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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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한국 정치의 국제감각 여권의 잇따른 우크라이나 비하 발언이 논란거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25일 방송된 토론회에서 “6개월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공언”해 러시아의 침공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도력 부족한 코미디언 출신”이라며 거들고 나섰다. 정치 경력 짧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집권할 경우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리스크가 고조될 것이라고 주장하려다 결사항전 중인 젤렌스키 대통령과 맨몸으로 러시아 탱크를 저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모욕한 셈이다. 비판이 잇따르자 이 후보는 다음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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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이동권 확대는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화 사회 위한 미래 투자”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배우고, 일하고, 사랑하는 모든 경험은 이동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은 이동을 통해 타인 및 사회와 온전히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묶어놓은 시·공간적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이동 능력은 현대사회의 필수자원이고, 이동할 수 있는 권리는 기본권으로 꼽힌다. 이 당연한 얘기가 120만명, 그러니까 광역시 인구에 맞먹는 국내 지체장애인에게는 아직도 먼 얘기다. 1984년 휠체어 이용 장애인 김순석씨가 ‘서울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쓰고 세상을 등졌지만, 서울시내 횡단보도 턱을 비롯한 보행불편 사례는 지난해에만 7만건이 넘는다. 2001년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망 사건 이후 장애인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고 도로·철로를 점거하고서야 2005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만들어졌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택시도 버스도 지하철도 타기 힘들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교통약자법 관련 예산 확충을 요구하며 3개월째 지하철 출퇴근길 시위를 벌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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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가로수 가지치기 가지치기는 해를 향해 무성히 뻗으려는 나무의 본능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길들이는 작업이다. 가지치기를 뜻하는 영어 ‘pruning’의 어원은 ‘둥글게 다듬어진’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rotundus’다. 농경만큼이나 오래됐다. 4500년 전 요르단의 올리브농장 유적에서는 나무를 다듬는 손바닥 크기의 돌칼이 발굴된 바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포도나무가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성장통으로 묘사한다. 나무는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에 낙엽 지고, 겨울에 휴면하는데 가지치기는 이때가 제철이다. 가지 많은 나무보다는 빛과 바람이 잘 통하는 나무가 잘 자란다. 가지치기를 할 때는 병든 가지가 1순위다. 광합성을 하지 못해 죽은 나뭇가지는 나무의 흉터인 옹이가 되므로 자른다.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거나 맞닿은 가지도 마찬가지다. 나무와 평행하게 위로 뻗는 가지도 바람직하지 않다. 꼭대기 자리를 놓고 두 가지가 경쟁할 때는 튼튼한 하나만 남겨둔다. 너무 낮거나, 기둥을 향해 난 가지도 잘라낸다. 나무로서는 말 그대로 ‘뼈를 깎는’ 스트레스다. 잘못하면 뿌리까지 세균이나 곰팡이, 박테리아에 감염돼 죽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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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촬영장의 말(馬)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장면 촬영에 동원된 말이 7일 만에 죽어 동물학대 논란이 빚어졌다. 현장 영상을 보면 전력질주하던 말은 제작진이 발목에 묶어놓은 와이어 때문에 머리부터 땅으로 고꾸라졌다. 심한 충격에 목이 꺾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진감 넘치는 장면 하나 찍으려 말을 계획적으로 희생시킨 셈이다.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동물권 인식 수준이 개탄스럽다. 말의 지능지수(IQ)는 70~80으로 개와 비슷하다. 사람으로는 세 살 아이 수준이다. 이탈리아 피사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거울테스트 결과 말도 사람처럼 자기인식 능력을 보였다. 감정지능은 사람보다 더 높아서 겉말이 아닌 속마음을 읽는다고 한다. 김유신의 애마는 발길을 끊겠다고 선언한 천관녀 집에 만취한 그를 데려다놨다가 억울하게 목이 베였다. 말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동물 매개 치료도 있다. 서커스 ‘카발리아’는 사람과 교감하는 수십 마리의 말이 주인공이다. 올림픽 승마경기에서는 말도 어엿한 선수다. 사람이 메달을 받을 때 말은 리본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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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안네의 밀고자 누가 은신처의 안네 프랑크 가족을 밀고했을까. 전직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중심이 된 전문 조사팀이 6년간의 조사 끝에 같은 유대인 출신의 공증인 아르놀트 판덴베르크가 밀고자라고 밝혔다. 유대인 조직의 일원으로 동족들의 비밀주소 목록 접근권을 가진 그가 정보를 나치에 넘겼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암스테르담의 한 건물에서 2년간 숨어지낸 과정을 기록해 나치의 잔혹성을 폭로한 <안네의 일기>.