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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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어쩔 수가 없다 비는 가볍게 내려 무겁게 떨어진다. 집 벗어나니 해방된 감각인가. 낯선 곳에 가면 빗소리도 더 잘 들린다. 반복되는 일상의 보자기를 벗어던진 덕분일까. 그곳이 바닷가라면 빗방울도 더욱 굵어진다. 모텔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깨어나 바깥을 보았다. 산에 가려고 동해시에 왔는데 난감한 상황으로 머릿속이 아연 축축해졌다. 몇해 전, 제주에 꽃산행 갔다가 비슷한 상황에서 번개 같은 꾀 하나를 장만해 두었더랬다. 타박타박 떨어지는 저 빗소리, 하늘에서 누가 글 읽는 소리! 주룩주룩 빗줄기를 옛글로 환기한 이후 이런 혼자만의 ‘우쭐’에 빠졌다. 어쨌든 하루는 비가 오거나 비가 안 오거나 둘 중의 하나이니 시시때때로 공부하는 셈이 아닌가.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물방울 하나 관찰하기 비 그친 뒤 숲에는 돌연 적막. 이윽고 공중이 비의 발을 모두 거두자 잎사귀마다 물방울 하나 만들려는 안간힘이 빗발친다. 아무래도 널찍한 활엽수보다 새침한 침엽수가 물방울 만들기에는 유리한 구조다. 그냥 덧없이 증발되기보다는 한 방울이라도 되어 뿌리 근처로 뛰어내리려는 빗방울들의 갸륵한 노력. 그 물방울 떨어져 들꽃이 먹는 이슬이 되고, 그런 광경을 보고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런 시를 남겼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떠도는 먼지에서 몸을 읽고 뒹구는 모래에서 세계를 찾는 것은 실로 대단한 통찰이다. 거미줄처럼 가는 줄기에 얹힌 들꽃에서 하늘나라를 발견하다니!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이사하는 날, 장롱과의 작별 모처럼 늦잠 자고 일어나 베란다에서 바깥을 보니 공중을 들락날락거리는 보따리의 행렬이다. 좋은 구경거리라서 잠깐 아래를 보니 사다리차 근처 올망졸망한 짐들 사이로 건장한 체격의 장롱이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어둑한 곳에서 조금 억울한 일상만 지내다가 모처럼 햇빛 활짝 쬐며 고향 쪽도 실컷 쳐다보는 장롱. 다들 고만고만한 세간살이 중에서도 유독 장롱에 마음이 가는 건 오래전 이런 시를 읽은 덕분이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호주머니 속의 송곳에 대하여 생김새는 물론 한번 이름을 들으면 쉬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송곳도 그런 것 중의 하나다. 일상에서 접하기 퍽 힘든 사물이지만 이런 말은 일찍이 들었다. 가령, 송곳 하나 꽂을 데가 없을 만큼 해운대에 구름 인파로 붐볐다는 표현. 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상징은 벌이다.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말은 그때부터 머리에 꽉 박힌 경구다. 일생을 통틀어 하고 싶은 일 하나는 분명히 가지자는 말은 이웃사촌이다. 어쩌면 우리가 산다는 건 그것에 바쳐져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망외의 그 어떤 성취를 이루더라도 그게 없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그것.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명품이라는 것들 경남 남해군 아기자기한 바닷가에 물건리가 있다. 잘 조성된 방풍림이 천연기념물일 만큼 명승 해안 마을이다. 상록수 공부하러 갔다가 한번 들으매 잊을 수 없는 이름의 물건중학교가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빗방울 흔적, 뛰놀던 운동화 자국이 뚜렷하게 어울린 운동장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물건리의 물건은 우리가 짐작하는 그 물건은 아니다. 지세가 ‘물’(勿)자 혹은 ‘수건 건’(巾)자 모양을 닮아서 물건(勿巾)이다. 학교마다 명물은 있고, 여기 졸업생들 사회로 나가 물건리 출신답게 물건이 되고 명사가 되기도 하였을까.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가로등 아래 반지 찾는 사람 형하고는 지은 인연이 오래고 두텁다. 멀리 꽃산행 갈 땐 늘 룸메이트다. 형은 과학 출판 초창기 무렵, 번역에 투신해 ‘과학세대’를 이끌며 두툼한 목록을 쌓았다. 