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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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상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빠르게 흐르는 강가에 서 있는데 물에 빠진 사람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요. 강물에 뛰어들어 그를 물가로 끌어올린 다음 인공호흡을 하죠. 그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마자 또다시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이 들려요. 또다시 강에 뛰어들어 구조하고 인공호흡을 하는데, 그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마자 또 다른 구조 요청이 들립니다. 그래서 다시 강으로 들어가 손을 뻗고, 잡아당기고, 인공호흡을 하고, 숨을 쉬게 하고, 또다시 구조 요청, 이게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어요. 저는 뛰어들어 사람들을 끌어내고 인공호흡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상류에서 누가 사람들을 밀어 넣고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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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전문직 윤리와 노동권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발표로부터 촉발된 ‘의·정 갈등’이 진정될 기미는커녕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진료 현장을 떠나 있던 전공의들에게 정부가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며 의대 교수들이 휴진을 결의했고 대한의사협회도 파업을 고려 중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은 ‘의·정’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시민들의 처지를 내다본 조상의 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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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지켜야 할 명예라면 4월28일은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날이다. 매년 세계 곳곳에서 추모 행사가 열리는데, 국내에서도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이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거행한다. 이는 불명예스러운 시상을 통해 기업의 책임과 경각심을 촉구하고,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로, 2006년부터 매년 시행해 왔다. 20년이 되어가는 유서 깊은 행사이지만, 이를 계속할 수 있을지 주최 측의 고민이 깊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만들어졌겠다, 이제 굳이 이런 행사를 할 필요가 없어져서 그런 것이라면야 좋겠지만, 그럴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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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20년 드라마의 비극적 대단원 20년 전 바로 오늘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날이다. 소박한 교외 식당에 친구들과 모여 앉아 숨죽이며 TV 화면을 지켜봤다.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민주노동당 9~12석’이라는 뉴스가 화면에 등장했다. 다 함께 환호했다. 내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을 알고 있는 지인들의 축하 문자, 전화가 이어졌다. 내가 당선된 것도 아닌데! 민주노동당 당원이든 아니든,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적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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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최선이자 유일한 대안, 공공이 미래다 얼마 전 일본의 ‘의료취약지 공공병원’ 견학을 다녀왔다. 인구가 채 3만명이 안 되고 노인 인구 비율이 40%에 달하는 농촌지역 시립병원들이었다. 이들 역시 의료인력, 특히 의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황은 훨씬 나았다. 우선 병상 150개, 그중에서도 급성기 병상은 50개에 불과한 아키타현 오모리 시립병원은 내과, 외과, 정형외과 전문의 13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외래는 이들 3개 과 외에도 신경과, 신장내과, 호흡기내과, 소아과, 비뇨기과, 안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재활의학과 등을 열고 있었다. 비결은 ‘파견’이었다. 아키타 의대에서 전문의들을 정기적으로 파견하여 주민들에게 필요한 외래 서비스를 제공했다. 병원 규모가 이렇게 작아도 위암과 대장암 수술을 직접 시행할 만큼 진료 역량도 탄탄한데, 이때 필요한 마취과 의사 또한 아키타 의대에서 파견해주었다. 영상 검사 역시 아키타 의대와 원격 진단 체계를 갖추고 판독 지원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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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든 자리는 알아도 난 자리는 모른다 연말에 독일 여행을 다녀왔다. 버스, 트램(전차), 지하철, 지역 일반열차, 광역 고속열차, 비행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낯설었던 것은 어디에나 유아차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대중교통, 특히 버스에서 유아차를 만나는 건 진짜 드문 일이다. 