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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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11시22분 2000년 6월13일 오전 11시. 공항 활주로에서 기자가 소식을 전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평양입니다.” 이윽고 비행기 문이 열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냈다. 김 대통령은 곧바로 발을 떼지 않았다. 트랩에 선 채 한동안 북녘의 하늘 한구석을 그윽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밀한 고독을 깬 뒤 천천히 내려와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하고 포옹했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악의 평범성 황무지보다 잔인한 달, 4월에 접어들었다. 어떤 일마다 그 어떤 놈이 끼어드는 날들의 연속이다. 발목에 겨우 찰랑대는 내 철학의 수준. 그걸 좀 높이려 하이데거 강의 듣다가 오래전의 영화 한 편으로 연결되었다. <한나 아렌트>, 독일계 유대인 정치철학자 아렌트(1906~1975)의 삶을 다룬 영화다. 뉴요커지의 요청으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하고 리포트를 작성한 아렌트는 유대 지도자들의 책임도 정확하게 지적한 탓에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중단하라는 압력 속에 진행된 아렌트의 꿋꿋한 강의. 어라, 오늘 우리 시대가 새겨들을 말이 아닌가. 조금 길게 중계해본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독도에 관한 명상 땅에 대한 오해가 있다. 우리는 북반구를 지구의 지붕처럼 여기고 땅도 북녘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 이육사의 시 ‘광야’의 한 구절도 이런 상상에 기댄 게 아닐까.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유치환이 울릉도를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우두머리에 대하여 말석에 앉아 노자를 읽는다. 노자만큼 도(道)를 강조한 이도 드물다. 흔히 수양이나 처세술로 읽기도 하지만, 내가 듣는 강의에서는 통치술로서의 해석에 방점을 찍는다. 어쨌든 노자 하면 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논어의 첫 글자가 학(學)이라면 노자의 그것은 도다. 둥그렇게 휘어진 세상의 골목과 길. 갈비뼈 같은 저 길이 없다면 서로 통할 수 없고, 통하지 못하면 섬이다. 가슴 안의 꿈도 부풀어 오르지 못하고 세상의 이상도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골방 문화인 게임과 유튜브가 설친다 해도 밀실이 아니라 광장에서 일은 이루어진다. 이건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자명한 이치이다. 이 우주가 질서 있게 요약된 사회, 그것이 집합적으로 구현된 몸도 마찬가지다. 목숨의 바탕인 몸을 다루는 신비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것이라고 한다. 통(通)하면 살고, 불통(不通)하면 죽는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튀긴 면 하나에 수프 한 봉지. 에걔, 고작 이거냐 싶어도 끓는 물만 부으면 한 끼로 훌륭하다. 텔레비전이 먹통이 되고, 드디어 기사가 오셨다. 대뜸 건장한 기기를 자빠뜨리고, 나사 풀자, 드디어 속이 홀랑 드러났다. 이게 다야? 싸늘한 기판 위에 레고 같은 반도체, 얼기설기 전선들. 거실을 점령한 기기의 실상이다. 같잖게 볼 일은 아니다. 거대하고 복잡한 걸 작고 콤팩트하게 만들려는 게 현대의 문화다. 슥슥삭삭 점검한 뒤 놀랄 틈도 없이 전기를 넣자, 요술처럼 불이 들어오고 미국 대통령이 툭 튀어나왔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계엄과 계몽, 헌법과 풍경 국어사전은 풍경을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으로 풀이한다. 이 문장에는 ‘눈앞’이 빠져 있다. 풍경은 내가 보는 눈앞의 광경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눈앞은 문제적이다. 늘 빤한 것 같아도 결코 뻔하지 않은 깊숙하고 은밀한 공간. 사물과 사실이 항상 활활 타고 있는 장소. 저기 저 눈앞의 자연은 탄복할 만한 재주를 지녔다. 천하 만물에게 자신을 동시에 아낌없이 나누어 주면서도 손톱만큼의 충돌도 없이, 현 사태를 유지 관리하는 자연의 경영술이 아닌가. 자연은 시시각각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바라보는 이들을 안심시키느라 안간힘을 다해 안 변하는 척, 정말 고수의 묘기를 부리고 있는 것.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봉준호 감독의 영화 제목 읽는 재미 예측불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인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에 이은 <기생충>이 가족의 갈등을 다뤘다는 몇 줄의 예고가 흘러나왔을 때,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갑충으로 변한다는 <변신>을 쉽게 떠올렸다. 그러나 제 역할을 못해 가족에게마저 버림받는 밥버러지에 관한 게 아니었다. 나의 안일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카프카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지점이었다. 