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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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꼬리’ 잡기 많은 ‘비메갈’들이 “ ‘메갈’은 대화가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사실이다. ‘메갈’들은 대화를 싫어한다. 마주 보고 앉아 상대에게 내 입장과 처지를 논리 정연하면서도 온화한 말투로 이해시키고, 학술적인 근거로 빈틈을 방어해야 하는 일방적인 행위를 ‘대화’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통제의 수단이지 투쟁의 수단은 아니기에 투사를 자처하는 ‘메갈’은 대화를 격렬히 거부한다. 그러니 ‘메갈’과 ‘비메갈’ 사이에는 대화가 불가능한 것이 맞다. 내가 텔레비전 예능 속 ‘이야기’ 콘텐츠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도 ‘메갈들’이 대화를 거부하게 된 원인과 비슷했다. 많은 사람들이 매력과 흥미를 느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늘 정해져 있었고 그건 여성 출연자의 몫이 아니었다. 살림, 화장팁을 전수하는 ‘리빙쇼’나 ‘뷰티쇼’가 아니라면 여성 출연자 대부분은 청자의 입장으로 남의 관점을 정리하는 보조 진행자의 역할,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배우는 학습자의 역할에만 그치곤 했다. 이미 만들어진 문법 안에서 제한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이입을 하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감동적이고 재미있다 해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덜 흥미로워도, 덜 유익해도 좋으니 발화의 주체와 기본 언어를 전부 뜯어고친 새로운 형식을 갈망하게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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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내 이름을 불러줘 할머니의 산소 앞에 놓을 다과를 사기 위해 남동생과 나는 구불구불한 농촌 국도를 달리며 매점을 찾아 헤맸다. 대부분이 마을 이름으로 지어진 상점들 사이에 ‘정우슈퍼’가 보였다. 카스텔라와 우유를 사면서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우는 혹시 사장님 자제분 성함인가요?” 하고 물었다. 사장님은 고개를 젓다가 살짝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아니. 옛날에 옆집이 ‘정우약국’이었는데 따라 지었지.” 그건 어릴 적 내 장래희망이 정해진 것과 같은 원리였다. 엄마는 내가 ‘하여간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랐고 나는 그 기대를 충족하고 싶었다. 진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을 해야 하는 때가 찾아왔지만 극장에 가거나 텔레비전 시청 외엔 아무 취미가 없었던 나는 눈앞에 보이는 사물로 끝말잇기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영화감독이나 방송국 PD가 되어보겠다고 선언했다.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진정성을 의심받는 건 왠지 싫었던 나는 나의 근사한 모델이 되어줄 이름들을 찾아 엄마를 설득할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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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괴물’은 밖에 있지 않다 “괴물은 누구인가?” 맥락을 멀찍이 떼어놓아도 그 자체로 비장한 무게가 느껴지는 물음이지만 나는 그 질문의 진부함에 위협당하는 인질처럼 프랑켄슈타인을 급하게 요약하며 정답을 외친다. “괴물은 바로 접니다. 혹시 현대인이신가요? 그렇다면 님도 괴물입니다. 우리는 괴물을 잡다가 괴물이 되거나, 괴물과 선을 그으면서 더 끔찍한 괴물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님은 방임과 회피로 흉악한 괴물을 길러낸 무책임한 군중의 일원이실 수도 있어요.”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무수한 존재의 영역을 비추는 ‘괴물’ 이야기는 대부분 어느 시점에서 ‘궁극’이라고 적힌 거울을 꺼내며 독자의 낯을 비추고 느닷없는 성찰을 강요한다. “당신은 무결합니까? 확실해요? 피해자가 괴물에게 당할 때 당신은 대체 뭐했습니까! 휴대폰 보고 있었죠? 그러면 당신도 괴물입니다.” 괴물로 지목된 나는 억울한 마음에 조용히 절규한다. “갑자기 왜 날 보고 괴물이라는 거지? 엄연히 가해자가 존재하는 이야기인데? 걔가 괴물이니까 괴물을 응징하는 것에 집중해. 나는 선량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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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이대로 멈출 순 없다 시청자가 세계관을 선택할 수 있는 드라마도 나올까? 지금도 구간마다 시청자의 선택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인터랙티브형 드라마가 있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시청 전에 배제하고 싶거나, 강화하고 싶은 설정을 미리 선택하는 형식이다. 