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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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문어로부터 탈출하기 “하늘 끝까지 올라 실바람을 끌어안고 날개 달린 천사들과 속삭이고 싶어라”라는 구절이 나오는 노래가 있다. 30년 전에 발표된 ‘하늘나라 동화’다. 교육방송 라디오에서도 가끔 나오는데, 가락을 따라 부르다가 노래 속 어린이의 심정과 상황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연이 있어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나 외로움이 담긴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이 어린이가 어떤 이유로 고립되어 있었다면, 예를 들어서 아동 학대나 폭력의 감춰진 피해자였다면, 그래서 동산 위에 올라가 천사 얼굴, 선녀 얼굴을 그리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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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감정 세차장, 편의점, 미용실. 우리 주위 많은 곳에 일하는 청소년이 있다. 우리들은 택배 배달 알림음을 깜박 놓치고 1초 만에 배달 완료 문자를 삭제하듯이 일하는 청소년들의 존재를 잊는다. 그들은 급여를 착취당하기도 하고 가족 내의 환자를 돌보면서 급여와 무관한 곳에서 일하기도 한다. 저숙련 노동자로서 재해의 위험에 방치되지만 실습이 끝나면 위험은 없는 일처럼 지워진다. 보호자와 고리가 끊어졌다는 것을 간파한 이들에게 폭력이나 성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청소년이 또 노동 중에 목숨을 잃었다. 지난 10월 전교조 광주지부는 요트관광 업체에서 잠수 작업 도중 숨진 고교생 홍정운군을 추모하며 특성화고 현장실습 폐지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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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동심은 파괴와 친구가 아니다 지난 주말에 <오늘의 어린이책 1> 전시를 보려고 책방에 갔다가 산책 나온 개 잔디를 만났다. 잔디는 열세 살이고 사람이었다면 이미 할아버지다. 잔디는 책을 한 바퀴 쓰윽 둘러보더니 이 정도는 다 안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앉아서 햇볕을 즐기기 시작했다. 잔디의 가족 중에는 동화작가가 있기 때문에 책 냄새는 익숙할 테고 어느 개보다도 다독가로 살았을 가능성도 있다. 은밀한 지면에 인간의 책에 기록된 개의 삶에 대한 서평을 기고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책방에 온 어린이 손님이 잔디 앞에 섰다. 요즘 말을 배우는 참이라서 “이쪽!” “포도!” “두 살!” 정도의 간단한 표현만 쓸 줄 알지만 “멍머!”라고 또렷하게 그를 불렀다. 그러자 잔디는 곧바로 어린이를 바라보았다. 어린이가 활짝 웃었고 서로 다정함을 나누었다. 잔디 할아버지가 그 책방 안의 어느 어른보다 이 어린이를 더 특별하게 대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이는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은 어린이에게 너그럽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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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마중 나오는 어른들 “달랑달랑 달랑 바둑이방울 잘도 울린다”로 시작하는 동요 ‘바둑이 방울’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이가 자신을 마중 나온 강아지를 만나 느낀 반가움을 담은 노래다. 1980년대에 발표되었지만 아직도 애창동요다. 이 노래의 1절에 비해 2절은 덜 알려져 있는데 2절에서 집에 돌아오는 주체는 어린이가 아니라 강아지다. “대문 삐걱 열어 주면은 제가 먼저 달음질쳐 들어온다”에서 집에 돌아오는 건 강아지이고 그때 울리는 바둑이방울은 “내가 왔다”는 강아지의 신호다. 외출에서 당당히 돌아오는 강아지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어린이는 강아지를 다정하게 마중 나가고 무거운 대문을 열어주는 일이 마중을 받는 일만큼이나 행복하다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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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두 사람의 죽음 어린이가 읽는 문학작품에서는 비교적 넓은 범위의 일이 그럴듯한 일로서 허용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숲에서 만난 토끼가 회중시계를 보고 뛰어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동화의 독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아지똥>에서 돌이네 강아지 흰둥이가 담 밑 구석 쪽에 누고 간 똥은 소달구지 바퀴 자국 한가운데 뒹굴고 있던 흙덩이와 실랑이를 벌인다. 