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영
논설위원
최신기사
-
여적 자원봉사 ‘가뭄’ 올해 자원봉사 활동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집계를 보면, 전국 사회복지기관에 등록된 자원봉사자는 전체 인구의 약 18%인 920만명이지만, 지난달까지 실제 봉사활동에 참여한 비율은 이들 중 6% 선에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20% 선이던 수치가 3분의 1로 줄었다. 신규 등록 봉사자 숫자도 정체됐다. 자원봉사 인력 공백이 계속되다가는 취약계층 복지에 구멍이 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원래 한국은 농경문화 뿌리 위에 이웃끼리 상부상조하고 연대하는 협동문화의 전통이 깊다. 국가 주도로 1960년대 적십자운동,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있었고, 1980년대부터는 민간 주도로 풀뿌리 자원봉사 활동이 본격화됐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람들은 돈 한 푼 받지 않고도 스스럼없이 나섰다.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대표적이다. 전국에서 모인 연인원 123만명의 남녀노소가 강추위에도 ‘검은 재앙’으로 뒤덮인 해안에서 기름을 퍼내고 흡착포로 닦아 복구하는 기적을 일궜다. “부모님이 너 한명 간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하셨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왔는데 참 보람 있었다”는 당시 한 고교생 말은 참가자 대부분의 마음을 담고 있다.
-
여적 ‘누칼협’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마음이 병든다. 다른 사람에게 거부당했을 때의 고통과 신체적 고통을 뇌는 같은 부위에서 인식한다. 나홀로 생존이 어려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유대관계를 맺도록 진화한 결과다. 외로운 사람은 우울증에 쉽게 빠지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높아져 각종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사회적 고립은 사망률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라는 연구도 있다. 고립감이 극심해진 것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면서다. 2021년 저명한 영국 ‘사회심리학저널’에 국제연구진은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단절감, 경쟁, 외로움을 조장해 행복지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개인 간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능력주의’와 불평등 속에서 사회 결속력과 신뢰는 낮아지고, 실패를 완충해줄 공동체와 연대는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패는 오로지 개인이 나홀로 감당할 몫으로 당연시된다. 서로 의지하고 치유하는 경험은 ‘사회적 자본’이 고갈되며 어려워졌다. <고립의 시대>를 쓴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외로운 개인들이 서로 공격하고 배제하며, 정치는 극단주의에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
여적 탐욕스러운 일자리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는 노동시장의 여성 차별에 천착했다. 그는 남녀 임금격차 원인 중 하나로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를 꼽는다. 남성들은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으로 두둑한 보수를 받는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택하고, 여성들은 가정과 육아라는 전통적인 성별 역할 규범에 따라 ‘유연한 일자리’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거의 언제나” 여성의 경력은 타격을 받는다. 고학력 출발선이 같아도 10년 뒤엔 여성의 임금이 뒤처진다고 그는 분석했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교육은 꿈을 꿔야…꿈꾸고 행동하는 만큼 그 미래는 넓어질 것” 천창수 울산교육감이 최근 전국 시·도교육감 평가에서 53.4%의 긍정평가로 첫 1위를 차지했다. ‘진보교육의 거목’이던 부인 노옥희 교육감의 갑작스러운 별세 후 지난 4월 보궐선거에 출마해 그 자리를 이은 지 약 반년 만이다. 학교폭력과 교권 추락을 비롯한 현안들이 교육현장에서 터져나오는 현재를 노동운동가이자 교사 출신인 그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달 21일 천 교육감을 울산교육청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평생 지향해온 낮고 조용한 삶을 떠나 부인이 남긴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라는 꿈을 잇기 위해 공직사회에 나선 그는 “교육은 꿈을 꿔야 한다. 그 꿈이 100% 실현되지는 않더라도 꿈꾸고 행동하는 만큼 교육의 미래는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여적 파업 시위 동참한 바이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현직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노조 파업시위에 동참했다. 26일(현지시간) 자동차산업 중심지인 디트로이트 인근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현장을 찾은 바이든은 확성기를 들고 “여러분은 급여 인상 및 혜택의 자격이 있다. 잃은 것을 되찾자”고 외쳤다. 이날로 12일째를 맞은 미국 완성차업체 ‘빅3’인 포드·제너럴모터스(GM)·스텔란티스의 사상 첫 동시파업에 따른 손실액은 2조원대로 추산된다. 그런데도 현직 대통령이 파업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이번 파업은 현재 노동시장 위기의 압축판이다. UAW는 4년간 36%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빅3’의 2013~2022년 수익은 92%, 최고경영자(CEO) 연봉은 40% 증가한 반면 노동자 실질임금은 금융위기 이후 약 20% 감소해 박탈감이 커졌다. ‘기술의 충격’도 파업의 원인으로 꼽힌다. 내연차에 비해 부품이 40% 적은 전기차산업이 본격화되면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친환경차 도입 및 ‘탈탄소’라는 기후대응에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이 고용안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도 요구사항이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엄벌제도보다 필요한 건, 범죄자 100% 처벌받는다는 법의 확실성” 무차별 흉기난동을 비롯한 흉악범죄가 잇따르자 강력한 처벌로 범죄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그런데 엄벌만 하면 범죄예방이 될까.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김지선 선임연구위원을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엄벌로는 범죄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 같은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범죄자는 100% 처벌받는다는 법의 확실성”이라고 말했다. 법관 재량으로 형량을 깎아주는 ‘작량감경(酌量減輕)’은 “최소 양형기준제 적용 범죄에는 적용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
여적 에코사이드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맹독성 다이옥신 성분의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 등을 8000만ℓ나 정글에 살포하면서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했다. 1970년 미국 독립시찰단이 맞닥뜨린 현장은 달랐다. 망고나무는 말라죽고, 가축들이 폐사했다. 주민들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15만명이 기형아로 태어났다. 자신의 연구 결과물이 고엽제로 무기화된 데 충격받은 생명윤리학자 아서 갤스턴은 이를 집단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에 빗대 ‘에코사이드’(ecocide), 즉 생태학살로 처음 규정했다. 환경범죄의 심각성을 지적한 것이다. 1972년 열린 첫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올로프 팔메 스웨덴 총리는 에코사이드를 국제법으로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
여적 인도의 달 착륙 인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달러를 밑돌던 1960년대부터 우주를 꿈꿨다. 선구자는 비크람 사라바이 박사(1919~1971)였다. “가난하고 사회문제가 많을수록 미래를 위한 우주개발이 절실하다”고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를 설득해 1962년 인도우주연구기구(ISRO)의 초석을 놨다. 천문학적 예산의 미·소 우주경쟁이 벌어지던 당시, 인도는 허허벌판 툼바에서 작은 교회를 빌려 첫 우주기지로 삼았다. 자전거로 부품을 실어다 조립해 로켓을 발사했고, 첫 통신위성의 안테나 범위 테스트는 소달구지에 싣고 했다. 독창적인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인도의 ‘주가드(Jugaad)’ 문화였다. 1980년, 인도는 자체 발사체 개발에 성공하며 세계 6번째 인공위성 발사 국가가 됐다.