식충이로 변신한 식구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 가족 간의 대립을 통해 사회 계층 문제를 다룬 영화였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체포의 체’ 자도 꺼내지 않았다는 말 어느 국회의원(A)이 회의 석상에서 어느 국회의원(B)에게 고함을 질렀다. 저거 순 쓰레기네! A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이크를 타고 경향 각지의 안방까지 들렸지만 정작 건너편 B의 귀에서는 그냥 스치고 말았다. 둘은 같은 공간에서 또 말을 주고받는다. 말만 A의 발등을 찧었나. 이후 B가 아니라 A만 보이면 쓰레기가 먼저 A의 얼굴을 덮어버린다. 말의 작용이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판사 한기택 소주 공장 다니면서 소주 많이 마신다는 말처럼 싱겁기도 하겠지만, 출판에 몸담고 책으로 지은 인연이 제법 많다. 궁리에서 책을 낸 정신과 의사의 주선으로 영화감독, 배우, 의사 등과 어울린 후끈한 자리. 자유로운 정신들답게 화제는 사방으로 흘렀다. 문득 술이 제법 불콰해진 영화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고교 시절, 방송반이었는데, 전설로 자리잡은 선배님이 있다면서, 목숨 걸고 재판했다는 판사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당시 이명박 치하에서 광화문의 어이없는 이른바 ‘명박산성’을 성토하다 나온 한 자락이었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비상계엄 관련 공소장 읽는 밤 불발탄이다. 그래도 폭탄은 폭탄이다. 낙진의 후과가 만만찮은 계엄 폭탄. 경계할 계(戒), 엄할 엄(嚴). 계엄이라는 다소 괴이쩍은 이름의 이 짐승을 또 만날 줄이야. 그 옛날 막다른 골목에서 된통 물린 기억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갑진 12월3일. 그날 밤의 내란과 이후 전개된 사태에 일상을 온전히 회복하기가 힘든 이웃이 많다. 수괴(首魁), 체포(逮捕), 탄핵(彈劾), 구속(拘束) 등등 육법전서에나 어울리는 말들이 느닷없이 뛰쳐나와 실생활을 휘젓는다. 사전 속에서는 얌전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사납기 그지없는 단어들.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을사년을 맞이하며 우리말을 받아적는 자음과 모음 중에 하나라도 잃는다면 자연계의 연쇄 사슬이 돌발적으로 끊어진 미싱 링크처럼 그곳의 발음이 술술 새서 아무리 반듯한 생각을 하더라도 말의 빈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이 있어야 세계도 가능한 것. 이러한 자음 중에서 특히 리을(ㄹ)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저 리을이 없다면 이 세상의 의성어, 의태어가 이렇게 풍부할 수 있겠나. 천지간에 미만한 소리와 동작을 어떻게 다 살리겠는가. 빗소리, 바람 소리, 아득한 허공을 나는 철새들의 기척.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네 글자의 점묘화 달이 둥싯 높이 떠오른다. 훌쩍 달에 건너가면 지구가 저 아래 보일까. 그럴 리가, 어느새 지구가 저 위로 둥글 떠 있다. 이처럼 서로가 서로를 정중히 받들지 않는다면 우주는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골라 마르지 않는 신화를 두레박처럼 퍼올리듯, 저 허공에서 누군가 우리가 만들어내는 말과 막걸리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지 않을까. 갑진년에서 을사년, 두 해의 접면에서 네온사인 같은 네 글자들을 골라 이 시대의 풍속을 점묘해 본다. #맞절하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후 마지막 사고 브리핑에서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정부 관계자들을 앞으로 나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저희 요구에도 욕도 많이 먹고 고생도 많이 하셨다. 정말 감사하다”면서 허리 숙여 인사했고, 이들도 맞절했다. #우두머리. 어떤 일이나 단체에서 으뜸인 사람이다. 한밤중의 느닷없는 계엄과 함께 뛰쳐나온 단어. 평생 서너 번 만날 말을 지금 포식하고 있다. 세 글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네 글자를 획책한 우둔한 머리. #장난인가. 계엄 포고령은 국회해산권이 존재했던 군사정권 때의 예문을 잘못 베낀 것이라 했다. 아무래도 계엄을 장난으로 치부하려는 원모심려. 부끄럽다. #폭풍전야. #은박담요. 서울에 눈이 내려 은박담요를 두르고 도로에서 밤을 새운 시민들 위로 수북이 쌓였다. 아, 등신불 같은 눈사람들. #하얀 헬멧. 백골단이라 불리는 단체가 하얀 헬멧을 쓰고 국회에 등장했다. 이를 주선한 이에게 “분변도 못 가리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국회의원씩이나 하는 그도 ‘분변’의 의미는 알겠지. #아수라장. 7시간 체포 작전에 아수라장이 된 ‘한남산성’, 관저의 주인이 떠나자 집회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혼자 남은 안주인의 운명은 이제 어디로 가나. #자승자박.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었다. 체포 저지, 혐의 부인, 조사 거부 등 본인이 초래한 자승자박의 결과였다. #존경하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수사 외압 사건. 피고인의 어머니가 탄원서를 제출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자식들을 볼 때 객관적으로 봅니다. 박정훈 대령은 성장 과정에서 부모 교육을 잘 지켜왔기에 항상 속으로 존경했습니다.” 자식에게 말을 높이는 경우는 더러 보아도 어머니의 저 마음은 처음이었다. 법정은 아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0010. 어느 수인번호.