어린이는 이야기 안에서 말이 되는 것 같으면 최선을 다해서 믿는다. 그들의 눈에 세상은 무한히 넓고 아직 증명되지 않은 진실이 많으므로 섣불리 “말도 안 돼!”라고 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따라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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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어른을 위한 동화와 어른들의 동화 읽기 어려운 시절이면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찾는다. 2차 세계대전 중 인간성에 대한 환멸 속에서 무민 시리즈를 쓰기 시작한 동화작가 토베 얀손은 “전쟁 중에 아주 잠깐이라도 불안하고 괴로운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한다. 권정생의 동화 <몽실언니>는 군부독재에 짓눌렸던 1981년, 울진의 작은 교회에서 펴낸 청년회지에 처음 실린 작품이다. KBS의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2001년 4월에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너도나도 실의를 겪은 외환위기 무렵이다. 같은 해 MBC가 선정한 느낌표 도서 1호는 김중미의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이었고 황선미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은 이듬해 초 출간됐는데 당시 수많은 어른 독자들이 이 책을 찾았다. 어른들은 왜 자신을 일으키고 싶을 때 동화의 힘을 빌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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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낮말은 어린이가 듣고 밤말도 어린이가 듣는다 며칠 전 실시간 비대면 수업을 하며 출석을 부르는데 어느 학생의 모니터에 베이지색 털로 덮인 둥근 등이 보였다. 누구인지 물었더니 학생과 같이 사는 일곱 살 레트리버 강아지로 이름이 ‘동화’라고 했다. 아동문학 수업인데 ‘동화’라는 이름의 청강생을 모시게 되다니, 우연이지만 반가워서 “동화야!”하고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벌떡 일어나서 모니터를 초롱초롱 바라보았다. 어려서 안내견 학교에 다녔던 동화는 안내견이 되기에는 너무 흥이 많고 사람을 좋아해서 1차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당시 안내견 교육을 돕던 이 학생 가족의 막내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동화를 모시고 동화 수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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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어린이를 보는 눈, 어린이가 보는 것 “엄마는 내가 엄마 책에 나오는 마래였으면 좋겠지?” 황지영의 동화 <리얼 마래>에 나오는 문장이다. 열두 살 마래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블로그에 연재되는 삶을 살았다. 가볍게 육아일기를 올리던 마래의 부모는 함께한 책과 여행담을 비롯해 마래가 성장하며 겪은 중요한 순간을 블로그에 올린다. 자유롭고 진취적인 마래 가족의 육아 이야기는 양육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얻는다. 그러나 정작 마래는 자신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미디어에 게시하고 전파해도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아기였을 때는 동의 자체가 불가능했고 지금은 전혀 원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부럽다,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고통을 받는다. 고민하던 마래는 부모에게 더 이상 자신에 관한 어떤 사실도 미디어에 올리지 말라고 선언한다. 마래의 부모는 당혹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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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표류를 끝내는 방법 데이비드 위즈너의 그림책 <시간 상자>의 원제는 ‘Flotsam’이다. 이유 없이 물속을 떠다니는 부유물이나 파편을 의미하는 말이다. 글이 없는 이 그림책은 한 어린이가 바닷가에서 혼자 놀다가 파도에 밀려온 낡은 카메라 한 대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따개비가 닥지닥지 붙은 카메라를 열어보니 다 찍은 필름이 들어있었고 아이는 그 필름을 현상소에 맡긴다. 현상소에서 찾아온 사진을 보면서 아이는 깜짝 놀란다. 