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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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학자의 소명,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위하여 책장을 정리하다가 막스 베버의 저서 <직업(소명)으로서의 정치>를 발견하고 뒤적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던 중 의식의 흐름은 학자로서의 소명에 이르렀고, 곧이어 요즘 내 분야 핫 이슈인 연금개혁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명색이 연금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 와중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고민을 하게 됐다. 민주당은 2월 내에 모수개혁을 끝내자고 나섰고 여당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언론도 그동안 오래 끌었으니 이제 빨리 마무리하라고 요구한다. 일단 모수개혁이라도 결론짓자고 나선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불완전한 미완성이라서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명색이 직업윤리에 투철한 학자라면 이참에 ‘모수개혁 빨리해라’라고 덩달아 목청 높이기보다는 ‘왜 이게 미완성이며 무엇이 더해져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밝히고 똑똑히 설명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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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민주당의 정책역량에 대한 기대 며칠 전 친한 동료 교수들과 회식을 가졌다. 매 연말에 모임을 했는데, 지난해 12월은 도저히 송년회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미뤘다가 신년회로 대체한 것이다. 으레 그렇듯 시국 얘기를 나눴다. 예상할 수 있듯 윤석열 대통령과 계엄 이후 여야 행태에 대한 성토로 시작했다. 비분강개가 잦아들면서 조기 대선 얘기로 이어졌는데, 민주당이 집권할 것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었다. 통상의 모임이라면 그 정도에서 시국 얘기는 마무리하고 다른 주제로, 이를테면 주식이나 비트코인으로 옮겨 갔을 것이다. 하지만 행정·정책 학자들 모임인 탓에 주제 전환 대신 민주당 집권 이후의 전망으로 이어졌다. 물론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자질과 능력에 관한 품평도 나왔다(누군지는 굳이 밝힐 필요도 없겠다). 하지만 길어지면 서로 불편할 수 있는 주제라서 짧게 마무리하고 민주당의 정책역량에 관한 얘기에 집중했다. 고리타분한 선생들답게 이 얘기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때 나왔던 얘기 중 하나를 꺼내보자. 몇달 전에 있었던 민주당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동의 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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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비상계엄 사태 이후: 그래도 소는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방송되던 12월3일 늦은 밤, 나는 이 칼럼을 쓰는 중이었다. 내용은 국회의 예산권을 따져보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헌법이 규정한 국회의 예산 확정 기한인 12월2일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예산을 두고 여야가 대치 중이었기 때문이다. 법정 기일 내 예산 통과가 안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참에 작정하고 국회의 예산 심의 행태를 질타하면서 개선안을 제안하려 했다. 한창 글 쓰는 중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급한 목소리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는 뉴스가 떴다고 했다. 나는 가짜뉴스일 것이라고 답했다. 아내는 아니라고 반박했고, 나는 급히 인터넷을 켰다. 사실임에 경악했고, 바로 TV를 켜고 상황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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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반도체 산업 지원과 국가의 역할 며칠 전 후배 교수 부친 빈소에서의 일이다. 조문 후 식사 자리에서 다른 교수 셋과 겸상을 했다. 셋 모두 경제학과 교수인데, 둘은 원래 안면이 있었고 한 명은 처음 인사했다. 문상객으로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교수란 직업 특성 탓에 세상 얘기를 해도 대충 전공과 관련된 얘기를 하게 된다. 넷 중 가장 연장자인 나부터 시작했다. 최근 몰두하고 있는 퇴직연금 얘기를 꺼냈다. 형편없는 수익률 문제를 거론하면서 정부의 직무유기를 성토했다. 별반 호응이 없었다. 나 혼자 흥분한 게 머쓱해질 무렵 두 번째 연장자인 교수가, 연금도 중요하지만 반도체 문제는 정말 시급하다면서 주제를 전환했다. 그러자 다른 두 교수가 반색하면서 토론에 뛰어들었다. 나 역시 다른 교수들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끼어들었다. 그날 나눈 얘기를 정리하면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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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인구전략기획부, 어떻게 만들까 사흘 전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에 관한 토론회에 다녀왔다. 