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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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의 사회의학 클리닉 도둑맞은 취약지 드디어!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고 구체적 실행 방안을 담은 시행령까지 입법예고됐다. 느낌표를 덧붙인 것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했기 때문이다. ‘전공의 처단’이 담긴 계엄포고령으로 시작된 불법 내란의 종식과 더불어 의·정 갈등은 일단락되었지만, 기-승-전 의사인력 문제로 귀결되는 지역의료 상황은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역의사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여러 대안 중 하나일 뿐이며, 해결해야 할 다음 과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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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의 사회의학 클리닉 ‘병원 너머’를 상상하기 ‘의료대란’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지만 흉흉한 소식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른바 필수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상황이 악화일로에 있으며 의료체계가 붕괴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비관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방향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기존 의료체계에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만큼은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대체로 당장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혹은 응급의료 문제, 그렇기에 병원, 그것도 고난도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종합병원, 의료인력도 고도의 스페셜리스트, 즉 특정 영역에 전문화된 분과 전문의들이 정책적 관심 대상이다. 하지만 크고 화려한 건물도 일단은 탄탄한 기초공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병원체계는 1차 의료의 뒷받침 없이 작동할 수 없다는 점이 자주 간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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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정파적 진실 시대의 사회적 신뢰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현수막을 걸기 좋은 ‘목 좋은’ 장소들이 두세 군데 있다. 지난 몇년간 그곳에는 백신 음모론에서부터 부정선거 음모론, 계엄과 내란 옹호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헛소리를 담은 현수막이 쉬지 않고 걸렸다. 말도 안 되는 주장에 처음에는 한심하다고 혀를 찼지만, 점차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을 믿는 사람들이 ‘실존’하고, 심지어 구체적 행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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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대리전을 그만두자 새벽배송 서비스 이용자 2000만명에 들지 못한 1인으로서, 이 논쟁이 이렇게 뜨거울 일인가 깜짝 놀랐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이 노동자 과로와 야간노동을 줄일 수 있도록 자정~새벽 5시 사이의 초심야 시간 배송을 제한하자고 제안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사실 교대근무와 야간노동이 오랜 진화 역사에서 인간의 몸에 새겨진 일주기(circadian) 리듬을 파괴함으로써 여러 건강 문제를 초래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병원이나 소방서처럼 어쩔 수 없이 교대근무나 야간근무가 필요한 직종에서는 근무 시간 단축과 휴식 보장, 근무조 편성과 배치 조정, 수면 보조 기술 등 건강 피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탐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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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21세기 탐관오리들 얼마 전, 자신의 SNS에 황당한 광고가 떴다며 친구가 휴대전화 화면 이미지를 보내주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광고였다. 앗, 이럴 수가? 나도 보여줄 것이 있었다. 내 SNS에 뜬 것은 그라프 목걸이였단 말이다. 쇼핑몰 검색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성실하게 시사 뉴스를 보았을 뿐인데 이런 광고를 받아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재치 만점 알고리즘의 센스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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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인권을 가장한 특권 10여년 전, 구금시설 수용자의 건강권 실태 조사연구에 참여하면서 여러 구금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접견실, 교정 공무원 사무공간, 의무실과 병사(病舍)는 물론 수용자들이 생활하는 거실과 작업장까지 두루 둘러보았고 수용자들을 직접 만나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죄를 지었으니까 사회로부터 벌을 받는 것이지만, 형벌은 어디까지나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어야지 인간 기본권 전체, 특히 건강권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 이는 국제적 규범이자 약속이다. 그럼에도 구금시설은 바깥 사회의 ‘최저 빈곤선보다 생활 수준이 높으면 안 된다’는 암묵적 원칙 때문에 여전히 열악한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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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산재는 노동체계 불평등의 바로미터 지난 주말, 휴가에서 돌아온 대통령 지시에 따라 대통령실이 긴급 브리핑을 했다. 