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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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가는 과거와 어떻게 대화? 10년에 걸쳐 박사논문을 쓰고 뵌 친척 어른이 이런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당신은 역사학은 학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다 나온 사료 가지고 똑같은 소리 하는 게 무슨 학문이냐는 말씀이었다. 그러면서 역사학은 사회적 효용이 없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효용’ 같은 단어를 좋아하는 전공을 하신 분이었다. E H 카의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같은 유명한 말만 곱씹어봤어도 역사학자가 똑같은 소리를 한다는 얘기는 안 하실 텐데 싶었지만, 어떻게 보면 역사학자가 하는 일을 잘 알지 못해서 하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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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쫄지마, 인문학 자문 회의란 데를 참여할 때가 있다. 나 같은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고고학, 건축사,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역사 관련 사업의 회의다. 문헌을 다루며 연구하는 입장에서 고고학과 건축사는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여기서 ‘낯설지 않다’는 말은, 일부는 제대로 알아듣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들을 필요가 있는 말인가 아닌가 정도를 가늠한다는 뜻이다. 얼마 전 참여한 자문 회의도 그러했다. 고고학, 건축사 분야 관련 얘기를 들으면서 조금은 알아듣고 나머지는 흘려들으며 넘기고 있었는데, 소프트웨어 발표가 시작되며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단 알파벳 대문자 약자가 많은데,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이 없었다.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까지는 알겠으나, 세 글자 대문자 알파벳이 난무하자 기가 죽기 시작했다. 아, 어렵다. 오늘 밥값은 하고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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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수학여행과 쇼트커트 수학여행을 하루 앞두고 아이가 미용실에 다녀왔다. 이쁘게 다듬은 머리를 보자, 문득 나의 수학여행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앞두고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처음 가보는 단체여행에 설레어하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나의 긴 머리가 이 여행의 짐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결은 적어도 이틀에 한번은 감아줘야 하는데, 여러 명이서 방을 쓸 것이니 분명 머리 감기가 힘들 게 아닌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단호한 결정이 필요했다. 머리카락을 자르자! 그것도 감기 쉽게 쇼트커트로! 그때까지 긴 머리밖에 안 해보긴 했지만, 머리카락 길이에 연연해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그다지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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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답사가 키워내는 인간형 매해 3월 말, 9월 말이면 전국의 사학과가 전국을 떠돈다. 정기답사 시즌이기 때문이다. 같은 때 돌아다니다 보니 유적지에서 서로 만나는 일도 흔하다. 안면 있는 교수들은 반가움을 나누고, 학생들은 자료집을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이 시즌에 다 같이 움직이는 건 별 이유가 없다. 그저 개강 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고, 본격적인 꽃놀이, 단풍놀이 전에 가야 전세버스와 숙소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이 놀러 다니지 않는 시즌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춘계 답사 때는 꽃샘추위로 추위에 떨기 일쑤고, 추계 답사 때는 늦더위에 시달리거나 태풍을 만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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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공간은 인간이 완성한다 고려 말 조선 초 한 100년 정도 ‘보평청(報平廳)’이라는 전각 이름이 유행했다. 