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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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검찰의 ‘신직업주의’ 몇 합을 겨루어도 승부가 나지 않는, 날카로운 인파이터 추미애 법무장관과 건들건들 아웃파이터 윤석열 검찰총장 간 싸움을 지켜보는 일은 참 힘들었다. 싸움이 길어지면 왜 싸우게 되었는가는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라고 하는데 추미애와 윤석열의 싸움이 그랬다. 무림 고수들의 현란한 싸움 기술과 그들이 속한 문파가 어디인가라는 것만 남았다. 그들이 창과 방패로 찾아낸 법과 제도는 매번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으나 그것들은 벌거벗은 싸움의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싸움판에서 검찰개혁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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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김영춘의 담쟁이(2) 2005년 가을이었던 것 같다. 열린우리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2004년 총선 승리 후 10년 가까이 이어졌던 패배의 행진을 막 시작하던 때였다. 나중에는 비상대책위가 선거 패배 때마다 되풀이하는 푸닥거리 같은 것이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비감한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첫 회의가 열렸다. 비대위원들 앞으로 발언 차례가 옮겨갈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작렬했다. 젊은 국회의원 김영춘이 마이크를 당기며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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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새해는 지방자치 30년 지금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그동안 우리는 코로나19 방역을 잘했다고 인정받았다. 어떻게 잘할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의 진단은 대개 일치했다. 훌륭한 의료보험제도, 정부의 선제적 개입, 뛰어난 검진 능력, 치밀한 추적과 투명한 정보 공개 등이 자랑스러운 성과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침착한 방역 리더십이나 의료진의 눈물겨운 헌신도 손꼽히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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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남부연방을 꿈꾸며 2 두 달 전, “남부연방을 꿈꾸며”라는 글을 ‘정동칼럼’(2020·9·17)에 썼더니 친구들이 핀잔을 준다. 교수가 어찌하여 그리 거친 얘기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지방의 절박한 사정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야속했다. 그 칼럼은, 여러 지방정부들이 초광역화를 통해 지역발전 비전을 모색하고 있는 최근의 움직임을 소개하면서, 수도권 블랙홀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초광역화를 넘어 초초광역화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광주·전남, 전북 등 지리산 남쪽의 지방정부들이 힘을 모아 ‘서울공화국’ 일극체제를 양극체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남부연방을 꿈꾸며”의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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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재명 말이 맞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방자치단체의 지방사무에 대해 국회가 국정감사를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했다. 하여 내년엔 국정감사 사양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다고 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감사를 받는 기관의 장이 저렇게 ‘불경스러운’ 얘기를 할 수 있다니, 역시 이재명이었다. 그는 그동안 중요한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꼬장꼬장하게 정면 돌파를 해 눈길을 끌었는데 이번의 경우는 조금 더 특별해 보인다. 의제가 ‘국가-지방’에 관한 것이라 그렇다. 성남시장 이재명이 2016년 6월 국가의 지방재정 정책에 항의,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투쟁을 하면서 ‘국가-지방’ 의제를 공론에 올린 것이 기억난다. 당시 그는 박근혜 정부가 지자체 밥줄을 끊으려 하니 자신은 곡기를 끊겠다고 결기를 보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대통령을 비판하며 단식투쟁을 벌인 지방자치단체장은 그가 처음일 거라는 점에서 관심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후로는 이재명이 ‘국가-지방’ 의제를 제기했다는 기억이 없다. 그래서 그가 경기도지사가 되더니 아쉬운 게 없어졌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경기도는 인구나 살림살이 규모가 다른 시·도에 비할 수 없이 크고, 수도권이라는 기득권 동맹의 일원인지라 그가 ‘지방’ 문제에 무심해졌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는 여전히 ‘지방’의 문제를 직시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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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남부연방’을 꿈꾸며 지방정부의 초광역화가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을 엮는 메가시티 비전이다. 이것은 한반도 동남권을 하나의 생활공동체, 경제공동체, 문화공동체, 행정공동체로 만들겠다는 꿈이다. 초광역 공동체를 만들어서,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블랙홀에 대응하고 내부적으로는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혁신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이것을 이루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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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김종인, 리어왕이 되지 않으려면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별명은 ‘여의도 차르(군주)’다. 그가 진보, 보수 정당을 넘나들며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를 전제군주라고 힐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의도 차르는 매번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보수 박근혜 선거캠프에 참여하여 승리의 견인차 노릇도 했고, 거꾸로 진보 문재인 진영에 결합하여 승리의 디딤돌 역할도 했다. 그래서 그를 계몽군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어려움에 빠진 정치집단을 일사불란하게 끌고 나오는 전략을 보면 그는 영락없는 전제군주이고 자신의 비전을 드러내는 설명 능력을 보면 계몽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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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서울공화국 해체하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연설에서 ‘국가균형발전’을 목소리 높여 외쳤다. 만시지탄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오랫동안 총리로 일했던 이낙연의 고백처럼 국가균형발전은 “돌이켜 보면 아쉬운 것 중의 하나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잇는다며 국가균형발전을 주요 국정과제로 설정했지만 그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평화, 적폐청산, 정의 등은 머리에 떠오르지만 균형발전이라는 과제는 별로 들어본 기억조차 없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만들어놓았지만 대통령 자신이 그것을 잘 챙기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그랬던 국가균형발전 의제가 길을 잃은 부동산 문제 해결 방안으로 갑자기 불려나온 것이다. 반갑기도 하면서 씁쓸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얘기가 나온 맥락이 뭐든 균형발전을 하겠다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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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누가 길을 묻거든 ‘지방’을 보게 하라 정희성의 시 한 구절을 흉내낸다.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지방’을 보게 하라. 여의도정치의 시야는 여전히 뿌옇기만 한데, 지방정치에서 희망의 단서를 찾아보자는 얘기다. 21대 국회는 여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막다른 골목 분위기인데 지방정치는 그렇지 않다. 과거, 여의도정치가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막장드라마로 가고 있던 그 기간에도 지방에서는 이른바 ‘협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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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표표히 떠난 김부겸과 유승민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거치면서 대구·경북은 두 명의 정치지도자를 잃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은 떨어졌고, 미래통합당 유승민은 출마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마지막 인사가 가슴을 적신다. 김부겸이 울먹이는 지지자들을 다독인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몇 주 후, 유승민이 아쉬운 표정으로 전통시장을 돈다. “자랑스러운 대구의 아들로 남겠습니다.” 둘 다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은 지역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하겠다는 얘기다. 정치인의 그저 그런 인사말로 치부하기에는 마음이 짠하다. 두 사람은 그저 그런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