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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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넬슨 만델라와 알로에 얼마 전 넬슨 만델라가 퇴임 후 8년 동안 거주했던 요하네스버그의 저택이 호텔로 바뀌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름하여 생추어리 만델라 호텔. 이 건물은 넬슨 만델라 재단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재단 측에서 운영 자금이 필요해 호텔로 개조했다고 한다. 객실은 5개로 하룻밤 숙박료가 최고 1000달러나 된다고 하니,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생전의 그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차별과 멸시에 대하여 만델라처럼 끈질기고 강력하게 대항하여 결국 그것을 바로잡은 인물도 많지 않으리라. 무려 50년 가까이 지속되던 아파르트헤이트가 무너진 것은 그의 줄기찬 투쟁 덕분이다. 자유와 인권, 용서와 화해의 표상이 된 그는 특히 흑인 인권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인권운동가이자 정치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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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위당 정인보와 매화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위당 정인보가 작사한 삼일절 노래 가사 첫 부분이다. 정인보, 그의 삶은 오로지 역사와 민족으로 수렴된다.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신채호, 박은식 등과 독립운동을 했으며, 귀국 후에는 연희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일제의 문화 찬탈로 우리 것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일부 학자들이 나섰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정인보였다. 국학(國學)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도 바로 그였다. 연희전문학교에서 그가 강의하던 과목을 폐지하자 사임하고 낙향하였다. 그는 주체적인 역사와 문화를 바로 세워 우리 고유의 강건한 사상체계를 구축하고자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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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태조 이성계와 소나무 ‘함흥차사’로 유명한 함흥에는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살던 함흥 본궁이 있다. 왕의 자리를 물려준 뒤에 이성계는 함흥 본궁으로 돌아와 칩거하였다. 아들끼리 원수가 되어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눈앞에서 볼 수 없었던 아버지 이성계. 예나 지금이나 돈과 권력 앞에는 혈육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골육상쟁은 이성계에게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사람 대신 나무를 믿었던 것일까. 그는 그곳에 소나무를 손수 심었다. 흔히 ‘함흥본궁송’, 또는 ‘태조수식송(太祖手植松)’으로도 알려진 소나무가 그것이다. 신궁으로 알려진 그가 활을 쏠 때는 이 소나무에 항상 활을 걸어 두었다고 한다. 소나무만큼은 변치 않고 그의 곁을 지켜 주었으니, 그의 호 송헌(松軒)이 우연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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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알바 알토와 자작나무 날씨가 추워져 영하 10도를 오르내린다. 땅은 꽁꽁 얼어붙고 바람은 매섭다. 나무들도 앙상한 가지를 내놓고 벌벌 떨고 있고, 풀들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이런 추위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나무 중에는 자작나무가 으뜸이다. 한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툰드라 지방에서도 끄떡없다. 유럽에 최후의 빙하가 물러나고 습하고 나무 하나 없던 때,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것도 바로 자작나무였다. 그래서 자작나무를 흔히 ‘선구수종’이라고 한다. 현재 북유럽의 대표 수종 중 하나가 자작나무다.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숲도 유명하지만, 사람이 심은 것이다. 추위에 강해 한반도에서도 북한의 함경도나 백두산 지역에만 자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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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이태석 신부와 배추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실한 사랑은 없다.” 영국 작가 버나드 쇼의 말이다. 한때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특히 우리 음식 생각이 간절했다. 뜨끈하고 얼큰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유학생에겐 대체 불가의 음식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고달픈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보약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음식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멀리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 ‘빈(貧)만 있고 부(富)가 없어 빈부의 격차가 없는’ 그곳에서 주민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태석 신부. 성당보다는 학교를 먼저 짓고 교육과 의료 활동에 매진하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두 가지에 감탄했다.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과 ‘손만 대면 금방 터질 것 같은 투명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눈망울’이었다. 그것이 원동력이 되었을까. 그는 콜레라와 말라리아 환자로 악전고투하면서도 브라스밴드까지 조직하였다. 성직자에 교육자로, 또 의사에 지휘자까지 일인다역을 소화하느라 늘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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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순교자 카타리나와 장미 어느새 2021년의 끝자락이다.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준비하느라 늘 분주하고 들뜨기 마련이다. 게다가 성탄절이 있어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올해는 여러 상황으로 어수선하고 음울하다. 바이러스가 던진 화두를 붙잡고 전 세계인들이 벌써 2년째, ‘이 뭣고!’ 씨름 중이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의 사람과 자연을 둘러보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만하다. 온 세상이 펜데믹에 뒤덮여 우울한 연말, 성화(聖畵) 전시회가 열렸다. 서울역 인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러시아 이콘: 어둠을 밝히는 빛> 특별전이 그것인데, ‘어둠을 밝히는 빛’이라는 제목이 반갑다. 