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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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더 적게 갖는 민주주의 뭔가 부족하면 자연스럽게검소해진다는 역설은우리가 잠깐 망각한 진실이다 이제는 더 적게 갖는 민주주의를깊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출 문제로 여러 웃지 못할 상황을 보고 기가 다 막히는 궤변들을 듣는다. 수산시장에 가서 갑자기 수조의 물을 떠먹는 돌발 행동은 정부와 여당이 이 문제를 하찮게 여기고 있거나 혹은 사태의 본질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연일 막무가내식 억지를 부리거나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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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녹색평론과 김종철 2020년 6월, 김종철 선생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발행이 중단되었던 ‘녹색평론’이 계간지로 변모해 돌아왔다. 1991년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문을 연 ‘녹색평론’은 우리의 지성사에 그리고 실천적 담론의 장에 놀라운 분수령이 되었다. 돌아보면 여러모로 의미심장한데, 현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이 무너지던 시기와 ‘녹색평론’이 창간되던 시기가 겹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현실 사회주의가 해체의 길로 들어서자 혁명의 포기가 발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우리를 덮쳤던 게 지난 시간의 솔직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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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어느 건설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노동절인 지난 5월1일에 분신을 한 건설노동자 양회동씨가 끝내 숨졌다.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동자들을 범죄자로 몬 것이 그 핵심 이유였다. 양회동씨는 자신에게 적용된 ‘공갈’이라는 혐의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는데, 당연히 그는 공갈범이 아니라 건강한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였다. 사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자 혐오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의 요구와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한 단체행동을 무조건 불법으로 규정한 사실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것이 자신들에 대한 추락한 국민적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한 정치 술수인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나오미 클라인이 쓴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었는가>에는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이 민주주의 활동가들에게 고문을 가할 때, 자신들의 도덕적 하자를 민주주의 활동가들에게도 회칠하려는 심리적 술책을 사용했다고 지적하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술책은 우리도 꽤 오래 겪은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동자들을 향해 ‘건폭’이니 ‘공갈’이니 ‘협박’이니 하는 혐오 언어를 쏟아붓는 것은 결국 그들 자신의 자기 폭로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그들 자신의 삶 자체가 온통 폭력과 합법을 가장한 불법으로 점철돼 있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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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불의 시대’를 넘어서 봄 내내 산불이 일어나더니 지난 11일에는 강릉에서 다시 타올랐다. 바람이 이상하게 강하게 분 날이었다. 바람은 종잡을 수가 없었고 내리는 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점심을 먹으려고 사무실을 나섰다가 아미타브 고시가 쓴 <대혼란의 시대>의 어떤 구절이 떠올랐다. 저자가 델리대학에서 문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던 때 만난 사이클론에 대한 술회였는데, 버스가 뒤집히고 스쿠터들이 나무 위에 걸려 있는 폐허에 대해 아미타브 고시는 “시각적으로 접촉 가능한, 볼 수 있고 보여지는 하나의 종(species)처럼 여겨졌다”고 썼다. 이때의 충격적인 경험이 아마도 자신의 책에 “폭풍우·홍수 같은 기상 이변”이 자주 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괜한 예민함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지난 11일 분 봄날의 돌풍에서 나는 뭔가 섬뜩한 느낌을 받았는데, 강릉에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식당에 앉아서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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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청년 노동자여, 연대하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구로공단에 있는 안테나 공장에 첫 출근을 할 때 이야기다. 그때가 1987년 봄이었으니 우리 역사에서 큰 분수령이 있던 때이기도 했다. 오후 5시가 조금 지날 무렵 공장 주임은 내게 철야를 할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차마 못하겠다고 할 수 없었다. 이제 사회 초년병에게 그것을 거절할 배짱도 없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거의 강요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침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게 되었고 나는 그 공장에서 얼마 동안 주야 맞교대를 하며 살았다. 맞교대를 피하고 싶어 다른 공장도 전전했으나 작은 장난감 공장 말고는 맞교대 아닌 데가 없었고, 그게 무슨 운명의 전조였는지 제철소에서 일할 때도 동기들과는 달리 나는 3교대 근무를 하는 부서에 배치되고 말았다. 나중에 새삼 헤아려 보니 맞교대하는 공장에서 일주일에 72시간을 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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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인공지능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전조는 오래전 나타났다. 인공지능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의 시작은 20세기 초·중반을 훨씬 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실제적 모습이 드러난 것은 아마도 빅데이터라는 개념과 그것의 처리방식을 가능케 한 컴퓨터와 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최근이다. 한 가지 추가해야 할 것은 인간의 뇌에 대한 집요한 과학적 탐구다. 