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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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의 세나수|세상에 나쁜 수학은 없다 합리적 사고의 언어 최근 CES 등 글로벌 기술 전시회에서 확인되듯, 가상세계에 머물던 인공지능(AI)은 이제 로봇과 자동차 등의 물리적 실체로 구현되고 있다. 고전적 컴퓨터와 전혀 다른 구동 방식을 가진 양자컴퓨터에 대한 기대감도 예사롭지 않은데, 이러한 기술 진보의 이면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생각의 틀’에서 일어난 거대한 전환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원인을 알면 결과를 완벽히 특정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의 붕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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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의 세나수|세상에 나쁜 수학은 없다 소수와 양자컴퓨터 인류가 수를 처음 발견한 것은 셈(counting)의 필요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기원전 2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 뼈인 ‘이샹고 뼈’에 칼로 그어진 선들은 원시 부족에서의 셈의 흔적을 보여준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도 처음 수를 접할 때 셈의 개념에서 출발해 자연수를 배운다. 이런 수들로 사칙연산을 하면 뺄셈에서 음수가 나오고 나눗셈에서 분수가 나와서 유리수의 개념으로 확장된다. 유리수(有理數)는 ‘합리적인 수’라는 뜻의 영어 표현인 ‘rational number’를 번역한 말이다. 자연수로 사칙연산을 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파생되는 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리수끼리 사칙연산을 해도 여전히 유리수 안에 머무르니, 유리수는 사칙연산에 관해 자기 완결적인 우주다. ‘연산은 수를 자기 완결의 체계로 확장한다’는 철학은, 현대 군론(group theory)으로 체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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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감옥에서 데뷔한 아마추어 수학자 중세 유럽에서는 수학과 과학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고, 아마추어 수학자의 활약도 잦았다. 17세기 프랑스의 법률가였던 피에르 페르마는 본업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학에 심취했던 경우다. 여가에 수학을 연구했고 주로 편지로 자신의 결과를 남겼는데, 블레즈 파스칼과 서신 교환을 하면서 확률의 개념을 정립하여 근대 확률론의 창시자가 되었다. 정수론의 디오판토스 문제를 연구하다가 유명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미해결 문제를 남겼는데, 이게 350년 동안 수학자들을 괴롭힌 난제가 되었다. 1994년에 이 문제를 해결한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는 20세기 최고의 수학자 반열에 올랐지만, 정작 수학 분야 최고상인 필즈상을 받지는 못했다. 와일즈가 이 해에 41세가 되는 바람에, 만 40세 이하라는 필즈상 수상 조건을 아슬아슬하게 못 맞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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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아마추어 전성시대 일에 빠져 살던 예전의 직장인과 달리 요즘 사람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긴다. 여행이나 독서를 넘어서 취미도 다양해졌고 동호회도 많다. 춤바람이 불어서 춤을 배우러 다니거나 중년의 나이에 생전 처음 악기를 배우는 사람도 꽤 있다. 독서가 취미인 사람들을 위해 주제별로 책을 큐레이팅해주고 동호인을 모아서 연결해주는 스타트업 기업도 출현했다. 이런 전문 독서클럽에 가입한 사람들은 틈날 때 책을 골라 읽는 정도가 아니라 주제별로 함께 읽고 주제 관련 전문가를 초빙해서 토론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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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우기는 어려워도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로저 펜로즈는 블랙홀과 특이점의 존재가 일반상대성 이론의 이론적 결과임을 입증한 수학자다. 중력에 관한 고전적인 뉴턴의 이론을 뒤집는 일반상대성 이론을 창시한 아인슈타인조차도 정작 노벨상은 엉뚱한 광전효과 업적으로 수상했다. ‘실험에 의한 검증’이라는 노벨 재단의 기준에 맞지 않았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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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격리 즐기기 코로나19 탓에 자가격리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여럿 보았다. 자녀 결혼이나 대학의 중요한 국제협력 프로젝트 때문에 불가피하게 출국했던 경우다. 일상이 무너졌다는 사람도, 새로운 충전의 시간이었다는 사람도 있다. 격리는 하던 일을 멈추는 비생산적인 시간인 것일까. 요즘 웬만한 분야는 대단히 전문화되어서, 내부의 세부 분야에 따라 전문성이 다르다. 그래서 특정 진료 분야를 오랫동안 다룬 의사도 자신의 세부 분야를 조금 벗어난 질병엔 조언하기를 꺼린다. 수학에서도 대수학을 전공한 수학자가 요즘 기하학에서 이슈가 되는 논문을 읽는 것은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잡다하게 여러 분야를 건드리기보다는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중세 르네상스를 풍미했던 보편 지식인의 꿈은 이제는 신기루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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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생각의 틀 감염병의 재확산 추세에 대응하다 보니 사회경제적 비용은 확대일로다. 