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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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예고된 참사’ 윤 정권을 돌아본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 번 반복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이 말은 이제 고쳐야 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세 번 반복한다. 두 번은 비극으로, 세 번째는 희극으로.” 5·16쿠데타와 전두환의 12·12쿠데타가 비극이었다면, 윤석열의 실패한 친위 쿠데타는 희극이다. 21세기, 대한민국 같은 사회에서 비상계엄을 통한 쿠데타라니, 이런 희극이 없다. 나는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몇달도 안 돼 이미 이 지면에서 경고했다. 가장 위험한 대통령은 “부지런하고 용감하면서 삐뚤어진 지도자, 즉 ‘잘못된 확신’에 찬 적극적인 지도자”인데 윤석열은 “임기를 시작한 뒤 몇달에 불과하지만, 보면 볼수록, 우려한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인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든다”(2022년 10월25일자). 직언에 핏대만 올리는 것에도 우려를 표명했다. “최고결정자인 대통령이 ‘분노조절장애환자’처럼 시도 때도 없이 핏대를 세운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 등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에 갇혀 민심과 멀어졌다며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겼다. 하지만 자신이 지은 새로운 궁궐인 ‘핏대궁궐’에 갇히고 말았다. 문제는 두 가지다. 앞으로 대통령을 뽑을 때 능력 못지않게 후보자의 성격·성정을 관찰하고 고려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윤 대통령의 핏대를 남은 임기 동안 ‘관리’하는 것이다”(2024년 7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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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윤석열의 죄’와 윤석열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특검을 통해 박근혜 국정농단 수사를 주도해 국민스타로 성장했다. 그 덕으로 대통령까지 됐다. 하지만 이제 자신이 ‘국정농단의 주인공’이 되고 만 것 같다. 많은 국민들은 그가 저지른 ‘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어 특검 등을 통해 밝혀야 하는 죄가 박근혜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검사로 살아왔고 박근혜를 비슷한 혐의로 감옥에 보낸 사람이 자신도 매우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박근혜가 유죄선고를 받은 죄 중 하나가 공천개입인데, 명태균과 이준석 의원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김영선 전 의원부터 김진태 강원지사, 김태호 강서구청장 등의 공천에 개입했다고 한다. 자신은 검찰 출신이기 때문에 비슷한 짓을 해도 검찰이 봐줄 것이라는 오만인가? ‘명태균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하지만, 시기가 문제일 뿐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특검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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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윌밍턴, 트럼프, 평택 윌밍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미국의 이 도시는 워싱턴에서 남쪽으로 600㎞ 떨어진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항구다. 극우포퓰리스트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을 ‘돈 버는 기계’라고 조롱하며 한국이 방위부담금을 현재보다 10배는 더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 미국역사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워싱턴에 와 있던 나는 뉴스를 듣자마자 짐을 싸서 윌밍턴으로 향했다. 6시간 밤길을 달려 윌밍턴에 도착하자 여명이 밝아왔다. 목적지인 ‘1898년 추모공원’에 노 6개를 거꾸로 세워놓은 커다란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공원은 미국정치사, 특히 현 미국 대선국면에서 주목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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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파국적 평형상태? 근 100년 전인 1929년. 이탈리아 남부 작은 도시인 투리의 교도소에서 날카로운 눈매의 작은 남자가 추위로 곱은 손을 호호 불며 글을 쓰고 있었다. 이탈리아공산당 당수이자 하원의원이었던 안토니오 그람시다. 그는 광기의 파시즘과 무솔리니를 비판했다가 치외법권에도 불구하고 긴급조치에 의해 끌려온 것이다. 그는 결국 감옥에서 병사하고 말았지만, 그의 글은 현대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우파’들도 자주 사용하는 ‘시민사회’, ‘헤게모니’라는 개념이 바로 그가 이 교도소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도 모르는 ‘그람시주의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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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고종과 윤석열 조선 최악의 왕은 누구일까? 많은 사람들은 선조를 생각할 것이다. 그는 임진왜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의 이승만처럼, 백성들을 버리고 혼자 도주했고 이순신 징계에 바빴던 한심한 왕이다. 나는 ‘고종도 선조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최근 들어 고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한말이 나의 전공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고종의 긍정적인 면이 그가 서구제국주의가 동아시아를 위협하던 19세기 말에 무능해서 나라를 빼앗겼을 뿐 아니라 외세와 봉건적 모순, 자신의 실정에 저항해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을 진압하게 군대를 보내달라고 청나라에 구걸한 역사적 죄를 덮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핑계로 일본군이 한반도로 쳐들어왔으니 스스로 일본군을 끌어들인 것이다.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는 고종의 무능과 잘못된 대응이 19세기 말 우리 민족이 비극으로 치달아야 했던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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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위험한 음모론 전성시대 “코로나19는 인종적으로 겨냥된 것이다. 코로나19에 백인과 흑인은 취약하고 유태인과 중국인들은 강하다.” ‘미국식 진보’를 상징하는 존 F 케네디의 조카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세계를 공포로 몰고 갔던 코로나19가 백인과 흑인을 공격하기 위해 유포된 것이라는 충격적 음모론을 주장한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9·11 테러가 미국 정부가 계획한 것’이라는 주장부터 드루킹 사건으로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진보정치의 아이콘 ‘노회찬 의원이 타살당한 것’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온갖 음모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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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핏대의 정치’ ‘격노.’ 윤석열 정부 들어 갑자기 언론에 자주 등장하게 된 단어다. 격노, 쉽게 말해 ‘핏대’가 처음으로 한국정치의 주요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잊을 만하면,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기사가 등장하고 있다. 수해가 생기자 환경부에 격노했다, 수능 킬러문항에 대해 교육부에 격노했다, 안철수 의원의 ‘윤·안연대’ 발언에 격노했다 등 끝이 없다. 