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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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조양한울분회의 끝나지 않은 투쟁 2023년 11월28일 사장은 노동자 11명을 2024년 1월1일부로 해고한다고 통보했다. 공교롭게도 그 11명 모두는 노동조합 분회 활동에 참여한 조합원이었다. 사측의 해고 대상에 비조합원은 없었다. 그보다 앞서 같은 달 9일 회사는 업무방해 등 이유로 분회장을 형사 고소하고 해고 처분했다. 그렇게 12명의 조합원들이 지금 집단해고로 내몰리고 있다. 종업원이 30명도 안 되는 노동권 사각지대 ‘작은 사업장’에서 여태 저임금에 부대끼며 가족의 생계를 힘겹게 책임져온 노동자들이 조합원 ‘표적 해고’의 희생양이 되어 이 겨울, 거리로 나앉고 있다. 금속노조 대구지역지회 조양한울분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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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재정지출이 정말 물가를 올릴까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은 “재정을 더 늘리면 물가 때문에 또 서민들이 죽는다”고 했다. 정부가 나라살림을 긴축하지 않고 지출을 늘리면 물가가 올라 민생이 힘들어진다는 진단이다. 물가가 오르면 민생이 힘들어지는 것이야 두말할 것 없다. 작년 2분기부터 지난 8월까지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평균 4.7% 올랐는데 통계청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금은 3.2% 상승에 그쳐 실질임금은 5개 분기 넘게 평균 1.5% 하락했다. 이렇게 계속 물가가 임금보다 더 오르면 서민들은 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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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이륙의 역사와 진보의 조건 세계경제의 성장 역사에서 본격적인 이륙은 1820년대에 이루어졌다. 증기기관이 상업화되고도 한 세기가 지난 뒤였다. 그러나 번영은 서유럽 일부 지역에 국한됐다. 국가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당시 가장 부유했던 지역은 이후에도 평균 성장률이 가장 높은 축에 들었다. 이륙의 시동을 먼저 건 나라들은 1870년대부터 출산율 하락을 먼저 경험했다. 기술 변화로 자녀 교육비가 늘어난 탓인지 몰라도, 생산량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던 인구 증가세도 함께 둔화했다. 인구가 정체되면서 인류는 역설적으로 ‘맬서스의 덫(인구 증가로 가난을 면치 못하는 현상)’을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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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정부 예산안, 이래도 좋은가 현대 국가는 시민의 경제생활과 다양하고 복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현대 국가가 그와 같은 기능의 수행을 위해 재원을 쓰고 거두는 내역이 곧 정부예산이다. 회계연도 내 정부 정책 목표는 그렇게 예산에 반영된다. 그런데 정책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프로그램(하나의 정책 목표에 대응하는 여러 정책 사업들의 집합)’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개별 사업마다 지출 비중은 달리 배정되기 마련이다. 정부가 어떤 정책 목표를 공표하든 예산과 관련한 권한이 기획재정부에 주어진 실정에서는 거꾸로 예산이 길을 터주지 않으면 해당 정책 목표의 실제 구현이 불가능한 이유다. 그렇게 프로그램별 예산 비중의 변화는 정부의 정책 의도를 드러낸다. 지난 1일 국회에 제출된 2024년도 정부예산안에 관심을 갖게 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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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정부 조세정책, 방향부터 틀렸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에는 최상위 1%에 대한 개인소득세와 자본소득세 한계세율을 최소 60% 이상으로 인상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부유층 과세는 심각한 불평등을 세계적 차원에서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간주됐다. 이른바 ‘부유세’의 귀환이었다. 그것은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기간에 새롭게 늘어난 부의 63%를 최상위 1%가 가져간 상황에서, 과거 수십년간 이어져온 부자들과 기업에 대한 감세가 이제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호소였다. “실질적 근거가 전혀 없는 허상”인 ‘낙수효과’를 홍보하며 부자들과 기업에 부와 권력을 몰아주는 기득권 정치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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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2024년 최저임금, 유감이다 2024년 적용 최저임금이 9860원으로 결정됐다. 주 40시간 노동에 주휴수당을 더한 월 환산액은 206만원이다. 한국노총의 ‘2023년 단신 가구 표준생계비’ 260만원이나 최저임금 심의 기초자료에 나온 ‘2022년 비혼 단신 실태생계비’ 평균 241만원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다. 물가도 많이 올랐는데 월 5만원 인상으로 노동자 가구의 생활안정을 기한다는 본래의 제도 목적이 달성될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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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쿠팡 ‘클렌징’은 사회적 합의 부정이다 2020년 3월부터 만 2년 동안 1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던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올해도 죽음의 행렬이 이어진다. 