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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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역사의 자취 아로새겨진 자연유산 충북 제천 송학면 무도리 서문마을에 들어서려면 먼저 마을 동쪽을 둘러싼 낮은 산을 바라보아야 한다. 고려 패망의 역사를 담은 왕박산(王朴山)이다. 이곳으로 피신한 고려 왕족은 성을 박씨(朴氏)로 고치고 은둔했다. 왕족이 박씨로 성을 갈았다 해서 왕박씨, 그 뒷산을 왕박산이라고 불렀다.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 <추강냉화(秋江冷話)>에 전하는 이야기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천년고찰을 지킨 천년의 숲 동백나무 꽃 피는 시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다. 제주도, 부산을 비롯한 남해안 지역에서는 12월이면 피어나지만, 이제 겨우 꽃봉오리를 꿈틀거리며 피어날 채비를 마친 곳이 많다. 아무래도 우거진 동백나무숲에 들어 동백꽃의 진수를 느끼려면 삼월 중순이 지나야 한다.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나무숲으로는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사진)’을 첫손에 꼽을 만하다. 백련사는 원묘(圓妙)국사 요세(了世·1163~1245)가 이끌었던 고려 후기의 신앙운동 결사체인 백련결사로부터 시작한 천년고찰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명마를 추모하며 꽂아둔 채찍 경북 청송 안덕면 명당리에는 임진왜란 때 왜적을 용맹하게 물리친 임씨 성의 명장이 있었다. 승마의 달인이었던 그가 타는 말은 천리 만리를 달리고도 지치지 않는 명마로, 거침없이 전쟁터를 달리며 왜적들 사이를 누볐다. 말을 타고 달리는 임 장군의 모습이 하도 강렬해서 왜적들은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꽁무니를 뺐다고 한다. 그러나 장군의 말도 전쟁 중에 왜적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임 장군은 말의 무덤을 짓고, 용맹한 말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이 무덤을 사람들은 ‘마능지’라고 불렀다. 장군은 또 말 무덤인 마능지 앞에 말과의 소통을 이어주던 채찍을 꽂으며 말의 죽음을 추모했다. 놀랍게도 그 채찍이 얼마 뒤에 살아나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됐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사람살이 교훈 위해 심은 향나무 돌아가신 어버이를 기억하기 위해 심어 키운 나무가 있다. 신비로운 생김새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연기 봉산동 향나무’(세종시 조치원읍)다. 나무 위쪽으로 삐죽 내민 가지까지 합쳐봐야 고작 3m밖에 안 되는 낮은 키의 이 향나무가 보여주는 경이로움은 옆으로 넓게 드리운 나뭇가지 아래쪽에 있다. 뿌리에서 올라온 줄기 맨 아래에서부터 비틀리며 솟아오른 나뭇가지는 그 자체로 용틀임을 연상하게 하며 사방으로 11m 넘게 펼쳤다. 나무 높이의 4배 가까운 폭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마방의 흔적 지켜온 국내 최고의 밤나무 한 그루의 큰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집에서 태어나 그 나무를 바라보며 살던 사람이 그곳을 떠났다. 강원 평창 방림면의 산골마을 운교리 지방도로변 낮은 동산에 서 있는 밤나무와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길손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식당집 주인장 이야기다. 밤나무 가운데 유일하게 2008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평창 운교리 밤나무’.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뒤에 식당 건물을 헐어내자 주변 풍광은 휑뎅그렁해졌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폐허가 된 절터를 지키는 나무 사람이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 처음 뿌리내린 곳에서 사람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이 나무의 운명이다. 가뭇없이 사라진 사람살이의 터전에서 옛사람의 자취를 찾는 데에 나무를 기준점으로 삼는 건 그래서다. 원주 부론면에는 오래전에 마을 살림살이의 중심이었던 큰 절집 법천사(法泉寺)의 이름을 따 ‘법천리’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마을의 중심은 휑뎅그렁하게 남은 폐허의 절터다. 절터 한편에 옛 스님의 탑비가 남아 있긴 하지만, 사람살이의 다른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거짓말처럼 사라진 절집의 내력을 알고 있는 건 오로지 한 그루의 늙은 느티나무뿐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크리스마스 즈음 돋보이는 호랑가시나무 겨울 채비를 마치고 거개의 나무들이 적막에 드는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유난스레 돋보이는 나무가 있다. 