독문학 전공의 형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군 성과다. 그랬던 형도 호주머니에서 늘 콕콕 찔러대는 송곳을 피하지 못했다. 서른 무렵 독일로 공부하러 가겠다며, 불후의 명작 하나 써오겠다며, 나태한 일상에 젖은 나에게 말했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나무와 어린 왕자 거대한 두 눈의 외계인이 사는 공중. 그 무량한 곳에서 나오는 톱니바퀴 같은 더위가 전신을 꽉꽉 찔러댄다. 땡볕의 나날, 요즘 가장 각광받는 장소 중 하나는 나무 아래일 것이다. 저 집요한 태양도 어쩌지 못하는 곳. 문명사적으로 많은 일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곳도 보리수, 공자가 제자를 길러낸 곳도 은행나무 아래 아닌가. 인류는 그늘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부채 하나 들고 나도 나무 아래로 내려가 나무에 관한 오래된 생각을 구슬려본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장인어른과 옛날로 떠나기 하루에도 몇번 드나드는 화장실. 그곳에 우두커니 걸린 수건을 보며 쓴 시가 있다. “거실 화장실 수건은 늘 아내가 갈아 두는데/(…)/ 어느 날 아침 변기에 앉아 바라보면, 억지로/ 찢어발기거나 태워 버리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을/ 낡은 수건 하나가(…)/ 이제나 저제나 우리 숨 끊어질/ 날을 지켜보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소멸에 대하여1, 이성복)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아래 하(下)에 대한 한 생각 충남 공주에는 제민천을 따라 옛 하숙집들을 재현한 ‘하숙마을’이 있다. 파란 쪽대문, 작두펌프, 텃밭과 툇마루 등을 꾸며놓아 추억과 향수에 젖게 만든다.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거나 못다 한 공부를 새로 시작하고 싶거든 교육도시 공주, 그중에서도 하숙마을로 가보시라. 뜻밖의 회심과 함께 그 어떤 돌발사태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부산의 동래에는 기장, 장안, 양산 등 동해 남부 지역에서 유학 나온 소금기 많은 촌놈들이 많았다. 친척 집에 얹혀 지내기도 했지만 더러 곰팡내 나는 자취나 하숙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가끔 그곳에 작당하러 가면 우리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싫지는 않았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밝은 방, 퇴이, 신비복숭아 봄꽃 눈뜰 무렵 사진 하나를 받았다. 무릇 사진에는 인물이나 풍경이 서로 나오려고 기를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휑한 사진이었다. 사진이란 피사체까지 닿았다가 튕겨 나온 빛들의 집합이다. 빛을 물줄기처럼 조절할 수 있다면 이 세계의 표면적은 얼마나 늘어날까. 너와 나 사이, 그 어떤 섬 하나 있을지도 모를 일. 애석타, 카메라는 그걸 포착하지 못한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백두산에서의 만물 조응 우주 먼지의 집적, 무수한 체세포의 집합, 반투과성 막(膜)들의 연결이라는 그 언저리에 내 몸은 있다. 옷으로 가꾸고 등산화로 가둔 이 불룩한 부피를 실은 나도 잘 모른다. 전모를 동시에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언제나 바깥을 향해 기웃거리고 방황하는 중이겠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삼면이 바다이고 멀리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이 우뚝하고 사이사이 앞산과 뒷산, 그 어디쯤에 나는 산다. 삼시세끼로 생명을 유지하지만 입안을 통과해 그 어디로 넘어가는 것들, 그것에 대해서도 실은 아는 바가 없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제목들 젊은 날 체계적이지 못해 사방으로 흩어진 밥풀처럼 난삽하기 그지없는 세상 공부다. 밥은 먹으면 부르고 술은 마시면 취한다. 이건 명백한 부작용이다. 수불석권(手不釋卷)하라는 선친의 가르침이 있어 옆구리에 책은 하나 끼고 다녔다. 문지방이 닳도록 호프집을 드나들던 시절, 어느 날 헌책방에서 만난 네 글자가 뒤통수를 때렸다. <꿈꿀 권리>. 가스통 바슐라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