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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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폐허가 된 절터를 지키는 나무 사람이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 처음 뿌리내린 곳에서 사람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이 나무의 운명이다. 가뭇없이 사라진 사람살이의 터전에서 옛사람의 자취를 찾는 데에 나무를 기준점으로 삼는 건 그래서다. 원주 부론면에는 오래전에 마을 살림살이의 중심이었던 큰 절집 법천사(法泉寺)의 이름을 따 ‘법천리’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의 중심은 휑뎅그렁하게 남은 폐허의 절터다. 절터 한편에 옛 스님의 탑비가 남아 있긴 하지만, 사람살이의 다른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거짓말처럼 사라진 절집의 내력을 알고 있는 건 오로지 한 그루의 늙은 느티나무뿐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크리스마스 즈음 돋보이는 호랑가시나무 겨울 채비를 마치고 거개의 나무들이 적막에 드는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유난스레 돋보이는 나무가 있다. 호랑가시나무다. 상록성의 초록 잎 사이의 빨간 열매가 도드라지는 호랑가시나무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겨울나무’ 혹은 ‘크리스마스 나무’다. 잎 가장자리의 가시가 호랑이 발톱을 닮았다 해서 호랑가시나무라고 이름 붙인 나무인데, 일부 지방에서는 얼기설기 엮은 가지로 호랑이가 등을 긁을 때 쓸 만하다 해서, 호랑이등긁개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마지막 주막을 지켜온 회화나무 1300리 낙동강 줄기가 스쳐지나는 예천 강변에는 이 땅의 마지막 주막으로 불리는 ‘삼강주막’이 있다. 주모라는 이름의 여인이 지켜온 명실상부한 주막이다. 낙동강 내성천 금천에서 흘러나오는 세 강물이 하나로 만나는 자리여서 삼강(三江)이라 불리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다. 강 위로 삼강교라는 육중한 다리가 놓이고 옛 나루터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50년 전까지만 해도 삼강나루터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번화한 나루터였고, 나루터 주막은 영남 지역 보부상들에게 최고의 쉼터였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사람 발소리를 들으며 자라는 나무 나무들이 붉거나 노랗게 물들었던 잎들을 내려놓는 조락의 계절이다. 겨울나기 채비를 마쳤다는 신호다. 이제 씨앗을 품은 열매를 튼실하게 키우는 데에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겨울잠에 들어야 한다. 낙엽을 마치면 나무의 열매가 눈에 들어올 차례다. 어미를 떠나 더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세계를 펼쳐나가기 위해 열매는 사람에게 혹은 초식동물의 눈에 들어야 한다. 잎 떨군 나뭇가지 위에 남은 빨간 까치밥이 눈에 띄는 것도 그래서다. 더불어 맛도 좋아야 한다. 맛이 제대로 들어야 사람이든 새든 짐승이든 찾아와 그의 씨앗을 옮겨줄 것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정성으로 살려낸 방학동 은행나무 한 그루의 나무에 넓은 땅을 내어주는 게 불가능하리라 여겨지는 서울 도심에서 이례적으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살아가는 600년 된 큰 은행나무가 있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다. 하늘 향해 25m까지 솟아오른 나무는 지름 20m가 넘는 원형 공간의 땅을 홀로 차지했다. 이 나무는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을 피해 여주로 떠날 때 치성을 올린 나무라고도 하고, 조선 후기 경복궁 증축 때 징목(徵木) 대상에 선정되어 베어내야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대원군에게 간청하여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대감 나무’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여졌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백성의 삶 배려한 선비의 나무 나무는 매오로시 사람살이를 고스란히 담는다. 비단이 재산의 척도이던 시절, 누에의 먹이인 뽕잎을 얻기 위해 키운 뽕나무도 그런 나무이건만 세월 흐르며 뽕나무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뽕나무 가운데에 가장 크고 아름다운 나무는 단연 강원 정선군청 앞에 서 있는 한 쌍의 뽕나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단종 때에 호조참판을 지내던 제주 고씨 중시조 고순창이다. 단종 폐위와 함께 낙향한 그는 살림집을 짓고 대문 앞에 한 쌍의 뽕나무를 심었다. 