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최신기사
-
이선의 인물과 식물 괴테와 장미 ‘괴테는 자연과학자다’라고 하면, 많은 분이 의아해할 것이다.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독일에는 괴테가 있다. 특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나폴레옹이 몇 번씩이나 읽었던 소설로, 18세기 후반 전 유럽에 열광적인 팬덤이 형성되었던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런데 그가 사물과 현상을 단지 서정적 시선으로만 바라본 것은 아니다. 아예 동식물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철저히 탐구한 사람이 바로 괴테다. 1790년 그는 <식물변형론>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총 86쪽에 걸쳐 123절로 구성된 작은 책자에는 그가 과학자의 시선으로 식물을 관찰하고 실험한 결과가 담겨 있다. 떡잎에서 출발하여 조금씩 변해가는 식물의 성장 과정을 설명한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을 최대한 압축하여 설명하는 듯하다. 이 책의 핵심은 ‘잎이 모든 식물 기관의 출발점’이라는 명제인데, 1817년 괴테가 ‘형태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하는 데 초석이 된 책이다.
-
이선의 인물과 식물 노무현과 서어나무 식물이 사람을 만나면, 그 의미가 더 커진다. 그 사람이 임금이거나 대통령이면 더욱더 그렇다. 얼마 전 청와대가 개방되어, 역대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나무가 세상에 알려졌다. 박상진 교수의 <청와대의 나무들>에는 대통령의 기념식수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기념식수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는 자장이 자신의 게송을 듣고자 이승과 저승의 중생이 몸을 드러낸 일을 기념하려 심은 나무를 지식수(知識樹)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성계가 함흥본궁에 직접 심은 소나무와 함경도 석왕사에 심은 소나무를 수식송(手植松)이라 칭했다. <정조실록>에는 영조가 선대 임금의 능에 심은 잣나무를 구리로 에워싸게 하고서, ‘수식(手植)’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 두었다고 전한다.
-
이선의 인물과 식물 아이나르 홀뵐과 헬레보루스 사람 이름도, 꽃 이름도 생소하실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연관된 인물과 식물이지만, 그리 알려진 것은 아니다. 꽃은 알고 있었으나 아이나르 홀뵐은 필자도 처음 접하는 인물이었다. 서울 서촌의 ‘창성동 실험실’에서 열렸던 크리스마스실(seal) 전시회는 옛 추억을 소환한 반가운 전시였다. 덕분에 크리스마스실의 역사도 만날 수 있었다.
-
이선의 인물과 식물 구스타프 클림트와 장미 작품과 화가의 얼굴이 서로 매치되지 않으면, 간혹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렇다. 헐렁한 장옷에 고양이를 안고 찍은 그의 사진을 처음 본 순간, 장난기 많고 다소 거친 듯한 그의 모습이 의외였다. 과연 그가 이 나른하고 몽환적인 그림을 그린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키스>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클림트의 풍경화 중에는 1912년에 그린 <장미정원>이 있다. 그가 1912년부터 거주하던 오스트리아 빈의 주택에 딸린 장미정원을 그린 작품인데, 현재 ‘클림트 빌라’라고 불리는 곳이다. 최근에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하여 유럽의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장미정원>은 과일나무 아래로 붉은 장미들과 꽃들이 만개해 있는 이 빌라 정원을 그린 작품이다. 초록의 배경에 화려한 색의 조각들이 화면을 가득 채워, 싱그럽고 화려하다.
-
이선의 인물과 식물 연산군과 탱자나무 폭군의 대명사 연산군. <중종실록>에는 그의 죄상이 무려 4쪽에 달한다. 즉위 초에는 백성을 보살피고 국방에 주력했으나, 생모 폐비 윤씨 사건으로 온갖 폭정이 시작되었다. 꽃과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천성이었는지, 나라와 백성보다는 자신의 지취(志趣)와 향락이 우선이었다. 그야말로 ‘풍류에 진심’인 왕이었다. 그렇다고 탄핵당한 폭군으로만 치부하긴 아쉽다. 조선시대 원예사와 공연예술에 큰 족적을 남긴 임금이기 때문이다.
