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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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경의 한뼘 양생 사순이가 남긴 질문 사순이가 죽었다. 사설 농장에서 20년간 사람들의 볼거리로 살다 죽었다. 길이 2m, 무게 150㎏의 몸으로 4평 남짓한 사육장에 평생 갇혀 살다 죽었다. 어느 날 잠시 열린 문틈으로 첫 외출을 나섰다가 1시간10분 만에 죽었다. 처음 흙을 밟고 농장에서 20m쯤 떨어진 숲속으로 걸어가 가만히 앉아 있다 죽었다. 발견 즉시 사살된 이유는 사순이가 ‘맹수’라는 점이었다. 그는 지구에 250마리 정도만 남은 멸종위기 2급의 ‘판테라 레오(Panthera Leo)’종 암사자였다. 2023년 8월14일 오전 8시34분, 경북 고령군 숲에서 벌어진 일이다. -
이희경의 한뼘 양생 K장녀의 ‘독박 돌봄기’ 올해 초 독립선언을 했다. 정확히는 더 이상 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어머니를 부양한 지난 9년 동안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뻔히 아는 동생들은 군말이 없었다. 나의 대안은 4남매가 더 확실히 돌봄을 분담하고 책임지는 것이었다. 돌아가면서 한 달씩 어머니 모시고 살기. 그리고 병원케어는 신경외과, 정신과, 심장내과, 척추센터 등으로 나누어 담당하기. 이것에도 동생들은 이견이 없었다. -
이희경의 한뼘 양생 ‘녹색평론’이 돌아왔다 ‘녹색평론’이 돌아왔다. 잃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것이 있는데 나에게는 2021년 휴간한 ‘녹색평론’이 그랬다. 구독자 수의 감소와 재정위기라니, 나도 일조했구나,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받아 쌓아놓기만 했으니까.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서둘러 지나간 잡지들을 읽어보고, 구독을 유지하고, 후원회원이 되어 ‘녹색평론’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 것일까? 다행히 ‘녹색평론’은 약속대로 올여름 돌아왔다.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일삼아 연대! 시작은 ‘어쩌다’였다. 2011년 1월6일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35m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고, 그해 7월 나와 친구들 몇명은 그 투쟁에 연대하는 ‘2차 희망버스’에 탑승했다. 그렇다고 대단한 대의명분을 갖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미안한 마음에” “친구가 가자고 해서” “희망버스라는 방식이 신선해서” 어쩌다 동참하게 되었을 뿐이다. -
이희경의 한뼘 양생 건강이 신(神)이 되어버린 사회 조인성, 이성민, 김남주, 황정민, 이병헌, 비, 공유, 이선균, 전지현, 지성, 이정재, 송중기, 유재석, 정우성…. 이들의 공통점은? 얼마 전에 치러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과 관련이 있냐고? 아니다. 힌트로 BTS, 트와이스, 손흥민, 임영웅, 김호중, 박재범, 김신록, 그리고 아이유를 추가하면? 정답은 약 광고에 출연하는 톱스타 혹은 라이징 스타이다. 얼마 전 나는 흑백영화 같은 30초짜리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게 관절 영양제 광고였기 때문이다.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영초언니’에게 한발 가까이 지난 주말 요양원에 있는 선배를 보러 갔다. 지난해 말 첫 방문 이후 3개월 만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선배 옆으로 바짝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언니~” “언니~” “나, ○○야” “나, ○○야” “○○이 왔어요” “○○이 왔어요” 반향어를 사용하는 것은 지난번과 마찬가지였다. 한때 운동권의 대모라고 불렸던 선배가 아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것은 20여년 전이다. 그리고 몇 년 되지 않아 교통사고를 당해 불운하게도 뇌를 크게 다쳤고, 운동기능뿐 아니라 시력, 언어능력, 기억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바보가 되었다”라고 했다. 난폭한 행동을 일삼는다고도 했다. 다행히 몇 차례의 큰 수술을 통해 의식이 좀 돌아왔는데 그 이후엔 그녀가 종일 먹을 것만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이희경의 한뼘 양생 무심하고 민감하게, 나와 식물 이야기 입춘이 지나자 군자란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봄이구나. 마음이 분주해졌다. 