할머니 문어가 아기 문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이라든가, 해마들의 집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의 소동이라든가, 믿기지 않는 재미있는 장면이 잇따라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고 긴 머리를 묶은 또래 아이가 왼손에 다른 어린이의 사진을 들고 찍은 인물 사진 한 장이 나온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사진 속 어린이 손에 들린 사진 속에서는 또 새로운 아이가, 그다음 아이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주인공은 이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시공간을 무한히 거슬러 올라가면서 수많은 어린이 친구들을 만난다. 아이는 카메라를 들고 그 사진 속 아이들처럼 활짝 웃는 사진을 찍은 뒤 신기한 카메라를 파도에 실어 보낸다. 어딘가의 외로운 아이가 이 카메라를 만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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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2021년의 옆집 어린이 2020년의 연말을 보내고 있는데 한 세기의 끝 같은 느낌이 든다. 무엇부터 돌아봐야 할까. 1999년의 연말은 어땠는지 떠올려본다. 21세기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여러 가지 예견의 말이 둥둥 떠다녔던 것 같다. 지금은 고요한 목격자의 마음으로 연말을 맞는다. 모호하게 짐작되던 것은 현실로 눈앞에 있다. 20세기 말에 편집된 20년 전 잡지, 계간 ‘시와 동화’ 10호를 찾아 읽었다. 돌아가신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동화를 쓰려는 사람들에게 1999년 10월27일에 써서 보내온 편지가 들어있었다. 첫 문장은 평범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의미심장하게도 “올여름은 참 더웠지요”로 시작하는데 “살아갈수록 왜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는지 속이 상합니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한참 머물렀다. 혼돈의 2020년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이다. 창작의 고뇌를 담은 조심스러운 편지 끝에 선생님은 “목숨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쓰면 다른 어떤 기교나 재주는 별문제가 없다고 봅니다”라고 조언하면서 “아동문학은 이렇게 목숨에 대한 애정을 찾아 써 놓은 사랑의 문학인 것입니다”라고 끝맺는다. 목숨에 대한 애정, 올해 가장 많이 놓쳤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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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뼛속까지 사무치는 노래 경계에서 사는 일은 고단하다. 벨기에의 바를러 헤르토흐와 네덜란드의 바를러 나사우는 두 나라 국경에 놓인 하나의 마을이다. 마당과 도로에도 국경선이 있다. 좋은 날에는 이웃끼리 어울려 지내며 큰 불편이 없지만 올해는 감염병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같은 골목인데 왼쪽 집은 벨기에의 방역수칙, 오른쪽 집은 네덜란드의 방역수칙에 따라 통제받으며 격리와 이송 절차도 제각각이라 혼란과 위험이 높아졌다. 위기가 오면 접경 지역엔 긴장이 감돈다. 힘겨루기라도 벌어지면 약한 이들이 먼저 희생된다. 예나 지금이나 세력과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현장에서 고통은 그곳을 지켜야만 살아갈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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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눈을 감고 쓰는 용기 ‘백일장’은 세대를 아우르는 낱말이다. 단풍이 물든 가을이면 곳곳에서 백일장이 열렸다. ‘백일장(白日場)’이라는 말에는 대낮에 글을 짓는다는 뜻이 있다. <태종실록>에는 1414년 7월17일에 태종이 명륜당에서 유생들에게 문장을 겨루게 했던 것이 백일장의 시초라고 적혀 있다. 유시(酉時)의 첫째 시각인 오후 다섯시 이전에 글쓰기를 마치고 돌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요즘도 ‘장원’ ‘차상’ 같은 옛 이름은 남아있고 대부분은 아직 원고지에 글을 쓴다. 어린이도 백일장을 경험한다. 초등학교 때 거여동의 군부대에서 열린 백일장에 참가한 기억이 난다. 이른 아침부터 버스를 갈아타고 인솔하는 선생님을 따라 현장에 도착했더니 어린이들이 모여 있었다. 접수번호에 따라 줄을 서는데 옆자리 아이가 “그래서 너는 글을 좀 쓰냐?”고 물었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낯가림도 있었고 작가처럼 근사한 대화를 나누자는 건가 하며 우습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시제는 ‘멋진 군인 아저씨’였다. 낙하산 축하쇼를 본 뒤 푸른 하늘과 텅 빈 원고지를 번갈아 보면서 무엇을 써야 할까, 쓰는 일은 무엇일까 아득함을 느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