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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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노동시간, 나홀로 역주행 최근 정부가 발표한 ‘주 69시간 노동 유연화’는 단단히 꼬인 실타래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기 어렵고, 다른 국가들이 추진해온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방향과는 사뭇 달라 정부의 해명을 들을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유럽에서 노동시간 유연화는 오래전부터 논의되어왔고 대부분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닌 단축시키는 데 방점을 두고 도입되었다. 특히 20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대량생산체제 기반 산업구조가 서비스화, 디지털화 등으로 재편되었고, 이는 장시간 노동과 높은 노동생산성이라는 오랜 신화를 무너뜨리는 출발점이 되었다. 뒤이어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 상태를 악화시키고, 산재 발생 확률을 높이며, 직업 만족도, 직무 몰입, 일·생활 균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가 다수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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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플랫폼 노동자성’ 인정한 EU 지난 2월2일 유럽연합 의회는 유럽연합 권역 내 플랫폼 노동자들을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인정하는 지침안을 의결했다. 플랫폼 노동이라는 형태가 등장한 후, 유럽연합 내 국가들은 자신들의 법 체계와 기존의 노동시장 관습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의 지위와 정체성을 규정하려 시도했다. 독일의 경우 노동자, 유사노동자, 자영업자 등의 범주 안에 플랫폼 노동자들을 포함시켜보려 했으나 플랫폼 기업의 모호한 역할, 종사자들의 비종속성 등으로 인해 플랫폼 노동자들을 범주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프랑스는 ‘엘 콤리 법(the El Khomri law)’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보고, 이들에게 적용되는 특정한 권리들을 규정하여 이들을 보호하고자 선제적인 대응을 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 법원은 플랫폼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분류하여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어 노동자의 지위 설정에 있어 엇박자가 생기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작년 5월 ‘라이더 법(Ley Rider)’을 제정하여 플랫폼 배달업 종사자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해 유럽연합과 비슷한 접근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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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또 다른 우영우를 기다리며 내가 작년에 봤던 한국 드라마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였다. 드라마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자폐 스펙트럼을 비롯한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문제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신경다양성은 자폐 스펙트럼,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 난독증, 난산증, 투레트증후군, 아스퍼거 증후군 등 비전형적 신경 인지 발달 상태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용어다. 최근 발표된 연구들은 신경다양인(신경다양성을 갖고 있는 이들)을 전 세계 인구의 20∼30%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처럼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서 신경다양성이 나타나지만, 신경다양인들은 개인이 가진 발달 특성으로 인해 그동안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왔다. 영국의 인적자원 컨설팅 기업 해이즈(Hays)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대졸자 중 85%가 실업상태였고, 영국은 자폐 스펙트럼 성인 중 32%가 유급 노동, 16%만이 전일제 노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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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성별 전환’ 논란의 스코틀랜드 지난 12월22일, 스코틀랜드 의회는 개인의 성별 전환을 용이하게 만드는 성별 인정법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개혁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성별 전환의 최소 연령을 18세에서 16세로 낮추고, 성별 위화감(정체성 불쾌감)에 대한 의학적 진단 요건도 없앨 뿐 아니라, 개인이 선택한 성별로 살아야 하는 기간을 성인의 경우 2년에서 3개월로, 16세와 17세의 경우 6개월로 단축했다. 즉, 성별 전환에 대한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트랜스젠더 및 성소수자의 사생활과 존엄성을 더 존중하고자 성별 전환 절차를 단순화하였으며 이 법이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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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파업 대응, 영국 정부는 달랐다 올겨울 영국은 파업의 열기로 뜨겁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며 피로도가 극에 달했던 필수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파업과 연대가 눈에 띈다. 이번달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간호사노조가 106년 역사상 처음으로 파업에 나설 예정이며, 이미 지하철, 철도, 버스, 중·고등교사 노조의 파업이 진행되었고 또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1월 말, 영국 대학노조에서도 연금 삭감 문제와 임금 인상 요구, 교직원의 불안정 계약 구조, 업무량 과중, 임금 불평등 개선 등을 둘러싼 분쟁으로 3일간 파업을 진행했다. 영국 전역 150여개 대학의 7만여명의 교직원이 참여하며 대학노조 파업 역사상 최고 규모의 파업을 기록했다. 