베란다에 설치해놓았던 비닐하우스를 해체하고 겨우내 그 속에서 최소한의 물로 옹색하게 버틴 화초들의 상태를 살폈다. 마른 잎들은 털어내고 화분의 흙들을 보충하고 알비료도 조금씩 올려주고 오래간만에 커다란 물뿌리개로 화초들을 샤워시켜 묵은 먼지를 털어냈다. 다음엔 한쪽으로 밀쳐놓았던 높고 낮은 화초 받침대를 늘어놓고 실내에서 월동했던 스노 사파이어와 율마까지 데려다 모든 화초가 골고루 햇볕을 받을 수 있게끔 자리를 잡아줬다.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자기 힘으로 이동한다는 것에 대하여 어머니와 합칠 집을 구할 때 가장 많이 신경 쓴 것은 두 세대가 살기에 적합한 구조인가 여부였다. 주변 환경이 조용하고 전망이 좋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고. 다행히 이런 것들이 웬만큼 충족된 곳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곳이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있다는 것, 따라서 노인이 걸어서 이동하기 좀 힘들다는 사실은, 당시엔 내 안중에 없었다. 문제를 느낀 것은 한참 후였다. “나를 이 꼭대기에 처박아놓고…”라는 지청구가 빈말이 아니라는 것, 어머니의 우울증이 깊어진 것이 소일거리가 없기 때문이고, 또 그것은 자기 힘으로 이동하기 힘들게 된 사정과 관계있다는 것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예전 살던 곳에서 누렸던 이동권, 즉 혼자서 미장원에 가고, 한의원에 들르고, 약국에서 약사와 수다를 떨고, 돌아오는 길에 팥칼국수 한 그릇 사 먹는 행위가 주는 기쁨과 활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우리들의 글쓰기, 자기돌봄과 상호돌봄 인문학 공동체도 추수를 한다. 단 가을이 아니라 겨울에, 나락 대신 에세이로. 농부의 가을걷이가 그러하듯 우리 에세이도 일 년 공부를 정직하게 반영한다. 누군가는 여문 글을, 누군가는 쭉정이를 얻게 된다. 하지만 막판 뒤집기도 언제나 가능한 법이라, 에세이 철이 다가오면 얼굴이 누렇게 뜬 채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뒤늦게 스퍼트를 올리는 학인들로 공동체가 후끈 달아오른다. -
이희경의 한뼘 양생 내년에는 나도 ‘페스코’를 최근 공동체 공론장에 낯선 단어, ‘페스코’가 등장했다. 11월 한 달 동안 진행한 ‘잡식가족의 딜레마’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젊은 남성 회원 한 명이 자신을 페스코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페스코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의 준말이고, 소·돼지·닭 등의 고기는 먹지 않되 우유·치즈·달걀, 그리고 해산물은 섭취하는 채식주의의 한 종류를 뜻하는 말이란다. 알고 보니 채식에도 여러 등급이 있었다. 완전 채식인 비건부터 락토, 오보, 페스코, 폴로 그리고 상황에 따라 육식도 하는 유연한 플렉시테리언까지.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숨 숨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최근에 확실히 알았다. 축농증이나 비염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닌데 코가 아니라 자꾸 입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운동 코치가 내가 숨을 잘 못 쉰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숨, 특히 날숨이 짧다는 지적을 한 적도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세월호 직후 108배와 명상을 할 때도 나는 내 호흡이 짧고 불안정하다고 생각했었다. 아, 나는 왜 숨쉬기조차 제대로 못하는 것일까? -
이희경의 한뼘 양생 간호사, 간병인, 요양보호사, 그리고 나, 보호자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간호법 제정을 둘러싸고 찬반이 분분하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기 위해 간호법이 필요하다며 300일 넘게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등은 간호법이 간호사들만의 이익 추구를 위해 타 업무영역을 침해한다며 ‘간호법 제정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에 나서고 있다. 나는 뭔가 기시감이 든다. 2000년 의약분업 때, 1993년의 한약 분쟁 때, 그리고 2년 전의 의사 파업 때가 떠오른다. 피로감이 몰려오고 정신건강을 위해 아예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 문제에 깊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늙고 병든 어머니의 직접적인 돌봄 제공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