소나무 회화나무처럼 학문과 권력 혹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온 나무들과 달리 남녀상열지사의 상징이거나 나무 이름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인 뽕나무를 선택했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제사장 단군의 제사 터 지키는 나무 하늘이 처음 열린 날을 기리기 위해 단군은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 제단을 쌓고 제를 올렸다. 사람이 보금자리를 틀 수 있도록 세상을 열어준 하늘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제사이자 축제다. 하늘과 사람이 어우러진 제사 터를 지키는 건 한 그루의 소사나무다. 기록이 없어서 누가 일부러 심어 키운 것인지, 지나는 새들이 씨앗을 물어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제단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꾸미기 위해 자리를 신중히 골라 심은 것처럼 참성단 돌축대 위에 우뚝 서 있는 소사나무 풍광은 볼수록 절묘하다. 주로 서해안과 남해안의 산기슭에 자생하는 소사나무는 강화도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우리의 토종나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정삼품 벼슬 받은 천년 은행나무 큰비와 태풍이 남긴 상처가 깊은 탓에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을 재우치게 된다. 사람의 성마름과 다르게 나무들은 천천히 가을을 채비한다. 단풍이야 아직 이르지만, 잎 위의 짙은 초록은 서서히 힘을 내려놓는 게 눈에 들어오는 즈음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고 노란 단풍이 짙어지며 가을로 화려해지리라. 노란 단풍으로 아름다운 은행나무 가운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는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다. 무엇보다 규모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몇 그루의 은행나무 가운데 한 그루다. 높이가 무려 42m에 이르고, 가슴 높이 줄기 둘레는 14m나 된다. 평균적인 아파트 14층 높이와 어른 8~10명이 둘러서야 겨우 나무 둘레에서 손을 맞잡을 수 있을 만큼 큰 나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큰 나무의 태풍 대비 전략 태풍은 벼락과 함께 들녘에 홀로 우뚝 서 있는 큰 나무의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이다. 몰려오는 큰 바람을 막을 수도, 피해 달아날 수도 없다. 버텨야 한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태풍을 못 이겨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힌 큰 나무 소식을 마주치게 된다. 키가 크고 곧게 자라는 나무들은 바람에 맞서 싸우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의 몸을 바꾸어 왔다. 흔히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높이 솟아오른 키 큰 나무들로서는 그저 깊이 내린 뿌리만으로 큰 바람을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깊게 내려야 할 뿌리를 옆으로 넓게 뻗는 게 바람을 버티는 데 더 효과적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2억5000만원 들인 팽나무의 이사 마을의 살림살이가 그때 창졸간에 무너앉았다. 부산 가덕도 바닷가, 평화롭게 살아가던 율리마을에서 벌어진 10여년 전의 사건이다. 갯벌에 지천으로 널린 조개를 캐며 이어가던 마을의 풍요는 산산조각났다. 갯벌이 갈아엎어지고, ‘가덕도 일주도로’라는 자동차전용도로가 놓이게 됐다. 먹고사는 일이 묘연해졌다. 돌아보면 지치고 힘들던 때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고단한 마음을 붙잡아준 건 ‘할배, 할매’라는 이름으로 500년 동안 사람살이를 지켜준 팽나무 한 쌍(사진)이었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70년 만에 꽃 피운 물푸레나무 북유럽 신화에서 세상을 연 건 한 그루의 나무였다. 땅 깊은 곳에서 한 그루의 나무가 기지개를 켜고 하늘을 들어올리며 세상이 열렸다. 이른바 우주목 신화다. 이그드라실이라고 불리던 이 물푸레나무는 최고의 신 ‘오딘’이 사람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였다. 라그나로크 전쟁을 치른 오딘은 이그드라실의 가지 하나를 잘라내 사람을 지었다. 결국 신화에서 물푸레나무는 세상을 열고 생명을 지은 최고의 나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여름에 아름다운 병산서원 배롱나무 배롱나무의 계절, 붉은 여름이다. 여름에 백일 넘게 붉은 꽃을 피워서 ‘백일홍나무’라고 부르다가 배롱나무라는 남다른 이름을 얻은 이 나무는 햇살 뜨거운 여름이면 가지 끝에서 고깔 모양의 붉은 꽃차례를 피운다. 주름투성이의 꽃잎 6장 안쪽에 40개의 수술이 돋는데, 가장자리에 자리한 6개의 노란 수술이 유난히 길어서 아름답다. 대개는 붉은빛이지만, 흰색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어 따로 흰배롱나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