당시 사람들은 보평청이란 임금이 나와 직접 국가의 일을 처리하고 경연을 열어 학자와 함께 나라 다스리는 방도를 연구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고려 말부터 사용된 이 이름은 조선 건국 후 태조 대 경복궁과 태종 대 창덕궁의 전각에도 그대로 붙었다가 이후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려 말 사람들은 군주가 공적 장소에서 관료를 만나 정치를 논하고, 경연을 통해 공부하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임금이 대신과는 멀어지고 환관과 친해져 백성의 현실이나 나라의 존망에 관한 문제들을 알 수 없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임금이 신하들과 정치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사극에서는 맨날 임금과 신하가 옥신각신하던데? 그러나 고려 말에는 군주가 구중궁궐에 거처하며 관료는 만나지 않고 정치는 방치하는 사이에, 왕의 측근들이 벼슬을 팔고 형벌을 자기 멋대로 하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충숙왕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런 시대였기에 공적 장소에서 관료와 함께 정치를 한다는 뜻의 보평청이라는 이름을 궁궐의 편전에 붙인 것이다. 조선의 건국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절실하게 계승하여, 새로 짓는 궁궐마다 이 전각을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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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경복궁 경회루와 구종직 설화 경복궁 경회루에는 구종직에 대한 설화가 전한다. 젊었을 때 교서관의 종9품 하급 관원으로 궁궐에서 숙직했던 구종직은 밤을 틈타 경회루를 몰래 구경하다, 밤마실을 나온 세종과 딱 마주쳤다. 이제 죽었구나 싶었던 찰나, 임금은 그를 용서했다. 거기에 그가 <춘추>(공자가 엮은 것으로 알려진 역사서) 한 권을 막힘없이 술술 외우자, 그 다음날로 종5품의 부교리로 임명하였다. 파격적인 인사에 신하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벌떼같이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세종은 “그럼, 너희들도 <춘추>를 외워보라”며 관원들과 구종직을 시험했으나, 구종직만이 줄줄이 외워냈다. 세종이 “너희들은 한 구절도 외우지 못하면서 좋은 관직에 올라 있는데, 구종직이 이 벼슬을 맡지 못할 이유가 어딨느냐?”라며 면박을 주었다. 이 이야기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을 발탁한 세종의 미덕을 칭송하는데, 워낙 유명해서 경회루 관련 일화로 자주 거론될 뿐만 아니라 구종직 인물 사전에도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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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역사적 교훈을 실천한다는 것 고려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십조는 보통 평양을 중시하라는 5조나 차현 이남 공주강 밖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라는 8조 정도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십조’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총 조항은 10조나 되는데, 그중 하나가 다음의 제7조다. “옛 사람이 ‘좋은 미끼를 쓰면 반드시 큰 고기가 물고, 상을 잘 주는 곳에는 반드시 훌륭한 장수가 있으며, 활을 겨누면 반드시 피하는 새가 있고, 어진 정치를 펼치면 반드시 착한 백성이 있다’고 하였다. 상과 벌이 적절하면 음양이 순조로워진다.” 정치를 잘하면 백성이 순하게 말을 잘 들을 것이며, 상벌이 적절하면 만사가 잘될 것이라는 얘기니, 너무 상식적이어서 평범하다. 이래서 이 조항이 큰 관심을 못 받아온 것이다. 그나마 ‘음양이 순조롭다’는 표현이 요즘 시대엔 낯설 터인데, 이는 기후가 예측 가능하여 순조로운 상태가 된다는 의미다. 이 부분은 자연과 인간의 정치가 직접적으로 호응한다고 생각하던 시대의 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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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정말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면 자주 듣는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임신 막달에 배가 너무 불러 위산이 역류하고 누워도 불편하여 잠을 잘 잘 수가 없었다. 이를 가지고 하소연을 하면, “그래도 배 속에 있을 때가 편한 줄 알아라”라고 위로인지 뭔지 잘 모르겠는 말을 해 주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출산을 하고 나면 정말 더 힘들어지나? 확실히 몹시 괴롭긴 하였다. 밤낮이 바뀐 아이는 밤에 1시간 간격으로 깼다. 아직 젖 빠는 힘이 약한 아이는 30분쯤 걸려서 종이컵 반도 안 되는 분유를 간신히 먹고는 30분 까무룩 잤다 다시 깨곤 했다. 등판에 센서라도 달렸는지 눕히기만 하면 바로 깼기에 그 30분 잘 때도 품에 안은 채로 나도 같이 조는 수밖에 없었다. 출산 직후라 손목도 아프고 허리 위와 아래가 따로 노는 느낌인데 잠까지 못 자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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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렌즈 올해 인생 처음으로 장을 담갔다. 모든 건 우연히 본 홈쇼핑에서 비롯하였다. 