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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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오만·독선 경쟁’의 중간성적표 역시 예상대로 윤석열 대통령의 압승이다. 누가 더 오만하고 독선적인가를 겨룬 ‘오만·독선경쟁’ 이야기이다. 물론 박용진 의원에 대한 공천 거부 등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보여준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의 오만과 독선은 정치적 상식을 넘어선 한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수 국민들에게는 이것조차 윤 대통령이 보여준 오만과 독선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특히 야권에 대해서는 매서운 법의 칼을 겨누면서도 김건희 여사와 해병 사망사건 외압의혹 핵심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장관 등 자기편에는 너무 관대해 윤 대통령 쪽에서 하면 로맨스이고 민주당이 하면 불륜이라는 ‘윤로민불’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이 윤로민불이 친이재명계에서 하면 로맨스이고 친문재인계 등이 하면 불륜이라는 ‘명로문불’에 대한 분노를 압도했다. 주목할 것은 항소심에서까지 유죄판결을 받은 조국, 여러 사건의 피의자인 이 대표만이 아니라 돈봉투 사건으로 압수수색을 받고 검찰에 출두해 조사받은 허종식 의원 등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사건 피의자 다수가 당선된 것이다. 윤석열 진영과 야권에 대한 검찰의 이중잣대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심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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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의로노불, 윤로민불, 명로문불 ‘탈진실사회’와 정치적 양극화.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키워드다. 언제부터인가 가짜뉴스가 범람하며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사라져버렸다. 그 결과, 정치적 적대와 대립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해지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은 진영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우리 편이 누구인가 하는 진영일 뿐이다. 이 같은 진영논리는 결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과 이중잣대로 나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생각이 진보적일 수도, 보수적일 수도, 관대할 수도, 엄격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생각이 관대할 수도, 엄격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나와 우리 진영에는 무한대로 관대하고, 남과 반대진영에는 추상같은 이중잣대다. 조국사태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중잣대의 결과로 “우리 편은 모든 것을 걸고 지켜야 할 절대선, 반대편은 목숨을 걸고 척결해야 할 절대악”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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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때늦고 한심한 대선 책임 논쟁 늦어도 너무 늦었다. 운동선수가 해야 할 수술을 미루다가 주요경기 직전에 환부가 터지고 만 격이다. 환부는 더불어민주당의 지난 대선 패배 원인 문제다. 기이하게도, 대선에서 패배하고도, 그것도 촛불항쟁에 의한 박근혜 탄핵 덕으로 집권한 민주당이 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단 5년 만에 대선에서 패배해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키고도, 뼈아픈 패배 원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 이에 기초한 자성과 쇄신이 없었다. 아니 최근 한 언론보도로 처음 알려졌듯이, 민주당이 대선백서를 만들기는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치열한 당내 논쟁을 통해 만든 것이 아니라 백서를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당에서조차도 거의 없을 정도로 형식적인 평가에 불과했고 이를 공론화해 당을 쇄신하려는 노력도 더더욱 없었다. 대신 당을 지배한 것은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라는 집단최면이었다. 특히 지난 대선은 단순한 민주당의 패배를 넘어서 역사적인 촛불항쟁을 ‘한때의 해프닝’으로 말아먹은 엄청난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촛불시민들에게 자기성찰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책임마저 저버렸다. 이처럼 덮어뒀던 대선 패배 원인 문제가 총선후보 공천을 놓고 뒤늦게 폭발하고 만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한 임종석, 노영민의 공천신청 등과 관련해,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정권 탄생에 원인을 제공한 분들 역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는 공천관계자의 발언이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정작 했어야 할 대선 논쟁이 ‘밥그릇’ 문제가 대두되고서야 뒤늦게 터져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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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길위에 김대중’ “피고 손호철 5년!” “재판장님, 손호철 피고인은 미성년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출생 100년을 맞아 상영 중인 <길위에 김대중>에서 1971년 대선 장충단공원 연설장면을 보고 있자 떠오른 것이 대선 직후 있었던 재판이었다. 박정희와 김대중이 대결한 1971년 대선은 1987년 6월항쟁에 의해 민주화를 쟁취할 때까지 치러진 선거 중 국민들이 대통령을 직접 뽑은 마지막 선거였다. 이 선거에서 나는 많은 대학생들과 부정선거를 감시하기 위한 선거참관인단을 조직해 참여했다. 수많은 부정선거를 직접 목격한 나는 다른 대표들과 신민당을 방문해 부정선거를 고발하기 위해 국회의원선거를 거부하라고 요구했다. 박정희 정권은 우리가 선거와 정당활동을 방해했다며 구속기소했고 모두에게 5년을 구형했다. 당시 나는 대학 2학년이었지만 학교를 일찍 들어가 만 18세에 불과해 ‘소년범’이었는데 검찰이 이를 모르고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구형을 했다가 재판장에서 엄청 혼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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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노무현의 길? 이재명의 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민주당이라는 ‘민주야당’에 뿌리를 둔 ‘자유주의정당’의 지도자로, ‘사이다’라는 말을 듣는 달변과 시원시원한 언행, ‘진보적’ 정책노선, 그러면서도 현실성을 잃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점이 대표적인 공통점이다. 보다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둘은 한국 정치, 아니 정치를 넘어 한국 사회의 ‘소수자’, ‘비주류’ 출신이다. 둘 다 꿈의 등용문인 사법시험을 통과해 변호사라는 화려한 직업을 가졌지만, 그 이전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둘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너무나 어려운 청소년기를 지내야 했다. 특히 학벌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둘은 모두 소외된 비주류였다. 이 대표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오기는 했지만 소위 ‘스카이’류의 명문대는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아예 대학 근처도 못 갔다는 점에서 더욱 ‘입지전적’이다.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신림동 고시학원도 못 가고 토굴에서 고시공부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비주류성’은 이후 경력에도 이어진다. 