한국의 대단한 저출생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이건 이상한 일이다. 1990년대 말 처음 방문한 유럽 미술관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너무 많아 놀랐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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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 작년 말,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사회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기본소득당 노동안전특별위원회와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는 노무사들이 2022년에 산재 청구된 자살사례들에 대한 업무상 질병판정서를 분석한 결과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나는 일본의 <과로 자살>을 국내에 번역 소개한 인연으로 초대받았다. 이 책이 일본에서 처음 출판된 1998년은 일본에서 자살자 수가 사상 처음 3만명을 돌파한 해였다. 한국도 외환위기를 겪으며 자살률이 치솟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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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필수의료 떠받치는 일차의료 심장판막증 수술과 심부전, 대장암. 아버지는 오랫동안 대학병원 단골손님이었다. 외래진료 날이면 아침 일찍 들러 검사를 하고, 오전 오후 여러 진료과를 순례했다. 그나마 같은 날짜로 맞출 수 있다는 것이 다행. 자식들은 출근을 해야 하니 아버지와 어머니, 두 노인이 서로를 의지하며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병원을 왕래했다. 하지만 보조기 없이 걷기 힘들어지면서, 어머니 혼자 외래를 방문하여 대신 상담과 처방약을 받아오게 되었다. 그럴 바에야 진료기록을 옮겨와서 가까운 동네의원에 다니시라고 몇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중병이고 약이 많아 복잡하기 때문에 동네의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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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그저 숏컷일 뿐인데 황송한 ‘페미’ 대접 어릴 적에 엄마는 항상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주셨다. 변화는 초등학교 입학 후에 일어났다. 자기 이야기가 지면에 실린 것을 알면 펄쩍 뛰겠지만, 두 살 터울인 오빠는 어릴 적 심한 밥투정꾼이었다. 엄마가 옆에서 일일이 “숟가락 들어, 입에 넣어, 씹어, 삼켜” 잔소리를 해야 겨우 밥을 먹었다. 결국 엄마가 먹여주다시피 해서 학교에 보내고는 했는데, 이제 아이 둘을 한꺼번에 등교시키려니 양 갈래 머리를 땋는 것은 엄마에게 너무나 큰 도전이 되었다. 그리하여 첫 방학과 함께 나의 ‘숏컷’ 인생이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초등학교 1학년 페미’의 탄생 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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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시기상조’ 뒤에 사람 있어요 빠른 시일 내에 법률이 제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으로 논문을 끝맺었다. 2003년 ‘노동자의 죽음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시작된 ‘기업살인법 운동’의 진화를 분석한 논문이었다.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거치면서 기업에 책임을 묻는 사회적 요구가 거셌지만, 이러한 목소리를 ‘제도’로 만들어낼 수 있는 진보적 정당 정치가 허약하다는 것이 당시 우리 연구팀의 진단이었다. 영국과 캐나다에서 노동 친화적 정당이 희생자 단체, 노동조합과 함께 입법에 나섰던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워보였다. 2017년, 고 노회찬 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지만, 논의도 못해보고 폐기된 것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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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생로병사 해탈한 존재, 그의 이름은 올해 합계출산율이 0.7명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항상 핵심을 벗어나는 정책만 내놓던 정부가 이번에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자녀 돌봄의 부담을 낮춰서 출산을 유도하려 해도 가사도우미를 구하기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니, 이주노동자를 데려와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고 월 급여를 100만원 이내로 한다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법안은 철회되었지만 사업 자체는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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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유급 병가,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3년 반 전. 지금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코로나19 유행 초기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회사나 학교, 심지어 방문했던 식당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무조건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에 머물렀다. 회사에서도 눈치는 줄지언정 출근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확진이 되면 입원·격리 기간 동안 정부가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제공한 사업주에게도 일부 비용을 지원했다. 이내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는 정부의 5대 생활 방역수칙 중 하나가 되었다. 의심 증상이 있지만 노동자들이 쉽사리 일을 중단할 수 없거나 작업장 내 방역 조치가 미흡했던 콜센터, 물류센터 등에서 유행이 시작되어 지역사회로 급속히 확산되자, 병가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누려보지 못한 ‘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