호랑가시나무다. 상록성의 초록 잎 사이의 빨간 열매가 도드라지는 호랑가시나무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겨울나무’ 혹은 ‘크리스마스 나무’다. 잎 가장자리의 가시가 호랑이 발톱을 닮았다 해서 호랑가시나무라고 이름 붙인 나무인데, 일부 지방에서는 얼기설기 엮은 가지로 호랑이가 등을 긁을 때 쓸 만하다 해서, 호랑이등긁개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마지막 주막을 지켜온 회화나무 1300리 낙동강 줄기가 스쳐지나는 예천 강변에는 이 땅의 마지막 주막으로 불리는 ‘삼강주막’이 있다. 주모라는 이름의 여인이 지켜온 명실상부한 주막이다. 낙동강 내성천 금천에서 흘러나오는 세 강물이 하나로 만나는 자리여서 삼강(三江)이라 불리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다. 강 위로 삼강교라는 육중한 다리가 놓이고 옛 나루터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50년 전까지만 해도 삼강나루터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번화한 나루터였고, 나루터 주막은 영남 지역 보부상들에게 최고의 쉼터였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사람 발소리를 들으며 자라는 나무 나무들이 붉거나 노랗게 물들었던 잎들을 내려놓는 조락의 계절이다. 겨울나기 채비를 마쳤다는 신호다. 이제 씨앗을 품은 열매를 튼실하게 키우는 데에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겨울잠에 들어야 한다. 낙엽을 마치면 나무의 열매가 눈에 들어올 차례다. 어미를 떠나 더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세계를 펼쳐나가기 위해 열매는 사람에게 혹은 초식동물의 눈에 들어야 한다. 잎 떨군 나뭇가지 위에 남은 빨간 까치밥이 눈에 띄는 것도 그래서다. 더불어 맛도 좋아야 한다. 맛이 제대로 들어야 사람이든 새든 짐승이든 찾아와 그의 씨앗을 옮겨줄 것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정성으로 살려낸 방학동 은행나무 한 그루의 나무에 넓은 땅을 내어주는 게 불가능하리라 여겨지는 서울 도심에서 이례적으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살아가는 600년 된 큰 은행나무가 있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다. 하늘 향해 25m까지 솟아오른 나무는 지름 20m가 넘는 원형 공간의 땅을 홀로 차지했다. 이 나무는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을 피해 여주로 떠날 때 치성을 올린 나무라고도 하고, 조선 후기 경복궁 증축 때 징목(徵木) 대상에 선정되어 베어내야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대원군에게 간청하여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대감 나무’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여졌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백성의 삶 배려한 선비의 나무 나무는 매오로시 사람살이를 고스란히 담는다. 비단이 재산의 척도이던 시절, 누에의 먹이인 뽕잎을 얻기 위해 키운 뽕나무도 그런 나무이건만 세월 흐르며 뽕나무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뽕나무 가운데에 가장 크고 아름다운 나무는 단연 강원 정선군청 앞에 서 있는 한 쌍의 뽕나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단종 때에 호조참판을 지내던 제주 고씨 중시조 고순창이다. 단종 폐위와 함께 낙향한 그는 살림집을 짓고 대문 앞에 한 쌍의 뽕나무를 심었다. 소나무 회화나무처럼 학문과 권력 혹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온 나무들과 달리 남녀상열지사의 상징이거나 나무 이름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인 뽕나무를 선택했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제사장 단군의 제사 터 지키는 나무 하늘이 처음 열린 날을 기리기 위해 단군은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 제단을 쌓고 제를 올렸다. 사람이 보금자리를 틀 수 있도록 세상을 열어준 하늘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제사이자 축제다. 하늘과 사람이 어우러진 제사 터를 지키는 건 한 그루의 소사나무다. 기록이 없어서 누가 일부러 심어 키운 것인지, 지나는 새들이 씨앗을 물어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제단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꾸미기 위해 자리를 신중히 골라 심은 것처럼 참성단 돌축대 위에 우뚝 서 있는 소사나무 풍광은 볼수록 절묘하다. 주로 서해안과 남해안의 산기슭에 자생하는 소사나무는 강화도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우리의 토종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