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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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공무원에게 보내는 갈채 런던시청 공무원 윌리엄스는 수십년간 반복적인 일상을 이어왔다.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열차를 타고 출근하여, 종일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한 후, 정해진 시간에 퇴근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엄스는 의사에게서 6개월 남짓의 시한부 인생임을 통보받는다. 난생처음 무단결근하고 인근 휴양지로 떠난 그는 합석한 무명작가의 제안으로 술집에 가고 스트립쇼도 보지만 공허한 마음을 채우지 못한다. 방황을 이어가던 윌리엄스는 우연히 퇴직한 부하직원 마거릿을 만나고, 그녀와 함께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술집도 가게 된다. 밝고 긍정적인 마거릿은 처음의 식사 제안에 흔쾌히 응했으나 계속되는 이전 직장상사의 추근거림(?)이 곤혹스럽다. 불편해하는 마거릿에게 윌리엄스는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라고,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녀의 밝고 쾌활함이 너무 부럽다고, 젊은 시절 자신의 꿈은 지금 같은 삶이 아니었노라고 회한에 젖은 고백을 한다. 마거릿과의 대화 끝에 “기억났어요, 살아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라고 외친 그는 시청 공무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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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공론화 과정이 성공하려면 지난 10월30일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제5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한 후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개혁 의제 가운데 가장 핵심이라 할 보험료율 상향에 대해 얼마를 높이겠다는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하지 않은 채, 추후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고만 했기 때문이다. 1년 넘게 전문가 위원회를 가동한 끝에 내놓은 결론이 ‘추후 결정’인지라 맹탕 개혁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질 만하기는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공론화 과정을 통한 결정이라는 것이 맞는 방향이기는 하다. 어느 나라나 연금 개혁의 핵심은 지속 가능성 제고인데, 이를 위해서는 더 내거나 덜 받아야 한다. 국민 입장에서는 혜택이 줄거나 부담이 느는 것이니 달가울 리 없다. 그래서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는 어렵다. 외국 사례를 보면 정부가 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탓에 정권이 넘어간 경우가 여럿이다. 금년에도 프랑스가 국민 합의 없이 개혁안을 발표한 뒤 대규모 시위로 홍역을 치렀다. 고작(!) 수급 연령과 정년을 1~2년 높이려는 것인데도 그랬다. 연금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으로 유명한 스웨덴과 영국은 국민의 합의 도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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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내년도 예산, 얼마나 계획성 있게 짜인 걸까 내년도 예산안이 9월1일에 국회에 제출되었으니 이미 한 달이 넘었다. 국회는 국정감사가 마무리된 이후, 그러니까 늦어도 11월 초부터는 본격적인 예산 심의에 들어갈 것이다. 예산안이 제출되고 본격적인 국회 심의가 시작되기 이전까지의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여기저기에서 예산안 관련 토론회가 열리고 언론은 전문가 논평을 싣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보수 정부가 집권하면 재정 전문가들, 특히 진보 성향 재정 전문가들이 늘 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경제가 어려운데 왜 확장 정책을 안 하느냐” “감세는 부자만을 위한 것이며 낙수 효과는 한참 철 지난 얘기로서 요즘은 성립할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복지 지출 규모가 가장 작은 우리는 복지 확대가 중요한데 연금 지출 등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실제로 복지 확충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에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너무 많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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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고령사회 재정의 지속 가능성 해법 요즘 내 나이 또래 중에 늙어서 자식 덕 보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 중에도 나중에 노부모를 봉양하겠다는 기특한 마음을 가진 청년은 찾기 힘들다. 지금도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우리 세대가 더 나이 들었을 때 자식이 우리를 봉양하는 모습은 도통 그려지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충효를 으뜸 가치로 삼았던 유교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도 한 이유일 수 있겠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들이 있다.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노후 시기가 너무 길어졌다는 점이다. 과거 환갑잔치를 크게 벌였던 것은 그 나이까지 사는 경우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기력이 쇠해서 자식에게 의지할 때까지 사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그렇더라도 오래지 않아 세상을 등졌기 때문에 부모 봉양 기간이 길지 않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몇 년이면 몰라도 수십년 부모를 모실 자식은 옛날에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고려장이라는 말이 왜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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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퇴직연금을 연금화하려면 ‘호갱’은 면하게 해야 행정학의 세부 분야 중 규제정책이 있다. 여기에서 다루는 대표적인 주제가 ‘포획(capture) 현상’이다. 정부가 규제 대상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느슨한 규제를 행하고, 그럼으로써 애초의 목적 달성에 실패하는 것을 지칭한다. 국민의 안전이나 건강, 혹은 공정경쟁 및 환경보전 등을 위해 기업을 규제할 때 흔히 발생한다. 정부가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이익집단에 포획되는 현상은 도처에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도 각자의 분야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행정학 교과서는 정치인과 공무원이 공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기술하지만, 현실 행정이 이익집단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그 정도가 문제이겠다. 이익집단 눈치 보기가 지나쳐 다수 국민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면 곤란한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요즘 핫 이슈인 ‘사교육 카르텔’ 혁파도 정도가 지나쳐 선을 넘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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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황당한 퇴직연금을 어찌할까 퇴직연금의 황당함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수익률이다. 지난달 정부는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연금 기금고갈 시점이 과거 추계 때보다 2년 앞당겨졌다. 