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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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알바 알토와 자작나무 날씨가 추워져 영하 10도를 오르내린다. 땅은 꽁꽁 얼어붙고 바람은 매섭다. 나무들도 앙상한 가지를 내놓고 벌벌 떨고 있고, 풀들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이런 추위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나무 중에는 자작나무가 으뜸이다. 한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툰드라 지방에서도 끄떡없다. 유럽에 최후의 빙하가 물러나고 습하고 나무 하나 없던 때,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것도 바로 자작나무였다. 그래서 자작나무를 흔히 ‘선구수종’이라고 한다. 현재 북유럽의 대표 수종 중 하나가 자작나무다.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숲도 유명하지만, 사람이 심은 것이다. 추위에 강해 한반도에서도 북한의 함경도나 백두산 지역에만 자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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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이태석 신부와 배추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실한 사랑은 없다.” 영국 작가 버나드 쇼의 말이다. 한때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특히 우리 음식 생각이 간절했다. 뜨끈하고 얼큰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유학생에겐 대체 불가의 음식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고달픈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보약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음식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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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순교자 카타리나와 장미 어느새 2021년의 끝자락이다.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준비하느라 늘 분주하고 들뜨기 마련이다. 게다가 성탄절이 있어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올해는 여러 상황으로 어수선하고 음울하다. 바이러스가 던진 화두를 붙잡고 전 세계인들이 벌써 2년째, ‘이 뭣고!’ 씨름 중이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의 사람과 자연을 둘러보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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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간송 전형필과 벽오동 “서울은 그동안 제법 따뜻하더니, 금일부터 영하 4~5도로 기온이 하강하여 재작년에 심어놓은 벽오동도 얼지 말라고 짚으로 싸주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인 1961년 12월. 마침 유럽 전시를 위해 파리에 머물던 최순우에게 전형필은 벽오동의 소식을 전한다. 자신의 부재를 예감한 것일까. 전형필은 벽오동에 겨울옷을 입혀주었다. 사실 벽오동은 최순우가 유럽 출장 전에 전형필의 이현서옥 창가에 심어준 것이다. 둘 사이는 각별하여 전형필은 최순우에게 벽오동의 소식을 수시로 전하곤 하였는데, 그해를 넘기자마자 갑자기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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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브룬펠스와 브룬펠시아 정보란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때로 글보다 그림이 낫다. 동식물에 관한 정보와 감흥도 마찬가지다. 인기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 사진과 동영상 없이 내레이션 위주로 동물의 행태를 설명했다면, 이토록 장수 프로그램이 되었을까. 동식물도감도 정확한 사진과 그림이 곁든 것에 손이 먼저 간다. 시각적 이미지가 그 내용을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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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영조와 감귤 요즘 귤이 제철이다. 대형마트에는 귤이 상자째로 쌓여 있다. 각종 과일이 연중 끊이질 않고 진열장을 채우니 과일 귀한 줄을 모르겠거니와 제철이란 의미도 무색하다. 지금이야 귤이 흔해 누구나 맛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정말 귀한 과일이었다. 임금께 진상하고 10월에 종묘에도 천신하던 과일이었으니, 서민들에겐 언감생심.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주에서 진상한 감귤이 도착하면,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황감제’라는 과거시험까지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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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스트라디바리와 단풍나무 “그것만은 절대 공개 불가!” 맛집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인장 멘트다. 비밀 레시피와 노하우로 중무장한 유명 맛집들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비법을 전부 알려준 어느 마음씨 좋은 맛집 주인장 왈, “다 알려줘도 이 맛은 안 날 거예요.” 이 무슨 애매한 소린가! 음식에도 혼이 담겨야 제맛이 난다는 말로 이해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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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복온 공주와 모란 ‘꽃 중의 왕’이라. 모란을 이르는 말이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한때 중국의 국화(國花)로 물망에 올랐다.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뿐 아니라 모란에도 푹 빠져 살았다. 그 외에도 한·중·일의 수많은 사람이 모란을 사랑했다. ‘백화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너도나도 앞다투어 칭송했다. 고려시대에는 스님들까지 모란에 열광했는데, 모란이 상징하는 바를 알고서도 총애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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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보들레르와 악의 꽃 보들레르의 <악의 꽃> 1857년 초판본이 새로 출간되었다. 표지의 범상치 않은 꽃 그림에 눈길이 먼저 갔다. 중앙에 그려진 복주머니난이 강렬하다. 이 그림을 보들레르가 요청했을까, 아니면 출판사의 제안이었을까. 젊은 날에는 어쭙잖게 시를 해석하느라 땀을 빼더니, 지금은 얼치기 기호학자가 되어 표지 그림 해석에 몇 날을 허비했다.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져도 그 배경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럴 땐 이리저리 꿰맞춰 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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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정조와 석류나무 어느새 추석이 다가왔다. 설 차례가 조상께 드리는 새해 문안 인사라면, 추석 차례는 그간의 경과 보고인 셈이다. 그래서 더욱 풍성하다. 원래는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중구, 동지 등 주요 명절에 차례를 지냈으나 일제강점기 ‘의례준칙’에 따라 설과 추석에만 차례를 지내는 관행이 시작되었다. 차례에는 전통적인 과일을 올리지만, 요즘은 고인이 평소 좋아하시던 과일을 올리기도 한다. 바나나는 기본이고 열대과일인 파인애플, 심지어 망고도 등장하였다. 차례상도 세계화 추세에 발맞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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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오이정(吳以井)과 배롱나무 ‘오이정(吳以井)’ 하면 아마 금방 떠오르지 않는 인물일 테지만, 명옥헌 하면 ‘아하, 그 배롱나무가 흐드러지게 피는 정자!’ 하고 바로 알아채는 분들이 많으리라. 명옥헌 하면 배롱나무, 배롱나무 하면 명옥헌이다. 그만큼 명옥헌은 배롱나무와 짝을 이룬 대표적인 여름 원림이라 할 만하다. 이쯤 되면 배롱나무가 명옥헌의 주인인 듯하여 정작 진짜 주인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명옥헌을 조성한 사람이 바로 오이정이다. 광해군 때 낙향하여 담양 고서면 목맥산 기슭에 조촐한 서재를 짓고 살던 아버지 오희도가 세상을 뜨자, 아들 오이정이 그 자리에 명옥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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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보리스 토킨과 편백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요즈음은 실내보다 야외가 안전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 한복판의 인왕산도 주말이면 붐빈다. 사람 많은 해수욕은 아직 위험하고, 일광욕은 자외선이 무섭다. 이럴 땐 삼림욕이 제격이다. ‘숲속의 공기 샤워’라 할 수 있는 삼림욕은 숲에서 발생하는 피톤치드도 한몫을 한다. 피톤치드는 식물을 뜻하는 피톤(phyton)과 죽이다라는 뜻의 치드(cide)의 합성어로 식물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곰팡이 등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내뿜는 물질이다. 이 용어는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의 생화학자 보리스 토킨 박사가 1930년경에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시장에서 사람이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조리한 음식을 먹고도 탈이 나지 않는 것에 주목하였다. 이는 식자재에 포함된 채소와 향신료의 항균 물질 때문인 것을 밝혀내고 그 물질을 피톤치드라 명명하였다. 양파와 마늘 용액이 항균 효과가 뛰어나다는 그의 연구에 따라 의약품이 부족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이 용액이 상처 치료에 널리 사용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