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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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아래쪽의 재난 아래쪽 집들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는 걸 보며 대통령은 퇴근했다. 재난은 아래쪽의 문제였을 뿐이다. 침수로 사람이 목숨을 잃은 집 앞에서 반지하 방을 내려다보던 사진만큼 솔직한 고백이 있을까. 그는 아래쪽의 재난을 구경하는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폭우와 함께 재난불평등이 드러나고 있다. 가난할수록 재해에 더 잦게 노출되고 더 크게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은 새롭지 않다.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재난에서 더 취약한 집단이 있다는 사실도 재난 대응 정책의 서두에 곧잘 언급된다. 이번에는 반지하가 주목을 받았다. 그 도시의 시장은 반지하 주택을 없애나가겠다고 했다. 그 나라의 장관은 “그분들은 어디로 가나” 물으며 반지하 거주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아무도 아래쪽 사람들에게 묻지 않았고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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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좁은 철창을 간신히 삐져나온 목소리가 숨막히게 더운 공기를 뚫고 전해졌다. 이대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인 듯 이대로 살지 말자는 제안인 듯 육중하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파업 중인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부지회장 유최안이 22년 경력의 용접기술로 자신을 가두고, 여섯 명의 노동자가 탱크 탑 구조물에 올라 고공농성을 한 지도 한 달이 되어간다. 14일부터는 산업은행 앞에서 세 명의 노동자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어떤 선언이고 어떤 제안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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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아프면 쉴, 권리가 되려면 단식투쟁을 마치고 쉬는 중이다. 때 되면 먹고, 낮에는 걷고 밤에는 잔다. 휴가제도라면 남부럽지 않았는데, 이렇게 잘 쉬는 기분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일상을 거들어주는 누군가가 있고, 주위 모두가 회복을 응원한다는 점이 쉼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쉬고 나면 복귀할 자리가 있고 쉬는 동안 소득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은 쉼의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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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제 문제를 일으킵시다 단식투쟁 중입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봄을 맞겠다고, 이제 16일째네요. 얼마 전 한 단체채팅방에 제 단식 소식이 올라왔어요. 오래전 인연으로 걸쳐만 있던 방이었습니다. 반가워하기도 놀라워하기도 하는 댓글이 이어지다가 대화가 끊겼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좋지 않은 법”이고, 채팅방에서 얘기하기에는 “너무 정치적 내용”이라는 댓글이 올라오면서입니다.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누구나 차별은 좋지 않은 거라 배우고, 차별하지 말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차별하지 말자는 법이 ‘좋지 않은 법’이 돼버렸을까요? 정치인들이 차별금지법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피해온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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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여가부 폐지의 반대말 성평등을 위해서는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윤석열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고집은 한때 유행했던 광고 문구를 떠올리게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여가부가 파견한 공무원은 받지 않았고 업무보고는 30분 만에 끝냈다. 이미 없는 부처로 취급하는 수준이다. 성평등 실현을 위해 전담 부처가 필요하다는 점은 국제사회에서 상식이다. ‘역사적 소명’을 다해 축하받으며 전담 기구가 사라졌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이제 겨우 20년을 넘긴 여가부가 소명을 다했을 리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심경이 복잡했다. 막무가내로 몰아가는 이 정부와 싸워야겠는데, 여가부를 지키고 싶냐면 마음이 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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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사소한 희망 대선과 사회운동에 관한 고민을 나누는 집담회가 있었다. 서른 명 남짓 활동가들이 모여 토론을 했다. “운동이 망했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말해놓고 내가 놀랐다. 나는 지금껏 운동이 망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활동가들이 머리로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 내뱉는 말이 ‘운동이 망했다’는 평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깨달았다. 