민주당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김근태, 586 같은 학생운동권 지도자들이기에 둘은 정치입문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비주류로 남아야 했다. 그런 만큼 둘은 기존 당 조직이나 정치 메커니즘을 넘어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포퓰리스트’적인 정치를 추구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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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1인 1/7표제’를 넘어서 한 나라가 ‘민주주의’, 정확히 이야기해 ‘정치적 민주주의’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지표는 무엇일까? 흔히 사상, 언론, 결사,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지표가 있다. 성인이면 모두가 동등하게 한 표의 투표권을 갖는 보통선거권이다. 우리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보통선거권에 의해 가난한 사람과 여자들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선진국들도 100년밖에 안 된다. 그 이전에는 투표권은 재산을 가진 부유한 남자들에게만 주어졌고 사회주의자를 제외하고 자유주의자 등은 보통선거권에 결사반대했다. 결국 노동자, 여성 등의 투쟁 덕분에 보통선거권은 제도화됐고, 이제 우리는 보통선거권과 1인 1표제는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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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차분한 변화? 턱도 없다! 비운의 노무현 전 대통령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급진적’ 이미지다. 하지만 정책 면에서 노무현 정부는 ‘급진적’이지도, 그리 ‘진보적’이지도 않았다. 물론 탈권위주의 등 진보적 정책도 있었지만,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파견근로제 확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도 전반적으로 ‘보수’정책들을 폈다. 그럼에도 그에게 급진적 이미지가 따라다니는 것은 ‘급진적 언술’ 때문이다.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미군 장갑차에 희생당한 여고생들 추모 촛불시위에 참여했다가 ‘반미’라는 비판이 일자 그는 “반미면 어떠냐”고 되받아쳤다. 대통령으로 미국을 방문해서는 반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미국이 아니었으면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아 고맙다”며 우파 대통령들도 안 했던 ‘급진적인 친미’ 발언을 했다. 그의 급진주의는 ‘내용의 급진주의’가 아니라 ‘스타일의 급진주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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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수박’의 정치학 “너 수박이지?”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은 1971년 대선 때 대학생들은 군사정권의 부정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참관인단을 만들어 활동했다. 참관인단으로 많은 부정선거를 목격한 나는 신민당을 방문해 부정선거를 여론화하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를 보이콧하라고 요구했다가 정당법·선거법 위반으로 체포돼 서대문 형무소로 보내졌다. 며칠 뒤 검찰청으로 불려가 만난 검사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내게 수박 타령을 했다.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해하는 내게 그는 다시 물었다. “너, 빨갱이잖아?” 수박과 빨갱이가 무슨 관계인가? 당황해하는 내게 그가 설명해줬다. 전통적으로 검찰 등 공안기관들은 ‘공안사범’을 세 가지 과일로 분류해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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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두 번의 실패와 때아닌 ‘극우 늦바람’ 카오스 이론·복잡성 이론·나비효과·만유인력 법칙 등처럼 자연현상이 규칙성에 의해 움직인다는 근대과학관과 달리, 이 첨단 이론들은 법칙으로 예측할 수 없는 우연한 요인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역사와 사회현상도 마찬가지다. 최근 이론들은 구조적 요인보다는 우발적 요인과 행위자의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한국정치가 발전할 수 있는 두 번의 중요한 기회, 구체적으로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보수 내지 ‘수구 세력’이 ‘글로벌 스탠더드’의 ‘합리적 보수’로 진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 실패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때아닌, ‘무서운 극우 늦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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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숙의 민주주의와 선거제 개혁 민심과 역사. 정말 어려운 화두다. 1년 전 이 지면에 쓴 ‘민심과 역사’라는 글에서 지적했듯이, 윤석열 대통령처럼 “나는 역사적 소명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여론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소명주의’에 빠지면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여러 문제에도 민심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민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대중이 중요 사안에 대한 필요한 정보들을 습득하고, 이에 기초해 올바른 판단을 하기에는 여유와 시간이 없고 감정적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단기적으로 그러하다. 따라서 ‘민심 지상주의’ ‘대중 추수주의’도 소명주의만큼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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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문제의 근원은 ‘한탕개발주의’다 “이게 나라냐?” 7년 전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에 분노해 거리를 메웠던 촛불시민들의 함성이다. 세계잼버리 대회를 보면서 분노의 이 질문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회와 관련, 윤석열 정부로부터 이전부터 준비해온 전라북도 등 정부의 잘못은 끝도 없다. 잼버리대회가 국제적 망신이 되고 만 것이 누구 책임인가에 대해 여야간 공방이 한참이다. 파행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추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넘어 이번 대회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한탕개발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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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칼럼 위험사회와 망각의 정치 ‘위험사회.’ 세계적 석학 울리히 벡이 현대사회를 규정한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21세기의 위험은 자연재해 같은 불가항력적 재난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환경과 결합해 나타나는 재난, 곧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생산된 위험’이다. 쉽게 말해, 인간이 만든 ‘인재’다. 9년 전 수학여행을 떠난 꽃다운 고등학교 학생 등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가 대표적인 예다. 세월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고의 원인 중 하나인 노후 선박 운행허가 연장으로부터 구조실패에 이르기까지 압축 근대화 속에 우리 사회에 일상화된 이윤지상주의, 생명경시주의, ‘빨리빨리주의’라는 ‘생산된 위험’이 낳은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