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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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건강보험은 전진해야 한다 지금 청년 세대에게는 원래 있는 제도이지만, 필자의 건강보험 자격득실확인서를 떼어보면 1987년부터 가입 내역이 시작된다. 그 이전에는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모가 공무원이나 교사, 대기업 직원인 경우에만 의료보험이 있었고, 그래서 동네에서 누가 의료보험 있는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했다. 엄연한 불법임에도 다른 사람의 보험증을 빌려 병원에 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의료보험은 그야말로 ‘특별한’ 혜택이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은가?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는 겨우 한 세대 전인 1989년에야 도래했다. 한참 뒤 본인 일터에서 건강보험에 강제 가입한 친구들은 한동안 성토대회를 열었다. “나는 생전 병원에 안 가는데 왜 의료보험료를 ‘따박따박’ 내야 하는지 모르겠어. 들고 싶은 사람만 들게 하면 안 되나?” 이런 경솔한 불만은 몇 년 안 지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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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구간 단속, 고속도로에만 필요할까 동방예의지국에서 함부로 내뱉을 말은 아니지만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의문을 갖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어? 이거 예전에 해봤던 건데’하는 일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9년 3월11일 오전 9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건물 앞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들의 긴급 공동 기자회견에 나는 보건 분야 전문가로 참석해 한마디를 보탠 적이 있다. 당시 발언의 요지는,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바짝 장시간 노동을 한 다음 충분히 쉬기만 하면 괜찮은 게 결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법정근로시간은 엄연히 주 40시간이니, 연장근로 한도까지 포함된 주 52시간을 마치 표준인 것처럼 쓰지 말라는 이야기도 했다. 이날은 경사노위 본회의가 예정되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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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반복되어서는 안 될 말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치과 대기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TV를 등지고 앉았는데, 맞은 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TV에 집중된 것을 깨달았다. 몸을 돌려보니 화면 속에서 커다란 배가 기울어지며 가라앉고 있었다. 세상에 저렇게 큰 배가?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라고? 어떡하지? 하지만 걱정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빨간 바탕에 커다란 흰색 글자, 탑승객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속보 자막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아유, 그럼 그렇지. 저 고등학생들, 오늘 저녁에 무용담 자랑 엄청나겠네. 그러고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현실을 알게 된 것은 치료를 마치고 지하철로 이동해 일터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8년 전 일이지만, 그 순간의 느낌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분노도 슬픔도 아닌, 그냥 ‘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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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우리 사회에 공감이 부족한가? 수도권에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은 이제 ‘장차연’(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라는 단체를 모를 수 없다. 지하철 승강장과 차량 안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 때문에’ 운행이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을 듣기 때문이다. 폭설, 화재, 폭우와 관련한 안내는 빼먹어도 이것만은 결방이 없다. 나에게는 이 방송을 들을 때마다 자동 재생되는 기억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사회와 건강 문제를 토론하는 의대 수업시간이었다.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자>를 시청한 후 한 학생이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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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실종된 ‘공공의료’를 찾습니다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에서 공공의료에 대한 강의를 할 때면 첫머리에 항상 질문을 던진다. “여기 계신 분들 중 공공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보신 분 있으세요?” 그러면 으레 질문이 되돌아온다. “어디가 공공병원인가요?” “국립대병원도 공공병원이에요? 그러면 나도 가봤는데.” 이제 내가 잔소리를 할 타이밍이다. “아니, 지금 공공병원이 뭔지도 모르시면서 공공의료 강화하자고 캠페인하시는 거였어요?” 멋쩍은 웃음이 터진다. 수년 동안 반복되던 이 ‘의식’이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면서 조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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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더 많은 정치방역이 필요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 목록에 오르기에는 좀 모자란 감이 있지만, 어쨌든 현재 대한민국 최고 미스터리 중 하나를 꼽자면 단연 ‘과학방역’이다. 