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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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이 밥 먹여 주나? 밥은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 ‘법학’이 ‘밥학’이라고 불린 적이 있다. 법이 그 이념인 정의는커녕 정치권력과 사회경제적 기득권의 지배도구로 전락한 것을 비아냥된 것이다. 목숨이나 부지하고 알량한 생계를 위해 정작 법의 존재이유를 외면한 법률가의 현실을 풍자한 것이었다. 권위주의는 충분히 청산했다고 믿었던 대한국민들이 무도하게 법을 권력의 도구로 남용하는 현실을 바라보는 눈길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가가 ‘밥벌레’로 불리는 일이 되풀이되지는 말아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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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사람에 충성하는 정치, 희극 혹은 비극 ‘일개’ 검사 윤석열이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그 드라마의 시작은 아마도 2013년 국정감사장에서의 명언으로 기억된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2012년 대선에 국정원이 댓글부대를 동원한 사건의 수사팀장으로서 당시 직속상관인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장관의 외압을 고발하면서 내던진 일갈이었다. 서슬 퍼렇던 박근혜 정부 초기에 정권의 시녀라는 비아냥을 받던 검찰에도 법과 원칙이 살아 있음을 증명한 것으로 국민의 뇌리에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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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요즘은 <재벌집 막내아들> 보는 재미로 산다. 이런 드라마가 왜 16부작으로 끝나야 하는지 아쉽다. 이 추운 겨울을 그럭저럭 지날 수 있도록 2편, 3편을 이어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여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에 더위를 잠시나마 식힐 수 있었던 것처럼. 교육과 연구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벅차야 할 교수의 직분을 망각하고 통속적인 판타지 드라마에 놀아나는 게 꼴불견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파독간호사 출신 노은님 화가의 통찰처럼 “살아남는다고 전쟁터 병사처럼 싸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하루 24시간을 오로지 일에만 쏟아내는 건 바로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에 반하는 게 아닌가.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에 배치되어 주어진 일만을 수행해야 한다면 그게 기계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미 20세기 초에 불세출의 대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산업사회의 비인간성을 통렬하게 풍자한 바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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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누가 헌법을 수호하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지는 정평이 나 있다. 정치중립이 생명인 검찰총장직을 박차고 나와 전격적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한 명분이 헌법수호였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내려는 당시 정권으로부터 헌법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결단임을 역설하였다. 자유삭제라는 인위적 설정이나 검찰을 정치화하여 헌법질서를 훼손한 본인의 행적을 연상하면 뜨악하기는 했지만 여하튼 헌법수호의 구호만은 분명히 각인되었다. 가까스로 당선된 후 취임사에서 애써 강조한 핵심요지도 그러했다.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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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죽음 권하는 사회와 헌법상 생존권 또 안타까운 부고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대표적 제빵회사의 공장에서 근로자가 작업 중에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빵 만드는 곳에서 일하다가 참변을 당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운용하지 않고 영리만을 추구하는 비인간적 기업경영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편 모범적 탈북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던 여성이 오래전에 고독사한 채 발견되었다. 아직 정확한 사인규명이 필요하지만 목숨을 걸었던 탈북이 이런 죽음을 예견하고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터이다. 만일 송파나 수원의 세 모녀 사례와 같이 생활고에 따른 죽음이라면 그동안 생사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동료시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논의들이 얼마나 허망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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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ESG에 진심이어야 할 헌법적 이유 5대 그룹 중 SK에 뒤이어 LG가 ESG 보고서를 발표했다. 친환경(E), 사회적 책임(S), 투명하고 민주적인 지배구조(G)를 지향하는 ESG 경영이 기업의 필수적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 기업의 투자유도 전략으로 논의되던 ESG는 새로운 재편 국면을 맞은 세계화 질서 속에서 기후위기, 보편적 인권 의식의 성장, 구조적 불평등의 심화 등 전 지구적 대응이 필요해진 현안들에 대해 기업들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가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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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은 누구의 편인가 현대 민주공화국은 ‘헌법국가’를 지향한다. 헌법 제10조가 선언하듯이 국가의 존립 이유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하는 것이다. ‘헌법에 의한 지배’가 민주공화국의 기본형태가 된 것은 서구의 경우에도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근대국가의 태동과 함께 성문헌법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헌법은 정치를 제대로 통제하는 규범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장식적 혹은 명목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근대 이전의 절대권력의 시대는 아예 민주적 입법기관으로서의 의회 자체가 형성되지 못하고 법규범 또한 절대권력의 전횡을 정당화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행정국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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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퇴행적 정부와 한국형 민주공화제 취임한 지 세 달도 못 되어 새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진영을 넘어 그 원인을 둘러싼 열띤 논란에 국민들의 시름이 깊다. 그 와중에 새 정부의 위기를 대통령 개인의 책임을 넘어 대통령제 정부형태 탓으로 돌리는 목소리도 새삼 꿈틀거린다. 하지만 무능한 대통령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국정의 중심을 잡아줄 다양한 헌정시스템이 작용하는 한국형 민주공화제가 진화해온 역사가 우리 민주화의 과정임을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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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정당개혁이 민생인 이유 현대 민주공화제가 정당중심 민주주의로 발전한 것은 아이러니다. 애당초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공화국에서 부분이익의 대변자인 정당은 공화제의 저해요소로 인식되어 금기시되었다. 제임스 매디슨이 미국헌법의 교의를 담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에서 설파한 정당불신론이 대표적이다. 도덕주의 문화가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정당은 까마귀 노는 곳일 뿐, 현자들은 얼씬거리지 말아야 할 금단구역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문화가 과연 민주공화제에 부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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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위헌·위법인 법무장관의 인사검증권 법무장관에게 인사검증권을 부여하는 대통령령인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와 ‘공직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규정’(공직정보규정)이 시행되면서 윤석열 정부의 검찰국가를 위한 기초공사가 마무리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세간에는 이 변화를 윤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의 인적관계에만 주목하여 정치 가십처럼 소비하고 있지만 민주공화제가 우리 모두의 공존을 위한 공동선임을 동의한다면 이번 사태를 헌정 차원에서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법무부를 넘어 대통령실, 국무총리실은 물론 국가정보원, 금감원, 공정위까지 법집행기관에 검찰출신들을 전진 배치하는 ‘검찰형 하나회’의 출현은 법무부의 검찰화만으로도 검찰국가의 우려를 낳았던 공권력 사유화의 폐단을 넘어 헌정 차원에서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시대착오적 권력구조 개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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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소비되는 국민과 검찰국가의 그림자 드디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대통령이 직접 가다듬었다는 취임사는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는 시대적 사명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주인인 국민은 모두 ‘자유 시민’이 되어야 하고, 자유 시민과 함께 반지성주의로 오염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책임의식을 표출하였다. 제시된 시대적 사명은 국민주권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에서 당연한 원칙의 확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맥락을 곱씹어보면 강조점이 주어지는 가닥들이 전혀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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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정신 역행하는 권력기관 사유화 박빙 대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권교체기의 낯익은 풍경이 연일 이어진다. 말의 성찬과는 달리 행동의 냉혹함이 현실을 지배한다. 윤석열 당선인의 일성이었던 ‘국민’통합은 ‘그들만’의 통합임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결단의 고통을 감내한 주권자 국민의 정신적 위무를 위해서라도 지켜져야 할 새 정부 출범의 허니문을 스스로 깨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