나도 이번 파업에 참여하여 계획된 강의를 취소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정치 파업 논란, 정부의 업무 개시 명령 발동 소식을 접했기에 나는 파업 당사자인 노조와 대화 파트너인 대학,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영국 정부 및 사람들의 태도에 더욱 관심을 갖고 파업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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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미래 세대 위한 AI 활용법 인공지능(AI)의 기술 발전과 활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특히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한국에서는 일부 이용자의 성희롱을 학습하고, 외설적 대화와 혐오 발언을 한 챗봇 ‘이루다’의 사례를 비롯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공공기관 채용 면접 과정에서 알고리즘이 설정한 평가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요지의 공정성 논란이 있었다. 유명인의 영상과 음성 등을 교묘하게 편집, 위조하는 딥 페이크와 가짜 뉴스들, 알고리즘을 활용한 타깃 광고의 확대도 인공지능 기술의 오·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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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스웨덴이 마주한 정치 양극화 지난 9월11일 치러진 스웨덴 총선은 스웨덴 정치사에 길이 남을 선거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좌파 정당 연합과 우파 정당 연합 간 치열했던 접전으로 인해 출구조사 결과와 개표 결과가 엇갈렸으며, 극우 성향의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제2정당으로 도약해 스웨덴 정치의 양극화 현상을 보여주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전체 349석 가운데 우파 정당 연합이 176석을 가져가 사회민주당의 안데르손 총리가 이끄는 좌파 정당 연합 173석보다 3석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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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두 여성에 들썩인 영국 지난주 영국은 두 여성에 대한 뉴스로 가득했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왕좌를 지킨 엘리자베스 2세의 죽음과 영국의 첫 40대 여성 총리인 리즈 트러스의 등장은 전 영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오랜 재위기간 동안 정치적 권한이 없는 한계 속에서도 영향력과 존재감을 뽐냈다. 영국뿐 아니라 전 영연방 국가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함과 동시에 대중과 가까이하며 ‘유명인사’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여왕은 재위기간 중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와의 관계 강화에 힘쓰고 정치적 개입을 자제한 채, 왕가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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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유럽 폭염이 들춘 노동자 인권 올여름 유럽은 기록적인 폭염을 마주했다. 지난 7월, 영국 런던의 최고기온은 40도에 달했으며,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등 대륙 유럽 역시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각지에서 열사병으로 수천명이 사망했고, 야외 현장 노동자들의 사망 사례들도 연일 보도되었다. 폭염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쓰러지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자 유럽 내 노동조합과 유럽노동조합연맹(ETUC)은 일터 내 최고온도 설정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상당수가 작업장의 최고온도를 설정하지 않아 노동자의 건강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초국적 차원의 법 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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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지속가능 사회 꿈꾸는 EU 지난 7월6일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녹색에너지로 분류하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그린 택소노미 법안이 유럽연합 의회를 통과했다. 이번 그린 택소노미 법안 통과는 원자력 에너지를 포함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개정을 공약으로 내건 현 정부의 선택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유럽연합의 그린 택소노미는 원전산업 강국인 우리나라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언론과 산업계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그린 택소노미와 더불어 추진 중인 소셜 택소노미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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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EU, 유리천장 깨기 가속페달 최근 유럽연합은 상장기업의 상임·비상임 이사를 각각 33% 또는 비상임 이사의 40%를 과소대표된 성, 즉 여성으로 임명하는 ‘여성 이사 할당제’를 2026년 6월부터 의무화하기로 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12년 여성이사 할당 지침을 발표하며 할당제를 위한 초석을 닦았으나 법적 개입이 아닌 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기대하던 독일, 영국 등 주요 회원국들의 반대로 오랜 기간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다수의 회원국이 2020년까지 목표로 했던 이사회 내 여성 비율 40% 달성에 실패하자 반대 입장에 섰던 국가들이 할당제에 지지를 표하며 논의가 급진전됐다. 특히 법적 구속력을 가진 할당제를 갖춘 국가들이 여성 이사진 비율 확대에 더 나은 성과를 보이자 회원국들은 그 효과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유럽성평등연구소에 따르면 유럽연합 상장기업 이사회 내 여성의 비율은 2003년 8.2%에서 2021년 30.6%로 높아졌다. 하지만 회원국 간 격차가 커 유럽연합은 할당제를 통해 권역 내 여성 이사진 확대의 균등한 발전을 목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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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하이브리드 워크의 그늘 유럽 각국에서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잠잠해지면서 원격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워크가 보편화되고 있다. 프랑스 장조레 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21~2022년 독일 노동자 중 51%, 이탈리아 노동자 중 50%, 영국 노동자 중 42%가 주중 최소 한 번은 원격근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사 간 협의를 강조하는 재택근무법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고자 하였으며 이는 노동자의 재택근무 사용 권리를 법률로 보장하려는 선제적인 조치로 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