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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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청년 노동자여, 연대하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구로공단에 있는 안테나 공장에 첫 출근을 할 때 이야기다. 그때가 1987년 봄이었으니 우리 역사에서 큰 분수령이 있던 때이기도 했다. 오후 5시가 조금 지날 무렵 공장 주임은 내게 철야를 할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차마 못하겠다고 할 수 없었다. 이제 사회 초년병에게 그것을 거절할 배짱도 없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거의 강요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침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게 되었고 나는 그 공장에서 얼마 동안 주야 맞교대를 하며 살았다. 맞교대를 피하고 싶어 다른 공장도 전전했으나 작은 장난감 공장 말고는 맞교대 아닌 데가 없었고, 그게 무슨 운명의 전조였는지 제철소에서 일할 때도 동기들과는 달리 나는 3교대 근무를 하는 부서에 배치되고 말았다. 나중에 새삼 헤아려 보니 맞교대하는 공장에서 일주일에 72시간을 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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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인공지능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전조는 오래전 나타났다. 인공지능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의 시작은 20세기 초·중반을 훨씬 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실제적 모습이 드러난 것은 아마도 빅데이터라는 개념과 그것의 처리방식을 가능케 한 컴퓨터와 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최근이다. 한 가지 추가해야 할 것은 인간의 뇌에 대한 집요한 과학적 탐구다. 철학자 이정우는 그의 저서 <세계철학사 3>에서 뇌과학을 ‘속류 유물론’이라 냉소에 부쳤지만, 그 냉소와는 별개로 뇌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에 깊은 참고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주는 사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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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다만 체념에서 구하소서 시간이 해나 달 단위로 분절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과 문화가 그러하니 아무리 무심해도 나무토막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새해 결심 같은 것에 그동안 약간 냉소적이었지만, 마냥 청춘이 아니다 보니 이제는 그게 그렇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주위에서 아픈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나 또한 세밑에 병원에 좀 갈 일이 있어서 새로운 삶의 실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자리와 그동안 쌓은 업 때문에라도 무슨 대단한 새해 계획이란 게 있기 힘들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는 것과 더 욕심이 있다면 체념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정도이다. 세상은 우리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꿇리고 만들겠다는 듯 언어도단의 사태를 거의 매일 일으킨다. 대통령부터 유튜브 활동이 비즈니스인 극우 인사에 이르기까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데는 일가견들이 있는 것 같다. 입이야 잠시 닫고 살 수 있지만, 정말 기가 막혀서 체념의 마음이 굳어지면 그거야말로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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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꺾이지 않는 마음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기적적으로 16강에 오른 우리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태극기에 적은 글귀가 화제였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누군가는 ‘꺾이지 않는’보다는 ‘꺾지 않는’이면 어땠을까라고 말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언제나 풍전등화와 같은 것이니 ‘꺾이지 않는’이 더 실감 난다. 확실히 ‘꺾이지 않는’에는 누군가 혹은 무엇이 나를 꺾으려 한다는 현실이 숨어 있다. 그것에 굴하지 않고 처음 마음을 간절히 지키겠다는 것이 ‘꺾이지 않는’에 담겨 있는 것만 같아 뭉클하기도 했다. 이 뭉클함은, 그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꺾으려는 사람들이 여전하다는 것 때문에 드는 감정일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안전운임제의 연장과 확대를 요구한 화물노동자의 파업을 현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이 마치 영토를 침범한 적군처럼 대한 일이 있었다. 연이어 벌어진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반동적 행태나 장애인들을 대하는 비정한 태도도 마찬가지 예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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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죽을’ 고비를 ‘함께’ 살기 이태원에서 벌어진 기가 막힌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경북 봉화군 아연 광산에서는 두 명의 노동자가 갱도에 묻혀 고립되는 사고가 벌어졌다. 정확한 시간은 지난 10월26일 오후 6시. 이태원 참사는 10월29일 밤 10시20분 즈음에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초저녁부터 참사의 전조가 사방으로 타전되고 있었다. 시간 순으로는 아연 광산 노동자들이 먼저 갱도에 고립되고 나서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것인데, 우리는 그사이에 아연 광산 노동자들을 잊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산재 사고는 이제 일상적인(!) 소식이어서일까. 아무튼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고 난 다음에야 아연 광산 노동자들에게 이목이 쏠린 게 사실인데, 다행히도 221시간 만에 광산 노동자 두 분이 구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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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평화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며칠 전에 경북 성주 소성리를 다녀왔다. 박근혜 정권 때, 성주 성산의 방공포대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발표가 난 후 몇 번 성주읍에서 있었던 집회에 참석했지만, 그 현장이 소성리로 옮겨진 이후로는 가보지 못했다. 