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던 일가족은 누군가의 밀고로 강제수용소로 잡혀가 아버지 오토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해방을 코앞에 둔 1945년 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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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정치인들, 남녀 갈라치는 역사적 중범죄…청년층 뭉쳐 싸워야”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N포세대’ 신조어를 낳은 2011년 경향신문 기획취재에 방향성을 제시한 학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출생률과 가장 높은 자살률 위기의 뿌리에 가족에 복지를 떠넘긴 개발주의 국가가 있다는 그의 ‘압축적 근대성’ 이론은 한국 사회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했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충격에 대해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인왕산로 초소책방에서 만난 그는 “시일야방성대곡(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울분을 표현한 논설)이라도 쓰고 싶을 정도”라며 빼곡하게 채워놓은 B5 크기 메모지 10여장을 슬링백에서 꺼냈다. “정치인들이 남녀를 갈라치는 역사의 중범죄를 짓고 있다”고 말문을 연 장 교수는 2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시종 비판과 개탄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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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수요시위 30돌 TV 화면에서 할머니들을 본 게 벌써 30년 전이다. 일제강점기, 소녀였던 그들은 일본군에 의해 낯선 땅으로 끌려가 성착취를 당했다. 그러곤 할머니가 되어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다. 전쟁은 약자에게, 특히 여성에게 잔혹했다. 전쟁 성폭력에 짓밟히고도 꿋꿋하게 생존해 고통을 증언하는 그들에게 경외심을 느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시민사회가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한 것은 1992년 1월8일 수요일이었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오로지 일본 정부의 사과였다. 시위는 손을 에는 추위에도, 발이 젖는 폭우에도 매주 수요일 같은 장소에서 어김없이 열렸다. 서른 돌을 맞은 5일 수요시위까지 모두 1525차례, 단일주제로는 세계 최장기록이다. 경제적 보상만을 바랐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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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돈 룩 업’ 전 세계 넷플릭스 1위를 기록 중인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6개월 뒤 거대 혜성과 충돌해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궤멸당할 위기라는 과학자들의 경고에도 주판알만 튕기는 정치, 기업, 언론을 풍자한 블랙코미디다. 재선을 노리는 대통령은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현실을 외면한다. 빅테크 기업가에게는 혜성에 매장된 광물 확보가 인류의 안전보다 우선이다. 시청률과 클릭수에 중독된 매체들은 반년 뒤 닥칠 지구 멸망보다 연예인 결별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룬다. 이런 사회 지도층의 어처구니없는 대응에 혜성의 최초 발견자인 대학원생은 절망한다. 결국 혜성이 지구 가까이 접근하면서 모두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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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자영업자 지원, 확대해야 한다 코로나19로 헝클어진 한 해가 고작 열흘 남짓 남았구나, 터덜터덜 퇴근하다가 동네 어귀에 신장개업한 꼬치구이집의 창문 쪽으로 눈길이 흘러갔다. 지난주만 해도 불콰한 얼굴로 생맥주잔을 기울이는 시끌벅적한 손님들로 만석이던 가게엔 고작 2명의 손님만이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례없는 역병이 잦아들 것이라는 희망 속에 용감하게 가게를 내고, 재료를 준비하며 손님을 기다렸을 젊은 사장에게 연말 대목의 꿈은 고강도 방역지침으로 손가락 사이 흘러나간 모래가 됐다. 그 가게 자리에 1년쯤 근근이 버티다 폐업한 술집 주인, 그에 앞서 폐업한 건너편 음식점 주인은 다들 안녕하신지,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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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존엄과 사이다 인도 북부 러크나우에 있는 ‘바라 이맘바라’는 1784년 대흉작에 고통받던 백성들을 위해 공공일자리를 제공하려 아와드의 왕 아사프 우드 다울라가 벌인 당대의 ‘뉴딜 사업’이었다. 용도가 뚜렷하지 않은 목적의 이 거대 건축물은 완공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는데, “낮에는 백성들이 건물을 짓고, 밤에는 지배층이 건물을 다시 부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흉작으로 역시 형편이 어려워진 귀족계급들이 일할 때는 어두운 밤으로 이목을 가리고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브히지트 바네르지는 “도움을 줄 때는 도움받는 사람의 존엄을 최대한 지켜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이 일화에서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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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오징어 게임’과 자본주의 인기 작품은 시대의 정서를 반영한다. <오징어 게임>도 그렇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들이 상금 456억원을 놓고 유혈이 낭자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한국 드라마가 24일 기준 전 세계 43개국 넷플릭스에서 최다 시청을 기록했다. 내용은 매우 냉소적이다. 경제적 패자인 참가자들은 단 한 명의 승자만 일확천금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간다. 자본사회의 승자들은 ‘돈이 너무 많아 사는 재미가 없어서’ 게임판을 조장한다. 유사한 설정의 2000년작 일본영화 <배틀로얄>에서 참가 학생들이 무너진 공교육 복원을 위한 희생양으로 강제동원된 것과 비교하면 목적은 더 얄팍하고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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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경계청년을 착취하는 사회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던 지난주 인천에서 전단 아르바이트 중 사망한 20대 청년의 사인은 열사병이라고 했다. 성실했으나 가난했던 이의 죽음은 청년들이 내몰린 취업도 실업도 아닌 ‘경계’의 고단함을 드러낸다. 네모난 음식가방을 짊어진 배달원들, 편의점 계산대의 청년들, 공장과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많은 단기노동자들이 더 나은 일자리와 미래를 희망하며 코로나19의 무게까지 가중된 불확실성을 버텨내는 중이다. 이 같은 경계청년들의 규모는 지난해 기준 청년 확장경제활동인구 약 482만명 가운데 실업자를 포함해 121만명에 달한다. 청년 4명 가운데 1명이다. 올해 취업준비생은 85만9000여 명으로 역대 최고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