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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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네 “저보다 꼭 10년 위신데 10년 전보다 좋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후배가 물었다. 늘 긍정적이고 명석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그의 음성이 해 질 녘 서해 바다처럼 사뭇 쓸쓸하게 들렸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 것이 10년 세월이 내게 준 선물 같아요.” 그는 사소한 차이 때문에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분열에까지 이르는 세태를 탄식했다. 어제까지 동료였던 이들이 진영 논리에 따라 갈리면서 서로를 낯선 존재로 바라보는 현실이 아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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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작은 불이 큰 숲을 태운다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정치인들에게서 품격 있는 언어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정치 마당이 쟁론의 현장임을 모르지 않지만 모든 논쟁이 분열적이거나 비아냥거림일 필요는 없다. 치열한 탐구 정신, 정확한 정보, 사안에 대한 공정한 이해, 적절한 표현이야말로 설득력의 요체이다.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현실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만들기도 한다. 히브리어 ‘다바르’는 말이라는 뜻과 사건이라는 뜻을 두루 내포한다. 말은 사건을 일으킨다. 사람은 말로 세상을 짓는다. 친절하고 따뜻한 말이 발화되는 순간 누군가의 가슴에 꽃이 핀다. 거칠고 냉혹한 말은 우리 내면에 얼음 세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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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사회적 자본의 저장소 유대교 랍비인 나오미가 <아인슈타인과 랍비>라는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70대 중반에 이른 외할아버지께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사람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실 뿐 아무 일에도 의욕을 보이질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일평생을 함께했고, 아들딸과 손자·손녀들로 대가족을 이루고 있었고, 사업 또한 번창했고, 건강 또한 좋았다. 우울증에 빠질 이유가 없다고 느낀 엄마가 외할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잠자코 계시던 외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이제 아무도 없다!” 그리고 “키비츠(kibbitz) 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결핍된 키비츠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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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통속적 현실주의를 넘어 지방선거가 끝났다. 승자들은 기쁨의 축배를, 패자들은 선거 국면을 반추하며 쓰디쓴 잔을 들고 있을 것이다. 후일담들이 쏟아지고 있다. 희망의 말들과 절망의 말들이 교차한다. 유세 기간 중 후보들과 지지자들이 쏟아낸 조롱과 비난, 분노와 분열, 냉소와 혐오의 말들이 홍수에 떠밀려 온 부유물처럼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정치에서 품격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품격이 사라진 정치 마당은 분열적이고 파괴적이다. 진영 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상대편의 말은 경청되지 않는다. 정체성 정치가 지배하는 순간 연대의 정치는 불가능해진다. 그런 폭력적 파당 정치에 신물이 난 이들은 정치혐오 계층으로 남는다. 정치적 무관심 혹은 혐오가 깊어갈수록 정치꾼들이 설 땅이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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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그릇된 확신의 위험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벌어졌을 때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전쟁의 참상을 눈으로 목격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스페인으로 달려갔다. 그는 살라망카에서 20세기 스페인 최고의 사상가인 미겔 데 우나무노를 만나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오늘날 영적인 인간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우나무노는 스페인 사람들이 이런저런 깃발을 들고 싸우고 서로를 죽이고 교회를 불태우는 모습이 절망스럽다면서, 그런 혼란의 원인은 스페인 사람들이 아무것도 믿지 않는 데 있다고 진단한다. 우나무노는 그들을 ‘데스페라도(Desperado)’라고 부른다. 데스페라도는 ‘붙잡고 있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기에 정신은 와해되고, 거친 분노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명분이 어떠하든 전쟁은 우리가 서있는 삶의 토대를 사정없이 뒤흔들고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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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우리는 지지 않는다 1963년 4월,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는 흑인민권운동을 조직하고 후원하다가 체포되어 버밍햄 시립교도소에 갇히게 되었다. 어느 날 교도소 안으로 들어온 신문을 뒤적이다가 그는 주요 교파에 속하는 성직자 여덟 명이 낸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들은 민권 운동을 위한 시위를 비판하면서 시위 가담자들을 극단주의자, 범법자, 무정부주의자로 규정했다. 그 글 어디에서도 시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나 조건에 대한 언급 혹은 성찰은 없었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는 그들에게 매우 정중하고 논리정연하면서도 예언자적인 열정으로 가득 찬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자유란 압제자가 자발적으로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피압제자들이 투쟁을 통해서만 겨우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린 경험을 통해 배웠다며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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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큰 정신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 시적시적 겨울을 통과했다. 