소문은 무성하지만 그 실체를 본 사람도, 알고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주로 ‘정치방역’에 대비되어 쓰이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정치란 당파적·음모론적·비과학적인 것이고, 그에 비해 과학은 불편부당·객관적·합리적이며 진리에 더 가까운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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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공리주의 수난시대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악당 타노스는 독특한 존재였다. 그전까지 영화 속 악당들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인자가 되겠다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히거나 파괴적 복수를 일삼는 자들이었다. 반면 타노스는 자신의 영광이나 복수, 눈먼 파괴욕이 아니라 전체 우주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악당이었다. 자원은 점차 줄어드는데 이렇게 인구가 늘어간다면 모두 고통스러운 삶을 맞이하리라. 그는 고심 끝에 우주 인구의 절반을 랜덤하고 공평하게,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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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건강불평등 줄이는 비장의 도구 “임금체불 일본의 16배, 최저임금 폭주 탓”, “최저임금 과속 인상 뒤 체불 임금 日 14배”. 주말에 발행된 유력 일간지들의 사설 제목이다. 최저임금 결정 시즌에 본격 돌입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최저임금 부담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영업자, 일자리가 사라진 노동자들의 하소연이 잇따를 예정이다. ‘알바 자리 잘리면 어쩌나’라는 기사를 쉽게 만날 것이다. 이런 기사와 마주치면 일단 날짜부터 확인해보자. 작년, 재작년, 아니면 10년 전 이맘때 기사일 수도 있다. 평소에도 영세자영업자, 저임금 노동자의 사정에 이렇듯 관심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 했는데, 한계 상황에 처한 이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 전 국민 스포츠경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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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부재의 정치와 공생의 정치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마침내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법이 공포됐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민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권력형 비리가 창궐할 것이라는 검찰의 시일야방성대곡에 아연실색했지만, 무엇보다 더불어민주당의 추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 국민의힘, 보수언론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아 저렇게 돌파할 수 있는 거였구나, 그렇구나. 국민적 합의, 야당의 협조 타령을 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뤄온 지난 5년의 진심을 매우 잘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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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1호 기업이 궁금하지 않다 4월은 추모의달이다. 지난 세기 4·3 제주항쟁과 4·19 혁명이 있었고, 가까이는 4·16 세월호 참사가 있다. 그리고 4월28일은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날이다. 국내 노동단체들도 2006년부터 해마다 4·28을 전후하여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개최해왔다. 이전 해에 가장 많은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거나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기업들의 명단을 발표하고, 한 해 동안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 불명예스러운 수상을 한 기업들은 해명자료를 내거나 언론사에 항의를 하고, 때로는 선정 과정에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어쨌든 무언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캠페인이 의미가 있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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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두려움의 군주’ 넘어 희망의 정치로 국내에서 ‘타인에 대한 연민’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저작의 원래 제목은 ‘두려움이라는 군주’였다. 두려움이라는 절대 군주의 지배에 휘둘릴 때, 사람들은 증오, 분노, 혐오에 사로잡힌다. 난민들이 성범죄를 저지르고 여성의 안전을 위협할까봐 두렵다, 외국인이 흥청망청 이용해서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날 것이 두렵다, 위험천만한 페미니즘이 독버섯처럼 퍼지고 저지르지도 않은 성범죄로 처벌받을 것이 두렵다. 큰일이다. 추방하고 억누르고 통제해야 한다. 그것도 가급적 빨리. 위험이 임박했으니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두려움이라는 군주에 지배당하고, 분노에 불이 붙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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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미룰 수 없는 ‘시기상조’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지 어느덧 2년,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귀신같이 들추어내고 있다. 제노포비아와 백신 불평등 같은 국제적 이슈에서부터 성소수자와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 불안정 노동자들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에 이르기까지. 성벽이 하나씩 무너지더니 이제 ‘의료전달체계’까지 왔다. 사실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최약체로 지목받았지만, 다른 곳이 먼저 포화에 휩싸이면서 용케 버텨오던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