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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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방통위 사태의 재구성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사실상 무법천지로 전락하였다. 방통위원장 국무회의 배제를 시작으로 장기간의 표적 감사와 수사가 이어지는 한편 위원장과 위원의 해임과 임명이 오로지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권 행사로 점철되면서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정상적 조직 구성을 갖춘 적이 없다. 방통위원 정원이 자의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채, 위원장 대행체제나 2인 체제라는 위법적 조건에서 YTN의 민영화나 KBS·MBC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처분이 적법절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전 치르듯 이루어져 왔다. 현재는 세 번째 임명된 이진숙 위원장이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아 권한행사가 중지된 2인체제이며, 이 사태를 제도적으로 개선할 방통위법 개정안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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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민주공화적 대통령제 다시 보기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을 또다시 거부했다. 총선 패배에도 대통령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 듯하다. 그러나 이는 대통령과 맹목적 지지자들의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민의에 따른 국회의 결정을 거부만 할 뿐 그 어떤 국정과제도 주도하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무슨 미래가 있는가? 윤 대통령이 당과 한 몸임을 강변하는 여당의 당대표 선거는 자중지란 그 자체다. 국정 비전은 아랑곳없이 저급한 편가르기만 한창이다. 이런 형국에선 누가 대표가 되건 대통령의 시간은 고장난 시계처럼 헛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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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이 명령하는 노사상생 급기야 ‘산유국의 꿈’이 졸속적인 청와대 이전이나 참담했던 부산엑스포 유치운동, 혹은 근래의 ‘중국산 직구금지’ 파동을 연상시키며 국정브리핑에 등장했다. 산유국 시나리오가 등장한 만큼 채 상병 특검이나 김건희 여사 특검 등 ‘살아 있는 권력’의 실정과 부패에 대한 전 국민적 우려에 가려진 경제정책 기조에 대해서도 비판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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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3년은 너무 짧다 “3년은 너무 길다.” 지난 총선 판도를 바꾼 조국혁신당의 선거구호다. 너무 길어 보이는 3년은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다. 이 구호 덕분에 조국혁신당은 창당 두 달도 못 되어 12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고, 대통령 탄핵과 개헌저지선에 겨우 8석이 모자란 압도적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대통령 심판 선거로 치러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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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대로 합시다 총선이 여당의 역대급 참패로 끝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당대표 교체를 주도하면서 당정일치를 관철하여왔기에 이번 총선은 집권여당과 정치적 운명공동체인 대통령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제왕적 행태로 초래된 민주주의의 퇴행을 정부형태 탓으로 돌리는 주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민주화 이전 권위주의시대의 유산 때문에 여전히 남아 있는 헌법 무시의 관성에 터잡은 것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6월항쟁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현행 헌법은 유신·5공헌법이 채택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버리고 민주공화적 대통령제를 새로이 수립한 것임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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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제 ‘제 발등 찍기 정치’를 끝내자 다시 선거철이 돌아왔다. 국민의 대표랍시고 지난 4년간 목소리를 높이던 분들이 바로 그 국민들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황송하게도 폴더 인사를 받으면서 주권자 대접을 받는 듯 살짝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데 문득 뒤따르는 의문. 주권자 국민과 봉사자 국민대표가 선거철만 지나고 나면 왜 명령하는 국민대표와 복종하는 국민의 관계로 전도되어 버릴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대원칙은 일상정치에서 왜 법전 속의 장식으로 전락하고 마는가? 이번 총선부터라도 국민과 국민대표의 주객이 전도되는 반민주적 현실, ‘제 발등 찍기 정치’가 왜 매번 반복되는지 제대로 성찰하는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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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선거국면에서 새겨야 할 경구들 선거 때마다 소환되는 경구들이 있다. 먼저 루소는 영국의 대의제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영국민은 선거 때에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상태로 전락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회제에 경도되어 선거 외의 일상 정치과정에서 정작 국민이 소외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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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이 명령하는 선거제 4월 총선이 코앞이다. 예비후보자 등록은 이미 시작되었다. 정당공천절차도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작 선거제는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선거제는 선거법에 확정되어 있지만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거구 획정에 따른 유불리나 현행 선거제에 대한 거대정당들의 이해관계가 정리되지 않았을 뿐이다. 후보자나 정당이 경기장이나 경기 규칙도 없이 선거운동을 하는 꼴이다. 이게 민주공화국의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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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한동훈 위원장님, 헌법부터 읽으시지요 국민의힘이 다시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당헌으로 뽑은 대표를 벌써 두 명이나 중도에 하차시킨 결과다. 전권을 행사할 비대위원장으로 한동훈 법무장관을 불러들였다. 장관 시절부터 국정보다는 기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법 원칙마저 거스르는 정파적 언술로 보수진영의 ‘스타장관’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후배다. 가뜩이나 정치보다는 통치에만 의존하는 대통령의 국회출장소처럼 전락한 탓에 총선용 비상체제를 출범시키면서도 벼락처럼 정권을 잡은 검사 출신 대통령의 분신을 또 내세운 집권당의 처지가 처연하기만 하다. 나라 곳곳에 검사 출신을 중용하는 것도 모자라 입법부의 핵심축인 여당의 대표로 내려보낸 것을 수용하는 모양새다. 한 위원장을 추인하는 당내 절차는 왕정시대의 세자책봉식을 연상시킨다. 민주주의는 아랑곳없이 아예 대를 이어 검사정권을 창출하겠다는 꼴이다. 시대착오적인 권력놀음을 위해 대표들을 내치고 비상체제를 출범시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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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으로 심판하는 그날 대통령과 거대야당의 대치정국이 끝날 줄 모른다. 급기야 여당 의원들이 의장실 앞 연좌농성에까지 나섰다. 소통의 정치는 없고 일방통행식 정쟁만 있는 극단대치의 최대 피해자는 주권자 국민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마 총선에서 국민이 심판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자위해야 할까? 그러나 방향성도 없이 의욕만 앞서다간 오히려 낭패만 보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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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왜 근로조건 기준은 인간 존엄성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이후 ‘차분한 변화’를 당정에 주문하였다. 아직 보선 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 섣부른 진단이긴 하지만 내용은 그대로 두고 ‘변화’는 스타일에 그치는 것이 그 실체인 듯해 보인다. 스타일의 변화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야당을 배려하는 듯한 화법이나 제스처에서 읽힌다. 미국식 ‘타운 홀 미팅’을 변형한 ‘카페 미팅’을 ‘비상경제민생회의’의 이름으로 열고 있는 것도 ‘출근길문답’이 사라진 후 굳어진 불통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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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야 할 이유 근대 민주공화제의 선도국은 영국이다. 이미 13세기 초부터 흔히 ‘대헌장’으로 번역되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를 여러 차례 제정해 무소불위처럼 인식되던 국왕의 권한이 제한될 수 있고, 또 제한돼야 함을 확인해 법치주의 또는 적법절차 원리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1215년 제정된 최초의 마그나 카르타에서 국왕이 이 헌장을 잘 준수할 수 있도록 25명의 귀족으로 구성되는 평의회를 두도록 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평의회를 통해 국왕을 통제한다는 발상은 1265년 시몽 드 몽포르가 반란을 일으킨 뒤 소집한 의회를 통해 계승된다. 특히 시몽 드 몽포르의 의회는 귀족뿐만 아니라 주요 도시의 평민 대표들도 참여하게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영국 하원인 평민원의 기원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