메주, 소금, 건고추, 대추, 숯에 물까지 보내줄 테니 그냥 그대로 담갔다가 몇 달 후 가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소금도 다 계량해서 보내니 계란을 띄우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 염도 그대로 딱 하면 된다고 했다. 안 그래도 풍미 좋은 집된장을 몹시 그리워하던 터, 저렇게 쉽다면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나 싶어 과감히 도전에 나섰다. 오산이었다. 메주를 넣은 소금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곰팡이가 피었다. 그 징그러움이라니! 놀라서 여기저기 문의하니 걷어내면 괜찮다고 하긴 했지만, 그 순간 정말 궁금해졌다. 이렇게 곰팡이가 피는 걸 보면서도 이걸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 첫 인간은 누군가? 언제쯤 장을 가르나 궁금하여 안내문을 보니 60~90일이라고 나왔다. 2차 충격! 60일과 90일은 1개월이나 차이가 나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지 설명이 없다. 고민 끝에 대충 75일 정도에 장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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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종묘에 모셔질 뻔한 이완용 그렇다. 우리 모두가 아는 을사오적 이완용. 순종의 위패를 종묘에 모시려던 1928년, 이 사람이 순종 시대에 공을 세운 신하로 뽑혀 종묘에 함께 모셔질 뻔했다. 나라 팔아먹은 자에게 준엄한 질타를 하진 못할망정, 공신이라니! 하마터면 이완용이 조선 종묘의 제삿밥을 받아먹는 꼴을 볼 뻔한 것이다. 1928년 5월, 원로대신과 종친들은 총 10명의 공신 후보자를 놓고 투표하여 문헌공 송근수, 충문공 김병시, 충숙공 이경직, 효문공 서정순 등 4명을 뽑아 이왕직에 보고했다. 이왕직은 일제시기에 조선 왕실 사무를 담당한 곳이다. 그러나 정작 이왕직의 장관은 최고점인 김병시, 이경직을 보류하고 이완용을 넣어 3명으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이완용은 원래 후보도 아니었는데 장관의 강요에 후보로 올랐으나 1표밖에 못 얻은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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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호그와트 역사수업 유감 해리 포터가 다니는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는 우리 같은 ‘머글’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흥미로운 수업이 가득하다. 비명을 질러대는 맨드레이크 같은 식물을 다루는 약초학 수업, 탁자를 돼지로 바꾸는 법을 가르치는 변신술 수업, 행운의 묘약을 만들 수 있는 마법의 약 수업까지. 이런 특이한 수업 속에 유일하게 머글도 수강할 만한 것이 있으니 바로 빈스 교수의 마법의 역사 수업이다. 역사를 업으로 삼은 입장에서 참으로 뿌듯하다. 이것 보라! 마법의 세계에서도 역사학은 유용한 학문이다! 아쉽게도 이런 뿌듯함은 곧 쭈그러들고 만다. 마법의 역사 수업은 유일하게 유령이 가르치는 과목이라는 점 외에는 참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교수가 유령이라 칠판을 스르륵 통과해서 들어온다는 것이 그나마 이 수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고, 나머지 시간엔 모든 학생이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 교수님도 학생들을 깨워 수업하는 데 큰 의욕이 없는 것 같다. 중얼중얼하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고블린의 반란처럼 피가 철철 흐르는 사건도 세상 재미없게 설명하니, 학생들은 가끔씩 이름과 날짜를 적는 것 말고는 늘 졸다 자다 하는 수준이다. 아, 슬프게도 역사는 마법 세계에서도 그냥 이런 과목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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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나의 미시사가 거시사와 만날 때 나는 친할머니가 참 어려웠다. 내 할머니는 포용과 사랑이 아니라 까다로운 예절 교육의 아이콘이셨다. 할머니가 오시면 늘 절을 하며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이렇게 절을 올리는 것은 내 세대에는 이미 일반적이지 않은 관습이었다. 절을 올릴 때면 상당히 긴장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팔의 각도, 어깨 자세 등을 놓고 또 한 소리를 들었고, 사촌들과 나란히 절을 할 때면 절에 대한 품평까지 각오해야 했다. 밥상머리에서 식사예절에 관한 잔소리도 한 무더기였다. 내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죽을 먹을 땐 가장자리부터 얌전히 떠먹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중학생인 내가 죽 먹는 방법까지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인가! 그래도 이런 건 사소한 문제였다. 할머니의 아들 선호는 온 집안을 뒤흔들었는데, 친구들과 얘기해봐도 내 할머니만 한 분은 찾기 힘들었다. 할머니는 내 세대의 어떤 할머니보다도 특이하고 유난스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