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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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김진태발 금융위기 ‘레고랜드 사태’가 일파만파다. 굴지의 대기업마저 자금난에 허덕이고, 초우량 등급인 한국가스공사 발행채권마저 유찰될 정도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2050억원을 못 갚겠다며 지난달 28일 레고랜드 사업주체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기업회생을 신청하며 벌어진 일이다. 지방정부가 지급보증했던 우량 채권이 부도나자 시장에 공포가 번졌고, 신용붕괴를 막으려 정부와 한국은행이 최소 50조원을 쏟아붓는 중이다. 시장이 진정되지 않으면 비용이 더 들어갈 수도 있다. 김 지사는 지난 24일 입장문을 내놨으나 궤변 일색이다.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적 없다. 금융사가 임의로 부도처리한 것”이라고 했으나, 금융사 측은 대출연장을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010년 성남시장 때 지불유예를 선언한 적이 있다”지만 성남시 채무는 LH·중앙정부와의 거래였던 반면 강원도 채무는 시장 영향이 큰 민간 금융사와의 약속이라 성격이 다르다. 배 째고 드러누울 자리를 살피지 않은 것도 문제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부동산 경착륙 위기감이 높은 와중에 레고랜드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건설업체들은 내년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위기는 부동산 PF에 투자한 금융권과 경제 전체로 전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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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국민참여재판과 성범죄 국민참여재판과 성범죄의 상관관계가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신청된 4건 중 1건이 성범죄였다. 무죄 확률이 높아 성범죄 피고인들이 유독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고 한다. 2020년 기준 일반재판에서 성범죄 무죄율은 3.7%인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47.8%였다. 2008~2020년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매우 높은 무죄율(21.88%)을 보였다. 강도나 상해에 비해서는 3배, 살인죄 무죄율과 비교하면 무려 10배가 넘는다.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의 법감정을 반영한다는 취지 아래 2008년 도입됐다. 무작위로 선정된 만 20세 이상 시민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를 판단한다. 그런데 어쩌다 이 제도가 성범죄자들이 무죄를 받는 통로로 활용되었을까. 배심원들이 성범죄에 관대하기 때문이다. 증거가 명백한 성범죄 25건 중 24건에 대해 재판부는 유죄 판결한 반면 배심원은 무죄 평결을 냈다. 이유도 가지가지다. ‘클럽에서 만나 택시를 함께 탔기 때문에’가 있는가 하면, ‘즉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서’ ‘유흥업소 종업원이라서’라는 이유도 있다. ‘평소 친절하게 대해서’와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계속 일해서’도 있다. 심지어는 ‘11세 미성년 피해자가 사건을 또렷하게 기억 못해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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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냉각수 부족 물이 없으면 원자력발전소도 존재할 수 없다. 우라늄 핵분열로 증기를 데워 발전용 터빈을 돌리는데 거기서 발생하는 엄청난 열을 물로 식혀야 한다. 100만㎾급 원전 한 기를 가동하는 데 초당 약 70t의 냉각수가 들어간다. 원전을 강과 바다 근처에 짓는 이유다. 냉각시키지 못하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원자로가 녹는다. 당시 지진에 따른 해일로 취수구가 망가지면서 열 제거 기능이 마비돼 원전이 폭발했다. 기후변화로 냉각수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원자력 발전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세계기상기구(WMO)가 11일 전망했다. 전 세계 물이 부족한 원전 비율이 현재 15%인데 향후 20년간 25%까지 늘어난다는 것이다. 물의 온도가 높으면 냉각수로 부적합하다. 실제로 지난여름 프랑스는 폭염으로 론강 등의 수온이 상승하자 원전 발전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바닷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7월 신고리 원전 3·4호기의 냉각용 바닷물 온도 기준을 기존 31.6도에서 34.9도로 완화했다. 해수온도 상승으로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다. 원전업계의 최대 화두가 ‘핵’에서 ‘물 관리’로 바뀐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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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난산증(難算症) 정상 범주의 지능인데도 산술에 유독 취약한 경우 ‘난산증’(dyscalculia)을 의심해봐야 한다. 글자를 좀처럼 읽지 못하는 학습장애인 난독증(難讀症)처럼, 난산증은 숫자와 수학에 약한 것을 말한다. 난산증 어린이의 경우 더 큰 숫자를 구분하는 데도 애를 먹으며, 간단한 사칙연산도 잘하지 못한다. 거스름돈을 계산하거나 시계를 보는 데도 애를 먹어 또래의 놀림을 받곤 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요리재료를 계량하거나 지도를 읽고 안무를 외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업무를 위한 시간 배분에 실패하기도 한다. 수학 시험은 공포 그 자체이다. 