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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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경의 한뼘 양생 걷기와 부처님의 발바닥 걷기가 내 삶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20년쯤 전이었다. 당시 내가 몸담았던 지식인 공동체에서는 점심과 저녁, 하루 두 끼 함께 밥을 해 먹고는 꼭 떼로 산책에 나섰다. 중간에 제기차기에 열중했던 적도 있고,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 중단’ 같은 구호를 적은 손팻말을 들고 걷기도 했지만 대개는 동료 연구자들과 온기 어린 대화를 나누며 특별한 목적 없이 동네 한 바퀴를 어슬렁거리다 돌아왔다. 앎과 삶의 일치를 꿈꾸던 제도 밖 연구공동체의 실존방식이었는데 그것으로부터 공부, 밥, 산책이라는 내 삶의 기본 스타일도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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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경의 한뼘 양생 돌봄 네트워크, 우정의 새로운 용법 ‘노라’라는 별명의 공동체 회원이 있다.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주인공, 자아를 찾아서 집을 박차고 나간 노라를 떠올렸지만, 아니라고 했다. 노라는 ‘놀아라’의 준말이란다. 공부하는 공동체에서 대놓고 놀자고 선동하는 그녀는, 별명만큼 늘 활력 넘치고 유머가 풍부하며 순발력이 좋아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공동체 ‘인싸’이다. 그런데 그녀가 덜컥 암에 걸렸다. -
이희경의 한뼘 양생 필사하는 새벽 6시, 눈을 뜬다. 아직 어둡다. 천천히 일어나 거실로 나가 물을 끓인다. 뜨거운 물 100㎖를 컵에 따르고 냉장고에서 찬 물을 꺼내 같은 양을 그 위에 붓는다. 창문을 열고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잠시 물이 섞이길 기다린다. 겨울 기운은 완연히 가셨다. 그래도 공기는 선뜻하다. 천천히 <동의보감>에서 말한 그 음양탕을 마시고 방에 들어와 책을 편다. 오랫동안 읽고 쓰는 일을 해왔고 이제 텍스트의 맥락을 파악하고 핵심을 요약하는 일은 숙련공에 가까워졌지만 읽기의 아름다움과 설렘을 느꼈던 적은 언제인지. 나의 읽기는 여전히 도장 깨기의 여정에 머무는 것은 아닐까?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천 개의 폐경기,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몇 년 전 복고열풍을 불러왔던 화제의 드라마 한 장면. 갱년기를 겪고 있던 주인공의 엄마는 매사에 짜증이 나고 우울하다. 그러다가 남편에게 하는 말, “나, 사형선고 받았다. 하느님이 내보고 여자로 그만 살란다. 당신, 이제 내캉 의리로 살아야 하는디 괘않겠나?” 시대착오적으로 보이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도 폐경기는 여성성 상실, 여자로서 끝이라는 식의 통념이 지배적이었다. 이제 그런 낙후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얼굴이 붉어지길래 부끄러우냐고” 묻는 일은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폐경기는 여성호르몬이라 불리는 에스트로겐이 감소하면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신체적 변화과정일 따름이다. -
이희경의 한뼘 양생 양생이 필요해 양생을 인문학공동체의 새로운 비전으로 삼자고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스피노자를 1년 동안 강도 높게 읽어보자거나 사서를 원문으로 강독해보자고 했을 때의 호응과는 사뭇 달랐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양생이라는 단어가 낯설다고 했다. 양생이라 하면 시멘트 양생이 먼저 떠오른다나? 믿을 수가 없었다. 주변 청년에게 물어봤다. 양생이라는 단어 아니? 뭐가 떠올라? 돌아오는 대답은, “후학 양생요?”였다. 맙소사! 양생이 낯선 단어가 맞는구나. 조용히 정정해줬다. “음, 후학은 양생(養生)하는 게 아니고 양성(養成)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