예를 들어 ‘로맨스 제거’ 버전을 선택한다면 모든 종류의 로맨스가 금지되어 사랑이 싹트려 할 때마다 등장인물이 죽을 것이다. 사람들이 오로지 자산관리에만 열중하고, 드라마의 결말을 보려면 추가 결제를 해야 하는 ‘자본주의 강화’ 버전, 남자들이 저임금 가사노동에 시달리다 이유 없이 벌을 받는 ‘난폭한 페미니즘’ 버전을 고를 수도 있다. 간단한 선택만으로 나의 신념을 확인하고, 다른 종류의 가치관을 체험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물론 동시에 분열과 논란을 초래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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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순진한 생각 지난 11일 한국의 스캐터랩에서 만든 인공지능 챗봇(Chatbot) ‘이루다’ 서비스가 많은 논란 끝에 중단되었다. 익명으로 수집한 데이터 보안의 오류와 개인정보 유출 의혹이 결정적인 사유로 작용했지만, 발단은 어디까지나 “‘이루다’가 이용자를 통해 차별적인 혐오 표현을 습득 후 재생산하고 있다”는 인공지능 윤리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대화형 로봇인 ‘이루다’가 ‘20대 여성’이라는 고정된 설정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는데, 이용자들이 여성의 모습을 한 가상의 캐릭터를 상대로 성적인 대화를 유도하고, 언어폭력을 반복해 성범죄를 연상하게 하는 패턴을 학습시켰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대부분이 10대 청소년임을 알고 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지만, 제작사는 ‘로봇이 실제 사람(연인) 간의 대화를 수집하고 학습한 결과일 뿐’이란 말로 책임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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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올해의 발견 이맘때쯤이면 텔레비전에서는 시상식이 열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한 해 가장 좋았던 것들을 꼽는다. 올해는 ‘좋았다’고 말할 만한 경험을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지만, 대신 ‘처음 겪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일들을 경험했으니 결산에도 나름의 의미가 생긴다. 올해의 장소는 ‘줌’, 올해의 여행지는 ‘구글 지도’, 올해의 음악은 ‘긴급재난문자 경고음’, 올해의 음식은 ‘달고나 커피’, 올해의 향기는 ‘손 소독제’, 올해의 패션은 ‘KF94’….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된 키워드들이지만 왠지 거리를 두고 싶어서 2020년에 묶어둔 채 새삼스럽게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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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야간 근무 드라마 속 세계엔 코로나19가 오지 않아서, 등장인물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고 활동하고, 사람들과 침 튀기며 싸우다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도 한다. 10개월간 몸에 밴 습관은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몰입을 막으며 ‘저러다 다 죽는다’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모래밭.’ 드라마 <스타트업>의 배경이 되는 ‘샌드박스’는 젊은 창업자들이 실패해도 계속 도전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이상적인 기업이다. 주인공들은 그 모래밭 위에서 사랑을 하고, 쓰러져 울부짖고, 치열하게 싸우며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고 텔레비전 앞에 앉은 나는, 눈부신 주인공들의 청춘보다 한강에서 핫도그 트럭을 운영하는 70대 여성 원덕(김해숙)이 먼저 보인다. <스타트업>이 내가 사는 세상이었다면, 그는 아마 가장 먼저 격리되었거나,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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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향기 없는 화단 가끔 어떤 사물을 보면 오래된 기억이 떠올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나는 길가 화단에 핀 꽃들을 보면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내 담임은 덩치가 크고, 손이 투박하고 목소리가 두꺼운 중년의 자연 과목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담임과 연못 옆 작은 화단에서 꽃과 식물들을 키웠다. 팬지, 베고니아, 피튜니아, 채송화, 마리골드. 그때 깨우친 이 꽃들의 이름은 어른이 되어 남들 앞에서 아는 척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샐비어였다. 