공식이 머리에서 뱅글뱅글 돌 뿐 도무지 답을 써내지 못한다. ‘수포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은 이만저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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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경계선 지능 아이는 다른 교육이 필요할 뿐…자기효능감 길러줘야” 한국의 경계선 지능 아동·청소년은 전체의 14%로 추정된다. 학급당 평균 2~3명의 지능지수(IQ)가 70 이상~85 미만인 셈이다. 아이들은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 지적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학급 수업은 너무 쉽고, 일반학급 수업은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어려워한다. 낮은 학령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높은 학령에선 어려움이 더 커진다. 인지능력이 약해 같은 내용을 습득하는 데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계선 지능 아동에 대한 학교 현장과 전문가들의 관심이 특히 커진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다. 정부 방역 방침에 따라 전면 등교 중단이 장기화하면서 이들은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학습태도가 불량하다고 지적받거나 학교폭력 가해자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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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룰라 지지한 브라질 1020세대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좌파 성향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48%대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청년세대의 지지에 힘입었다. 룰라 지지율은 16~24세에서 가장 높은데, 대선에 참여하려고 유권자로 등록한 16~18세 청소년이 200만명으로 이전 선거에 비해 47% 급증했다. ‘보우사 파밀리아’ 등 강력한 복지 혜택을 누린 아이들이 룰라 지지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포르투갈 식민지배와 군부독재를 거친 브라질은 빈부격차가 극심했다. 노동운동가 출신 룰라는 2002년 대선에서 ‘모든 브라질인의 하루 세 끼를 보장한다’는 공약을 걸고 집권했다. 대표적인 ‘보우사 파밀리아’는 6~17세 자녀를 둔 빈곤 가정이 자녀를 학교에 입학시키고 예방접종을 받게 하면 현금급여를 지급하는 식으로 빈곤의 세대 이전을 막고자 했다. 현금은 가정의 어머니에게 전달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했다. 제도 시행 이후 브라질의 빈곤율은 2004년 22.4%에서 2015년 8.7%로 급감했고, 3600만명이 빈곤에서 탈출했다. 저소득층 및 다인종 학생들도 백인 중산층처럼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룰라를 지지하는 18세 유권자 로레나는 “좋은 정책이 있어야만 세상은 바뀐다”고 말했다. ‘남미의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정치적 실패에 비하면 룰라의 부패 혐의나 수감 이력은 이들에겐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올해 76세인 룰라가 청년층 의제인 성소수자 인권, 인종차별, 기후변화에 공감하는 점도 지지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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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노동’ 사라진 교육 “교육은 누구의 손아귀에 쥐여졌는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에 따라 효과가 결정되는 무기”라고 우민화 정책을 폈던 구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말했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 이렇게 적었다. “그들은 의식이 들기까지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란이 일어나기까지 그들은 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내 것인지 모르는 권리는 주장할 수 없다. 민주주의로부터 먼 사회일수록 지배엘리트의 핵심이익과 결부된 부분은 교육에서 숨겨지고 삭제된다. 교육과정에서 ‘노동’이 사라지고 있다. 2024학년도부터 일선 학교에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 ‘노동의 의미와 가치’가 삭제되더니 각 교과목 단원별 성취기준에서도 ‘노동’이라는 단어가 증발하다시피했다.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권의 역사, 노동과 임금은 실종된 반면 사회적 책임과 직업윤리는 비중있게 언급됐다. 미래에 노동자가 될 학생들에게 노동의 가치와 존엄을 가르치려던 이전 정부 계획을 윤석열 정부가 뒤집었다. 노동교육이 ‘반기업·반시장경제 정서’를 부추긴다며 눈엣가시로 여기던 재계의 승리다. 교육 공백 속에 아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노동 혐오’를 흡수하고 ‘노동자’가 되길 부끄러워한다고 학교 현장에선 우려한다. 아르바이트 청소년 2명 중 1명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해 노동인권을 침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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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자 무솔리니 파시즘은 이탈리아에서 싹텄다. 파쇼(fascio)의 말뿌리도 이탈리아어(묶음·단결)다. 1차 세계대전 후 극심한 사회갈등에 넌더리가 난 이탈리아 민심을 간파한 베니토 무솔리니가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1922년 검은 셔츠단을 이끌고 ‘로마 진군’ 쿠데타를 일으켜 20년 이상 극우 독재를 했다. 두체(Il Duce·지도자)로 불리던 그는 1945년 민중에 의해 처형됐지만, 독일과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역사청산이 이뤄지지 않았다. 