앞으로는 산재 사망 사고를 대통령에게 직보하라는 것, 고용노동부가 산재 사고 방지를 위한 조치 사항을 다음 국무회의에서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7월29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산재 대책을 두고 1시간 넘게 토론하는 모습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노동건강연대를 비롯한 노동·시민 단체들이 20년 넘게 줄곧 제기해왔던, 하지만 응답이 없었던 노동자 사망 문제가 이렇게 정부 최고기구에서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약간 감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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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공공병원은 팝업스토어가 아니다 지난 6월 말, 대한의사협회는 정례 브리핑을 통해 진보당 전종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재정법’과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비판 의견을 내놓았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지방의료원 신·증축 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지방의료원이 재난이나 감염병 대응 같은 공적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에 대해 국가가 보전해주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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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어허, 믿음이 부족하다 대선이 마무리됐다. 내란으로 촉발된 대혼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겨우 한 단계가 끝났을 뿐이다. 멀쩡한 ‘민주주의’와 ‘공화국’으로 향하는 길에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고 높다. 종교 개혁도 그중 한 가지다. 헌법 제20조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다. 천지신명 하늘님을 믿든, 하나님과 예수님을 섬기든, 단군 조상을 모시든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지구가 6000년 전에 만들어졌다, XX 염색체를 지닌 인간 여성이 단성생식으로 XY 염색체의 인간 남성을 출산했다는 기적을 믿고 따르는 것도 각자의 자유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기괴한 믿음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심지어 국가 제도를 통해 이를 강제하려는 것은 헌법에서 정한 종교의 자유를 벗어나는 일이다. 헌법에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점이 분명히 기술돼 있다. 그런데 특정 종교, 구체적으로는 개신교가 이 선을 넘고 있다. 직접 정당을 결성해서 정치에 뛰어들고, 세속의 법과 제도에 일일이 간섭해 영향력을 행사하며, 교육과 복지 사업을 통해 국가의 공적 자원을 전유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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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마금희, 이 양반이 어뷰징을 걸었네” 곽재식의 단편소설 <칼리스토 법정의 역전극>에서 상대편 변호사 마금희는 변론 도중 재판 내용과 동떨어진 자료들을 이것저것 언급하며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횡설수설을 반복한다. 우주 최강의 승률을 자랑하는 변호사라더니 이 무슨 엉뚱한 행동인가 싶지만, 심지어 “그렇게 나 자신에게 되뇌네, 기억이 나지 않아. 잊고 싶어” 노래까지 부르며 변론을 마무리하는 동안 인공지능이 예측한 ‘우리 편’의 승소 확률은 뚝뚝 떨어진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새로운 증거를 내놓은 것도 아니고 변론이 그럴듯했던 것도 아닌데 왜 우리의 승소 확률이 낮아진 것일까. 눈치 빠른 우리 주인공이 내뱉은 한마디. “마금희, 이 양반이 어뷰징을 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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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산 자를 위해 투쟁하라 때 이른 선거의 계절이 찾아왔다.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TV 토론과 지역 유세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조용하고 차가운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살인기업은 어디인가요?”를 묻는 시민 투표다. 4월28일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날’을 기념해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은 2006년부터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진행해왔다. 산재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노동자 건강과 안전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촉구하는 유서 깊은 행사이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으면서 ‘왕중왕’을 뽑는 투표를 하게 된 것이다. 엄선된 아홉 후보 중에서 두 곳에만 투표를 할 수 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업종별로도 제련소와 중공업 같은 전통 제조업에서부터 반도체 생산 같은 첨단 제조업, 건설업, 플랫폼 유통업체까지 골고루 포진한 가운데 후보들의 이력이 워낙 화려해서 선택이 쉽지 않았다. 경쟁에 밀려 안타깝게(!) 후보에 오르지 못한 과거 수상자들의 이름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결과 발표와 기자회견, 사진전 등의 행사 준비 상황을 공유하던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 대화방에 급작스러운 부고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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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내가 바라는 불확실성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는 조직과 국가 수준의 가치, 문화적 특징을 측정하고 유형화한 연구로 유명하다. 그는 세계 70여개국에 지사를 둔 글로벌 기업 IBM 인사관리 부서에서 일하며 각지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방대한 조사를 수행했다. 그는 동일한 규칙과 조직구조에도 불구하고 국가마다 직원들의 가치와 태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고, 이후 심층 연구를 통해 집단이 공유하는 문화의 특징을 여러 차원으로 유형화했다. 그중 하나가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다. 이는 알려지지 않은 미래, 모호성에 대한 사회의 스트레스 혹은 관용의 정도를 의미한다. 불확실성 회피 지수가 낮은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모호성에 잘 적응하고 익숙하지 않은 위험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직업을 바꾸거나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활동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