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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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김장과 낙천성 김치를 좋아한다. 김치찌개에 김치볶음밥을 놓고서도 깍두기를 곁들여 먹는 사람이다. 김장을 할 때면 6가지 이상을 담그고, 밥상에는 늘 3종 이상의 김치가 올라오던 집 출신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형제들은 나 정도는 아닌 걸 보면 그냥 타고나길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애정의 정도에 비해 담그는 데는 재주가 없다. 할 줄 모르니 친정에서 김장을 할 때도 채칼로 무채 썰기라든가 대야 옮기기, 양념 붓기 같은 단순 작업밖에 못했다. 그러나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딱 한 가지 재주를 갖고 있으니, 바로 간을 기가 막히게 본다는 것이다. 익었을 때 맛있을 정도를 가늠할 줄 아는 미각 말이다. 맛을 보고 싱겁다 짜다 운운하며 이러저러 지휘를 하면, 어른들이 투덜대곤 하셨다. 제 손으로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입만 살았다고. 그러나 어찌하리. 어른들 입맛은 둔해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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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영웅은 없다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가끔 유튜브 문화유산채널의 K-ASMR 국가무형문화재 시리즈를 찾아서 본다. 그렇게 찾은 동영상 중 하나가 명주짜기였다. 베틀에서 달가닥달가닥 명주 짜는 소리를 기대하며 튼 동영상은 바로 내 예상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베틀에 앉아 천을 짜는 첫 화면은 맛보기였을 뿐이고, 본격적인 내용은 누에를 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뽕잎을 먹으며 누에가 성장해 고치를 짓는 장면부터 시작하더니, 인간의 온갖 작업이 이어졌다. 여럿이 모여 고치를 다듬고는 삶아서 실을 뽑아 물레에 걸어 실뭉치를 만든다. 그 후엔 서로 붙은 실을 분리하는 실째기 작업이 이어진다. 째기를 마친 실은 걸어서 말리고 가닥별로 실뭉치를 만든다. 아직도 끝이 아니다! 한 필의 길이로 실의 길이를 맞추는 베날기 작업, 그다음엔 그 실을 펼쳐 풀을 먹이고 말리는 베메기 작업이 이어진다. 베메기 작업을 하려면 한 필 길이의 실을 늘어놓을 넓은 공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여럿이 달라붙어 일일이 솔로 풀을 먹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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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분서갱유의 카르텔 2000년대 초반 일이다. 개성공단으로 남북 협력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모 방송국에서 개성을 직접 방문해 그 역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 마침 내가 속한 연구 모임이 고려 개경을 연구하고 있었기에, 방송국에 여러 자문과 함께 북한 측 연구자 ㅈ씨를 만나서 연구 이야기를 들으라고 조언했다. ㅈ씨는 해방 후 개경 성곽 전체를 직접 조사하여 논문을 발표한 유일한 분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온 방송국팀이 전한 북한의 환경은 열악했다. 수시로 정전이 되는 바람에 촬영이 자주 중단됐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추천한 ㅈ씨는 자신의 박사논문 원고를 보자기에 싸 갖고 올 정도로 촬영을 적극 도왔다고 했다. 그 얘기에 모두 귀가 번쩍 뜨였으나, 그 논문을 구해볼 순 없었다. 보자기 원고가 유일본이었기 때문이다. “복사라도 해서 갖고 오시죠?” 한마디 했다가 나는 바로 깨달았다. 카메라 전기도 끊기는 마당에 어디서 복사를 해오나. 인문학 분야도 21세기의 연구는 종이, 펜만이 아니라, 전기나 복사기 같은 현대 문명이 있어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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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4조 얼마 전 우연히 육군사관학교 앞을 지나다 놀라운 조형물 하나를 보았다. 거대한 황금색의 신라 화랑 동상이었다. 신라 화랑을 계승한다는 걸 내세우기에 육사가 있는 곳을 화랑대라고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문 앞에 이렇게 거대한 동상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알고 보니 육사는 정문 이름도 화랑문이요, 연병장도 화랑연병장이며, 기숙사는 화랑관, 복지시설도 화랑회관이었다. 동상만 해도 정문 앞만이 아니라, 도서관 앞에도, 연병장 앞에도 있다. 심지어 1년에 한 번 여는 문예전의 이름도 화랑문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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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이럴 줄 몰랐다 바야흐로 1990년대. 베를린 장벽 붕괴를 시작으로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하나둘 무너졌다. 빨갱이 국가 중공과 수교도 했고 그 무렵 해외여행도 완전 자유화됐다. 대학가에는 ‘해외 배낭여행’이란 이름의 여행상품 광고가 곳곳에 붙었고, ‘어학연수’란 것도 유행했다. 아직도 촌스러운 구석이 없진 않았지만 세계화의 흐름을 빠르게 좇아가고 있다는 느낌의 시대였다. 그런 어느 날, 지도교수님을 찾아뵀다. 