막 소성리에 도착하자 나를 조롱하자는 것인지 커다란 수송 헬기가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불법적으로’ 사드가 배치된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사드가 ‘북한의 위협’에 대한 것이라는 거짓말이 ‘참말’로 뒤바뀐 상황에서 소성리가 너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지만, 변명하자면 소성리는 산골 마을이라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외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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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농업 없이 ‘선진국’ 없다 쌀값 폭락에 성난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계속되는 금리 인상으로 고환율에 고물가가 계속 밀려오는데 유독 쌀값만 떨어진 것이다. 전라남도에 따르면, 20㎏ 기준 작년에 5만3534원이던 것이 올해 6월에는 4만5534원이라고 한다. 15% 가까이 폭락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와 여당은, 쌀의 생산과 가격이 일정 비율을 넘어서거나 떨어지면 한시적으로 쌀을 시장으로부터 격리해 정부가 의무적으로 구매하게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도리어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구매하게 되면 쌀 농가들이 농사를 포기하지 않아 공급 과잉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해괴한 발언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이런 말은 사실 농민에 대한 무례이면서 농업에 대한 노골적인 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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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서울을 위하여 지난 8일과 9일 서울에 폭우가 쏟아졌다. 하마터면 내 낡은 자동차도 동네 사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다가 그대로 폐차될 뻔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그 순간을 면했다. 문제는 10일 돌아본 동네의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양수기를 이용해 지하 상점의 물을 퍼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강남 일대가 막심하게 침수됐고 대통령의 무책임한 행동이 계속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장의 ‘한강 프로젝트’는 세간의 비웃음을 흙탕물처럼 뒤집어썼고, 집권 여당 국회의원들의 한심한 행태들로 며칠 시끌시끌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태가 수습되면 이 모든 일들은 또 잠잠해질 것이라는 냉소는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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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내가 처음 조선소 이야기를 들은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마침 친구의 형이 집에 있었는데, 친구가 소개하기를 대우조선소에서 용접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리(지금의 익산)에 있는 국립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대우조선소에서 용접을 하고 있다고 약간 자랑 삼아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 배 만드는 데 용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는 서울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 또한 고향에서 먼 경상도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정서적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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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디지털이 우리의 미래일까?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파격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자 교육부는 곧바로 대학의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겠다고 대통령의 지시에 답을 했다. 이어서 교육부 전 직원이 참석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이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고 한다. 교육이 산업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양산하는 것이라는 사고는 외환위기 시절인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통령이 특정 산업을 위해 교육부가 나서라고 노골적으로 지시하는 상황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흔한 말로 교육에는 백년대계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제는 특정 산업의 호·불황에 따라 교육 제도가 요동치는 현실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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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김종철과 ‘고르게 가난한 사회’ 천상병 시인의 ‘나의 가난은’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으로 시작하는데, 2연 1행은 반대로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이다. 시인은 가난이 주는 행복과 설움을 동시에 말한 다음에, 3연에서 “가난은 내 직업”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행복과 설움을 함께 주는 가난이 시의 길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4연은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에게 남기는 말의 형식이다. 여기서 시인은,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기억되기를 바라며, “아들딸들”의 삶에도 “씽씽 바람 불어라”고 기원한다. 다르게는, 시인 자신의 삶에 “씽씽 바람”이 불었다는 느낌도 준다. 실제로 가난은 들판과 같아서 “씽씽 바람”이 부는 생기로 가득할 수 있다. 가난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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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빼앗긴 밤에도 별이 빛날까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고향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와 친구들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등 자신이 살아오면서 마주쳤던 존재들을 가만히 불러본다. 그것은 지극한 그리움과 고독이 일으킨 영혼의 떨림인데, 경성에 유학 와 있던 윤동주의 온몸과 온 정신을 휘감은 식민지 현실이 불러일으킨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1940년대의 시를 읽으면 지금도 그의 고통이 전해오는 듯하다. 역설적이게도 윤동주가 겪어야 했던 현실은 그의 언어에 비상한 에너지와 밀도와 긴장을 부여했다. 윤동주의 영혼이 현실과 부딪치면서 빠르게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언제나 정신과 영혼의 고통스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탄생한다. 이래서 시는 지옥에서 쓰는 것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