철학자 이정우는 그의 저서 <세계철학사 3>에서 뇌과학을 ‘속류 유물론’이라 냉소에 부쳤지만, 그 냉소와는 별개로 뇌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에 깊은 참고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주는 사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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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다만 체념에서 구하소서 시간이 해나 달 단위로 분절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과 문화가 그러하니 아무리 무심해도 나무토막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새해 결심 같은 것에 그동안 약간 냉소적이었지만, 마냥 청춘이 아니다 보니 이제는 그게 그렇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주위에서 아픈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나 또한 세밑에 병원에 좀 갈 일이 있어서 새로운 삶의 실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자리와 그동안 쌓은 업 때문에라도 무슨 대단한 새해 계획이란 게 있기 힘들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는 것과 더 욕심이 있다면 체념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정도이다. 세상은 우리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꿇리고 만들겠다는 듯 언어도단의 사태를 거의 매일 일으킨다. 대통령부터 유튜브 활동이 비즈니스인 극우 인사에 이르기까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데는 일가견들이 있는 것 같다. 입이야 잠시 닫고 살 수 있지만, 정말 기가 막혀서 체념의 마음이 굳어지면 그거야말로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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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꺾이지 않는 마음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기적적으로 16강에 오른 우리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태극기에 적은 글귀가 화제였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누군가는 ‘꺾이지 않는’보다는 ‘꺾지 않는’이면 어땠을까라고 말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언제나 풍전등화와 같은 것이니 ‘꺾이지 않는’이 더 실감 난다. 확실히 ‘꺾이지 않는’에는 누군가 혹은 무엇이 나를 꺾으려 한다는 현실이 숨어 있다. 그것에 굴하지 않고 처음 마음을 간절히 지키겠다는 것이 ‘꺾이지 않는’에 담겨 있는 것만 같아 뭉클하기도 했다. 이 뭉클함은, 그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꺾으려는 사람들이 여전하다는 것 때문에 드는 감정일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안전운임제의 연장과 확대를 요구한 화물노동자의 파업을 현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이 마치 영토를 침범한 적군처럼 대한 일이 있었다. 연이어 벌어진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반동적 행태나 장애인들을 대하는 비정한 태도도 마찬가지 예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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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죽을’ 고비를 ‘함께’ 살기 이태원에서 벌어진 기가 막힌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경북 봉화군 아연 광산에서는 두 명의 노동자가 갱도에 묻혀 고립되는 사고가 벌어졌다. 정확한 시간은 지난 10월26일 오후 6시. 이태원 참사는 10월29일 밤 10시20분 즈음에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초저녁부터 참사의 전조가 사방으로 타전되고 있었다. 시간 순으로는 아연 광산 노동자들이 먼저 갱도에 고립되고 나서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것인데, 우리는 그사이에 아연 광산 노동자들을 잊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산재 사고는 이제 일상적인(!) 소식이어서일까. 아무튼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고 난 다음에야 아연 광산 노동자들에게 이목이 쏠린 게 사실인데, 다행히도 221시간 만에 광산 노동자 두 분이 구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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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평화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며칠 전에 경북 성주 소성리를 다녀왔다. 박근혜 정권 때, 성주 성산의 방공포대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발표가 난 후 몇 번 성주읍에서 있었던 집회에 참석했지만, 그 현장이 소성리로 옮겨진 이후로는 가보지 못했다. 막 소성리에 도착하자 나를 조롱하자는 것인지 커다란 수송 헬기가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불법적으로’ 사드가 배치된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사드가 ‘북한의 위협’에 대한 것이라는 거짓말이 ‘참말’로 뒤바뀐 상황에서 소성리가 너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지만, 변명하자면 소성리는 산골 마을이라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외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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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농업 없이 ‘선진국’ 없다 쌀값 폭락에 성난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계속되는 금리 인상으로 고환율에 고물가가 계속 밀려오는데 유독 쌀값만 떨어진 것이다. 전라남도에 따르면, 20㎏ 기준 작년에 5만3534원이던 것이 올해 6월에는 4만5534원이라고 한다. 15% 가까이 폭락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와 여당은, 쌀의 생산과 가격이 일정 비율을 넘어서거나 떨어지면 한시적으로 쌀을 시장으로부터 격리해 정부가 의무적으로 구매하게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도리어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구매하게 되면 쌀 농가들이 농사를 포기하지 않아 공급 과잉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해괴한 발언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이런 말은 사실 농민에 대한 무례이면서 농업에 대한 노골적인 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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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서울을 위하여 지난 8일과 9일 서울에 폭우가 쏟아졌다. 하마터면 내 낡은 자동차도 동네 사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다가 그대로 폐차될 뻔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그 순간을 면했다. 문제는 10일 돌아본 동네의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양수기를 이용해 지하 상점의 물을 퍼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강남 일대가 막심하게 침수됐고 대통령의 무책임한 행동이 계속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장의 ‘한강 프로젝트’는 세간의 비웃음을 흙탕물처럼 뒤집어썼고, 집권 여당 국회의원들의 한심한 행태들로 며칠 시끌시끌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태가 수습되면 이 모든 일들은 또 잠잠해질 것이라는 냉소는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