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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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농업 없이 ‘선진국’ 없다 쌀값 폭락에 성난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계속되는 금리 인상으로 고환율에 고물가가 계속 밀려오는데 유독 쌀값만 떨어진 것이다. 전라남도에 따르면, 20㎏ 기준 작년에 5만3534원이던 것이 올해 6월에는 4만5534원이라고 한다. 15% 가까이 폭락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와 여당은, 쌀의 생산과 가격이 일정 비율을 넘어서거나 떨어지면 한시적으로 쌀을 시장으로부터 격리해 정부가 의무적으로 구매하게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도리어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구매하게 되면 쌀 농가들이 농사를 포기하지 않아 공급 과잉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해괴한 발언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이런 말은 사실 농민에 대한 무례이면서 농업에 대한 노골적인 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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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서울을 위하여 지난 8일과 9일 서울에 폭우가 쏟아졌다. 하마터면 내 낡은 자동차도 동네 사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다가 그대로 폐차될 뻔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그 순간을 면했다. 문제는 10일 돌아본 동네의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양수기를 이용해 지하 상점의 물을 퍼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강남 일대가 막심하게 침수됐고 대통령의 무책임한 행동이 계속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장의 ‘한강 프로젝트’는 세간의 비웃음을 흙탕물처럼 뒤집어썼고, 집권 여당 국회의원들의 한심한 행태들로 며칠 시끌시끌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태가 수습되면 이 모든 일들은 또 잠잠해질 것이라는 냉소는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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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내가 처음 조선소 이야기를 들은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마침 친구의 형이 집에 있었는데, 친구가 소개하기를 대우조선소에서 용접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리(지금의 익산)에 있는 국립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대우조선소에서 용접을 하고 있다고 약간 자랑 삼아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 배 만드는 데 용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는 서울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 또한 고향에서 먼 경상도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정서적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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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디지털이 우리의 미래일까?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파격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자 교육부는 곧바로 대학의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겠다고 대통령의 지시에 답을 했다. 이어서 교육부 전 직원이 참석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이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고 한다. 교육이 산업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양산하는 것이라는 사고는 외환위기 시절인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통령이 특정 산업을 위해 교육부가 나서라고 노골적으로 지시하는 상황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흔한 말로 교육에는 백년대계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제는 특정 산업의 호·불황에 따라 교육 제도가 요동치는 현실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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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김종철과 ‘고르게 가난한 사회’ 천상병 시인의 ‘나의 가난은’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으로 시작하는데, 2연 1행은 반대로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이다. 시인은 가난이 주는 행복과 설움을 동시에 말한 다음에, 3연에서 “가난은 내 직업”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행복과 설움을 함께 주는 가난이 시의 길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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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빼앗긴 밤에도 별이 빛날까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고향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와 친구들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등 자신이 살아오면서 마주쳤던 존재들을 가만히 불러본다. 그것은 지극한 그리움과 고독이 일으킨 영혼의 떨림인데, 경성에 유학 와 있던 윤동주의 온몸과 온 정신을 휘감은 식민지 현실이 불러일으킨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1940년대의 시를 읽으면 지금도 그의 고통이 전해오는 듯하다. 역설적이게도 윤동주가 겪어야 했던 현실은 그의 언어에 비상한 에너지와 밀도와 긴장을 부여했다. 윤동주의 영혼이 현실과 부딪치면서 빠르게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언제나 정신과 영혼의 고통스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탄생한다. 이래서 시는 지옥에서 쓰는 것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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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우리의 봄은 여전히 아프다 아파트 단지 내 나무들을 전지 작업을 통해 말뚝처럼 만드는 것을 보고 항의하면 대략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부러진 나뭇가지가 주차해놓은 차에 손상을 입히기도 하고 또 태풍이라도 불면 피해가 있습니다. 그런 사고가 대체 얼마나 있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우물쭈물한다. 굳이 그러한 이유라면 나무들을 뽑아버리는 게 나을 거라고 내가 좀 이죽거리고는 했다. 어린이 놀이터 주위에 있는 제법 큰 나무들 가지를 칠 때는 시청 공원녹지과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나뭇가지가 떨어지면 아이들이 다치기도 하니 ‘쓸모없는’ 가지들을 쳐내는 것이라고 했다. 만일 그게 걱정이라면 지난겨울에 삭정이를 다듬어줘야지 왜 여름이 다가오는 시간에 그러느냐고 되묻자 그때야 사과하고 일단 멈추겠다고 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나무가 흉기나 쓸모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 가을에 떨어지는 은행 냄새가 싫으니 은행나무를 베자 하고, 지나가다가 떨어지는 감에 맞았다고 감나무를 베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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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놀람과 설렘 이명박 정권 시절의 일이다. ‘4대강 사업’이 한창일 때 마을 앞에 흐르는 강이 구슬피 우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의 내용인즉슨, 시골집에 내려가 잠을 자다 꾼 꿈에서 강이 흐느껴 우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눈을 비비며 마당으로 나오자 강이 우는 소리가 허공에 가득했다. 마침 뒤안에서 나오는 어머니께, 누가 저렇게 울어요? 물었더니, 작년 이맘때 물에 빠져 죽은 동네 양반이 안 있더냐, 하고 말씀하셨다. 북받치는 슬픔에 잠에서 깬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용은 다르지만, 어릴 적에 같은 마을에 살던 여자아이가 강가에서 우는 꿈을 한 번 더 꿨다. 그 꿈에서는 멀리 하류에서 포클레인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 꿈들을 어릴 때 직접 겪었던 일과 몸에 각인되었던 강에 대한 감각이 깊은 데서 웅크리고 있다가 ‘4대강 사업’과 뒤얽혀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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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정지의 힘 발터 베냐민은 ‘역사철학 테제’로 알려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쓰기 위한 메모에 요즘 널리 회자되는 말을 남겼다. “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지만 현실을 보건대 “아마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 브레이크일 것이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의 자세한 뜻을 이해하려면 일단 히틀러와 스탈린이 맺은 독·소 불가침조약이 그 역사적 배경임을 알아야 한다. 베냐민은 파시즘과 사회주의가 손잡은 사건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고 이에 대한 응전으로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에는 “‘비상상태’가 상례”인데 “진정한 비상사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에 상례적으로 있어온 ‘비상사태’를 억압하는 자들의 시간을 폭파시키는 개념으로 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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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전환의 상상력 ‘시의 마음’으로 새해에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연이어 있을 예정이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내심 정치적 변화는 물론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우리 몸도 마음도,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이든 변하지 않는 게 없다는 ‘큰 이야기’에 기대보면, 당연히 선거라는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어떤 식의 변화가 있기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적잖은 사람들이 그 변화에 너무 큰 기대를 갖는 반면에 어떤 이들은 그저 냉소에 그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선거제도로 상징되는 대의제가 정말 민주제인지 묻는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실, 때가 되면 찾아오는 선거가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사고와 관념을 박제화시킨 면도 없지 않다. 즉 정치권력이 주권자를 실망시키면 선거를 통해 바꾸면 된다는 굳은 관념을 갖게 된 것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금 형해화된 민주주의를 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