-
여적 전경련의 ‘신장개업’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22일 임시총회에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파문 당시 전경련을 탈퇴했던 4대 그룹 일부 계열사도 일단 형식상으로 합류했다. 회원사로 잔류했던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흡수통합되면서 회원 자격이 자동 복원된 것이다.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어두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잘못된 고리는 끊어내겠다”며 혁신을 다짐했다. 하지만 전경련의 과거를 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1961년 국가 주도 산업화 초기에 설립된 전경련은 ‘재계의 맏형’이자 정경유착의 창구였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의 비자금 등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특혜와 부정부패 의혹이 일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회원사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주요 그룹 총수들이 회장단 모임에 발길을 끊으면서 점차 영향력을 잃었는데, 몰락의 결정타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였다. 정부 요구에 따라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기금을 모금한 사실이 드러나자 폐지론이 들끓었다. 삼성·SK·현대차·LG그룹이 탈퇴하며 등을 돌렸다.
-
여적 용산어린이정원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부근에 있는 용산어린이정원은 ‘공원’이 아니라 ‘정원’이다. 환경오염 기준이 더 엄격한 도시공원법 대신 수목원·정원법이 적용됐다. 일본군에 이어 해방 이후 미군이 주둔하던 부지 243만㎡ 중에서 지난해 58만㎡를 돌려받아 일부를 개방한 것인데, 과거 기름유출 사고 및 쓰레기 소각에 따른 토양오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다. 석유계총탄화수소(TPH)가 기준치 36배를 넘고 납은 5배, 비소는 3배 초과한다. 부지에 대한 막대한 정화비용 책임을 둘러싼 한·미 간 외교협의는 생략된 채, 지난 5월4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정원이 일반에 개방됐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건물로 옮긴 윤석열 정부는 취임 1년을 맞아 “국민과의 소통 접점을 넓히기” 위해서라고 했다. 120년 만에 반환된 용산이라는 상징을 대통령실 이전이라는 치적 홍보용으로 끌어 썼다는 비판이 나왔다. 환경단체들은 어린이가 다수인 이용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될 것을 우려하지만, 정부는 부지에 15㎝ 이상 두께로 흙을 덮거나 콘크리트로 차단해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
여적 ‘극우·혐오’ 차기환의 귀환 ‘방송계 일베’로 꼽히는 차기환 변호사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로 9일 임명됐다. 방문진 이사장 자리를 꿰차고 MBC 사장 교체에 나설 거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체제가 등장하면 쏘아질 언론장악 신호탄일 수 있다. 판사 출신으로 극우 성향 ‘뉴라이트’인 그가 공영방송 이사가 된 것은 네 번째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인 2009~2015년 국민의힘(한나라당) 추천으로 방문진 이사를 연임하고, 그 후 3년간 KBS 이사를 지내며 논란을 몰고 다녔다. MBC 경영·보도·제작을 정부 입맛에 맞게 주무르고, 독립성을 요구한 파업에는 인사조치로 맞서 공영방송 조직을 ‘사화급’으로 초토화시켰다. KBS 이사 때에는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되기도 했다. ‘X맨’ 역할도 그의 장기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 시절에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방해하고 유가족들을 비하해 국가공무원법 등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때아닌 ‘북한군 침투설’을 유포하고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2016년엔 경찰의 물대포 살수로 숨진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따로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
여적 꿈의 상온 초전도체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우연은 발명의 아버지다. 뜻하지 않았던 새로운 물질과 기술이 우연히 발견된 사건이 과학사에는 적지 않다. 인류 최초의 화약은 중국 당나라 때 도교의 연단술사들이 불로장생 묘약을 제조하려다 만들었다. 중세 시대 서양의 연금술사들은 금(Au)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현대 화학 기술의 바탕을 놓았다. 17세기 독일의 헤닝 브란트는 소변 속 빛나는 성분으로 금을 만들려고 양동이 60개 분량의 소변을 모아 끓이다가 인(P)을 발견했다. 그것이 훗날 인류사를 바꾼 성냥과 비료의 재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