야간 택배 분류작업을 수행하던 노동자가 화장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것이 올해 1월이었다. 2월에는 화물 노동자가 트럭에서 떨어져 유명을 달리했다. 퇴근길 셔틀버스를 기다리다 심장마비로 숨진 사례도 있었다. 3월에는 2020년 10월 산재로 사망한 장덕준의 유족들이 회사 측으로부터 사과와 보상 지원을 끝내 약속받지 못한 채 동부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가 택배 사업을 확장하면서 배송 인력을 자회사로 재배치하는 가운데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는 물류센터가 아니라 택배 자회사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대리점한테서 위탁구역을 회수하는 ‘클렌징’ 제도를 둘러싼 갈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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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혁신과 평등, 진보의 좁은 길 실업 및 나쁜 일자리 문제와 겹친 불평등의 심화는 공동체를 해체시킨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포용적 성장’을 지향하는 흐름이 출현했던 배경이다. 그러나 그 ‘포용’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는 별로 안 보인다. 유행이 지났는지 포용적 성장이 지체되는 원인도 진단되지 않는다. 오늘날 불평등 문제가 경제성장의 동력인 혁신 과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경제학자들 사이에 합의된 의견 자체도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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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최저임금 공익위원 계산식, 폐기가 답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노동자 평균 실질임금은 총액이 0.1% 줄었다. 임시일용직 실질임금은 2.3%나 줄었다. 그들은 작년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꼬박 1년간 실질임금 하락을 견뎌냈다. 작년에는 물가가 많이 올라서 그랬다면 재작년엔 달랐을까.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결과’를 보면 2021년 한 해 노동자 평균 실질임금총액은 0.4% 증가에 그쳤다. 반면에 작년이든 재작년이든 노동생산성(노동투입 대비 산출량)은 어떻게 측정해도 그보다는 더 크게 올랐다. 한국에서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간 괴리는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다시 간극이 벌어지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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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외투기업과 고용의 사회적 보장 의제 지난 3월15일, 경기도 반월공단 소재 한국와이퍼 공장에 사측 용역 30여명이 들이닥쳤다. 한국와이퍼는 일본 자본 덴소가 출자한 외국인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으로 사측의 청산 계획 발표 이후 200명 넘는 이 회사 노동자들은 해고 위기에 내몰렸다. 용역들은 설비 반출을 시도했다. 이튿날 열릴 한·일 정상회담을 예비하며 경찰 7개 중대도 용역을 도왔다. 노동자들은 공장 밖으로 끌어내졌고 연행되었다. 부상자가 속출했다. 권리분쟁 중인 민사 사안에는 불개입한다는 원칙마저 깨고 한국 경찰이 일본 자본의 입장을 폭력으로 관철시키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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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에너지 요금 인상, 정말로 필요한가 일상에서 ‘공공재’라는 말은 공익적 가치가 있거나 정부가 공급하는 재화의 의미로 통용되는 듯하다. 그러나 경제학 책에서 공공재는 그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정의된다. 경제학적 공공재는 그것의 소비에 있어 실제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누구도 타인과 경합을 벌일 필요가 없는 재화다. 정의가 이렇다 보니 현실의 예는 드물다. 이를테면 한산한 무료도로나 달빛이 공공재인데, 도로가 한산하면 대개 유료고 무료도로는 막히기 십상이다. 시인 이백이 아니고서야 달빛도 딱히 쓸모는 없다. 공공성에 대한 시민들의 일상 속 욕구가 커갈수록 그 의미가 협소하게 고정된 학술용어와의 충돌도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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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고난과 저항의 한국 경제 2023년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경제이론으로 노벨상까지 수상한 거장 로버트 루카스 교수가 더 이상 경기변동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2003년 전미경제학회에서의 일이었다. 누군가 거시경제학의 역사를 케인스 혁명과 보수주의 반혁명의 교체로 각색한다면, 아마도 그 선언의 순간이야말로 반혁명의 승리가 공표되는 하이라이트 장면이 될 만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언이었는지 드러나는 데에는 채 5년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 뒤로는 거꾸로 거의 매년 ‘경제위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위기로 표출된 우리 시대의 체제적 모순을 고민하는 작금의 경제위기 논의가 루카스 교수의 그것처럼 어리석은 빈말일 리는 없어 보인다. 새해 한국 민중 앞에 닥친 고난의 시간 때문에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