정부는 인구 감소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전담부처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처를 새로 만들려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려면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데, 분위기 띄우는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가 토론회다. 이 칼럼은 정부 청탁 없이 순전히 내 의지로 쓰는 것이지만, 어쨌든 칼럼 쓰는 것도 그중 하나이긴 하다. 토론의 첫 번째 의제는 과연 필요한가였다. 기존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라는 것이 있고,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등에도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들이 있는데, 왜 또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가이다. 이런 경우 가장 안전한 (그리고 멋져 보이는) 토론은, 약간은 냉소적인 말투로 ‘중요한 것은 조직 신설이 아니라 하겠다는 의지’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담당 조직과 정책이 없어서 이 지경 되었는가, 조직 새로 만들어도 잘하리라는 보장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제대로 정책을 펼치려 하느냐이다’처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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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세 단어 경제학 : 공짜 점심은 없다 공짜 점심은 없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까닭 없이 베푸는 호의를 경계하라는 경구로 삼을 수도 있다. 이 말은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선술집에서 술을 한 잔만 마셔도 공짜로 점심을 제공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한가한 낮 시간대 손님을 끌기 위한 미끼상품이었겠지만, 주당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점심은 먹어야 하는데, 술 한 잔이면 밥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반겼을 법하다. 비록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다시 석 잔으로 이어지긴 했어도 말이다. 효율적인 시장경제의 기본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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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퇴직연금에 ‘밑빠진 독상’을 ‘밑빠진 독상’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활동하는 ‘함께하는 시민행동’ 좋은예산센터에서 만든 상으로, 정부 및 공공기관의 예산 낭비 사례에 수여한다. 2000년 8월 ‘하남국제환경박람회’에 처음 수여한 이래, 지금까지 39회 수여하였다.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실리는 등 나름 명성을 얻었으나, 2010년대 중반부터 다소 주춤했다. 이제 심기일전하여 다시금 활성화하려 한다. 선정 위원회에서는 40회 수상작으로 어떤 사례를 선정할지 논의 중이다. 각자 후보작을 추천했다. 나는 퇴직연금을 추천했다. 이유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너무 낮아서 가입자들의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작년인 2023년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5.26%였다. 이것만 보면 제법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착각이다. 2023년에는 증시가 워낙 좋았다. 한 해 동안 코스피는 18.7% 상승했다. 퇴직연금 수익률의 3배가 넘는다. 그 덕에 2023년의 국민연금 수익률도 13.59%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최근 5년의 평균 수익률을 보면 퇴직연금은 2.35%이고, 국민연금은 7.63%이다. 국민연금 수익률은 퇴직연금의 3배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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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장기재정전망이 뭐길래 얼마 전 감사원은, 2020년 발표된 ‘2020~2060 장기재정전망’에서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가 국가채무비율 전망치를 축소·왜곡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애초 실무팀은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153.0%(당초 검토안) 또는 129.6%(신규 검토안)로 내부 보고하였으나, 홍 전 부총리가 국가채무 급증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해서 비율을 낮추도록 지시했고 그 결과 81.1%로 줄여서 발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홍 전 부총리는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며, “재정여건, 예산 편성 프로세스, 국가채무 수준, 국제적 대외관계 등을 모두 감안해 최선의 판단을 하려 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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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불편한 진실 외면 않기: 국민연금 지속 가능성 확보 연금개혁을 위한 500인 공론화위원회 선택이 이뤄진 지도 제법 지났다. 