나는 지금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아서 막막하고 때로는 화가 나고, 조금 자주 지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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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영화관 옆 상갓집 라디오를 들으며 외울 지경이 된 광고가 있다.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신’이 있습니다. 코로나 최전선 의료진의 영웅신, 발코니로 떠나는 우리가족 여행신, (…) 이제 모두가 기다려 온 백신으로 해피엔딩 신을 보여줄 차례. 우리가 함께 만든 최고의 신들이 있어 대한민국은 반드시 코로나19를 이겨낼 것입니다.” 연초에 들을 때는 신박한 라임에 감탄했다. 하지만 재난 상황이 달라지는데도 똑같은 말이 반복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된 후로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의료진의 절규도 집단시설의 아비규환도 자영업자의 절망과 분노도 끼어들 틈 없는 매끄러운 신은 백신만 주입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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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말을 칼로 만들어준 더불어민주당 “반대론자들은 혐오세력인 듯 매도당해온 기분이 드는데요 저는.” 토론회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이유를 또랑또랑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이 대목에서 살짝 흐트러졌다. 불쾌했거나, 억울했거나, 어쨌든 혐오를 지적당해온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그래서 반동성애 집단은 혐오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해 왔다. 나는 언젠가부터 혐오라는 말을 쓰는 것을 꺼려왔다. ‘혐오가 문제’라는 말이 쉬운 만큼 ‘혐오의 문제’에 대한 이해는 낮아졌기 때문이다. 지목당한 사람은 발끈하고 구경하는 사람은 눈만 끔뻑거린다.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의견을 말하지도 못하냐’ 같은 대화가 헛돈다. <말이 칼이 될 때>와 같은 친절한 책이 있지만 사람들은 ‘칼이 되는 말’을 가려내는 데 더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혐오는 말이 향하는 자리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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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깃발처럼 오시라 점심을 먹는데 식당 주인이 대뜸 물었다. “그 깃발 동성애 그런 거예요?” 말이 좀 그렇거니와 말투도 서걱서걱했다. 살짝 긴장을 했다. “네. 저희는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고 있어요.” 일부러 또박또박 대답했다. “저 예전에 호주에서 그 깃발 본 적 있어요.” 아… 긴장이 무색해졌다. 길 건너편에서 큰소리로 묻는 분도 있었다. “타이완? 타이완에서 왔어요?” 대만의 동성혼 합법화 뉴스를 기억했던 걸까. 무지개 깃발을 보며 먼 나라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 혐오의 가장 큰 효과는, 눈앞에 보이는 누군가를 반대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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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평등길1110 지자체가 재난긴급생활비를 다문화가정에 지급하면서, 자녀가 있으면 이주민 배우자에게도 주고 자녀가 없으면 배우자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이 있었다. 자녀가 없으면 이주여성도 없는 사람 취급이다. 차별로 지목되자 지자체는 규정에 따랐을 뿐이라는 궁색한 핑계를 댔다. “손발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 같은 말은 차별로 쉽게 지적된다. 그러나 실언을 낳는 차별의 실재는 그대로 남는다. 서울의 많은 지자체에서 이주여성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출산다문화팀’이다. 이주여성 하면 결혼과 출산, 외국인노동자 하면 육체노동을 떠올리게끔 제도가 특정한 정체성을 특정한 위치로 배치한다. 세계가 이러하므로, 차별은 일부러 하기가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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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위드 코로나, 누구와 함께? 코로나19 시대, 인권운동도 어렵다. 사람들이 모여서 말하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 본령인데, 모이지 말라는 시간이 길어지니 말이다. 집회는 쉽게 금지되었다. 과학적 근거는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하면 실외 집회는 당연히 실내 행사보다 위험이 적다. 법과 물리력이 정부에 있으니 금지당할 뿐이다. 실내 행사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돈이다. 거리 두기를 하려면 훨씬 넓은 장소를 빌려야 한다. 온라인 영상 중계나 접근권을 높이는 것도 다 돈이다. 주주총회는 인원제한 없이 허용되지만 동네 식당들은 집합금지 명령으로 휑하다. 무엇이 멈추고 무엇이 이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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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어떤 박탈감 “검진을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금연 결심을 환영합니다.” 애틋할 뻔했다. 1577-1000. 건강보험료 체납 안내 메시지도 와서, 애틋하지는 않았다. 전화도 걸어봤다. 금연프로그램 이수 인센티브를 신청했고, 건강보험료가 갑자기 올라 항의도 했다. 번호를 누르며 내가 메타넷엠플랫폼이나 효성아이티엑스와 같은 회사로 전화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건강보험공단으로 전화를 했는데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받은 게 아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