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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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문화강국의 출발점 ‘효창공원’ 제주 4·3항쟁이 분단을 막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통일운동이었다면, 백범 김구의 남북협상은 분단을 막기 위한 위로부터의 통일운동이었다. 1949년 6월 반민특위 습격, 국회 프락치 사건, 백범 암살로 이어진 ‘6월 공세’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중심으로 한 분단 세력이 일으킨 친위쿠데타였다. 식민지 지배와 분단과 군사독재의 삼중고를 당하면서도 이 땅의 시민들은 소설 <파친코>의 선자처럼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며 ‘중꺾마’를 잃지 않았고,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살암시민 살아진다”의 삶을 저마다 살아냈다. 이런 이들이었기에 여의도에서 시민들이 계엄군보다 더 빨리 국회에 달려가는 기적을 이룰 수 있었고, 힘없는 사람들의 조건 없는 연대를 통해 ‘남태령 대첩’을 거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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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밥’과 역사전쟁 역사전쟁이 ‘또’ 벌어졌다. 돌이켜보면 2015년 국정교과서 대전, 2008년 이명박 정권 당시의 근현대사 교과서 논쟁,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실패 후 뉴라이트의 총공세 등 21세기 들어 벌써 네 번째이다. 이번 전쟁은 제발 국지전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는데, 다행히 논쟁의 한 축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점령군이냐 아니냐. 역사적인, 국제법적인 논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발을 빼는 형국이다. 전쟁사를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충돌의 발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군이 점령군이냐 여부도 사실 학문적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문제였다. 미국 정부도, 맥아더도, 미군정 당국도, 이승만을 비롯한 우익지도자들도, 당시의 주요 언론들도 모두 미군을 점령군이라 칭했는데, 이제와 미군을 점령군이라 부르면 대한민국이 부정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