느리지만 분명한 폭력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무거움이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깎아내리기 위해 발화되는 말들은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상처를 입힌다. 그 말들이 공론의 장을 떠돌기 때문이다. 듣지 않으려 해도 그 말들은 집요하게 귓전을 파고든다. 그 말들로 인해 가슴에는 시퍼런 멍이 들었고 창조적이어야 할 시간은 눅진눅진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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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다 창세신화는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자연이라는 거대한 타자 앞에 선 인간의 운명은 어떠한지, 인간 사회에 내재한 선과 악의 뿌리는 무엇인지, 그 속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역할은 무엇인지를 넌지시 드러낸다. 사람들은 인식의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태초’를 떠올린다. 그 태초는 인간의 지각이나 경험 세계를 뛰어넘는 근원적 지평이다. 태초는 두레박을 아무리 내려뜨려도 닿을 수 없는 우물과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상에 근거해서 태초부터 존재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갈등, 행동, 폭력, 혼돈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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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까 자기 고향에 가서 아들의 며느릿감을 찾아보라는 주인의 부탁을 받고 늙은 종은 낙타를 끌고 먼 길을 떠났다. 참으로 막연한 요청이었다. 자기를 신뢰해준 주인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사람을 찾아야 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보아야 할까? 생각은 많았지만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긴 여정 끝에 마침내 주인의 고향 어귀에 도착한 그는 잠시 성 바깥에 있는 우물 곁에서 다리쉼을 하며 이 궁리 저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는 때였다. 그는 마침내 한 가지 기준을 세웠다. ‘물동이를 기울여서, 물을 한 모금 마실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자신은 물론 낙타에게도 물을 주겠다고 말하는 소녀라면 하나님이 정해준 여인으로 여기겠다는 것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야기의 일부이다. 종이 분별의 기준으로 택한 것은 종교도 가문도 경제력도 아닌 ‘인애의 행동’이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그를 돕기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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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숫자의 미혹에서 벗어나기 ‘천국에는 아라비아숫자가 없다.’ 시인 고진하의 시 제목이다. 시의 내용을 살필 겨를도 없이 제목이 상기시키는 기억의 편린들이 우련하게 떠올랐다. 아라비아숫자는 일종의 기호일 뿐이지만 사람들은 그 숫자 때문에 희망을 품기도 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행여 누가 볼세라 몰래 열어보던 성적표에 적힌 시험 점수와 석차가 떠오른다.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은 교실 뒤에 일흔 두 개의 못을 박고 그 달의 성적순으로 이름표를 걸어두었다. 자리가 뒤로 밀릴 때마다 아이들은 모멸감에 치를 떨었다. 지금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 폭력적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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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불확실한 ‘사계’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음악의 치유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일상이 무겁고 답답할 때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을 반복하여 듣는다. 그 고요한 선율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노라면 어느새 평화가 찾아온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불평이 슬그머니 솟아나올 때면 바흐의 칸타타 ‘나는 만족합니다’를 듣는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듣는 동안 내 마음에 짙게 드리웠던 어둠은 서서히 스러지고 삶에 대한 감사가 떠오른다. 음악은 우리가 일상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창문이 되어준다. 현실이라는 중력에 붙들려 사는 이들을 잠시나마 자유롭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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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코스메토르를 기다리며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부정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타인의 강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기 삶을 선택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여 함께 살아갈 세상의 모습을 형성하는 것은 자유인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정당함이 없는 권리에 순응해야 할 때 비애감이 발생한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왕을 절대적 권력자가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조정자로 인식했다. 왕을 뜻하는 말 가운데 하나인 ‘코스메토르’는 ‘코스메오하는 사람’, 즉 ‘정돈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전제적인 지배를 경계하는 동시에 정치를 미학화하는 명칭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