보험료율은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50%로 높이는 안(대안 1), 보험료율은 12%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현행 40%를 유지하는 안(대안 2) 중에서 선택하도록 한 결과 56.0%가 대안 1을, 42.6%가 대안 2를 각각 택했다. 대안 1이 다수안이 된 것이다. 애초 연금개혁 논의가 시작된 것은, 지금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 재정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전망 때문이었다. 그래서 ‘개혁안’이 되려면, 최소한 재정 안정을 위한 방안이 담겨야 한다. 대안 1을 선호한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도 원안대로 개혁안을 만드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절충안(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5%)을 제시하였다. 한편 대안 2를 선호한 여당 측에서는 보험료율 13%에는 동의했지만, 소득대체율은 조금 더 낮은 43%를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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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면: 정책 정당을 위한 제안 며칠만 지나면 22대 총선이 끝난다. 말 많고 탈 많은(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며칠 새 또 어떤 황당한 일이 터질지 모른다) 이번 총선을 두고 역대 최악의 선거라고들 한다. 내가 어린 시절의 선거는 공공연히 ‘고무신과 막걸리 선거’라고 불렸고 득표수까지 조작한 부정선거가 4·19혁명의 발단이 되기도 했으니, 이번 선거를 ‘역대’ 최악이라고 하기는 무리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투표권을 행사한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내 기억으로도 이번 선거는 역대 최고의 비호감이다. 이번 선거를 최악이라 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다. 행정학자인 나한테는 정책선거는 실종되고 포퓰리즘이 판쳤다는 점이 가장 비호감이다. 선거는 유권자 지지를 확보하여 권력을 획득하는 절차이다. 그러니 유권자가 좋아하는 공약을 내거는 것은 이해한다. 정책선거도 우리 당이 집권하면(혹은 내가 당선되면) 무슨 정책을 하겠노라고 제시하면, 유권자가 자신이 선호하는 공약을 내건 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정책선거는 포퓰리즘과 다르다. 둘을 가르는 기준은 공약의 타당성 여부인데, 간단히 말하면 재원 조달 문제다. 소요 재원을 확보할 수 있으며, 그 정책을 실행해도 정부 재정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으면 타당한 정책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포푤리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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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선거 공약 예산 낭비 막으려면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부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돈 쓰는 방식을, 누구의 돈인가와 누구를 위해 쓰는가의 조합에 따라 4가지로 구분했다. 내 돈을 날 위해 쓰는 경우, 내 돈을 남 위해 쓰는 경우, 남의 돈을 날 위해 쓰는 경우, 남의 돈을 남 위해 쓰는 경우이다. 넷 중 어떤 경우가 가장 낭비가 심하겠는가. 내 돈을 날 위해 쓸 때, 가령 내가 쓸 물건을 내가 살 때는 꼼꼼히 가격과 품질을 따져보고 가장 큰 효용(만족)을 얻도록 가성비 최고인 것을 선택한다. 내 돈을 남 위해 쓸 때, 가령 회사 동료의 생일 선물을 살 때는 품질도 신경 쓰겠지만 우선은 가격을 더 따진다. 남의 돈을 날 위해 쓸 때, 가령 회사 법인카드로 식사할 땐 일단 한도까지 쓰고 보되 가장 맛있고 좋은 것을 사 먹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남의 돈을 남 위해 쓸 때는, 비록 일상에서 예를 찾기는 어렵지만, 자기가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 비용에도 그다지 신경 안 쓸 것이고 품질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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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저출산 해법, 모르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배우 오디션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가 과제라면 참가자들은 어떤 상황을 연기할까? 음침한 실험실에서 두 눈 번뜩이며 정체불명의 용액을 옮겨 담는 모습, 머리 박고 현미경 속 세포를 뚫어지게 보는 모습, 실험용 생쥐에게 이런저런 자극을 가하는 모습 등등. 퀴즈쇼에서 ‘과학의 세부 분야 5개를 말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온다면 대부분 물리, 화학, 생물 등을 나열할 것이고 모자라면 컴퓨터학, 전기·전자 등을 더할 것이다. 이 문제에 정치, 행정, 경제 등을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엄연히 사회‘과학’으로 분류되어, 많은 대학에서 이 전공들은 사회과학대학에 소속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