-
이선의 인물과 식물 앙리 루소와 열대 식물 ‘원시림의 화가’라고 하면, 아마 많은 분이 폴 고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정작 원시림의 열대 식물에 푹 빠져 지낸 사람은 앙리 루소라는 화가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그는 프랑스 출신인데, 스스로 깨우치고 궁리한 덕분에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의 초기 작품에 조금씩 등장하던 나무나 꽃들이 말년의 작품에는 아예 열대식물로 가득 찬 우거진 원시의 숲을 이룬다. 그렇다고 그가 남미나 아프리카의 열대림을 탐험하거나 여행을 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평생 프랑스는 고사하고 파리를 벗어나 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거친 바다와 열대 정글을 꿈꾸는 화가였으니, 그야말로 ‘방구석 유람’을 즐긴 진정한 와유인(臥遊人)인 셈이다.
-
이선의 인물과 식물 다산 정약용과 국화 동서고금 꽃을 좋아하는 이는 수없이 많다. 그 이유와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오감을 동원해 색깔이나 모습, 또는 향기를 품평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사람에 비유하며 꽃을 탐닉한다. 한겨울에도 꽃을 찾아 먼 길을 떠나거나 꽃과 호형호제하기도 한다. 그런데 꽃의 자태뿐 아니라 그림자마저도 완상하며 찬탄한 이가 있었으니,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산 정약용이다.
-
이선의 인물과 식물 최순우와 용담 꽃에는 서정이 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표정도 다채롭다. 화려한 제 얼굴을 자랑하듯 뽐내거나 은근하고 점잖은 모습으로 물러서 있는 꽃도 있다. 또 자기를 보아달라고 노골적으로 들이대거나 얌전하고 수줍게 서 있는 것들도 있다. 어떤 이는 화려한 색깔의 커다란 꽃을, 또 어떤 이는 조촐하고 자잘한 꽃을 선호한다. 좋아하는 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
이선의 인물과 식물 엘리자베스 2세와 머틀 ‘굿바이, 퀸.’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가 세상을 떴다. 향년 96세. 서거 이틀 전까지 화사하게 웃으며 신임 총리를 맞이했으니, 이쯤 되면 가히 호상이라 할 만하다. 23년 전 조선시대 진연(進宴)에 버금가는 여왕의 73세 생일상을 우리가 차려줬던 터라 더욱 감회가 새롭다. 여왕은 1999년 4월에 한국을 방문했다. 그중 안동 하회마을 방문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당시 안동시에서는 하회마을의 민박간판과 음식점 등을 정비하고 자판기도 철거했다. 여왕을 위한 배려가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 알 수 있다.
-
이선의 인물과 식물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해바라기 눈부신 태양과 정열을 노래한 나폴리 민요, ‘오 솔레미오’. 유럽에서도 청명한 날이 많고, 열정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이탈리아다운 민요다. 북유럽 사람들은 지중해의 태양을 그리워하여 여름이면 이탈리아를 포함한 남유럽에서 휴가를 즐긴다. 음울한 날씨의 북유럽보다 화창한 남유럽이 훨씬 더 밝고 활기차다. 그것은 사람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다.
-
이선의 인물과 식물 이미륵과 꽈리 예전에는 집 주변이나 길가에서 흔히 보았던 식물이 요즘은 무척 귀해졌다. 꽈리도 그중 하나다. 늦여름 붉은빛으로 변해 홍등(紅燈)을 연상시키는 꽃받침과 그 속의 열매는 신기한 모습이었다. 특히 붉게 익은 열매는 씨를 빼고 입에 넣어 씹으면 ‘꽈~악, 꽈~악’하며 개구리 울음소리를 내는 아이들의 노리개였다. 소싯적에 ‘꽈리 좀 씹어 보신 분’은 이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되었을 것이다. 꽈리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식물이다.
-
이선의 인물과 식물 폴 시냐크와 우산소나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온통 장안의 화제다. 사건의 결과보다 과정과 인물의 배경에 초점을 맞춘 특성 때문일까. 그 인기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 20여개국에서 넷플릭스 1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우영우 신드롬이 엉뚱한(?) 곳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극 중 등장한 ‘소덕동 당산나무’는 경남 창원에 실재하는 팽나무인데, 연일 관람객들이 몰려 인증샷을 찍으며 야단법석이다. 갑작스러운 관심에 주민들은 반가워하면서도 혹시 팽나무 생육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뭔가 유명하다고 하면 바로 몰려가 북새통을 떨다가 결딴내기 일쑤인 우리 행태를 돌아보면 괜한 걱정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