학부 때인지 석사과정 때인지도 까물까물한 꼬마 시절, 무슨 심부름 때문이었다. 그때 누군가 교수님 방문을 노크하며 들어왔다. 일본 T대의 한국사 교수님이, 사전 약속은 없었으나 한국 방문 김에 인사드리겠다고 온 것이었다. T대 교수님이라니, 당연히 자리를 비켜드려야겠다고 생각하던 터, 예상치 않게 지도교수님께서 “지금 학생이랑 상담 중이니 다음에 들러달라”며 문전 박대를 하시는 게 아닌가! 나 같은 학생이 뭐라고 T대 교수님을 박대하시나 싶은 데다, 그 교수님이 가신 후 내게 하신 말씀이 더 이상했다. 지도교수님은 어깨를 으쓱하시며 “요샌 T대 사람들도 한국사를 공부하려면 우리 과 학술지부터 챙겨 봐요”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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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3조 코로나19 전, 꽤 오랜 기간 구에서 운영하는 체육시설에서 매트 필라테스를 했다. 집에서 가깝지, 가격도 싸지, 시설과 프로그램도 얼마나 다양한지! 동네 사람들 모두 애용하던 곳이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곳에 오래 머무셨다. 셔틀버스를 타고 와서는 운동 조금 하고 목욕 길게 하고 여기저기 의자에 앉아 오래 담소를 나누시곤 했다. 특히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로비를 좀처럼 안 떠나셨다. 내가 다닌 매트 필라테스는 할머니들이 많았다. 거울과 가까운 맨 앞 가운데는 선생님 자리이고, 그 앞으로 비껴가며 네 줄 정도 회원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수업 시간 전 선생님 자리에 공용 매트 하나를 누군가 깔고, 각자 공용 매트 혹은 개인 매트를 갖고 와 자리를 잡는 방식이었다. 각 줄과 위치는 나름의 메시지가 있다. 맨 앞줄과 둘째 줄은 운동에 자신이 있거나 오래 했거나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이른바 ‘고인물’이라고 하는 터줏대감들이 차지하는 줄인데, 내가 다닌 곳에서는 이분들이 선생님을 향해 W자 대형으로 첫 줄과 둘째 줄에 자리했다. 셋째 줄이 무색무취한 편이라면, 선생님과 거리가 멀고 뒤에 아무도 없는 넷째 줄은 ‘나는 초보 혹은 절대 그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다’는 기운을 뿜는 사람들이 주로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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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와칸다 포에버? <블랙 팬서>를 봤을 때 일이다. 마블 영화는 챙겨보던 시절이기도 하고, 첫 아프리카계 영웅도 등장하지, 부산도 나온다지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 많았다. 더구나 고양잇과 계열의 영웅이 아닌가! 고양잇과로 변신하는 영웅은 무조건 옳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는 당황스러웠다. 물론 영화는 재밌게 보았다. 액션도, 무기도 멋있었고, 여장군과 전사들도 다 매력적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와칸다 왕국’은 도대체 뭔가 하는 의문이 들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첨단 과학기술을 갖춘 부유한 국가라는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부족 연맹체 같다. 블랙 팬서가 되는 계승자는 바로 국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왕위 계승 때 주변 부족들이 모여 벌이는 싸움 의례를 통과해야 한다. 부계 혈통으로 바로 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싸워서 이기기까지 해야 하고. 저 동네의 왕위 계승 원리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우리나라의 건국 설화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저 동네는 아직 사로6촌인가? 아니지, 여기는 다섯 부족이니까 고구려나 부여 같은 5부로 구성된 건가? 국왕이 나왔으면 끝인데, 왜 매번 왕위 계승 때마다 싸움 의례를 펼치는 거지? 혁거세를 맞이하긴 했는데 아직 박·석·김, 세 성씨 사이에서 왕위가 돌아가던 것 같은 상태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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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의 무게 역사학 논문의 형식을 익히게 하려고 수업 때 간단한 글쓰기 과제를 내준다. 첨삭 지도를 해서 돌려주면 학생들이 고쳐 오는 것을 몇 번 반복하는 과제다. 빨간 펜을 들고 학생들이 제출한 글을 보노라면 한숨이 나온다. 글쓰기 첨삭 지도를 해본 분들은 다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시간과 힘이 많이 드는 일인지. 더구나 학부생이 제출하는 글은 얼마나 ‘야생적’인지. 손목도 아픈데 빨간 펜 질을 한참 하다 보면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게 있다. ‘나는 한 번도 이런 첨삭 지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논문의 내용에 대해 지적을 받은 적은 많아도 글쓰기를 가지고서는 세심한 지도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저 ‘이런 표현은 일본어 문투다’라든가, ‘이런 건 한문 번역투니 풀어 써라’ ‘수동태형 문장은 영어식 표현이니 좋지 않다’는 정도의 얘기가 다였던 것 같다. 그래서 또래끼리 모이면 이런다. “우리가 언제 글쓰기를 각 잡고 배워본 적이 있나. 