사람 모이는 곳을 피하는 흐름으로 동네 상권이 위축되고 평범한 사람의 일상도 크게 변했다. 밤에 주문한 신선식품이 새벽이면 집에 도착하는 게 이젠 특별하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늘어나던 택배량이 더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내 택배가 어디쯤 있는지 실시간으로 온라인에서 훤히 볼 수 있는 건 기본이니, 우리나라의 택배산업이 언제 이렇게 발전했을까 싶다. 몇 해 전에 물류(物流) 전문가 한 분을 만났더니 국내의 대형 택배사들에서 사용하는 택배 추적관리 시스템은 미국 제품이라고 했다. 거의 그냥 가져다 쓰는 수준이어서 국내 상황에 맞춘 일부 커스터마이징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수학자와 물류 전문가들이 협력하면 국산화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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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다작과 역작 1989년에 생전 처음으로 학회라는 곳에 참석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정수론 분야의 학회였는데, 대학원생에겐 여비가 제공된다는 말 한마디에 아무 생각 없이 여행 삼아서 갔다. 흥미진진한 강연도 있었지만, 이해하기 힘든 강연이 더 많았다. 저녁이 되면 당시 비슷한 처지로 함께 갔던 싱가포르 출신의 링산과 맥주를 홀짝이며 “우린 참 아는 게 없는 바보구나”라고 자조해야 했다. 시간은 살처럼 흘러서 그는 난양공대 부총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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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억만장자의 수학 강연 미국 버클리대학의 동쪽 언덕엔 몇 개의 연구소가 있는데, 그중에 세계적인 수학연구소 MSRI가 있다. 금문교의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2007년에 이곳의 학회에 참석했더니, 발표순서에 짐 사이먼스라는 이름과 함께 난해한 강연 제목이 붙어있었다. 지나가던 연구소장 아이젠버드 박사에게 물었다. “이분이 ‘그’ 사이먼스인가요?” “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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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동양의 무한, 서양의 원소 아주 많은 걸 표현할 때 ‘셀 수 없이 많다’라고 한다. 하지만 수학의 세계에서는, 유한한 건 다 셀 수 있고, 무한도 ‘셀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무한의 개념은 신기루 같은 것이어서, 인류 역사에서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트렸다. 영원이라거나 무한한 윤회 같은, 종교에서나 나옴 직한 무한의 개념이 수학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무한의 개념에 처음 다다른 것은 인도 문명이었다. 기원전 10세기의 인도인들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더 큰 수를 표현하는 숫자를 발명했고, 끝없이 계속되는 수를 이해하고 있었다. 하나, 둘을 세면서 나오는 수가 아니라 우주의 광활함을 수로 표현하려는 사색의 결과물이었다. 기원전 3세기의 인도는 셀 수 있는 무한과 셀 수 없는 무한을 구별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살면서 경험할 수 없는 수들이 튀어나온 것인데, 무한의 개념은 힌두교와 불교 우주관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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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생각의 언어 우리가 생각을 언어의 형태로 전달할 때 종종 소통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코끼리를 묘사했지만 하마로 알아들으면 방법이 없다. 이런 일은 과학적 발견의 영역에서도 일어난다. 1999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화성 탐사선이 화성 궤도에서 추락했다. 조사 결과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 팀은 구 영국식 단위를 사용했지만, 발사를 맡은 NASA 팀은 미터 단위를 사용한 탓이었다. 50마일(80㎞)이라고 했는데 50㎞로 잘못 들은 것이다. 소통의 과정에서 혼동의 여지가 없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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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머피의 법칙은 필연이더라 “네 명에게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메달을 미처 이름을 못 보고 나누어 줬어요. 그런데 공교롭게 단 한 명도 자기 메달을 못 받고 엉뚱한 메달을 받은 거예요. 이럴 확률은 얼마일까요?” 몇 년 전에 수학자들 앞에서 내가 실제로 한 질문이다. 19세기에 시작되어 지금도 계속되는 국제행사라면 대다수의 사람은 1896년에 시작된 올림픽을 연상한다. 하지만 하나 더 있다. 1897년에 시작된 세계수학자대회(ICM)다. 실험실에서 승부를 보는 실험 학문과 달리 모여서 난제를 논의하고 해결하는 수학 분야의 전통 때문이다. ‘여러 나라의 운동선수들을 모아서 올림픽을 열었더니 인간의 한계라던 영역을 넘는 사람들이 속출하더라’라는 스포츠 분야의 각성과 비슷하달까. 4년마다 개최되는데, 개막식에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이 수여된다. 2014년엔 서울에서 5200명의 수학자가 참석해서 열렸다. 그런데 맙소사, 4명의 수상자가 모두 엉뚱한 메달을 받았다. 모두가 엉뚱한 걸 받는 분배를 수학에서는 derangement라고 하는데, 그게 실제 일어난 것이다. 물론 식후에 수상자끼리 연락해서 교환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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