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홍
산골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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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남자라는 이름으로 엊그제 설날 아침에 아내와 둘이서 차례를 지냈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한테 오지 말라고 했다. 산골 마을에는 나이 드신 어르신이 많아 혹시라도 코로나19에 걸려 안타까운 일이라도 생기면? 귀농한 지 16년이나 지났지만 산골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아직도 ‘도시에서 들어온 놈’이다. 백 번 잘하다가 한 번 잘못해도 “들어온 놈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기 쉽다. 나쁜 감정으로 하시는 말씀은 절대 아니다.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이곳에서 뿌리내리며 살고 계신 어르신들 말씀이라 잘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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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산골 마을 겨울 풍경 새해가 밝아온 지 보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산골 마을회관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지난해, 가을걷이 마무리할 무렵에 농사일에 지쳐 말할 힘도 없다는 샘골 할머니가 푸념을 늘어놓으며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이놈의 농사일은 죽어야 끝나지. 끝이 없는 자식 농사하고 똑같은 기라. 얼릉 땅이 꽁꽁 얼어붙어야 쉬지. 안 그라모 우찌 쉬겠노.” 산골 할머니들이 죽자 사자 일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나마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겨울이 있기 때문이리라. 산골 할머니들은 겨울이면 집집마다 아궁이 장작불 때놓고, 아픈 몸 이끌고 마을회관에 모인다. 수다도 떨고, 떡국과 호박죽도 끓여 먹고, <6시 내 고향>도 보고, 가벼운(?) 험담도 늘어놓으며 지낸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로 마을회관 가까이도 못 가고 있다. 오갈 데가 없어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