이콘(icon)은 동방정교회에서 주로 제작된 성화의 형식을 의미하며, 고대 그리스어로 형상과 모상을 뜻하는 에이콘(eikon)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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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간송 전형필과 벽오동 “서울은 그동안 제법 따뜻하더니, 금일부터 영하 4~5도로 기온이 하강하여 재작년에 심어놓은 벽오동도 얼지 말라고 짚으로 싸주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인 1961년 12월. 마침 유럽 전시를 위해 파리에 머물던 최순우에게 전형필은 벽오동의 소식을 전한다. 자신의 부재를 예감한 것일까. 전형필은 벽오동에 겨울옷을 입혀주었다. 사실 벽오동은 최순우가 유럽 출장 전에 전형필의 이현서옥 창가에 심어준 것이다. 둘 사이는 각별하여 전형필은 최순우에게 벽오동의 소식을 수시로 전하곤 하였는데, 그해를 넘기자마자 갑자기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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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브룬펠스와 브룬펠시아 정보란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때로 글보다 그림이 낫다. 동식물에 관한 정보와 감흥도 마찬가지다. 인기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 사진과 동영상 없이 내레이션 위주로 동물의 행태를 설명했다면, 이토록 장수 프로그램이 되었을까. 동식물도감도 정확한 사진과 그림이 곁든 것에 손이 먼저 간다. 시각적 이미지가 그 내용을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유럽에서 중세 이전까지 식물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활자로 전달되었다. 간혹 삽화가 포함되기도 했지만, 화가가 직접 그린 오직 한 장의 작품에 불과했다. 책을 여러 권 만들기 위해서는 필사는 물론 그 삽화를 일일이 다시 그려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릴 때마다 원화의 정확성은 떨어지고, 화가마다 자신의 화풍을 가미하여 원화의 이미지가 조금씩 변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바로 목판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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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영조와 감귤 요즘 귤이 제철이다. 대형마트에는 귤이 상자째로 쌓여 있다. 각종 과일이 연중 끊이질 않고 진열장을 채우니 과일 귀한 줄을 모르겠거니와 제철이란 의미도 무색하다. 지금이야 귤이 흔해 누구나 맛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정말 귀한 과일이었다. 임금께 진상하고 10월에 종묘에도 천신하던 과일이었으니, 서민들에겐 언감생심.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주에서 진상한 감귤이 도착하면,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황감제’라는 과거시험까지 치렀다. 숙종 때 제주 목사 이형상이 제주 곳곳을 시찰한 장면을 그린 <탐라순력도>에 귤과 관련된 장면이 등장한다. ‘감귤봉진’과 ‘귤림풍악’이라는 제목의 그림에서는 당시 감귤 관리와 과수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수확한 감귤 수량을 상세히 기록한 것을 보면, 무척 소중하게 다뤘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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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스트라디바리와 단풍나무 “그것만은 절대 공개 불가!” 맛집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인장 멘트다. 비밀 레시피와 노하우로 중무장한 유명 맛집들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비법을 전부 알려준 어느 마음씨 좋은 맛집 주인장 왈, “다 알려줘도 이 맛은 안 날 거예요.” 이 무슨 애매한 소린가! 음식에도 혼이 담겨야 제맛이 난다는 말로 이해할 만하다. 명품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을 밝히고자 전문가들이 최첨단 장비까지 동원하며 애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011년 런던 경매에서 스트라디바리의 ‘레이디 블런트’는 바이올린 경매 사상 최고가인 172억원에 낙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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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복온 공주와 모란 ‘꽃 중의 왕’이라. 모란을 이르는 말이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한때 중국의 국화(國花)로 물망에 올랐다.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뿐 아니라 모란에도 푹 빠져 살았다. 그 외에도 한·중·일의 수많은 사람이 모란을 사랑했다. ‘백화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너도나도 앞다투어 칭송했다. 고려시대에는 스님들까지 모란에 열광했는데, 모란이 상징하는 바를 알고서도 총애했는지는 알 수 없다. 모란과 관련된 수많은 인물 중에 복온(福溫) 공주를 소개하는 이유는, 모란꽃 가득 수놓은 그의 혼례복을 지금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란 이야기는 대부분 책으로만 남아 있고, 실제 인물과 관련된 유물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마침 7월 초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안녕(安寧), 모란’전이 열렸다. 모란과 관련된 유물을 마주하니 그 의미가 새롭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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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보들레르와 악의 꽃 보들레르의 <악의 꽃> 1857년 초판본이 새로 출간되었다. 표지의 범상치 않은 꽃 그림에 눈길이 먼저 갔다. 중앙에 그려진 복주머니난이 강렬하다. 이 그림을 보들레르가 요청했을까, 아니면 출판사의 제안이었을까. 젊은 날에는 어쭙잖게 시를 해석하느라 땀을 빼더니, 지금은 얼치기 기호학자가 되어 표지 그림 해석에 몇 날을 허비했다.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져도 그 배경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럴 땐 이리저리 꿰맞춰 보는 수밖에 없다. 복주머니난의 영어 이름은 ‘여인의 신발’인데, 아래쪽 꽃잎 형태가 여성의 신발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노랑복주머니난은 프랑스어로 ‘비너스의 신발’이다. 꽃말은 변덕스러운 미인이지만, 미국 시인 윌리엄 브라이언트는 죽음을 상징하는 꽃으로 표현했다. 그 꽃을 휘감아 오르며 유혹의 혀를 날름거리는 검은 뱀은 그의 뮤즈인 ‘검은 비너스’ 잔 듀발을 상징하는 것인가. 그 아래쪽에 그려진 시계꽃은 예수를 상징한다. 꽃 모양에 따라 우리는 시계꽃이라 부르지만, 유럽에서는 그리스도와 연관된 꽃으로 해석한다. 빅토르 위고를 위시한 기존의 낭만주의와 기독교적인 시학을 상징한 것인가, 아니면 종교에서 한 발짝 물러섰지만,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보들레르의 심상을 표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