명맥을 유지하던 이탈리아 파시즘이 ‘로마 진군’ 100년 만에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25일(현지시간) 조기총선에서 우파 연합이 승리하면서, 별명이 ‘여자 무솔리니’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l) 대표가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로 유력시된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그는 열다섯 살 때 네오파시스트 정치단체에 가입하고 스물한 살에 지방선거 첫 승리 이후 유모와 식당 종업원으로 생계를 꾸리며 정치경력을 쌓았다고 한다. 과거 “무솔리니는 훌륭한 정치가”라고 발언했던 그는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이탈리아”를 지향하며 반이민주의와 동성애 반대를 내걸었다. 변방의 극우세력이 유로존 3위 경제대국의 주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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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한국의 초산 연령 옛 유교사회에서는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칠거지악’(七去之惡) 중 하나로 여겼다. 남편의 일방적 이혼이 가능할 만큼 중대한 과실로 간주했다는 뜻이다. 고된 양육을 거의 전적으로 떠맡는 여성이 출산을 계속하도록 유도하는 이데올로기였을 것이다. 다산(多産)은 한 가정과 사회가 노동력과 국력을 확대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출생률은 1960년 6.0명이었다. 출생률 급락 쇼크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왔다. 고도산업화와 도시화 궤도에 오른 1980년대 후반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6~1.7명이던 출생률이 1999년 1.42명으로 뚝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종족본능과 강한 가족주의를 근거로, 더는 출생률이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낙관했다. 출산장려는 저소득층 자녀만 무책임하게 늘린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가족은 해체됐고 기혼 여성 가운데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1991년 90.3%에서 2000년 58.1%로 급감했다. 그 원인으로 ‘고용시장 이중구조, 비정규직의 저임금, 양성평등과 먼 자녀양육, 육아의 경제 부담 증가, 가정·직장 양립이 불가능한 사회 환경’이 꼽혔다. 20년 지난 요즘 보고서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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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장뤼크 고다르의 조력자살 ‘누벨바그’ 사조를 이끈 프랑스의 거장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91)가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불치 질환을 앓던 고다르는 스위스에서 의료진이 제공한 약물을 스스로 투약했다. 1960년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네 멋대로 해라>의 “영원불멸의 존재가 되고 나서 죽는 것이 야망”이라는 대사를 실제로 구현한 셈이 됐다. 자신만의 영화 문법을 만든 거장다운 선택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노인 간병의 비극을 다룬 2012년 영화 <아무르>, 딸에게 존엄사를 부탁하는 80대 아버지가 나오는 <다 잘될 거야>처럼 프랑스에서 조력자살 논의는 전에도 있었다. 프랑스의 대표 미남 알랭 들롱도 올해 초 안락사를 택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고다르의 선택은 프랑스에서 조력자살을 합법화하자는 논의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일으키고 있다. 프랑스 정치권이 내년쯤 관련 법 개정을 모색할 방침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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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안락사 논의 가속…호스피스와 존엄사 병행 사회적 합의 도출해야” “잘 죽는 법을 알지 못하는 자는 잘 살지 못한다”고 로마의 현인 세네카는 말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좋은 죽음을 누리고 있는가.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인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제는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숨을 거둘 정도로 죽음은 의료기술에 종속된 양상이다. 생명을 연장하는 의료기술이 역설적으로 존엄한 죽음을 맞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명의료결정법이 2016년 법제화됐지만 갈 길은 멀다. 호스피스를 비롯한 의료돌봄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고, 임종 단계에서만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협소한 법 조항은 현실적 문제들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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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사회소요지수 18세기 프랑스 노동자는 하루에 빵을 약 1㎏어치 먹었다. 일일 섭취열량의 90%를 차지하는 빵을 사려고 일당의 절반을 썼다. 1788년부터 이듬해까지 기상악화로 흉작이 거듭되며 빵값이 일당의 88%까지 치솟았다. 배급줄에 서더라도 도끼로나 잘릴 법한 검고 딱딱한 빵이 고작이었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19년이나 옥살이를 한 것은 정제 밀가루로 만든 귀족계급용 빵을 넘봤기 때문이다. 결국 ‘빵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량폭동이 1789년 프랑스 혁명이라는 체제 전복으로 이어졌다. 모든 빵 재료는 동일해야 한다는 ‘빵 평등권’도 대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