. 혹시 현대인이신가요? 그렇다면 님도 괴물입니다. 우리는 괴물을 잡다가 괴물이 되거나, 괴물과 선을 그으면서 더 끔찍한 괴물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님은 방임과 회피로 흉악한 괴물을 길러낸 무책임한 군중의 일원이실 수도 있어요.”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무수한 존재의 영역을 비추는 ‘괴물’ 이야기는 대부분 어느 시점에서 ‘궁극’이라고 적힌 거울을 꺼내며 독자의 낯을 비추고 느닷없는 성찰을 강요한다. “당신은 무결합니까? 확실해요? 피해자가 괴물에게 당할 때 당신은 대체 뭐했습니까! 휴대폰 보고 있었죠? 그러면 당신도 괴물입니다.” 괴물로 지목된 나는 억울한 마음에 조용히 절규한다. “갑자기 왜 날 보고 괴물이라는 거지? 엄연히 가해자가 존재하는 이야기인데? 걔가 괴물이니까 괴물을 응징하는 것에 집중해. 나는 선량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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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이대로 멈출 순 없다 시청자가 세계관을 선택할 수 있는 드라마도 나올까? 지금도 구간마다 시청자의 선택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인터랙티브형 드라마가 있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시청 전에 배제하고 싶거나, 강화하고 싶은 설정을 미리 선택하는 형식이다. 예를 들어 ‘로맨스 제거’ 버전을 선택한다면 모든 종류의 로맨스가 금지되어 사랑이 싹트려 할 때마다 등장인물이 죽을 것이다. 사람들이 오로지 자산관리에만 열중하고, 드라마의 결말을 보려면 추가 결제를 해야 하는 ‘자본주의 강화’ 버전, 남자들이 저임금 가사노동에 시달리다 이유 없이 벌을 받는 ‘난폭한 페미니즘’ 버전을 고를 수도 있다. 간단한 선택만으로 나의 신념을 확인하고, 다른 종류의 가치관을 체험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물론 동시에 분열과 논란을 초래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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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순진한 생각 지난 11일 한국의 스캐터랩에서 만든 인공지능 챗봇(Chatbot) ‘이루다’ 서비스가 많은 논란 끝에 중단되었다. 익명으로 수집한 데이터 보안의 오류와 개인정보 유출 의혹이 결정적인 사유로 작용했지만, 발단은 어디까지나 “‘이루다’가 이용자를 통해 차별적인 혐오 표현을 습득 후 재생산하고 있다”는 인공지능 윤리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대화형 로봇인 ‘이루다’가 ‘20대 여성’이라는 고정된 설정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는데, 이용자들이 여성의 모습을 한 가상의 캐릭터를 상대로 성적인 대화를 유도하고, 언어폭력을 반복해 성범죄를 연상하게 하는 패턴을 학습시켰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대부분이 10대 청소년임을 알고 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지만, 제작사는 ‘로봇이 실제 사람(연인) 간의 대화를 수집하고 학습한 결과일 뿐’이란 말로 책임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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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올해의 발견 이맘때쯤이면 텔레비전에서는 시상식이 열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한 해 가장 좋았던 것들을 꼽는다. 올해는 ‘좋았다’고 말할 만한 경험을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지만, 대신 ‘처음 겪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일들을 경험했으니 결산에도 나름의 의미가 생긴다. 올해의 장소는 ‘줌’, 올해의 여행지는 ‘구글 지도’, 올해의 음악은 ‘긴급재난문자 경고음’, 올해의 음식은 ‘달고나 커피’, 올해의 향기는 ‘손 소독제’, 올해의 패션은 ‘KF94’….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된 키워드들이지만 왠지 거리를 두고 싶어서 2020년에 묶어둔 채 새삼스럽게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