윤 정부의 지난 2년은 ‘대통령 격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로서 전시에는 나라의 존망을 좌우할 중대결정을 내린다. 전시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결정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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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팬덤시대의 ‘죄와 벌’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의 이 명작은 인간사회의 중요한 문제인 ‘죄’와 이에 상응하는 ‘벌’이라는 화두를 제기하고 있다. ‘죄와 벌’이라는 문제는 결국 죄를 법으로 규정한 ‘범죄’와 이에 상응하는 ‘처벌’이라는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과 벌린 논쟁이 보여주듯이, 오래전부터 “법은 강자의 이익”일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인류의 역사와 현실을 보면, 이 같은 주장이 상당히 타당하며 역사는 ‘권력과 부의 불평등에 따른 처벌의 불평등 역사’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법은 강자의 이익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고 ‘보편적 사회적 규범’으로서 도덕과 법, 이에 기초한 죄와 벌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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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다시 광야에 선 ‘진보정치’ ‘미국 예외주의.’ 미국정치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다.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 대 자유주의라는 ‘진보’ 대 ‘보수’의 대립구도를 가지고 있는 대다수 선진국과 달리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고 ‘보수양당’이 경쟁하는 미국의 특이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의미 있는 진보정당의 부재’라는 ‘한국 예외주의’다. 이에 대해 일부는, 아니 대다수 언론 등은 “이 땅에는 1950년대 민주당으로부터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어져온 강력한 ‘진보야당’이 있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아니 일부 극우세력은 민주당이 ‘진보정당’을 넘어 친북 ‘빨갱이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진보·보수’를 단순히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미국의 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공화당이나 국민의힘보다 ‘진보’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주의는 히틀러에 비해 덜 극우라는 이유로 무솔리니를 ‘진보’라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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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오만·독선 경쟁’의 중간성적표 역시 예상대로 윤석열 대통령의 압승이다. 누가 더 오만하고 독선적인가를 겨룬 ‘오만·독선경쟁’ 이야기이다. 물론 박용진 의원에 대한 공천 거부 등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보여준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의 오만과 독선은 정치적 상식을 넘어선 한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수 국민들에게는 이것조차 윤 대통령이 보여준 오만과 독선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특히 야권에 대해서는 매서운 법의 칼을 겨누면서도 김건희 여사와 해병 사망사건 외압의혹 핵심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장관 등 자기편에는 너무 관대해 윤 대통령 쪽에서 하면 로맨스이고 민주당이 하면 불륜이라는 ‘윤로민불’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이 윤로민불이 친이재명계에서 하면 로맨스이고 친문재인계 등이 하면 불륜이라는 ‘명로문불’에 대한 분노를 압도했다. 주목할 것은 항소심에서까지 유죄판결을 받은 조국, 여러 사건의 피의자인 이 대표만이 아니라 돈봉투 사건으로 압수수색을 받고 검찰에 출두해 조사받은 허종식 의원 등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사건 피의자 다수가 당선된 것이다. 윤석열 진영과 야권에 대한 검찰의 이중잣대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심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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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의로노불, 윤로민불, 명로문불 ‘탈진실사회’와 정치적 양극화.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키워드다. 언제부터인가 가짜뉴스가 범람하며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사라져버렸다. 그 결과, 정치적 적대와 대립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해지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은 진영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우리 편이 누구인가 하는 진영일 뿐이다. 이 같은 진영논리는 결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과 이중잣대로 나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생각이 진보적일 수도, 보수적일 수도, 관대할 수도, 엄격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생각이 관대할 수도, 엄격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나와 우리 진영에는 무한대로 관대하고, 남과 반대진영에는 추상같은 이중잣대다. 조국사태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중잣대의 결과로 “우리 편은 모든 것을 걸고 지켜야 할 절대선, 반대편은 목숨을 걸고 척결해야 할 절대악”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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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때늦고 한심한 대선 책임 논쟁 늦어도 너무 늦었다. 운동선수가 해야 할 수술을 미루다가 주요경기 직전에 환부가 터지고 만 격이다. 환부는 더불어민주당의 지난 대선 패배 원인 문제다. 기이하게도, 대선에서 패배하고도, 그것도 촛불항쟁에 의한 박근혜 탄핵 덕으로 집권한 민주당이 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단 5년 만에 대선에서 패배해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키고도, 뼈아픈 패배 원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 이에 기초한 자성과 쇄신이 없었다. 아니 최근 한 언론보도로 처음 알려졌듯이, 민주당이 대선백서를 만들기는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치열한 당내 논쟁을 통해 만든 것이 아니라 백서를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당에서조차도 거의 없을 정도로 형식적인 평가에 불과했고 이를 공론화해 당을 쇄신하려는 노력도 더더욱 없었다. 대신 당을 지배한 것은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라는 집단최면이었다. 특히 지난 대선은 단순한 민주당의 패배를 넘어서 역사적인 촛불항쟁을 ‘한때의 해프닝’으로 말아먹은 엄청난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촛불시민들에게 자기성찰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책임마저 저버렸다. 이처럼 덮어뒀던 대선 패배 원인 문제가 총선후보 공천을 놓고 뒤늦게 폭발하고 만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한 임종석, 노영민의 공천신청 등과 관련해,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정권 탄생에 원인을 제공한 분들 역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는 공천관계자의 발언이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정작 했어야 할 대선 논쟁이 ‘밥그릇’ 문제가 대두되고서야 뒤늦게 터져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