선명한 붉은색 꽃잎이 열매처럼 탐스럽게 피어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주는데, 잎을 똑 뜯어서 입으로 빨면 새콤한 꿀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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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당연한 것들 “1998년 US여자오픈 연장전. 박세리가 양말을 벗고 호수에 들어가 건져낸 것은 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환위기 실의에 빠진 국민들의 희망이었다.” 이 문장은 방금 내가 쓴 것이지만 내가 쓴 문장이 아니다. 1998년에 나는 배추벌레를 키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러나 그때 박세리가 만든 ‘18번 홀의 기적’에 대해선 언제 어느 때나 생생한 감격의 어조로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장면은 이미 위인 탄생 설화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마신 일화와 함께 그가 깨우친 진리에 대해 말했는데 ‘네가 신라 시대에 살아봤냐? 왜 본 것처럼 말하냐?’고 따질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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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ID; PEACE B 지난 8월25일은 보아의 데뷔 20주년 기념일이었다. 우리만의 언어와 우리만의 표현들로 가득 찬 세상을 꿈꾸라고 했던 10대 소녀는 ‘아시아의 별’이라는 타이틀을 거쳐 지금은 독보적인 경력과 실력을 지닌 아티스트가 되어 2020년에 정확히 20주년을 맞이했다. 정말 근사하다. 2000년에 발매된 보아의 ‘ID; PEACE B’는 ‘우리는 당신들의 세대와 다르며, 갈 수 없는 세계는 없다’고 씩씩하게 말하는 밀레니얼들의 교가 같은 노래다. 나는 ‘추카추카추’라는 응원을 받으며 사이버 자아를 무럭무럭 키웠고, 그 결과 ‘복길’이라는 제2의 정체를 얻었으며, “그 속에는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친구가 있죠”라는 가사처럼 온라인에서 만난 많은 인연과 끝없이 교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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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신박한 정리 울적한 밤에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괜히 서랍을 열었다. 보이기만 하면 사 모으던 다양한 색의 사인펜, 한 번도 끝까지 쓴 적 없는 접착 메모지, 급할 때마다 편의점에서 샀던 버스 카드, 립밤, 물티슈, 그것들의 영수증. 한숨을 쉬며 서랍 속을 들여다보다 물건들 사이로 수업 시간에 주고받았던 쪽지들을 발견하면 나는 정리를 하겠다는 결심을 잊고 그 작은 종이 쪼가리에 정신을 팔았다. 유인물 뒷면이나 스프링 노트를 쭉 찢어 나눈 쪽지 속 내용은 ‘양호실 갈/말?(동그라미를 치시오)’ ‘체육 강당 아니고 운동장’ ‘생리대 빌려줘’ 같은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간혹 맥락을 알 수 없는 긴 대화들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생일을 축하하며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에 대한 마음들이어서 읽다 보면 곧잘 서글픈 기분이 들어 눈이 맵고 코가 시큰해졌다. 품고 있는 낭만 하나 없이 늘 푸석하기만 하던 내 마음은 어쩐지 정리와 청소를 결심하기만 하면 그렇게도 쉽게 녹아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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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텔레비전을 보다가 요새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텔레비전을 평소보다 더 많이 봤다. <나 혼자 산다>에는 유아인의 크고 멋진 저택이 나왔는데 그 집의 모든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주려는 <구해줘! 홈즈>적인 연출이 재미있었다. 새로 시작한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도 봤다. ‘아픈 과거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동화작가.’ 이런 설정을 가진 여자 주인공을 한국 드라마에서 보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남자 주인공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는 것이 버거웠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고리타분한 성별 문법이 뒤바뀐 극을 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주말엔 <1호가 될 순 없어>를 몰아 봤다. ‘왜 이혼한 코미디언 부부는 없을까?’라는 프로그램의 발상은 결국 코미디언 부부 중 첫 번째 이혼 사례를 끌어내는 전개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나쁜 기대를 품었지만 잘 모르겠다. 전부 갈라설 의지가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