암울한 전망이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도 곁들였다. 기금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고갈 시점을 5년 늦출 수 있는데, 이는 보험료율을 2%포인트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라는 것이었다. 언론은 이를 반기면서, 국민연금 수익률은 외국 연기금보다 낮다고 질책했다. 지난 10년간 캐나다 연금 수익률은 10%인데, 국민연금은 4.7%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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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허약한 놈, 이상한 놈, 황당한 놈 최근 수개월간 ‘좋은 정부 만들기’란 제목의 이 칼럼에 줄곧 국민연금 개혁 얘기만 썼다. 내 연구 분야가 복지와 재정이다 보니 이와 관련된 얘기를 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래도 유독 국민연금에만 집중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복지와 재정 분야에서 최근 가장 핫한 이슈가 연금 개혁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이게 더 중요한데, 우리의 공적연금은 정말 문제가 많고 이를 방치하면 나중에는 너무나 심각한 상황을 맞을 게 명약관화하기 때문이었다. 이 칼럼에서 수차례 언급했지만, 우리 정도 혹은 그 이상의 경제력을 갖춘 국가 중 우리만큼 취약한 ‘국민’ 연금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는 받는 것에 비해 가장 적은 보험료를 납부한다. 보험료 안 내는 사람의 비율은 가장 높고, 보험료 납입 기간은 가장 짧다. 또 미수급권자 비율과 급여액의 소득과 성별 격차는 가장 심하다. 그 결과 노인 소득 중 연금소득 비중은 가장 작고, 국민 평균소득 대비 노인 소득은 가장 떨어진다. ‘국민’ 연금이라는 명칭이 민망하다. 국민연금의 문제점은 그간 많이 얘기했으니 이번에는 기초연금 얘기를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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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국민연금의 존재 의의 국민연금 개혁 논란이 장기화되고 있다. 하도 시끄러우니, 차라리 안 내고 안 받겠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물론 홧김에 하는 말일 테다. 진심으로 국민연금은 폐지해야 한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배한 것만은 분명하다. 국민이 신뢰하고 만족하는 연금이 되려면 어찌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대체 국민연금이 왜 필요한지, 근본적인 존재 의미를 따져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공적연금에 반대했다.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그의 주장 중에는 경청할 내용이 무척 많다. 하지만 공적연금 반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의 반대 이유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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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세대 간 계약의 공정성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없다’는 푸념은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적혀 있고, 소크라테스도 언급했다고 하니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세대 갈등은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유독 심하다는 데는 많은 사람이 동의할 듯하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최근 세대 갈등 논란의 중심에는 연금개혁 문제가 놓여 있다. 청년세대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는 것에 반대한다. 이유는 자신들 부담으로 윗세대가 혜택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의 세대 갈등은 윗세대가 청년세대의 버르장머리를 못마땅해한 것이지만, 지금의 세대 갈등은 청년세대가 윗세대의 불공정에 항의하는 것이다. 갈등의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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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국민연금 재정 추계와 개혁안 지난 며칠 동안, 내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진 뉴스는 국민연금이었다. 시작은 지난주 토요일의 기금 고갈 뉴스였다. 국민연금기금 재정 추계를 했더니, 2041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고 급기야 2055년에는 기금이 모두 소진된다는 것이다. 기금 고갈 뉴스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다. 가장 선정적인 반응은 1990년생부터는 연금급여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이 얘기는 작년에 나온 대기업 산하 연구원 보고서에 실렸던 대목으로 당시에도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 추계의 기금 고갈 시점인 2055년이 마침 1990년생이 연금 수급 연령인 65세가 되는 시점이라서 다시 회자된 것이다. 물론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이 얘기가 엉터리인 첫 번째 이유는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연금제도는 유지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1000조원에 달하는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연금제도를 유지하는 다수 국가는 약간의 여윳돈만 지니고, 그해 들어오는 보험료로 그해 연금급여를 지출하고 있다. 우리의 건강보험과 유사한 방식이다. 젊어서 보험료 내고 노후에 급여를 받는 것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약속인데, 이는 예금자에 대한 은행의 원리금 지급 약속과 마찬가지다. 적어도 급여 지급에 관한 한,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연금급여 못 받는 일은 없다”는 정부 관료의 해명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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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법인세 논쟁, 어떻게 봐야 할까 우여곡절 끝에 지난 주말에 내년도 예산이 국회를 통과했다. 헌법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2일까지 예산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규정 시한을 3주 이상 넘겼다. 무려 헌법을 위반한 것이지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2014년 이전만 해도 이 정도 늦는 것은 다반사였다. 가령 2014년 예산안은 해를 넘긴 1월1일에 통과되었다. 하지만 상습적인 늑장 통과를 해결하기 위해 소위 국회선진화법의 하나로 예산안 자동 부의 제도라는 걸 도입한 이후에는 어쨌든 12월 초에는 통과되었다. 3주 이상 늦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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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빅데이터 시대의 정부, 구글이나 애플이었다면 바야흐로 빅 데이터 시대, 지식정보사회의 전성기다. 지식정보사회라는 용어는 친숙하다. 40여년 전 다니엘 벨과 앨빈 토플러 같은 쟁쟁한 미래학자들이 처음 언급한 이래, 적어도 2000년대부터는 너도나도 떠들어댄 덕분이다. 하지만 이를 피부로 느끼는 것은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부르는 최근 들어서다. 쇼핑, 여행, 오락, SNS 소통 등 우리의 일상이 어딘가에 기록되고, 이게 쌓인 정보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1990년 후반 두 명의 대학원생에 의해 허름한 차고에서 출발한 구글의 시가 총액은 2000조원이 넘으며, 2000년대 초반 한 학부생이 기숙사에서 친구들 프로필 공유 사이트를 만들면서 시작한 페이스북(메타)의 시가 총액은 500조원에 달한다(지난 1년 새 주가가 폭락해서 이 정도다). 시가 총액 기준 전 세계 톱10 기업 중 7개가 정보 기업들이다. 톱5로 한정하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 아람코를 제외한 모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