어깨너머로 익혔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마음 한편에는 약간의 잘난 척도 있다. ‘우린 누가 붙잡고 안 가르쳐줬어도 알아서 깨쳤어(그러니 너희들도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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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2조 개강을 앞두고 아는 선생님이 챗GPT의 위험성을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샘플을 만들었다. 챗GPT로 보고서를 작성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분은 먼저 ‘대전의 고려시대 유적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넣어 보았다. 그랬더니 성심당이 고려시대 유적이라며 1895년에 창건된 조선 후기 교육 기관이자 독립 운동의 중심지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튀김 소보로가 유명한 빵집 성심당? 더구나 고려시대 유적을 물었는데, 1895년 조선 후기라니? 한 달여 후 이분이 챗GPT에 같은 질문을 다시 넣었다. 그랬더니 훨씬 정교하고 유려한 설명이 나왔다. ‘고려시대 중반인 12세기에 건립된, 차를 마시는 전각’이라는 것이다. 1895년 같은 엉뚱한 시대를 들이대지도 않는 데다 이 ‘차를 마시는 전각’의 구조가 어쩌고저쩌고, 근대의 개발로 훼손이 어쩌고저쩌고하는 서사까지, 아주 유려하기 그지없었다. 이게 빵집 성심당과는 다른 것이냐고 물으니 다르다고 하며 주소까지 댔고, 근거 자료가 뭐냐고 물으니 문화재청 자료라며 링크까지 제공했다. 얼마나 정교한지 이 선생님도, 얘기를 전해 들은 나도 지도에서 그 주소를 검색해보고 링크도 클릭해보았다. 없는 주소에, 깨진 링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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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과거의 망령은 꺼져라 얼마 전 30세 전에 아이 셋을 낳으면 군을 면제해주겠다는 논의 때문에 세상이 시끌시끌했다. “이제 남자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 줄 몰랐다”는 재치 있는 비꼼부터 “돈 많은 집이나 가능할 것”이라거나 “군 면제 받겠다고 아이를 입양했다가 파양하는 사건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미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결혼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나오고, 아파트 한 채 분양받아보겠다고 아이를 입양했다가 파양하는 사건도 있는 나라에서 모두 생길 법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비관적 전망을 떠나 나는 이 아이디어가 섬뜩했다. 20세기 전반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의 망령이 휩쓸던 때의 사고방식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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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를 바꾼 책이라니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독서진흥을 위해 각계 전문가 11인을 모아 야심차게 ‘역사를 바꾼 책’ 100권을 선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사를 바꾼 책’이라니, 역사학자로서 귀가 솔깃했다. 그런데 선정 위원 명단을 보고서는 일차로 갸웃하게 됐다. ‘역사를 바꾼’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는데 정작 선정 위원에는 역사 전공자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도서 목록을 보자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 책들이 ‘역사를 바꾼’ 책이라고? 우선 여기서 말하는 역사가 누구의, 혹은 무엇의 역사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계사를 의미하는 것인지, 한국사를 의미하는 것인지, 누구의 역사인지 말이다. 이건 어떻게 합의로 해결한다 쳐도 ‘바꾼’이라는 표현은 합의가 쉽지 않다. 역사학자들은 이 ‘바꾼’의 정의에 민감하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지, 언제를 질적 변화가 일어난 시기로 볼 것인지 등을 놓고 고민하는 게 직업이기 때문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가 대단한 변화였다, 아니다, 신라에서 고려의 변화가 더 크다, 그것도 아니다, 왕조 교체 정도 가지고 변화 얘기 하지 말라 같은 논쟁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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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1조 역사 공부라고 하면 연표나 사건을 열심히 외우는 것을 상상한다. 혹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에 지금 나의 감정과 상상을 더하며 한껏 몰입하는 것이 역사책을 잘 읽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냥 외우고 맘껏 상상하기만으로는 역사를 잘못 이해할 위험이 있다. 글자를 읽는다고 글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역사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해를 위한 문해력이 필요한데, 나는 그걸 ‘역사 리터러시’라고 지칭해보려고 한다. 오늘은 그 규칙 제1조 “우리는 옛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를 이야기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