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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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우리의 봄은 여전히 아프다 아파트 단지 내 나무들을 전지 작업을 통해 말뚝처럼 만드는 것을 보고 항의하면 대략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부러진 나뭇가지가 주차해놓은 차에 손상을 입히기도 하고 또 태풍이라도 불면 피해가 있습니다. 그런 사고가 대체 얼마나 있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우물쭈물한다. 굳이 그러한 이유라면 나무들을 뽑아버리는 게 나을 거라고 내가 좀 이죽거리고는 했다. 어린이 놀이터 주위에 있는 제법 큰 나무들 가지를 칠 때는 시청 공원녹지과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나뭇가지가 떨어지면 아이들이 다치기도 하니 ‘쓸모없는’ 가지들을 쳐내는 것이라고 했다. 만일 그게 걱정이라면 지난겨울에 삭정이를 다듬어줘야지 왜 여름이 다가오는 시간에 그러느냐고 되묻자 그때야 사과하고 일단 멈추겠다고 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나무가 흉기나 쓸모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 가을에 떨어지는 은행 냄새가 싫으니 은행나무를 베자 하고, 지나가다가 떨어지는 감에 맞았다고 감나무를 베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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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놀람과 설렘 이명박 정권 시절의 일이다. ‘4대강 사업’이 한창일 때 마을 앞에 흐르는 강이 구슬피 우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의 내용인즉슨, 시골집에 내려가 잠을 자다 꾼 꿈에서 강이 흐느껴 우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눈을 비비며 마당으로 나오자 강이 우는 소리가 허공에 가득했다. 마침 뒤안에서 나오는 어머니께, 누가 저렇게 울어요? 물었더니, 작년 이맘때 물에 빠져 죽은 동네 양반이 안 있더냐, 하고 말씀하셨다. 북받치는 슬픔에 잠에서 깬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용은 다르지만, 어릴 적에 같은 마을에 살던 여자아이가 강가에서 우는 꿈을 한 번 더 꿨다. 그 꿈에서는 멀리 하류에서 포클레인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 꿈들을 어릴 때 직접 겪었던 일과 몸에 각인되었던 강에 대한 감각이 깊은 데서 웅크리고 있다가 ‘4대강 사업’과 뒤얽혀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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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정지의 힘 발터 베냐민은 ‘역사철학 테제’로 알려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쓰기 위한 메모에 요즘 널리 회자되는 말을 남겼다. “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지만 현실을 보건대 “아마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 브레이크일 것이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의 자세한 뜻을 이해하려면 일단 히틀러와 스탈린이 맺은 독·소 불가침조약이 그 역사적 배경임을 알아야 한다. 베냐민은 파시즘과 사회주의가 손잡은 사건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고 이에 대한 응전으로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에는 “‘비상상태’가 상례”인데 “진정한 비상사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에 상례적으로 있어온 ‘비상사태’를 억압하는 자들의 시간을 폭파시키는 개념으로 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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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시의 마음’으로 새해에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연이어 있을 예정이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내심 정치적 변화는 물론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우리 몸도 마음도,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이든 변하지 않는 게 없다는 ‘큰 이야기’에 기대보면, 당연히 선거라는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어떤 식의 변화가 있기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적잖은 사람들이 그 변화에 너무 큰 기대를 갖는 반면에 어떤 이들은 그저 냉소에 그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선거제도로 상징되는 대의제가 정말 민주제인지 묻는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실, 때가 되면 찾아오는 선거가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사고와 관념을 박제화시킨 면도 없지 않다. 즉 정치권력이 주권자를 실망시키면 선거를 통해 바꾸면 된다는 굳은 관념을 갖게 된 것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금 형해화된 민주주의를 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