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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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다시 불붙는 인플레이션 논쟁 어떤 정책도 의도했던 효과가 충분히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특히 통화정책은 실물경제에 그 영향이 파급되는 데에 길고도 가변적인 시차로 악명이 높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곧바로 생산이 위축되거나 물가가 떨어지는 일은 없다. 실증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정책 시행 후 첫 1년보다는 이듬해인 2년째에 들어서면서 통화긴축의 영향은 대체로 더 뚜렷해진다. 작년 3월에 개시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도 그 효과가 본격화하는 것은 올해 2분기 이후다. 연준은 앞으로도 금리 인상을 이어간다고 하니, 아무래도 고용이나 물가의 저점은 더 먼 미래 일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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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은행들 폭리, 두고만 볼 일인가 이달 초 발표된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는 양극화의 현실을 드러낸다. 지니계수나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 소득의 몇 배인지 나타내는 지표)은 2021년 들어 시장소득 외에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도 악화됐다. 지난 몇 년간 처분가능소득의 분배는 조세나 사회보험 등의 공적이전에 힘입어 다소나마 개선되는 추세였다. 그러나 작년부터는 그런 흐름조차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불평등을 낳는 시장의 힘이 통제되지 않고 강해지기만 하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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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왜 지금 횡재세인가 최근 유럽연합 이사회는 ‘연대기여금’의 이름으로 횡재세를 공식화했다. 연대기여금은 화석연료 부문의 유럽연합 회원국 기업이 올해나 내년에 벌어들이는 초과이윤에 대해 최소 33%의 세율로 부과될 예정이다. 법인세 과세표준이 2018~2021년 4개년 평균에 비해 20% 넘게 늘어난 부분을 초과이윤으로 본다. 세입은 주로 에너지 취약 계층 및 중소기업 지원에 쓴다. 회원국 별도의 횡재세를 도입하면 연대기여금은 적용 안 된다. 횡재세는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헝가리, 그리스, 루마니아, 네덜란드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벨기에도 도입을 확정했다. 오스트리아도 도입으로 가닥이 잡혔다. 독일과 미국은 논의 중이다. 나라마다 제도가 다르다. 우여곡절도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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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통화정책 기조, 다시 검토해야 한다 지난주 공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10월 세계경제전망에서는 한국경제의 2023년 ‘GDP갭률’(실질국내총생산이 장기 추세로부터 괴리된 정도)이 하향 조정되었다. 4월 전망에서도 추세를 밑도는 경기침체가 예견되었다. 그런데 10월 전망에서는 내년에 침체가 더 심해진다고 내다봤다. 미국에 대해서는 4월만 해도 내년에 호황이 이어진다고 예측했지만 10월에는 아예 침체로 전망이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미국경제가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접어들 때는 대개 약 6개월 앞서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이 있었다. 연준의 바람과 달리 이번에도 미국경제는 침체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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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정부 재정준칙에 반대한다 세계경제가 벼랑 끝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물가상승 압력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폭주 탓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각국 중앙은행은 코로나19로 짓눌린 경제를 구하고 물가하락 압력에 대응한다며 금리를 역사상 최저 수준에서 유지해 왔으니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이른바 ‘장기 침체’가 초래한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는 재정적자를 마다 않고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경제회복을 이끌어내기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혹시 기존의 장기 침체 추세가 멈춘 것일까? 코로나19와 글로벌 인플레이션 다음에는 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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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승자와 패자, 그리고 버려진 자 최근 인플레이션의 두드러진 특징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물가급등 탓에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지만 OECD 공식 통계 기준으로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근원소비자물가가 코로나19 이전보다 덜 오른 축에 든다. 말 그대로 전 세계적인 생계비 위기인 셈이다. 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또 다른 특징은 수요보다는 공급 측면 원인이 결정적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산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생산비용이 치솟으면서 이번 인플레이션이 점화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전쟁의 영향을 논할 때에는 서방의 경제제재와 그 배후에 작용하는 미국의 대외 전략도 종합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 역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을 강제하며 비용인상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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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가계부채 위기와 위험천만한 역주행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7월 들어 달러 환율은 1300원을 넘어 고공행진 중이고 코스피 지수는 한때 2300 밑으로 떨어졌다. 6%대 물가상승률에 상반기 무역적자 103억달러. 그러나 수출 전망은 하반기에 더 어둡고 급기야 내년 상반기는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최근 발표된 OECD의 한국 경기선행지수는 눈앞에 닥친 리세션(침체)의 위험을 6개월째 예고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긴축 선회 이후 세계 곳곳에서 전해져오는 신흥국 금융불안 소식도 불편하다. 그러나 최악의 시나리오는 따로 있다. 가계부채와 주택가격이 역대 최고 수준까지 부풀어 오른 상태에서 진행되는 한국은행의 속도 조절 없는 기준금리 인상과 8%를 향해 뜀박질하는 시중 담보대출금리가 가져올지도 모를 파급효과가 그것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가계부채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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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최저임금, 너무 낮아서 문제다 9160원. 입사 10년차인 대구 성서공단 어느 노동자가 받는 시급이다. 산입범위 확대로 근속수당, 가족수당, 만근수당에 간식비, 교통비 등이 더해진 2022년 최저임금이다. 그간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다고는 해도 각종 수당이 기본급처럼 둔갑한 탓에 실제 오른 시급은 단돈 몇백원이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최저임금으로 가족들 생계비를 벌려면 잔업에 특근까지 장시간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들에게 최저임금은 그 이상을 받아본 적 없기에 또한 최고임금이기도 하다. 지난주 민주노총 대구본부가 주최한 최저임금 증언대회에서 공개된 어느 금속노조 조합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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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지방선거, 희망과 변화의 뿌리내림 2017년 5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인천공항을 찾았다. 그곳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이 있었다. 그러나 연출된 감동은 오래 가지 못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으로 제동을 걸면서 개혁은 포기되었다. 누군가는 공공기관 자회사인 용역업체로 소속만 바뀌었다. 누군가는 끝내 민간위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간제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경우도 처우 개선은 미미했고 전환 규모도 박근혜 정부와 별 차이가 없었다. 공공부문이 모범 사용자 역할을 제대로 안 하면서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사용도 제어되지 못했다. 현대제철 사례로 드러났듯 불법파견도 마다 않고 어떻게든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본은 아예 정부를 본떠 자회사 방식으로 간접고용을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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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볼커의 신화, 혹은 착각 세계 경제가 1970년대 석유파동을 극복하고 1984년 이후 최근까지 물가가 안정되어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떠도는 ‘신화’가 있다. 여러 경제학자들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 의장 폴 볼커의 단호한 통화긴축이 경제주체들의 신뢰에 영향을 미쳐 물가안정을 가져왔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역사에 대한 무지이거나 비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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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께 호소드린다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을 출발한 ‘길 위의 신부’ 문정현과 봄바람 순례단이 한국장학재단 대구 본사를 찾았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117일째 천막농성을 이어온 장학재단 콜센터 노동자들이 본사 로비 점거에 나선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사제가 불러온 봄바람으로 가난한 노동자들 마음에 환한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콜센터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다시 드러난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의 단면은 비유컨대 꽃이 필 만한 봄은 아니었다. 형편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채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긴 시간을 견뎌온 그들은 또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서 3단계 전환 대상으로 분류되었던 민간위탁 노동자들이기도 하다. 지난 5년을 기다렸어도 그들에게 정규직 전환의 소식은 여태 들려오지 않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한 달 남은 지금, 피우지 못한 꽃처럼 노동자들의 마지막 기대도 지고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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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노동 전환기, 일자리는 국가 책임 재작년 12월, 노후 석탄발전소인 보령화력 1·2호기가 폐쇄되면서 에너지 전환은 우리에게도 당면한 현실이 되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재편 과정에서 석탄 화력발전 관련 1만4000명과 내연기관 자동차산업 관련 88만6000명의 노동자들이 고용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전체의 최근 공식 실업인구 100만명과 비교해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 노동자들 상당수에게는 일터 상실이라는 예정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할 땐 국제사회의 압력에 내몰려 허둥대더니, 체감할 만한 고용 대책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절박함 앞에서는 느긋해 보인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의 결정에서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